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2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18)
“돌 쏟아!”
“기름 부어!”
“기름통 어딨어!”
“불 던져, 불!”
“저 시키! 왜 안 타는 거야!”
“입김으로 불 끄고 있잖아!”
“가시! 가시철망 가져와!”
“기름통! 큰 돌 없냐!”
화르르, 콸콸콸, 붕붕…….
요란한 외침, 거센 음향이 십이 구역을 메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흉벽에 붙어서 상황을 보고, 누군가는 흉벽 앞에서 가져온 뭔가를 열심히 두들겨 맞혔고, 나머지는 몬스터를 향해 가져온 것을 쏟아붓는 소란이 가득했다. 한산했던 시간은 그야말로 언제 적인가 전혀 기억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큰 자루로 옮겨진 돌무더기가 흉벽을 타고 넘어 쏟아져 내렸고, 기름통이 통째로 혹은 기름을 아래로 부었다. 뒤이어 횃불이 던져지는가 하면, 아예 부어내리는 기름에 불이 붙기도 했다. 가시철망에 가득 쌓인 돌 더미도 성벽을 타고 던져졌다.
그 덕분에 테러사우루스는 성벽을 절반쯤 기어오르다가 주르륵 미끄러지기도 했고, 몸에 붙은 것을 털어 내느라고 허우적거리다가 뒤집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10미터가 넘는 몸집이 2, 30미터의 높이에서 떨어진 정도는 거뜬히 버텨 냈다.
떨어져서 통통 튀다가 바르르 떨고 죽어 버린 카빈앨리게이터랑 비교하면, 테러사우루스는 확실히 격이 다른 셈이었다.
더 큰 몸집만큼 더 튼튼하고, 더 집요했다!
이를 내려다보면서 투란이 중얼거린다.
“정말 불이 잘 안 붙네…….”
가끔 두꺼운 가죽에 달라붙은 끈적한 기름이 끈질기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테러사우루스가 후욱 불어 내는 입김과 거칠게 휘두르는 꼬리가 긁어 대듯이 스치면 싹 꺼질 뿐이었다. 원래 두텁고 내화(耐火)의 성질이 있는 가죽에다가 저리 관리까지 해 대니, 불로 공격하는 것은 영 아닌 셈이었다. 마법사인 산돌프가 불꽃 벌떼 공격을 깔끔하게 포기한 것이 당연했다. 제대로 뚫으려 한다면 산돌프가 일발조루라 불리게 하는 그 한 방인데…… 마법사는 지금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 명상에 빠져 있었다.
입술을 삐죽이는 채로 투란은 산돌프를 흘깃했다.
‘와,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꿈쩍 않네?’
―마법사라면 당연한 집중력이다. 어설프게 나대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명확하게 해내는 중이잖나. 왜 불만인데?
‘상황 보면서 뭔가 도움 되는 말이라도 해 주는 게 좋잖아?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마력을 모은다고 저러는 것보다는 말이야.’
―입 놀려서 될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 다들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구만, 너 빼고 말이야! 계속 손 놓고 구경만 할 거냐? 테러사우루스는 둔해 보여도 약아빠진 놈이라고! 이대로면…….
‘진짜 약았네. 위에서 쏟아붓는 간격을 제대로 읽은 모양인데? 헤에, 빈틈을 찌르고 팍팍 올라오시는구먼?’
턱, 투란은 흉벽 위로 올라섰다.
돌무더기를 붓고 기름을 흘리던 이들은 아직 투란을 보지 못했다.
올라오면서 가져온 돌무더기와 기름, 철망 따위를 거의 소모한 때였고 이를 보급하려고 인원이 반쯤 다시 내려간 채였다.
테러사우루스는 아래에서 버둥거리고 있다가 이 틈을 노린 것처럼 거세게 치달리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카빈앨리게이터와는 격이 다를 정도로 그 속도가 느리다. 발톱이 성벽에 꽂힐 때까지 후려치고 있었고, 힘으로 몸을 위로 밀어 올리고 있는 탓처럼 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저 몸집이라면 겨우 십여 분 정도면 여유 있게 성벽에 올라설 듯이 보이는데…….
“아저씨들! 눈깔 찌르고 올 테니까, 잠깐 기다려 줘요오오! 내 말 들었어요? 내려가서 눈깔 찌르고 올 테니까아아! 잠깐 멈추고 기다리라고오옷!”
투란이 거듭해서 외쳤다.
대답은 다소 정신없는 채로 나오고 있었다.
“뭐? 뭘 한다고?”
“눈깔을 찔러?”
“어딜 다녀온다고!”
투란은 몇 명이 자신을 볼 뿐인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더 분명히 행동하기로 했다. 곧바로 서 있는 흉벽 위에 손목에서 쏘아 낸 후크라인이 박혔다. 이어 봐 놨던 긴 낫을 쥐어 들고 긴 줄을 흉벽에 늘어뜨리는 채로 투란이 내달렸고, 흉벽 너머로 가진 것을 쏟아 내던 이들이 흠칫하며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그와 함께 투란의 외침이 다시 울린다.
“눈깔 찌르고 올 테니, 잠깐 기다려요!”
“야! 미친 소리! 얀마아아!”
누군가 말리려는 듯한 소리를 내지르다가 훌쩍 뛰어내리는 투란의 모습이 기겁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다들 흉벽에 들러붙어서 뛰어내린 녀석이 뭘 하는가 잠깐이라도 지켜보는데…….
휘이잉!
손목에서 길게 이어진 줄이 투란을 추처럼 휘둘러 테러사우루스에게 던져 넣는다.
그 속도를 가늠하면서 투란은 후크라인을 회수했다.
줄이 손목 안으로 감기는 것을 느끼며 투란의 두 손이 긴 장대를 움켜쥐었고 끝자락에 날카롭게 뻗은 낫의 칼날이 높이 치켜 올려졌다.
테러사우루스는 위쪽의 공세가 뜸한 틈을 타서 순식간에 20여 미터를 기어올랐고, 곁에서 뭐가 날아드는가는 신경 쓰지 않는 채였다. 그 몸집에 뭐가 와서 들이박든 별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때문에 투란이 휘두른 낫이 제대로 깊숙이 꽂혔다.
덩치가 큰 탓에 바늘로 찌른 격이었지만, 깊숙이 박힌 바늘은 테러사우루스를 제대로 아프게 했다.
쿠우어어!
찌른 낫의 장대를 휘어잡아 비틀면서 투란은 테러사우루스의 옆구리를, 등짝을 밟고 내달렸다. 접지력을 강화한 스파이크 부츠는 기름 묻은 가죽조차도 무시한 채로 투란을 달릴 수 있게 했다.
‘우와! 하클 대단해!’
테러사우루스의 머리 위로 튀어 오르면서 투란은 감탄했다.
후크라인과 부츠, 하클이 마법 없이 마법과 같은 효과를 보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큰소리칠 만한 기능을 제대로 드러내 준 것이다.
푹!
연이어 팜 블레이드가 억세게 꽂히며 투란이 테러사우루스의 머리 위에 매달리게 해 줬다. 바로 망설임 없이 투란은 하클의 인힐트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칼날이 반뜩거리며 형성되는 순간, 테러사우루스가 재빨리 눈을 감았다.
눈에 뭐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본능적이고 반사적으로 방어한 셈이었다. 더불어 테러사우루스의 앞발, 팔이라 불릴 한쪽이 머리에 들러붙은 것을 떼어 내겠다는 듯이 우악스럽게 휘둘러져 왔다.
이대로면 투란은 머리와 저 발톱 사이에 끼어서 찌그러진 핏덩이가 될 듯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투란은 그런 것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꼭 감고 있는 눈꺼풀 한쪽에 칼끝을 꽂았고, 날아드는 크고 넓은 손아귀를 향해 칼자루를 맞췄다.
경악해서 놀란 소리가 흉벽 위에서 울려 퍼졌다.
“우아악!”
“야, 피해!”
“뛰어내려어엇!”
대신 비명을 지르는 이도, 피할 곳이 없어도 피하라 하는 이도, 수십 미터 높이보다 몬스터의 손아귀가 더 위험하다며 뛰란 이도 있었지만 누구도 예상은 못 했다.
넓게 펼쳐진 몬스터의 손가락, 이 경우에는 정확하게 앞발가락인 그 틈새로 불쑥 투란이 튀어나올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대로 후크라인을 흉벽 쪽으로 쏘아 내더니, 가볍게 솟구쳐 올라오기까지 하는 투란이었다.
그런 투란의 아래에서 테러사우루스는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고 있었고, 그 한쪽 눈에서 핏물이 치솟고 있었다. 뭔가가 그 눈알을 제대로 후벼 파서 으깨버린 광경이었다.
내려다보는 이들이 다소 얼빠진 표정을 지을 때, 흉벽 가까이 치솟아 올라온 투란이 외친다.
“차앙! 창! 창 줘요, 창!”
“뭐?”
“어? 엥?”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소리가 몇 마디 이어졌다.
그 사이로 냉큼 누군가 무기대에서 창 한 자루를 빼 던지며 외친다.
“옛다, 창!”
투란은 공중에서 창을 받아 들며, 창을 던진 산돌프를 쳐다봤다.
열심히 마력 모으는가 싶더니, 어느새 일어나서 얼빠진 이들 틈새에서 요청한 일을 해 주는 마법사!
‘대단하네.’
―할 일 한다고 했잖아.
드라고니아가 살짝 핀잔했다.
살짝 혀를 차며 투란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의 다음 할 일에 몰두하기로 했다. 창끝을 아래로 최대한 밀어내듯 창 자루 끄트머리를 잡고, 웅크린 모습으로 투란이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직 테러사우루스는 한쪽 앞발을 성벽에 박아 넣은 채로 멀쩡한 한쪽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 있었다.
피핑, 창 자루 끄트머리를 꽉 잡은 두 손목에서 후크라인이 양쪽으로 뻗어 나갔다. 성벽에 들러붙은 두 가작 후크라인의 줄, 그 한쪽을 풀고 한쪽을 당기고…… 창끝을 빙빙 돌리면서 투란은 몬스터의 남은 한쪽 눈알을 노리고 떨어지고 있었다. 발출과 회수, 응용이 그야말로 자유로운 하클의 걸작이란 것을 느끼고 최대한 활용하는 셈이었다.
이를 보는 테러사우루스는 눈알을 굴리면서 떨어져 내리는 것이 과연 어디를 노리는가를 열심히 가늠했다. 창끝이 멀리 빙빙 도는 듯한 탓에 눈알에 박히려 하는 것은 그 창끝 자락에 달린 먹잇감이라 여기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투란은 제대로 테러사우루스의 눈알에 창끝을 꽂을 수 있었다.
뒤늦게 눈을 감으며 머리를 흔들려 했지만, 테러사우루스의 감은 눈꺼풀 사이로 창은 이미 파고드는 중이었다.
쿠워엇!
몬스터의 비명을 무시하며 투란은 창대 끝을 발로 밟았다.
꽂힌 다음에 재빠르게 몸을 펴서 그 위에 선 채로, 후크라인을 조절하며 오러 마크의 힘을 한껏 끌어올려 내리차듯이 밟는 동작이 서너 번 이어진 광경이었다.
콰직!
눈알 구멍 너머에서 뭔가 뚫리는 느낌이 발에 느껴지는 순간, 투란은 더 거세게 내리찍듯이 밟았다. 창대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테러사우루스의 머리 깊이 스며들어 갔다.
성벽에 박아 넣고 힘을 주던 테러사우루스의 남은 한쪽 앞발이 힘을 잃은 듯이 떨어져 나갔다.
―야, 죽었어.
더 들러붙어 뭘 하려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짧게 말했다.
‘응? 벌써?’
머리에 창 하나 박았다고 죽다니, 뭔가 몬스터답지 않잖은가?
생각과 다르게 투란은 두 손목의 줄을 당겨 튀어오르고 있었다.
적당한 간격을 가늠한 다음, 후크라인이 다시 회수되었고 쏘아졌다.
투란은 흉벽 위로 치솟았다가 살며시 흉벽을 밟고 내려섰다.
쿠우웅.
테러사우루스도 성벽 아래에서 큰 소리를 울리며 추락의 끝을 알렸다.
고개를 쳐들면서 투란이 깊은숨을 토해 냈다.
“푸아핫! 으아, 힘들어!”
땀방울이 이마에서 볼에서, 흔드는 고갯짓에 따라 튀어 올랐다.
누군가 멍하니, 맹한 소리를 냈다.
“너, 뭐냐?”
투란이 그쪽을 보고 간단히, 긴 숨결을 토하듯 답한다.
“투란, 본명이에요. 아, 저기 한 마리 더 올라오려나 본데요?”
손가락으로 짚으며 하는 말끝은 곧바로 성벽의 방어를 맡은 이들을 정신 차리게 한 모양이었다.
“야, 움직여!”
“기중기이!”
“조립 끝났어!”
“보급 리프트 올라왔다아!”
“이제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보여 주마!”
흉벽 곁으로 투석기랑 닮은 기계가 세워졌다.
성벽 아래에서 승강대가 여럿 올라왔고, 그 위에는 돌무더기와 기름통, 뾰족한 쇳덩이가 속이 빈 채로 뒹구는 듯이 보였다. 덤처럼 자잘해 보이는 도검(刀劍), 창, 활과 화살도 통에 실려 있었다.
투란은 흉벽에 걸터앉아, 두 번째 올라오는 테러사우루스를 향해 굵직하고 삐죽한 쇠통이 기름을 가득 싣고 산돌프의 가벼운 마법 지원까지 받아서 떨궈지는 광경을 봤다. 굳이 급소를 노릴 것도 없이 목줄부터 몸통까지 꿰인 채로 불타오른 테러사우르는 당연히 떨어져 죽었다.
그 광경을 보다 보니 투란은 뭔가 멋쩍어졌다.
‘괜히 이상한 짓 했나?’
―시간을 벌었잖아. 처음 테러사우루스 한 마리는 저 준비를 하기 전에 성벽 위로 올라섰을 거야. 그걸 막은 거다. 잘한 거야.
드라고니아가 조금 다독이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잘한 거겠지?’
이렇게 투란이 숨을 고르면서 다소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려 하는데…….
“이봐! 저기 작은 놈!”
“야, 다시 좀 날아가 줘!”
“저거 한 마리만!”
“힘 좀 써 줘어!”
십이 구역의 저쪽 끝자락, 십삼 구역에 가까운 아래쪽을 가리키며 투란을 부르는 외침이 있었다.
냉큼 무기대에서 투창 하나를 집어 올리며 투란은 다시 흉벽 위를 달렸고, 후크라인을 쏘아 내며 뛰어내렸다.
저쪽에서 빈틈을 노리고 빠르게 올라오는 카빈앨리게이터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