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2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21)
Chapter 125. 알드바인, 방어전 Ⅲ
허공을 부리 끝이 찌르고, 발톱이 할퀴었다.
일그러짐이 피어났고 바람결이 길게 늘어진 채찍이 되어 뒤틀리며 성벽을 후려치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도 성벽은 생채기의 흔적만을 품은 채로 무너져 내리지 않고 버텨 냈다.
더불어 성벽의 정상에서는 화살이 쏟아지며 바람결을 뒤틀어 휘두르는 몬스터를 향해 반격도 하고 있었다. 불타는 돌덩이가, 날카로운 쇠뇌살이, 높이 치솟았다 쏘아지는 화살 비가…… 그중에서 특이한 것은 뒤틀리는 바람결을 휘감으며 날아가는 화살이었다. 거세게 뒤틀린 바람의 격랑(激浪)을 그대로 집어삼키듯이 날아간 화살은 몬스터의 몸통에 큰 구멍을 내고, 구멍 너머로 피와 살의 소용돌이를 뿌린다!
공중에서 벌어지는 난전(亂戰)의 요란함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위력의 화살, 이를 쏘아 내는 투란 곁에서 산돌프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요정의 기술이냐? 요정의 기술이잖아! 대체 어디서 그런 화살을 구했어? 활처럼 하클이라고? 그 영감 재주 좋다는 소문은 얼핏 들었다만, 이렇게 좋았었냐? 뭐, 마법? 아니라니까! 야, 왜 갑자기 딴 화살 잡아?”
“없다고! 다 떨어졌다고요, 하클의 화살!”
투란은 무기대의 화살통에서 꺼낸 화살을 시위에 걸며 투덜거렸다.
산돌프가 ‘뭐?’ 하며 내려다보니 잔뜩 챙겨 온 하클의 활 통, 그 한 손에 쥐어지는 작은 원통 몇 개가 텅 빈 채로 투란의 발아래 구르고 있었다. 하나에 여섯 구멍씩 뚫려 있었으니, 떨어진 여덟 개의 원통에 맞춰 생각하면 벌써 사십팔 번의 사격을 한 셈이었다. 매번 몬스터의 몸통을 꿰었으니, 벌써 사십하고도 여덟 마리를 격추한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조상새는 와글와글하고 있었고, 성벽에서 살짝 거리를 두며 그 바람잡이 능력으로 공세를 잇고 있었다. 거기에 보통 화살을 쏘면…….
피잉!
시위에서 떠날 때의 요란한 소리와 다르게 허공에서 허우적대다가 바람의 격랑에 휩쓸려 이상한 곳으로 날려갈 뿐이다!
“이건 안 되겠네…….”
“그건 안 되겠다.”
앉으면서 하는 투란의 말에 함께 앉는 산돌프의 말이 겹쳐졌다.
그리고 저쪽에서 맹렬하게, 그래도 흉벽보다 머리를 낮춘 채로 두 발로 기는 시늉을 하며 뛰어오는 이가 외친다.
“왜 그래! 지쳤나? 더 못 쏴!”
투란이 그 위력적인 화살을 계속 쏘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외침이었다.
산돌프가 투란보다 먼저 그쪽에 대꾸한다.
“다 쐈어! 이거 하클 영감이 제작한 화살인데, 다 떨어졌다고!”
“뭐? 하클……? 그게 그 영감의 회오리살이었어! 젠장!”
투란 곁으로 온 이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눈을 깜박이다가 살짝 묻는다.
“회오리살이라고 불러요? 혹시 따로 가진 거는 없고요?”
“없지, 당장은!”
이 대답에 산돌프가 묻는다.
“당장은? 그럼 언제 있는데?”
투란도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 어디?’라는 입 모양으로 하클이 만든 여분의 화살이 있는가 물었다. 대답이라기에는 조금 애매한 대꾸가 머뭇거림 없이 바로 나온다.
“기다려, 우선은…… 저기 타크가 쓰는 화살이라도…… 활이 짧아서 못 쏘려나?”
투란은 자신의 손에 들린 활과 저쪽에서 타크가 쓰는 활의 길이를 비교하는 소리에 바로 활을 흔들었다. 작고 경쾌한 톱니 소리가 이어지며 활대가 작은 손잡이로 감겨 들었다가 다시 펼쳐졌다.
“이 정도 길이면 괜찮겠죠?”
산돌프가 보니, 조금 전보다 더 긴 활이 투란의 손에 잡힌 꼴이었다.
“투창을 걸어도 될 것 같은데?”
“그렇네…… 알았어. 일단 저 송곳 화살이라도 가져다줄 테니까…… 어이, 송곳 화살 몇 통 여기도 가져와! 쏘면서 기다려. 하클 영감 잡아 올 테니까.”
말을 하면서 다시 허리를 굽힌 채로 종종걸음을 디디며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산돌프가 ‘엥?’ 하는 소리를 냈고, 투란은 조금 당황한 소리를 내야 했다.
“잡아 와?”
대체 왜?
궁금증은 오래 이어질 수가 없었다.
쌔앵, 파앙! 꺄아아앙!
흉벽을 두드리는 거센 바람결, 꽤 가까이 붙은 듯한 몬스터의 울부짖음에 신경 써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런 거 무시한다는 듯, 그 소란스러운 소리 사이로 투란 앞으로 뛰어온 누군가가 품에 안은 화살통 두엇을 던져 주며 외친다.
“송곳 화살, 둘! 일단 이 정도!”
그리고 저쪽에서 타크가 꽥꽥거리는 소리가 뒤따르니…….
“야! 내 화살통을 들고 가면 어떻게 해! 야아아!”
꺄아앙!
더욱 가까워진 몬스터의 울음이 소리 지르는 타크를 노리는 것처럼 다가왔다.
곧바로 타크가 과녁을 바꾸듯이 외친다.
“닥쳐!”
피잉, 퍼억!
몬스터의 날개가 푸닥거리면서 성벽 아래를 향해, 멀어지는 듯했다.
산돌프가 흉벽의 사수대 위로 흘깃 보며 투란에게 말한다.
“머리통을 정확하게 노려야 할 것 같다. 이 송곳 화살도 바람은 뚫는 것 같다만…….”
말이 끝맺기도 전에 산돌프는 재빠르게 앉았고, 투란도 얼른 몸을 낮추며 송곳 화살을 하나 더 집었다. 뒤이어 날카롭게 흉벽을 긁고 치솟는 소리가 울렸다.
시잉, 카칵!
투란이 맞혀 떨군 몬스터 조상새가 떨어지면서 부리와 발톱으로 마지막 발악을 한 결과였다. 머리통을 깨부수지 않고 목줄을 꿴 탓이었다. 몸통이 통째로 관통당할 때에는 못하던 짓을, 머리통이 관통당해도 못 하던 짓을 목이 꿰인 다음에는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괴상하기는!”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다시 몸을 돌려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투란이 화살이 걸린 시위를 당기기 전, 십삼 구역 쪽의 흉벽을 넘어 조상새가 머리를 들이미는 광경이 보였다. 입을 열고 그대로 부리를 흔들며 소리만 질러도 거기 있는 이들이 크게 다칠 듯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흉벽 너머로 쏘는 것보다는 저 머리통을 뚫어야 하는가 싶어 투란이 화살 끝을 돌리려는데, 상황이 끝났다.
올가미 셋이 몬스터의 부리를 휘감아 조였고, 동시에 자루가 긴 도끼―도끼 창―이 위아래로 거의 다섯 자루가량이 찍혀서 몬스터의 긴 목을 끊어 버린 것이다. 뒤이어 바로 도끼 창이 뻗어 나가며 흉벽에 걸쳐 내려앉은 몬스터의 몸통, 날개를 밀어 떨궈 버렸다. 엉겁결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한두 마리 넘어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대기하던 이들이 번개처럼 움직인 광경이었다.
“잘하네.”
중얼거림과 함께 투란은 일어서며 화살을 쐈다.
두 번째로 흉벽을 넘어 부리를 들이밀려던 녀석의 머리통이 그대로 꿰였다. 순간적으로 처진 몬스터가 흉벽에 부리를 충돌시키며 성벽을 타고 미끄러져 떨어졌다. 곧이어 앉으려 하는 투란을 향해 부리를 벌리며 날아드는 한 마리도 송곳 화살에 맞고 떨어졌다. 투란이 앉으면서 그 궤도를 따라 눈길을 돌리니, 여전히 단상 위에서 활을 당기고 있는 타크가 보였다.
히죽, 투란을 향해 웃으면서 타크는 새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그 옆으로 새로 가져다 놓은 송곳 화살을 담은 화살통이 몇 개 보였고…….
‘미친 거 아냐?’
투란은 타크에 대해 이런 생각이 새삼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대체 뭔 배짱으로 아직도 흉벽 위로 솟구친 단상 위에서 저러고 있는가?
바빠서 안 보고 있다가 지금 보니, 제정신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바람결을 섬세하게 읽고 있다.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니까 저러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하는 투란에게 설명했다.
‘뭐? 뭘 읽어? 뭔 정령이라도 눈알에 박아 뒀대?’
투란이 더 어처구니없어하면서, 여전히 화살을 재어 쏘는 와중에 되물었다.
바람의 정령, 그 감각을 이용한다면 바람결이 투명한 끈처럼 찰랑거리고 물결처럼 흔들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감각은 사람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영역이었다. 정령를 다룬다 해도 정령과 깊은 교감(交感), 동조(同調)를 해야 파고들 수 있는 감각의 영역이었다. 정령수, 스피릿 아티팩트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투란도 꽤 힘들어했다.
한데 저 타크가 그 시각을 지녔다니, 투란이 보기에 정령의 기척이 전혀 없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눈가의 문신, 저게 정령(精靈)의 각인(刻印)이니까.
‘그런 거 이제 아무도 안 쓴다며!’
화살을 쏘고 흉벽 아래로 기대앉으면서 투란은 흘깃 타크 쪽을 보며, 드라고니아가 옛날에 했던 말이랑 다르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래, 그래도 아주 오래된 마을의 구석이라면 전승될지 모른다고 했잖아. 타클란의 궁수라고 했지? 아마 타클란이 그런 오래된 마을인 모양이다.
드라고니아는 자신이 했던 말을 되새기듯이 대답했다.
투란은 한숨을 쉬고 싶었다.
그러니까 옛날에 주절주절 늘어놓았던 말꼬리에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파 놓은 것 아닌가……. 아무도 안 쓰지만, 아주 희한한 전통이 있는 곳이라면 또 모른다고.
―옛날에 쓰던 거랑 완전히 똑같지도 않아. 눈가는 정령의 각인이지만 두 팔에는 오러를 자극하는 마법의 각인이다. 아주 괴상한 조합이다만…… 쓸모 있군. 피할 것만 피하면서 저 위에서 버티고 있잖아.
드라고니아의 말대로였다.
타크는 몬스터가 휘젓는 바람결이 정확하게 자신이 선 단상을 노릴 때만 피했다. 단상에 매달리듯 옆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섰다가도 하면서, 활과 화살통을 지키면서 피해 내고 계속 사격을 하고 있었다. 가끔 본다면 높은 자리를 잡고 꿈쩍도 않고 버티는 것처럼 보이는 자세로.
‘대단하네.’
투란은 조금 감탄하면서 다시 활을 쐈다.
산돌프는 투란이 쏠 때마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면서 상황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활을 쏘는 순간이 안전하다는 점을 이용하는 마법사였다.
문득 투란은 다른 곳의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궁금했다.
자신의 눈이 닿지 않은 곳, 들리지 않는 곳…… 거기서는 누가 또 뭘 하고 있을까?
이런 높고 긴 성벽에서 싸우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었고, 투란이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야, 프로브에 기록 남기고 있지?’
―일단은…… 왜?
‘나중에 되새겨 보려고. 나랑 저 타크 같은 궁수가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하나…… 다들 어쩌고 있나 궁금하잖아.’
―좋은 생각이로군. 그럼, 프로브를 좀 더 배치해 두는 편이 좋겠군. 지금 배치한 열둘로는 전체 상황을 대강 볼 뿐이니까.
‘열둘이나 깔아 놨냐?’
―여기 성벽, 나름대로 높고 길거든?
서넛 정도 쓰고 있으리라 여겼던 투란이 어이없어하니, 드라고니아는 아예 더 뻔뻔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하지만 줄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곳에 붙박여서 전체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 마당이니까. 물론 미리 전체를 지켜보고 있던 드라고니아에게 잘했다는 말도 하지 않는 투란이었다!
그렇게 다시 알드바인의 성벽 위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티격태격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놔아아! 내 발로 걷는다고! 야아!”
계단 쪽에서 울분을 토하는 하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란이 움찔해서 보니, 하클이 두 팔을 잡혀 겨드랑이를 끼어 올려진 채로 성벽 위로 올라서고 있잖은가.
“벤스! 대체 왜 이러냐고! 공방 장인을 이 난리에 왜 이리로 끌고 와! 이놈아, 설명이라도 하라니까!”
아까 잡아 온다고 했던 이가 정말로 하클의 한쪽에서 팔을 붙잡은 채로, 투란 쪽으로 끌고 오면서 대답한다. 하클의 공구 통은 또 다른 한 명의 손에 들려 있고!
“설명했잖아요! 회오리살이 필요하다고! 여기 회오리살을 마법처럼 쓰는 사람이 있다고요!”
발을 허공에 뜬 채로 바둥거리며 하클이 씩씩거린다.
“마법이고 지랄이고, 그거 사 간 놈은 멀리…… 에? 투란?”
멀리 순찰 갔다는 소리를 대신해 하클의 입에서는 투란을 확인하는 말이 나왔다.
벤슨이 그 표정을 보며 짧게 말한다.
“소재는 곧 올 테니까, 저 친구 곁에서 회오리살 깎아 줘요. 쏘는 거 보면 왜 이랬나 금방 아실 거예요.”
쿵, 가볍게 엉덩방아를 찧게 하클을 던져 놓으면서 벤슨은 저쪽으로 뛰어갔다. 하클을 끼고 왔던 다른 한 명은 하클 곁에 공구 통을 내려놓고는 벤슨의 뒤를 따라갔다.
사라지는 둘을 흘깃하고 하클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투란을 보고, 투란의 주변을 훑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 아프다는 듯이 한 손으로 엉덩이를 문지르기는 했지만 하클은 몸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한 손으로 공구 통을 당기면서 투란 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예리하게 투란의 발아래를 보고, 나직하니 묻는다.
“왜 여덟 통뿐이야? 너 나한테서…….”
“여덟 통만 배낭에 갖고 다녔으니까요. 돌아와서 바로 여기 마법사님이랑 성벽에 섰거든요. 아, 벌써 사흘째인가?”
투란이 냉큼 하클의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혀를 차면서 하클은 흉벽에 기댄 산돌프를 흘깃했고, 얼른 몸을 낮추더니 흉벽에서 멀어지려는 몸짓을 보였다.
부우웅, 넓게 펼쳐진 질풍이 요란하게 흉벽을 넘어 불어왔다.
타크가 올라선 단상도 삐걱거리며 뒤로 기우뚱거리게 하는 바람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큰 바람에 산돌프가 흠칫하면서 등을 기댄 흉벽에서 파닥거리며 떨어지는 채로 말한다.
“벽에서 떨어져! 다들, 떨어져! 상아탑이 마법 쓴다!”
투란은 이 말이 퍼지기도 전에 다들 흉벽에서 두어 걸음의 간격을 두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마법사인 산돌프가 감지한 것을 하클처럼 바람을 통해 알아차린 듯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