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2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24)
멀리 떠나 있는 마스터, 이제는 명확하게 그랜드 마스터인 것을 드러내는 듯한 홀시딘의 개입에 바르텔은 가만히 케이라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 개입한 까닭은 알드바인의 사정 때문인 듯하니, 케이라가 제대로 대처할 것이라 기대하는 눈길이었다.
그 기대대로 케이라는 홀시딘에게 묻는다.
“스승님?”
짧은 한마디였지만 뭔가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물음이라고 곁에서 바로 느낄 수 있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뭔가 이상한 짓 하면 스승님이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묘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하는!
그 때문인가, 홀시딘의 이글거리는 불꽃 환영은 아주 빠르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레드(RED)가 온다, 케이라. 아직 너에게는 포착되지 않은 모양인데, 내게는 바로 경계신호가 왔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케이라, 너는 마스터 바르텔과 함께 성벽의 불꽃을 제어해 다오.”
“돌아오시는 중인 건가요?”
케이라가 깊이 숨을 들이쉬다가 물었다.
불꽃으로 그려진 홀시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많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응? 원거리에서 마법으로 어찌하려는 것이 아니란다, 케이라. 레드를 처리할 수 있는 이에게 청탁을 넣을 거야. 그동안 만약을 대비해서 바르텔과 함께 경계하고 조심만 하고 있으란 말이다.”
“레드를 처리할 수 있는 이가 누군데요?”
케이라의 물음은 또박또박, 차분하고 날카로운 말투였다.
이는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확실하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더하란 압박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불꽃이 한숨을 쉬는 형상과 함께 홀시딘의 목소리가 울린다.
“투엘이란다. 케이라, 지금은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라. 결국은 알게 될 일이니까. 그러니…… 성벽의 불꽃을 부탁한다. 마스터 바르텔, 나 대신에 자리를 채워 줘서 고맙군. 조금 번거롭겠지만 케이라를 도와 불꽃의 제어를 맡아주게. 레드가 처리되면 다시 알려 주겠다.”
사륵, 불꽃의 흔들림과 함께 홀시딘의 형상이 지워졌다.
케이라는 눈살을 찌푸렸고, 바르텔은 조용히 묻는다.
“레드라는 거, 그냥 붉다는 뜻이 아니지요?”
“은어(隱語) 맞아요. 리타이어, 익스트림 데인저(Retire, Extreme Danger). 약칭해서 은어로 만든 거예요.”
“그렇다면……?”
“짐작하는 대로 붉은 오우거를 말해요. 알드바인의 초대 마스터 펠카윈께서 신목의 그루터기에서 얻은 영험(靈驗)의 잔재(殘滓)를 이용해 만든 오우거. 알드바인의 상아탑이 세워질 때 몰려든 몬스터 램피지를 막기 위해서…… 해방한 오우거지요.”
“기록을 봤습니다만, 그 오우거는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으로 보냈던 것 아닌가요? 거의 백여 년 전에 몬스터 램피지를 맞서 싸우며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보냈다고 기록된 것이 마지막인…….”
“돌아왔어요. 십여 년 전에, 해방된 채로. 아주 기묘한 상태로 말이죠. 그동안은 남부 습지대 쪽에서 머물며 하이랜드로는 전혀 움직일 낌새가 없었죠. 이전과 많이 달라졌고, 백 년 가까운 시간을 고려해서 지켜보기만 했어요. 저와 스승님이 의논해서 아직 기록을 하지는 않았고요. 그냥 색다른 오우거의 출현으로만 기재해 놨지요.”
케이라의 차분한 말에 바르텔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해야 했다.
하이랜드의 남부 습지, 그 거대한 영역 안에서 색다른 몬스터가 출현하는 일은 희귀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 해방했던 오우거란 부분만 빼놓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오우거로 기재하는 정도로 다른 곳의 관심을 비켜 가게 했다는 것인데, 알드바인의 마스터 둘이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잘못되거나 이상한 일도 아니기는 했다. 불확실한 요소가 많을 때 서둘러 상아탑 모두가 알도록 기록하는 것은 책임 회피라고 할 수도 있으니 오히려 신중한 판단이라 할 수도 있었다.
다만 마스터 펠카윈, 이곳에 상아탑을 세우고 알드바인의 초석을 다진 초대 마스터의 오우거…… 그 작품에 대해 감춘 것이라면 홀시딘과 케이라가 욕심을 부렸다고 비난할 수는 있었다. 그 오우거는 소재가 아주 특별했고, 상아탑의 긴 역사 속에서도 보기 드문 걸작이었으니까.
한데 그런 것을 손도 대지 않고 십 년 가까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까이 나타났다 하니 바로 파나틱 플레임의 명성을 휘날리게 한 대마법의 방벽을 올린다?
바르텔이 생각을 정리하고 묻는다.
“얼마나 위험한 겁니까?”
케이라가 가만히 바르텔을 보며 대답한다.
“지금 알드바인의 인구 절반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고도 놓칠 수 있고.”
잠깐 바르텔은 눈을 크게 뜨면서 할 말을 찾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지금 알드바인의 인구는 거의 이십만, 아무것도 모르는 공민 이십만도 아니고 알드바인이 자리한 이 하이랜드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 대부분 헌터이거나 헌터를 위한 도구를 다루는 공방의 관계자였다. 몬스터에 익숙하고 언제라도 싸울 수 있는 전력이라 칭해도 틀린 말이 아닌 이십만 명인 셈이다. 그중 삼분의 일을 비전투원으로 제한다 하더라도 십삼, 사만 정도가 본격적으로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경우이고, 바르텔은 성벽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냉정하게 평가해도, 상아탑의 지원이 없다 해도 알드바인은 쉽게 무너질 도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스터 케이라는 이 알드바인의 절반가량이 죽어도 잡기 힘든 몬스터라 하다니!
당황스러운 생각을 마음 한구석으로 치우며 바르텔은 다시 입을 연다.
“불꽃 제어에 집중해야겠군요. 만약 마스터 홀시딘의 계획이 통하지 않는다면…….”
“통할 거예요. 뭔지 몰라서 짜증 나기는 하지만…… 불꽃 제어에 집중하죠.”
케이라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투란은 변기통에 앉아서 눈꼬리를 치켜올리면서 금빛으로 이뤄진 홀시딘의 낯짝을 때려 주고 싶다는 표정으로 꾹꾹 누른 목소리로 말한다.
“대량 살상? 광역 파괴? 홀시딘, 지금 장난하셔요?”
“장난 아냐! 정보를 주고 있잖아, 정보를!”
“뭔 오우거가 대량 살상이랑 광역 파괴가 가능한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거예요! 그거 오우거 맞아요?”
“오우거 맞다니까! 마스터 펠카윈 시절에 소수의 인원으로 몬스터 떼를 상대하는 일이 잦아서 반쯤 전술 병기로 만들어서 그래! 보면 뭔 소리인지 안다니까! 아무튼 그게 알드바인 성벽을 넘게 했다가는 떼죽음 난다고!”
“헬플레임도 안 통하는 오우거라고요? 진짜 장난쳐요?”
“아니라고, 장난 아니라니까! 성벽의 기초 공사에 동원된 일이 있어서 그냥 넘어온다고! 성벽을 태우지 못하는 불꽃 마법인 데다가, 보호 지정이 되어 있으면 건드리지도 않아! 그러니까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내가 지금 알드바인에 있었으면 너한테 맡기지 않고 직접 태우러 갔을 거라고!”
“마스터 케이라는……?”
“케이라의 특기는 불꽃이 아니야. 케이라랑 레드는 상성이 아주 나빠. 일방적으로 케이라에게 불리하지. 나 대신에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마스터 바르텔이 남아 있기는 한데, 그 녀석은 전투 마법이 특기가 아닌 마법사고…… 야, 지금 이런 얘기로 시간 낭비할 때가 아냐! 일단 성벽 밖으로 보내주마.”
“잠깐, 우어엇!”
투란은 갑작스럽게 금빛 안개가 깔린 바닥이 푹 꺼지며 검은 구멍이 열리는 광경에 놀란 소리를 냈다. 하지만 투란이 놀라거나 말거나 발판이 사라진 탓에 몸은 이미 구멍으로 빠져들었고 길게 이어진 굴을 지나 어디론가 미끄러질 뿐이었다.
“미리 말을 좀 하라고요오옷!”
“말했잖아!”
따지는 투란의 곁에서, 금빛 안개가 엉긴 형상인 채로 들러붙은 홀시딘이 대꾸했다. 그와 동시에 투란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정말로 라이트닝 체인을 각인받은 오우거라면, 그게 해방된 상태로도 유지되고 있다면 광역(廣域) 파괴(破壞)와 대량(大量) 살상(殺傷)은 당연하다, 투란. 거기에 보호 지정까지 된 채라면, 그 오우거는 언제라도 알드바인의 성벽을 넘을 수 있어. 어쩌면 지금 이 팬텀 웰까지 접속해서 그냥 성벽을 통과할지도 모르지. 마법사가 제작한 오우거이니 말이다.
‘진짜로 성벽까지? 대체 왜 그렇게 만드는데?’
―그야 보호벽 안으로 마법사가 피신하는 동안 밖에서 시간을 끌다가 보호벽을 유지한 채로 회수해야 하는 게 오우거니까. 이 성벽이 여기 초대 마스터 시절부터 쌓아 올린 거라면 보호 지정 마법은 크게 바꾸기도 애매했을 거다. 그러니 초대 마스터가 심어 둔 보호 지정이 유효한 채일 수도 있지. 물론 이건 정말로 라이트닝 체인을 여전히 지녔을 경우의 얘기야. 일단 맞닥뜨려 봐라.
‘홀시딘이 이러는 거 보니까 그거 진짜 유효한 모양인데?’
―음? 흠, 그렇군.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그 오우거, 몬스터가 되었어도 각인받은 마법을 지녔다고 봐야겠군. 재미있겠군.
‘재미냐!’
―정령이 깃든 숲의 오우거도 잡았잖아. 딱히 잡는 게 어렵지는 않을 거다. 너라면 말이야. 그러니…… 구경하는 나로서는 재미있잖아. 자, 얼른 가서 그 이상해졌다는 오우거를 보자고!
‘얀마!’
퉁!
투란은 몸이 구멍 밖으로 튕기는 것을 알았다.
조금 전까지 까맣던 구멍 출구가 느닷없이 거품처럼 터지는 광경 속으로 뛰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해서 두 발이 닿은 곳은 맨땅이었고, 숲의 한구석처럼 주변에 나무가 엉긴 채로 적잖게 둘러서 있었다. 멀리서는 불타오르는 성벽의 광채가 어렴풋이 보이는 게, 아무래도 홀시딘이 엘데인 때랑 다르게 투란을 성벽에서 꽤 먼 곳으로 옮겨 놓은 모양이었다.
“여기, 이 빛의 화살을 따라가면 된다.”
홀시딘은 바쁘게, 투란 앞에 금빛 화살을 띄운 채로 말했다.
그 화살이 로열가든의 징표와 연계되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도 잽싸게 말한다.
“이렇게 하다가 내가 어디 갔느냐고 내 곁에 있던 마법사랑, 하클이랑…… 내가 서 있던 성벽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 궁금해하고 이상하게 여기면 뭐라고 해야 되는 거예요?”
“굵고 길게, 끊지도 못하고 오래 볼일 봤다고 하면…….”
“안 해!”
“쳇, 알았다. 처리해 두지.”
“어쩔 건데요?”
“재워 둘 거야. 원래 불타오를 때 알짱거리는 거 못 하게 한꺼번에 재울 준비도 되어 있으니까. 자는 동안에는 팬텀 웰에 내포(內包) 상태돼서 안전하거든. 너도 나중에 올라와서 같이 잤다고 둘러댈 수 있어. 빠르게 끝내고 돌아오면 잠깐 자고 함께 일어날 수도 있고. 어서 가!”
“가요, 가! 그런데 위치가 가까우면 알드바인의 눈 좋은 사람들한테 나 보이는 거 아녜요? 얼굴을 뭘로 가리기라도 해야 하나?”
툴툴거리다가 투란이 물었다.
툭탁대는 소리로 재촉하던 홀시딘의 금빛 얼굴이 잠깐 갸웃했다.
“응? 얼굴? 얼굴……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군.”
중얼거림이 완전히 딴 생각하는 표정 속에서 나오더니, 홀시딘의 금빛 손가락이 나타나 허공을 긁었다. 금전 한 닢이 불쑥 나타났고 흐느적거리며 녹으며 얇게 펼쳐졌다. 순식간에 금으로 된 얇은 가면이 만들어졌다.
“이걸 쓰고 가라. 레드를 상대하는 데 나름대로 도움이 될 거야. 황금매의 마력이랑 연동될 테니까 방어용으로도, 얼굴 가리는 용도로도 쓸 만할 거야. 아무튼 얼른 가서 빨리 해결해 줘! 끝나면 이리 와서 내게 연락해. 바로 돌려보내 줄 테니까.”
투란이 금가면을 받아들기가 무섭게 홀시딘의 형상이 사라졌다.
한숨과 중얼거림이 투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다.
“레드라…… 붉은 오우거 이름이 레드라니…… 이름 붙이기 귀찮았나. 근데 이걸 어쩌라고! 황금매랑 연동되는 물건을 이렇게 냅다 던져 주면 어쩌라고!”
―홀시딘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은 탓이지. 이렇게 되면 황금매의 문장으로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어차피 네 천칭에는 무쇠뿔 오우거도 있으니까. 두 오우거의 에센스가 귀찮게 엮이는 걸 피하는 것도 괜찮겠지.
드라고니아가 냉큼 하는 말은 투란의 인상을 구기게 했다.
‘엮인다니?’
―설명 들었잖아. 레드는 알드바인이 초대가 그루터기의 잔해에서 얻은 고대 신목의 파편을 이용했다고. 무쇠뿔 오우거는 정령의 나무로부터 생성되었으니, 두 오우거의 정수가 공통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엮여서 하나가 되는 수도 있을 테고…….
설명을 들으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그루터기, 고대의 거신목의 잔해에서 얻은 걸로 정령의 나무가 낳은 오우거랑 어떻게 비슷한 정수를 지닌 오우거를 만들어 내는가?
―고대의 거신목이라는 거, 정령의 나무가 궁극의 성장을 할 경우에 도달할 수도 있는 최종 형태이기도 하다. 뭐, 무쇠뿔 오우거와 붉은 오우거가 어떻게 융합되는가를 보려 한다면 상관없겠지만…… 둘의 성질이 다 망가질 수도 있잖아.
‘그렇기는 하지.’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대꾸했다.
이제 더 따지고 생각할 것은 없었다.
어찌 되었든 빠르게 붉은 오우거, 레드를 잡기는 해야 하는 상황.
그것만을 염두에 두면서 투란은 일단 옷을, 장비를 홀랑 벗어젖히기부터 시작했다.
허리춤에서 물통 노릇을 하던 마법 배낭, 블랙레온이 투란이 벗어 놓은 허물을 모조리 삼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