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2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20)
찰칵, 차르르!
하클의 활을 꺼내면서 투란이 묻는다.
“왜 조상새라고 불러요? 바람잡이는 뭔 말이에요?”
산돌프가 눈을 흘기면서도 대답한다.
“새가 되려다가 실패한 새들의 조상이란 말인데, 그냥 덜떨어진 것이 새처럼 난다고 대충 붙여 놓은 이름이야. 바람잡이는…… 바람 잡고 흔드는 몬스터란 말이잖아! 그건 들어 봤을 텐데?”
“잡고 흔드는…… 아, 바람몰이꾼이란 말이군요!”
“대체 어디서 살다 왔냐, 너?”
산돌프는 바람잡이를 대신해서 바람몰이란 말을 어디서 사용하는가, 더듬는 표정으로 투란에게 더욱 세차게 눈을 흘겼다. 투란은 히죽 웃으면 간단히 ‘아주 멀리서 살다 왔어요.’라고 대꾸하며 무기대의 화살통도 하나 발아래 두면서 아직 멀리 있는 몬스터 떼를 보는 시늉을 했다.
산돌프도 지금 따질 때가 아니란 듯이 바람잡이 조상새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여전히 마법사의 뇌리에서는 바람잡이란 말 대신에 바람몰이, 바람몰이꾼이란 말을 쓰는 곳을 더듬어 가고 있었다. 두 낱말은 몬스터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거의 비슷한 뜻으로 쓰는 말이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나는 몬스터의 성질과 함께 조금 의미가 다르기도 했다.
바람몰이꾼이라 하면, 몬스터가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바람을 일으킨 다음에 이를 몸에 두른 채로 이동하는 경우…… 바람잡이는 자연적이거나 마법에 의한 것이거나 어쨌든 불기 시작한 바람에 간섭하는 경우였다. 결과적으로 그거나 저거나 몬스터의 지능이 거기서 거기인 탓에 비슷한 상황이 나올 뿐이지만!
물론 몬스터의 능력을 얻으려 하는 로드라면 두 가지 경우를 아주 확실하게 분별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그 미묘한 차이가 크게 작용하니까.
‘아, 솔로얀의 군단병 출신한테 들었나? 산맥 남부 왕국 쪽이었지? 솔로얀에서 로그람, 기가둠 왕국까지 들락거린다는…… 군단이랑 맨날 드잡이하는 비행형 몬스터가 바람몰이꾼이라고…… 어라? 이 녀석 설마 기가둠에서 배 타고 온 거야? 뱃길도 만만치 않게 험하다는데…….’
산돌프의 생각이 살그머니 깊어질 때, 투란이 그 발을 툭툭 찼다.
“산돌프, 딴생각하지 마요! 이제 금방이라잖아요.”
“어? 딴생각 안 해!”
흠칫하다가 산돌프는 불끈해서 대꾸했다.
그런 변명을 받아들인다는 듯이 실실 투란이 웃자, 산돌프가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아예 포기했다는 듯이 묻는다.
“너 말이야, 혹시 기가둠 왕국에서…….”
“저 사람 누구죠?”
투란이 산돌프의 어깨 너머를 보면서 새로운 호기심으로 이미 관심이 옮겨 갔다는 듯이 물었다. 바로 산돌프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지만, 산돌프 역시 등 뒤 계단 쪽의 작은 소란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내면서 누군가 올라오는 듯했으니까.
“내가! 내가 궁수(弓手)야! 알아? 모르지? 그래, 너네가 뭘 알아! 내가 바로 타클란의……!”
두 사람 틈새에 낀 꼴로, 사실은 두 사람이 양쪽에서 겨드랑이부터 밀어 올리는 채로 한 명을 질질 끌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 한 명이 지금 술에 잔뜩 취한 소리를 내며 주의를 끈 것이다.
새로 등장한 몬스터를 대비하는 상황에 저게 대체 뭔 짓인가?
그러나 그 취한 이를 데려온 둘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그래, 타클란 다 왔다! 어이, 단상은? 이리 가져와!”
저쪽에서 조립된 단상까지 부르고 있었다.
두엇이 들고 오는 그 단상은 딱 흉벽 높이였고 화살통이 여럿 놓인 채였다.
한 명이 올라가 편안하게 다리 펴고 앉을 정도의 너비를 지닌 단상 위로 취한 이가 밀어 올려졌다. 여전히 취한 소리를 지껄이는 채로.
“타클란, 내 고향이지. 내 이름이 아냐! 그니까 내가 타클란의 궁수인데……!”
“그래, 그래. 궁수한테 일감이라고, 읏차! 올라갔지? 타클란, 잠깐 앉아 있어. 어이, 약은 멀었나? 참, 활은? 타클란의 활은 누가 가져왔어?”
취한 이를 어르고 달래면서 데려온 이들이 단상 위에 얹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뒤늦게 활을 든 이가 총총히 나타나더니 거의 사람 키만 한 활이 그 옆에 놓였다. 취한 이를 데려오고 그 활도 가져온 다음에 자리까지 잡아 주는 모습이었다.
투란이 맹하니 그 광경을 보다가 산돌프를 보니, 산돌프도 조금 눈살을 찌푸린 채로 생각을 더듬는 듯한 모습으로 중얼거린다.
“타클란, 타클란…… 얼핏 소문으로 들었는데…… 음, 궁수…… 타클란…….”
마법사의 이런 중얼거림을 바쁘게 스쳐 가던 한 명이 듣고 피식 웃음과 함께 한마디 던진다.
“활쏘기만큼은 끝내주는 타크, 타클란을 줄여서 타크라고 많이들 불러요.”
“어? 아, 저 친구가 그 타크야?”
산돌프가 퍼뜩 알아차렸다는 듯이 되묻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낯선 이야기인데, 지나가던 이가 한마디 더 하면서 훌쩍 가 버린다.
“예, 저 녀석이 그 타크지요.”
“응, 그렇군! 그 활잡이 타크였구먼!”
산돌프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저쪽에서는 단상 위에서 뒹구는 타크의 입에 짙은 향을 멀리까지 뿌리는 포션을 퍼붓고 있었다. 타크의 비명이 바로 터지는 것으로 봐서는 맛이 심상치 않은 듯한데…….
“야아앗! 날 죽일 참이냐! 이거 뭐야? 뭘 내 입에다가……!”
“술 깨는 포션이잖아! 정신 차렸으면 활 잡고 대기해! 곧 바람벽이 사라지고 몬스터가 날아올 테니까. 바람벽이 사라지기 전에 쏘지 마! 알았지? 타클란의 궁수! 내 말 들었냐?”
“소리 지르지 마! 머리 울려! 그래, 들었다고!”
“좋아, 타크. 잘해라! 너 데려오면서 술값 물어 줬거든!”
겨우 정신이 든 듯한 타크의 어깨를 꽉 붙잡고 말한 이가 곧 다른 곳으로 갔다. 단상에 남은 타크는 입을 헹구고 싶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커다란 활을 쥐어 올리는데…….
“뭐야, 누가 이렇게 엉터리로 시위를 감아 놨어! 젠장!”
바로 활시위를 풀더니 빠르게 다시 감고 있었다.
남들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본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인 듯했다.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이 산돌프에게 나직하니 묻는다.
“그 활잡이 타크라는 게…… 뭔 말이에요?”
“응? 아, 못 들었나 보구나. 활만큼은 진짜 잘 쏘는 녀석이야. 활쏘기는 누구보다 잘한다고 소문난 녀석이지.”
“활 잘 쏘는 걸로 유명한 것뿐이에요?”
투란이 살짝 의심하듯이 물었다.
산돌프가 쓴웃음을 짓고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그래, 활만 잘 쏘는 녀석으로 유명하지. 활만 말이야.”
투란의 눈이 껌벅였다.
이 말은 활 이외의 다른 것은 전혀 아니란 뜻인가?
뭔가 더 자세히 묻기 전에 성벽 위로 저 먼 곳에서 시작된 듯한 메아리 같은 외침이 길게 이어지며 울려 퍼졌다.
“투석! 활잡이들 준비하고, 쇠뇌 장전 확인!”
끼익거리는 음향과 함께 투석기에서 허공을 향해 높이, 멀리 불붙은 돌덩이가 쏘아져 나갔다. 지상을 겨냥했을 때보다 훨씬 작지만 그래도 사람 머리통 몇 개는 묶은 듯한 돌덩이였다.
산돌프가 바로 흉벽에 몸을 붙이고 기대면서 사수대의 홈을 이용해 엿보듯이 저편을 흘깃거렸다. 투란은 사수대 앞에 선 채로 멀리 보는 시늉을 했다. 성벽 위에서 방어를 맡은 이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는 모습을 흉내 내듯.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꽤 가까워진, 그래도 아직 3백 미터 저편에 있는 바람잡이 조상새 떼의 중심에서 돌덩이가 확산되면서 불꽃이 치솟았다. 몇 마리가 그 불길에 휩싸인 채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갑자기 공격을 받은 바람잡이 조상새 떼가 성난 분위기를 띤 채로 알드바인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십일! 십이, 십삼 구역, 사격 준비!”
뭉쳐 날아오는 모양인 바람잡이 조상새 떼가 노릴 만한 구역이 파악된 모양이었다. 구역별로 따로 대기 상태가 되는가 하면, 전투태세를 갖추라는 외침이 터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투란은 조상새 떼와 거리를 가늠하며 자신이 들고 쥐고 있는 하클의 활이 과연 어느 정도 사거리를 지녔는가 가늠하는데, 단상 위에서 시윗줄 소리가 두어 번 났다.
어느새 시위를 다시 감은 타크, 타클란의 궁수가 연속으로 쏜 모양이었다.
“응? 아니, 벌써……?”
갸웃하며 투란은 다시 조상새 떼와 거리를 가늠했고, 여전히 250미터의 거리인 것을 확인했다. 투석기의 공세부터 지금까지 저만큼 움직인 것을 보니, 저 녀석들이 그리 빨리 난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몬스터를 상대로 이 거리에서 벌써 쏘다니…… 화살이 박히는 몬스터라 해도 가죽이 두꺼우면 적당히 튕기기 쉬운 거리 아닌가?
이 생각은 곧 투란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세 마리 조상새 머리통에 화살이 꽂혔고, 날던 모습 그대로 기울어지면서 지상에 처박히려 하고 있잖은가!
놀라는 광경인데, 저쪽에서 누군가 성난 소리를 낸다.
“타크! 벌써 쏘냐!”
“떨궜잖아! 왜!”
“저것들 눈치 빠르다고! 너 위험한 놈인 거 알면 신경 쓴단 말이야! 젠장, 다들 준비해! 화살은 견제, 쇠뇌로 쏴 맞힌다! 투석, 계속 흩어 놔라!”
터텅, 텅.
여러 곳의 투석기에서 거친 소리가 났다.
돌덩이가 불티를 흘리며 뭉쳐 있는 조상새 떼의 한복판으로 날았고, 터졌다.
조상새 떼는 그 불길을 피해 흩어졌지만, 성벽과의 거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와, 저거 어떻게 터뜨린 거야?’
투란은 불붙은 돌덩이가 터지는 광경을 다시 보며 흥미로워했다.
―저번이랑 다르다. 이번에는 마법이야.
‘어? 그래?’
투란이 살짝 실망하니,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흘리듯이 말을 잇는다.
―그래, 공중에서 적당히 폭발하게 유도하는 거야. 성벽 안에 여러 곳에서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거리를 가늠해 터뜨리고 있어. 연계가 좋구먼. 2백 미터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너도 쏴야지?
‘그래, 쏴야지.’
틱, 투란은 하클의 활에 하클의 화살을 걸었다.
쏴보면 알 거라고 하클이 큰소리쳤던, 압축된 채로 작은 통 안에 담겨 있던 화살이 텅 빈 나선의 모양을 드러낸 채 겨냥되었다. 호흡을 고르면서 투란은 활을 어떻게 쏘는가를 되뇌었고, 문득 키린이 알려 준 왕궁(王宮)의 사법(射法)을 떠올렸다. 왕가의 무투술, 그 일부로서 오러 윌더가 무기(武器)를 다루는 기술 중의 한 가지라고 했던 것…….
‘활은 지속적으로 많은 오러를 쓰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으흠, 그러니까…….’
오러의 용량(用量)보다 제어(制御)가 더 중요하다 했다.
오러 마크가 자아내는 오러로도, 제어만 제대로 한다면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왕가의 무투술에 포함된 왕궁의 사법.
투란의 눈과 손, 몸짓이 그 사법에 따라서 움직였다.
손가락이 살짝 시윗줄을 틀고, 겨냥은 직선에서 아주 조금 위로 올리고…….
틱, 시아아앙!
“에?”
손끝에서 시위를 해방하는 순간, 투란은 흠칫했다.
미묘하게 시윗줄이 튕기는 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저 바람을 통으로 잡아먹는 소리는 대체 뭔가!
“뭐야?”
산돌프가 곁에서 시작된 소리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투란은 거기에 답할 겨를이 없었다.
날아간 화살이 막 조상새 한 마리의 몸통에 닿았는데, 큰 구멍이 뻥 뚫리더니 그 몸 뒤편으로 피와 살이 엉긴 소용돌이가 길고 삐죽하게 튀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그 광경을 본 이들이 ‘엥?’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뭔 짓을 한 건지, 다들 예상하지 못해 놀란 모양이었다.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뭐라 할 수가 없어서 투란이 어버버 하는데, 산돌프가 그 광경을 보고 당황해서 외친다.
“뭐야, 인마! 뭘 한 거야?”
이 소리에 투란은 자신이 든 활을, 조막만 한 작은 통 안에 압축되어 담긴 화살을 보며 허둥지둥 대꾸한다.
“마, 마법? 하클 영감, 마법을 걸어 뒀으면 그렇다고 말을 해 주지! 깜짝 놀랐네! 마법 없이 정성껏 깎았다고 허풍을 치긴…….”
―투란…….
드라고니아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하려는 찰나…….
“투란, 마법 아냐! 대체 뭔 소리를! 투란, 그 화살 좀 보여 줘 봐!”
산돌프가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침을 짓누르듯이 흉벽에 퍼지는 소리가 있었다.
“멈추지 마라! 계속 쏴아!”
화살 비가 높이 치솟아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고, 쇠뇌가 날카롭게 쏘아졌다. 투석기는 다시 장전되어 몬스터가 뭉치지 못하게 퉁퉁거리고…….
투란도 숨을 고르고 다시 확인하기 위해 한 발 더 쐈다.
곁에서는 산돌프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
더욱 가까워진 조상새 중의 한 마리가 마찬가지로 몸통이 뚫려 소용돌이를 흘리며 떨어져 내렸다.
그럼에도 바람잡이 조상새, 이 몬스터 떼는 더욱 성벽 가까워졌고 바람을 움켜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알드바인의 방어전이 사흘째로 접어들 무렵, 공중을 지키던 바람의 성채가 찢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