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19)
“마스터 케이라, 십이 구역은 들은 대로 흥미롭군요.”
바르텔이 말했다.
케이라는 이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바르텔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바라보는 안개로 이뤄진 형상 한구석을 케이라의 시야 쪽으로 살짝 밀어 보낼 뿐이었다. 그 안개 위에는 작은 빛이 맴돌면서 그림을 비춰 내고 있었다. 그림은 사람과 성벽, 몬스터의 조그마한 모형처럼 비추면서 꾸물거리는 채였다.
케이라가 그 안개 속의 풍경을 흘깃하고 바로 묻는다.
“이상한 점이라도 있었나요?”
대답을 대신한 물음에 바르텔이 차분하게 대답한다.
“정상을 벗어난 이상은 없다고 해야겠지요. 다만 보통이라고 할 수는 없는 특이한 헌터가 보이는군요. 마스터 케이라, 알고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십이 구역의 배치를 다른 곳보다 조금 줄였던 것 아닌가요?”
케이라는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
바르텔은 그 모습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마법사의 태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동료 마법사로서 가만히 바르텔이 기다리니…….
“제가 아는 것은 적군요. 스승님이…… 마스터 홀시딘께서 섭외한 헌터라는 것만 아니까 말이죠.”
모호한 대답을 하는 케이라였다.
하지만 바르텔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케이라가 바르텔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십이 구역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요구하면서 맡긴 것이다. 뭔가 알고 있다기보다는 알기 위해서, 주관적인 시점을 배제하고자 부탁한 셈이었다.
납득하는 바르텔을 향해 케이라가 마침 나온 말이니 확인한다는 것처럼 묻는다.
“특이하다는 것은 어떤 면인가요?”
“오러 마크…… 헌터스 배너의 보유자이니 통상적인 한계를 넘어선 몸놀림은 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어요. 하지만 이 헌터는…….”
“투란, 본명이라더군요.”
“투란의 움직임은 아주 정교하더군요. 상황이 내포한 모든 가능성을 미리 계산해서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조금만 잘못 생각하면 마치 예지 능력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아, 그리고 꽤나 묘한 장비를 사용하더군요. 마법의 기척은 전혀 없는데 마치 마법으로 만든 도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단했어요.”
바르텔이 차분히 말하면서 살짝 안개 위로 손짓했다.
안개가 그려 내는 모형 속에서 투란의 팔뚝이 확대되었고, 실과 바늘처럼 여겨지는 후크라인이 격출되고 성벽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광경이 묘사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투란이 도약하고 흔들리다가 성벽을 밟고 뛰는 탓에 안개가 꿈틀거리며 그 광경을 확대해서 모두 보여 주려 했지만, 이어진 바르텔의 손짓에 따라 전체 풍경을 비추는 모양으로 되돌아갔다.
케이라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하클…… 공방 장인 중에 검은 산맥을 넘어 다녀온 분이 있어요. 거기서 특이한 기술을 여러 가지 배워 와서 만든 것 중의 하나일 거예요.”
“검은 산맥 너머라면…… 저게 바위 요정족의 태엽 기술을 배워 온 겁니까? 놀랍군요. 가르쳐 준다 해도 요정의 피를 이은 자만이 가능해서 배울 수 없다 하던데…….”
바르텔은 케이라의 짧은 설명 속에서 하클의 기술이 어디에 기반을 뒀는가를 추측해 내고 있었다. 케이라는 미묘한 쓴웃음을 띠며 바르텔이 상아탑의 서적 속에서 얻지 못한 지식을 말해 줘야 했다.
“익힐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배워서 쓸 수 있는 기술이라 했어요. 다만 바위 요정, 그 일족이 지닌 섬세한 감각과 손재주가 타고난 재능이라서 그들보다 몇십 배는 더 노력해야 겨우 기술의 끝자락을 만질 수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왜곡되고 와전된 이야기가 퍼져 있다더군요.”
“그렇겠군요. 그렇다면 알드바인에서는 저 기술을……?”
“하클 이외의 다른 장인들은 저 정도 물품을 만들지는 못해요. 그저 그 기술의 편린(片鱗)을 쥐고 만족할 뿐이었어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더 쉽게 만든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보여 주기도 했으니까.”
“노장인이 사라지고 기술의 후계자조차 없게 된다면 알드바인에 큰 손실이 되겠군요.”
바르텔이 아쉬운 기분을 가득 담아 말했다.
뛰어난 기술이 한 세대 만에 끝난다는 것, 다음 세대가 그 기술의 연마가 힘들어 포기한다는 것에 대해 섭섭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케이라는 이런 말을 듣다가 ‘음?’ 하며 미묘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클의 장비를 사용하는 투란, 투란을 섭외한 홀시딘…… 케이라가 투란을 처음 만난 곳은 자카라 산림.
은근히 비싸서 물품의 질과 상관없이 팔리지 않는 것이 하클의 작품이었잖은가?
그것을 사서 성벽에서 활약하는 투란의 지금 모습…….
‘설마 스승님……?’
마스터 홀시딘이 이 상황을 유도한 것이 아닐까?
케이라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홀시딘과 하클의 관계…… 하펠이란 옛사람의 자취를 끼워 넣으면 충분히 이런저런 배려를 할 수 있는 사이이고, 그렇게 해 왔다. 거기에 투란까지 끼워 넣는다면?
“마스터 바르텔, 십삼 구역부터 십구 구역…… 남쪽 성벽까지 다시 한번 점검해 주세요. 북벽구와 십 구역까지 제가 점검하겠어요. 인원 순환을 확인하시고, 보급 지시도 부탁드려요. 소강상태인 지금 재정비할 수 있을 만큼 해 둬야 할 것 같군요. 새로운 타입의 몬스터가 몰려올 듯하니…….”
케이라는 마음속에 번져 가는 관계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깊이 묻으면서 지금 해야 할 일에 다시 몰두하기로 했다. 바르텔 역시 두말없이 바로 요청받은 바에 따라서 점검을 시작했다.
상아탑 높은 곳에서 두 명의 마스터가 알드바인의 전체 상황을 이렇게 지켜보는 사이 성벽 쪽에서는…….
“뜸해졌네요?”
투란이 흉벽 너머를 보며 말했다.
“좋잖아! 힘들어 죽겠구먼!”
산돌프가 바닥에 누운 채로 대꾸했다.
“좋기야 좋지만…… 끝난 걸로 안 보이니까 좀 그렇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며 투란이 툴툴거렸다.
“쉴 수 있을 때 쉬어! 괜히 구경하다 지치지 말고.”
산돌프는 씩씩거리며서 뭐가 오든 말든 다 귀찮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지금은 휴식이 가장 중요하고 다른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지금 가장 바람직한 자세이기도 했다. 앞으로 계속 뭐가 올 거라고 벌벌 떨고 있는 것보다는 쉴 때 쉬고, 싸울 때 싸우면 되잖냐는 것이니.
해가 저물었다가 떠서 다시 저물 때까지, 거의 하루하고도 반나절 가까이 혹사당한 지금 와서 생각하기조차 싫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마법사의 모습이었다.
투란은 그 늘어진 자세를 보면서 실실 웃음이 새는 것을 느꼈다.
할 때는 하고, 안 할 때는 완전히 안 한다!
이런 마법사의 태도는 투란에게 아주 신기했다.
다들 바쁜 와중에 이런 태도를 유지한 것부터, 그러면서도 지나다니는 바쁜 이들 중 누구도 뭐라 하지 않게 하는 것까지! 할 때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 놓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걸 꽤 잘 드러낸 것은 몹시 신기했다. 딱히 투란처럼 성벽을 배경 삼아 훨훨 나는 꼴을 보여 준 것도 아닌데, 다들 마법사 산돌프가 자기 몫을 확실히 해냈다고 ‘알고’ 있었다.
‘마법이야?’
―아니야. 적절하게 손을 내밀고 노골적으로 마력을 풍겨 내서 알게 했을 뿐이지. 뭐랄까, 인간 사이에서 뭘 어찌하면 마법사가 뭘 했는가를 눈치채느냐에 대해서 아주 깊이, 잘 알고 있는 경우겠지. 정말 특이한 경우야.
‘크고 센 거 한 방도 안 날렸는데…….’
―대신 자잘한 것을 계속 뿌려 대서 그 위력을 강화해 줬지. 테러사우루스를 관통시킨 기름통, 그것부터 시작이었지. 멀쩡한 기름통에 회전을 걸고, 겨냥을 지원한다고 노골적으로 외치고…… 자잘한 불길을 계속 눈에 띄게 날리고…… 현자(賢者) 스타일의 마법사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응? 현자 스타일?’
―강력한 마법, 심오한 마법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마법을 쓰지만 그 결과물은 강력하고 심오한 마법에 버금가게 하는 방식…… 그걸 현자 스타일이라고 한다. 보통은 한 가지 주문, 한 종류의 마법을 갈고닦는 스펠 캐스터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아무래도 마력이 모자란 자신의 상황 때문인지 산돌프는 그런 스타일로 자신을 갈고닦은 모양이야. 잘못하면 눈에 띄지 않아 뭘 했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스타일이니까, 그것도 꽤 신경 써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에 잘 보이도록 꾸미는 재주까지 더해서 말이지.
‘대단하네.’
투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감탄했다.
드라고니아에게는 꽤 의아하면서도 애매한, 그저 이런 인간이 있나 싶은 듯해서 흥미롭게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투란에게는 분명하게 납득이 가는 것이 산돌프의 방식이고, 스타일이었다.
현자, 현명한 자라는 그 의미대로 현명한 행동 방식이라 그냥 넘기기 쉽기도 하겠지만 헌터 파티에서는 산돌프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라 할 정도로 필요했다.
멀리서 화살만 쐈는데 전부 빗나가지 않았느냐고, 약속된 몫의 배분을 줄이려 하는 멤버들이랑 칼부림해서 자기 몫을 챙겨 가는 활잡이 헌터를 투란은 본 적이 있었다. 그 빗나간 화살이 몬스터를 제대로 견제했다는 것을 외면한 그 파티는 결국 활잡이 없이 사냥을 나갔고 돌아오지 못했다. 그 상황에 대해 샤오 할배는 활잡이 녀석이 나머지를 전부 죽인 것이라고 혀를 차는 모습을 보였다. 애초에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알려 두지 않아서, 어중간한 녀석들이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그 이야기를 투란이 이해하는 데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샤오콴 마을을 떠나기 며칠 전에야 겨우 납득한 것이니까.
그리고 이제까지 홀랑 잊고 있었는데…….
산돌프의 요란스러운 마법, 버럭 소리치는 태도와 대놓고 늘어져 쉬는 모습에도 주변에서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광경을 보니 자연스럽게 이게 무슨 상황인가 납득하면서 기억났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럭저럭 잘 보여 주긴 했지?’
―음? 넌 아주 대놓고 날 봐라 하고 날뛴 경우잖아.
‘그렇게까지는 아니잖아?’
―아니긴! 너 말고 줄 타고 성벽에서 팔딱거린 녀석은 아무도 없거든?
‘그건 하클의 후크라인이 특별해서…… 어? 저거 뭐야?’
툴툴거리면서 드라고니아에게 소리 없이 대꾸하다가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며 흉벽 너머의 풍경을 바라봤다.
―프라이머 버드……?
‘응? 너 알아? 뭔데?’
아직은 티끌처럼 보이지만, 공중에서 구름보다 낮게 깨작거리며 움직이는 그 티끌을 어렴풋이 몬스터라 느끼며 투란이 물었다.
―새의 조상(祖上)? 새의 원형(原形)? 혹은 새가 날지 못하는 꼴로 퇴화(退化)하기 직전?
‘뭔 소리야?’
―간신히 날고는 있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새라고 해야겠지만 꼭 새라고 해야 하는가 애매모호한 존재라는 거지. 일단 자세히 봐라, 그러면 뭔 말인가 바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투란은 슬쩍 주변을 먼저 둘러보고 눈을 가늘게 한 채로, 저 먼 곳에서 맴도는 프로브의 시각을 공유해서 봤다.
한쪽 날개에는 깃털이 돋았고, 한쪽 날개는 털과 가죽이 대충 섞인 것이 먼저 보였다. 부리는 길쭉한데, 부리 안에는 이빨이 이모저모로 가지런히 잔뜩 돋아 있었다. 꼬리인지 꽁지인지 모를 길쭉한 것도 그냥 털과 깃이 뒤섞인 모호한 모습…… 심지어 두 발의 발톱조차도 새와 도마뱀이 적당히 섞인 꼴을 하고 있었다.
말로 하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몰골을 보다가 투란이 산돌프의 발을 가볍게 발끝으로 건드렸다.
“마법사님! 산돌프, 잠깐 일어나 봐요.”
“잔다, 자는 사람 깨우지 마!”
“장난치는 거 아니라고요!”
“젠장, 그냥 누워! 오러 마크로 눈알 좋은 거 자랑하지 말고 누워!”
쉽게 일어나지 않은 채, 산돌프는 꽥꽥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투란이 어이없어하면서 산돌프를 내려다보는 광경을 주변의 모두가 돌아볼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쓴웃음을, 몇몇은 긴장을 했고 한 명은 얼른 투란 쪽으로 다가오며 큰소리로 묻는다.
“왜? 뭔데 그래?”
투란은 그가 풍겨 내는 오러의 자취를 느꼈고, 헌터스 배너의 낌새를 알아차렸다.
투란이 오러로 강화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볼 수 있는 사람이고, 그는 이 구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반쯤 지휘하고 반쯤 싸우는 책임자였다. 아직 이름도 모르기는 했지만…….
“저기요, 구름 아래로 점 같은 것이 날고 있잖아요. 방금 전보다는 조금 잘 보이는 것 같은데…… 새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 마법사님이면 자세히 볼 수 있을까 해서 그러는데…… 산돌프? 마법사니이임?”
“쉬게 좀 해 달라고!”
징징거리면서 산돌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일어섰다.
그사이에 투란이 가리키는 방향을 가는 눈길로 본 이가 외친다.
“전달해! 남쪽 늪지대에서 뭐가 날아서 나온다! 확인이 필요함, 전달해!”
소리가 꼬리를 물듯이 저편으로 이어져 갔다.
그사이에 산돌프는 흉벽에 기댔고, 손가락 고리를 만들어 눈알을 들이댔다. 그리고 바로 산돌프의 입에서 투덜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온다.
“조상새잖아! 저게 왜 저기서 나와! 아, 짜증 나! 이봐, 조상새라고 전해! 대강 잡아도 수십 마리이고…… 쟤네, 바람잡이 능력 있는 거 알지? 이리로 안 오면 좋겠는데, 오면 심각하다!”
“전달! 조상새! 바람잡이 조상새란다! 길드 마법사가 확이인!”
어느새 휴식이 끝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