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2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16)
Chapter 124. 알드바인, 방어전 Ⅱ
악어(鰐魚)를 기본 형태로 삼은 몬스터는 많았다.
춤추는 산맥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그냥 ‘일어서는 악어’라 불리며 다른 품명이 붙지 않을 지경으로, 그저 일어선 채로 날뛰는 정도의 몬스터에게 따로 특별한 품명을 붙이는 것이 오히려 기억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품명을 붙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 것들을 여기저기서 만나다 보니 몬스터 헌터는 구체적인 품종 명칭보다는 자신이 보고 겪어 확인한 특징만 말할 지경이기도 했다. 악어를 닮았는데, 그게 어디가 어떻게 다르고 무슨 짓을 했더라 하고 말하는 편이 이야기하기 더 쉬우니까.
물론 그럼에도 높은 명성을 휘날리는, 너무 유명해서 저절로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악어 두목 혹은 악어 대장이라 불리며 몬스터 리저드만을 휘하로 거느린 흉포하면서도 지휘와 통솔의 역량을 갖춘 녀석, 크로커-킨(Croco-Kin)이라고 공식 품명이 새겨진 녀석이 그런 경우였다. 혼자 나타나지 않고 휘하를 거느리고 나타나며, 악어를 닮았지만 절대로 악어일 리가 없는 몬스터…….
‘……는 아니고.’
투란은 눈매를 좁히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카빈앨리게이터는 분명히 악어를 닮았다.
입과 몸, 꼬리는 완전히 악어인 채라 다른 것 닮았다고 하면 눈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정도로 닮았다. 다만 네발이 보통 악어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양일 뿐이었다. 몸통과 꼬리 길이를 합친 것처럼 긴 네발, 그 굵기도 몸통과 맞먹을 지경이었다. 덕분에 굵게 접힌 관절로 땅을 팍팍 찍으면서 움직이는 모양은 멀리서 보면 완전히 다리가 길고 굵은 벌레로 보였다. 만약 저것이 네 다리로 저러지 않고 두 다리로 뛰고 있었다면 크로커-킨일 수도 있겠지만, 네발로 땅을 짚은 채로 몇 마리씩 무리 지어 움직이고 있으니 크로커-킨은 아니었다. 게다가 거느리고 있는 리저드만 몬스터 떼는 없고, 저것들은 서너 마리씩 자기네끼리 패를 짠 것처럼 기는 모습으로 질주하고 있으니 두목이라든가 대장이라든가 하는 호칭이 붙을 수가 없다.
“에이, 귀찮게! 저 망할 것들은 절벽이랑 평지를 구분 못 하는데!”
투덜거리는 마법사 산돌프의 목소리가 투란의 귓가를 울렸다.
“구분을 못 하면, 그냥 절벽에 들이박아아요? 그러면 성벽에도 그냥…….”
“아니! 구분하지 않고 마구 기어 다닌다고!”
산돌프가 투란이 낸 밝고 긍정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강하게 부정하는 대꾸를 했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절벽을 평지처럼 기어오른다는 말을 왜 그런 식으로 듣는 거야?
‘구분을 못 한다잖아, 구분을!’
드라고니아의 핀잔에 발끈하면서 투란이 산돌프에게 눈을 흘기는 채로 묻는다.
“칼이랑 돌이랑 구분은 하는 놈인가요?”
산돌프가 ‘엥?’ 하면서 되묻는다.
“뭔 소리야?”
“칼로 쳤는데 돌로 찍었다는 것처럼 베이지도 않냐고요.”
투란의 목소리에는 산돌프가 아까 한 말에 대해 삐진 낌새가 역력한 채였다.
산돌프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건 구분해. 뭐, 어설프게 찍으면 그게 그거가 되겠지만…… 가죽이 두껍고 튼튼하기는 해도 칼날 안 박히는 놈은 아냐. 그렇다고 방패랑 칼 들고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쉬운 놈도 아냐. 봐라, 저 멀리 있는데 금방 저렇게 옮겨 간 것이 보이지? 눈앞에 있으면 정말 아차 하는 순간에 등 뒤에 붙어 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빠르다고. 사람의 반응 속도를 훨씬 뛰어넘는 동작을 하거든. 저게 성벽에 붙어 기어올라 오면 진짜 까다로워져. 미리 가시철망이라도 뿌려 둬야 하는데…… 아, 쟤네 뭐 하는 거야!”
한참 투란에게 설명하며 두리번거리다가 짜증을 내는 산돌프였다.
투란도 그쪽을 보다가 한숨처럼 중얼거린다.
“멀리 있는 것보다는 가까운 것부터 해결해야 하니까요.”
둘이 자리 잡은 십이 구역의 성벽은 많이 한가했지만 성벽 문이 있는 저쪽의 상황은 꽤 격렬했다. 몬스터 떼가 그쪽에 맛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했는지, 혹은 열린 성벽 문과 그 앞에 서 있는 인간이 너무 유혹적인지 그리로 많이 몰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성벽 위에서도 문 쪽으로 들러붙는 몬스터를 요격하러 몰려갔고, 덕분에 벌레처럼 보이는 저 먼 곳의 카빈앨리게이터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뭐 저 녀석들도 비어 있는 성벽보다는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쪽이 좋은가 본데요?”
투란이 툴툴거리는 듯이 말하는 그대로 카빈앨리게이터 무리도 성벽 문의 소란에 이끌린 것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산돌프가 그 꼴을 잠시 보다가 나직하니 중얼거린다.
“유도는 진짜 잘한다니까…… 그런데 잘하면 뭘 해, 저기서 다 때려잡지를 못하는걸. 어휴…….”
“예? 유도요?”
투란이 냉큼 한마디를 건졌다는 듯이 물었다.
산돌프는 느릿하니 성벽 너머의 풍경을 손짓하면서 길게 대답한다.
“흩어져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몬스터를 한곳으로 뭉치게 하는 거야. 그러면 우선 자기네끼리 싸우잖아. 그다음에 한곳으로 계속 유인하면 몰려오면서 또 싸우고, 마지막에 남은 상처 입은 몇 마리만 상대하려고 말이야. 여기 근처 하이랜드 지역은 알드바인에서 거의 백 년 가까이 그런 식으로 조작해 놨어. 정신없이 지형에 따라 본능적으로 달리다 보면 몬스터는 항상 성벽 문 쪽으로 몰려들지. 문을 깨고 들어온다고 해도 두꺼운 성벽 안의 좁은 통로 안에 갇히는 꼴이 되고 말이야. 문제는 옆으로 새서 성벽을 기어올라 오는 놈이랑 날아오는 경우. 쏴 떨어뜨릴 준비는 되어 있지만 잘 맞아 주질 않거든. 알드바인의 마스터들은 바람 계열에 조금 둔한…… 것도 아닌가?”
“예?”
하던 말이 살짝 뒤틀리는 것에 투란이 산돌프의 눈길이 향한 곳을 봤다.
날아서 움직이는 몬스터 떼, 작은 악어새와 뭔지 모를 이상한 도마뱀 무리가 성벽 문을 향해 뒤늦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성벽 문을 향해 모여드는 지상의 몬스터 떼와 닮아 있었다.
산돌프는 잠시 손가락 고리를 만들고 콧김을 세게 뿜으며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다시 입을 연다.
“마스터 케이라, 천재라더니…… 이전 마스터들과 다른 성향의 천재라더니, 헛소문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알드바인의 유일한 약점이 공중 방어였는데…… 정말로 바람의 성채를 구축해 놨나…….”
“산돌프? 마법사님?”
투란은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 마법사를 슬그머니 불러 봤다.
그러면서 투란의 마음은 바쁘게 드라고니아에게 묻기도 한다.
‘바람의 성채가 뭐야? 그런 마법이 여기 있는 거야?’
―그런 마법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공중 방어를 위한 마법은 확실히 있어. 바람결을 흩어놔서 날갯짓만으로는 쉽게 이 성벽을 넘을 수 없게 하는 마법이야. 가몬티가 날아서 단숨에 성벽을 넘지 못하고 붙어서 달린 것, 기억하냐?
‘아니. 그랬어?’
가몬티가 날아서 성벽에 접근했을 때, 투란은 갑작스럽게 치솟은 땅구렁이의 습격에서 산돌프를 챙겨 뛰느라 바빴다. 그래서 그때 성벽에서 가몬티가 뭘 했는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 상황을 지켜보던 드라고니아는 조금 자세히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보고 있었으니 투란도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도 한 듯한데, 투란이 몰라라 하니 울컥한 듯 짜증 섞인 말이 툭 튀어나온다.
―그랬다! 그냥 힘겨워서 그런 게 아니고 날갯짓이 방해받아서 그런 거야. 그래도 몬스터 로드답게 꽤 높이 올라오기는 했지. 아무튼 그런 마법이 있어!
투란은 그 투덜거림을 흘리면서 아직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알드바인의 마스터를 평가하고 있는 산돌프의 어깨를 손끝으로 살짝 찔렀다.
“산돌프! 나 보여요?”
“보여! 잠깐 생각한 것뿐이야! 정신 나간 거 아니라고! 미친놈 보듯 하지 마! 마법사가 생각에 잠기면 가끔 주변 모를 때가 있다고!”
투란이 의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산돌프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급하게 변명했다. 투란은 ‘그러시군요.’라고 가볍게 넘기면서 성벽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시늉과 함께 말한다.
“그래서, 우린 이제 뭘 하죠? 여기랑…… 여기부터 저기 남쪽 성벽까지는 너무 조용하잖아요? 이건 또 왜 이래요?”
말하다가 황당하다는 듯이 묻는 투란이었다.
알드바인의 남쪽 성벽, 그루터기에 시알라 남매가 자리를 잡은 근처로는 하이랜드의 소란 따위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고요했다. 이 십이 구역이 한산하듯, 십팔 구역으로 이어진 성벽으로는 잔잔한 분위기만 가득했다. 저 남쪽 습지와 수림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은 항상 저 멀리 하이랜드로 진출한 다음에 뒤늦게 성벽을 발견한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피식, 산돌프가 웃음부터 흘렸다.
“북벽부보다 더 심한 절벽이 남쪽 성벽 너머에 있거든. 게다가 고대(古代)로부터 전해 온 신목(神木)의 영향력도 아예 없어진 것도 아니라서…… 아, 커다란 그루터기 있잖아. 그게 성스러운 나무의 잔해인데, 죽었어도 아직 몬스터에게 약간 영향력이 있거든. 뭐 고블린 같은 녀석들은 그걸 좋아라 해서 땅 파고 들어오려 하지만, 저 늪지대에서 기어 나온 놈들은 아주 싫어하거든. 지형도 그렇고, 그것도 그렇고…… 아주 다른 몬스터의 영역이기도 하고…… 그래서 조용한 거야. 아직은 말이지.”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으면서 마법사의 표정은 아까처럼 혼자만의 생각에 서서히 빠져드는 듯했다.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마법사에게서 눈길을 떼고 조금 더 흉벽에 몸을 얹으면서 저쪽 아래에서의 난투를 보려 했다. 한데…….
우르릉, 쿠르릉.
갑작스럽게 은은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마른하늘인데 날벼락이라도 치겠다는 예고라도 하는 듯, 드라고니아가 짧게 말했다.
―마법이다.
산돌프도 곧바로 흠칫하면서 외친다.
“우앗, 뭐야! 뇌격(雷擊)이라니, 갑자기 왜……!”
투란이 냉큼 성벽 문 쪽, 그 너머를 손가락질하면서 이에 답한다.
“땅에서 뭐 나와요! 지렁이 주둥이 뱀이 또 나오려나 봐요!”
성벽 문에서 백여 미터 거리의 땅이 들썩였고 폭발하듯 뒤집어졌다.
땅을 뒤집고 튀어나온 것은 날개를 펼치듯 우람한 두 팔을 펼치고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단번에 세 마리가 그렇게 자태를 드러냈다.
산돌프가 손가락 고리 사이로 그 광경을 보고 으르렁거린다.
“대체 왜 자꾸 나오는 거야! 저 미친 테러사우루스! 대체 저것들이 언제부터 땅 파고 다니는 취미가 생겼냐고!”
콰르— 콰쾅, 콰르릉!
은은했던 천둥소리가 벼락소리로 바뀌었다.
허공에서 창백한 섬광이 가지를 뻗었고, 통나무 굵기만 한 빛줄기가 소나기처럼 퍼부어 내렸다. 성벽 문 앞이 그 벼락의 소나기에 짓밟혔다. 성벽 문에서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빛줄기가 봇물 터진 강줄기처럼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늘에서 꽂히고 땅에서 터져 나온 벼락의 난무(亂舞)가 뭉쳐 있는 몬스터 떼를 새카맣게 변색(變色)시키면서 땅에서 튀어나온 테러사우루스를 향해 밀려갔다.
짓이겨지는 앞쪽의 풍경에 테러사우루스도 위협을 느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 마리는 완전히 벼락 줄기에 휩쓸렸고, 두 마리는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정도로 피해 냈다.
콰지직, 콰앙!
폭음이 이어졌고, 처음 쏟아져 온 벼락 줄기를 피한 두 마리도 허공에서 다시 내리꽂힌 벼락 줄기에 두들겨 맞으며 쓰러졌다.
쿠오오오!
거센 바람결이 성벽을 타고 흐르며, 벼락불에 까맣게 타 버린 몬스터의 잔해를 멀리 쓸어 가려는 듯이 불었다. 거뭇한 재가 흩날렸고, 열렸던 성벽 문이 다시 닫히는 듯했다.
“우와…….”
투란은 눈을 크게 뜨면서 진심으로 놀란 소리를 냈다.
잠깐 사이에 거대한 테러사우루스 셋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벼락에 뭇매를 맞고 쓰러진 셈이었다. 그 여파에 휩쓸린 것처럼 여태 툭탁거리던 몬스터 떼도 함께 처맞고 구워진 것이고!
산돌프도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낸다.
“미스트리스 오브 라이트닝…… 진짜였다니…….”
투란이 눈을 깜박이면서 산돌프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을 느낀 듯, 산돌프가 말을 잇는다.
“마스터 홀시딘은 파니틱 플레임, 불꽃 마법의 달인이라고 꼽히지. 그 뒤를 잇는 마스터 케이라는…… 번쩍하는 순간에 그 불꽃의 힘을 집결시키는 걸 좋아한다고…… 벼락불로 두들겨 팬다고 ‘벼락의 숙녀’라고 불린다고 했어. 몬스터를 상대할 때 말이야. 다른 별명도 많지만…… 헌터 길드 쪽에서는 그 별명이 가장 먼저 퍼졌어.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저런 위력을 쏟아 낼 정도의 마력을 갖추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여겼는데…… 아무리 상아탑이 지원하는 마도사라 해도 숙련하고 숙성하려면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한 줄 알았는데…… 젠장할!”
투란은 어느 틈엔가 산돌프가 다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든 것을 느꼈다.
마스터 케이라에 대해서 감탄하는 것을 시작으로 뭔가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채워지는 듯한 산돌프였다.
다른 때라면 무슨 일이냐고 슬쩍 물어볼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투란이 그런 사정을 챙겨 줄 때는 분명히 아니었다.
“아, 쟤들 겁먹고 이리 오네.”
성벽 문으로 몰려가던 몬스터 무리가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한가한 이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