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2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25)
‘무장 생성.’
사라락, 바람처럼 마력이 몸을 휘감았다.
발목부터 목 아래까지, 검붉은 가죽처럼 보이는 경갑(輕甲)이 맺혔다.
등허리를 따라 단검이 차곡차곡 쌓이듯이 형성되었다.
허리춤에도, 발목 옆으로도 단검이 꽂힌 채로 자리 잡았다.
윌 라이트의 마력에 황금매의 마력이 겹쳐지며 다양한 마법의 방호(防護)가 투란을 휘감았다. 투란은 그 마력을 금가면에 흘리면서 얼굴에 덮었다.
―손, 발은?
드라고니아가 여전히 맨살을 드러낸 손과 발, 직접적인 활동으로 주변과 끊임없이 접촉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물었다. 강철 장화와 강철처럼 단단한 장갑을 일부러 억제한 것에 대한 확인이었다.
‘아, 완전히 덮을 수는 없잖아. 몬스터 로드니까.’
간단한 대답과 함께 투란의 손과 발은 히엔나, 트리니티 히엔나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머뭇거림 없는 도약(跳躍).
나무 꼭대기보다 낮게,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면서 투란은 마법과 몬스터의 정수로 강화된 힘을 만끽하며 이동했다. 금빛 화살이 투란의 앞에서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은 채로 알려 주는 방향대로, 점차 가속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투란은 한 곳에서 사라졌다가 다른 한 곳에서 나타났다.
‘좋네! 세란드의 능력!’
―새삼스럽기는…… 윌 라이트를 통해 항상 쓸 수 있었잖아. 들킬까 봐 쓰지 않았을 뿐이고…….
황금매가 품은 몬스터 세란드의 형상은 쓰지 않는다기보다 쓸 수 없었고, 쓰기도 곤란한 사정이 가득했다. 그래서 계약의 형식을 통해 마법처럼 그 능력의 일부를 발현하게 해 뒀는데…… 그게 어쩐지 꽤 오래전이고, 이렇게 숨어서 이동하려 쓴 경우는 꽤 까마득하게 여겨졌다.
―뭐냐, 역병의 수해가 그립기라도 해?
드라고니아가 핀잔했다.
‘뭐, 마음껏 휘둘러 댈 수 있었잖아. 몰래 나왔다 들어갔다 하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해서 눈치 안 보기도 했고…….’
파악, 나뭇가지를 밟고 저편으로 튀어오른 투란이 허공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금빛 화살이 가리켰던 저편…… 사라졌다 나타난 투란 앞쪽으로 금빛 화살이 껌벅하며 이동해서 계속 가야 할 곳을 가리켰다.
오랜만에 황금매의 마력을 만끽하고, 제대로 그 강화 마법을 발휘하면서 투란은 상쾌한 기분이었다. 엘데인에서 몬스터 에센스를 삼키고 바로 전환할 때 느꼈던 미묘한 아쉬움이 사라지는 듯했는데, 되새겨 보니 그 아쉬움을 제대로 기억도 못 하고 있었잖은가?
‘이상하게 재밌네? 나 지금 정상이지?’
―팔딱팔딱, 아주 징그럽게 정상이다.
어이없어 심술 났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대답했다.
피식, 스쳐 가는 바람결에 웃음을 흘리면서 투란은 이 의아한 상쾌함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봤다.
‘여우, 아빈가 여우 이동 방식이 재밌는 건가? 마법 계약이라 제약도 많이 걸려 있는데, 그래서 더 재밌는 건가? 히엔나의 손발을 움직이는 게 기분 좋아서 그러나? 이상하게 답답했던 게 확 풀리는 것 같잖아. 예전보다 더 기분 좋은데?’
―능력을 억누르고 있다가 욕구불만이라도 걸렸냐? 황금매의 몬스터 형상을 사용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기는 하다만…… 투란, 몬스터의 본능이 주는 쾌감에 휘둘릴 작정은 아니지?
‘폭동 일으키고 광란이라도 할까 봐? 안 해!’
투란이 투덜거리듯이 대답하는데, 금빛 화살이 길어지면서 한곳으로 쏘아지듯 빠르게 움직였다. 바로 투란은 마음을 비웠다.
이제 붉은 오우거가 어슬렁거리는 곳이니…….
콰직, 와득!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명쾌하게 울렸다.
축 늘어진 몬스터, 카멜 리저드의 살갗이 알록달록하게 변화하며 생의 마지막 경련(痙攣) 중이란 것을 드러냈다.
그 목줄을 움켜쥐어서 거의 십분의 일 수준으로 압축해 버린 손…… 검은 손톱, 붉은 살갗의 손이 펼쳐졌다.
털썩.
몬스터의 사체가 바닥에 허물어지듯이 떨궈졌다.
그르르…….
주변을 둘러보는 백색(白色)의 구슬 같은 안구(眼球)에는 눈동자가 없었다.
눈가는 검게 화장을 한 듯한 날카로운 무늬가 번져 있는데, 눈썹 자리에는 잔털보다 선명한 가시가 눈썹을 대신해 자리 잡았다. 그 이상한 눈썹 가시의 가운데를 따라 올라가니, 세모꼴의 검은 뿔이 두툼하고 튼튼하게 돋아나 있었다. 그런 머리 중앙선을 따르듯이 더욱 작은 크기로 세모꼴의 뿔이 이어지다가 목뼈, 척추를 따라 허리춤에 이르도록 가시처럼 솟아 있기도 했다.
지켜보는 눈에는 그 특징이 꽤 독특하면서도 선명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듯한 살갗, 몸 곳곳에 돋은 검은 뿔…… 손톱 발톱의 새카맣고 삐죽한 세모꼴과 함께, 배꼽 자리에서 돋아나 허리를 휘감고 가시철망으로 만든 바지라도 입은 듯한 하반신…… 배꼽 아래에서 무릎까지는 촘촘하게 붉은 살갗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가시철망은 무릎 아래부터 발목까지는 느슨하고 듬성듬성하며 그저 달라붙은 몇 가닥의 검은 핏줄처럼 자리 잡았다.
그리고 발목을 감싼 족쇄, 족쇄에 매달린 짧고 검은 쇠사슬이 종아리를 파고든 모양은…… 아무래도 이상해 보였다.
그르르!
복근이 드러난 상체를 이리저리 들이대듯, 길게 머리를 빼고 킁킁거리며 목을 울리는 소리를 내며 붉은 오우거가 사방을 둘러봤다. 조금 전에 처치한 몬스터 말고 또 다른 뭐가 있는가 살피는 것처럼 보였고, 뭔가를 느낀 듯한 몸짓이었다.
하지만 붉은 오우거의 주변에는 방금 전에 죽인 몬스터를 끝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있는 것은 부러지고 검게 탄 나무의 흔적, 그 위로 아무렇게나 걸쳐진 채로 타 죽은 것인지 뜨거운 것에 관통되어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몬스터의 사체 무더기일 뿐이었다.
흐릿한 연기 속에서 맴돌던 오우거가 멈췄다.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낮은 소리가 오우거의 목에서 흘러나온다.
그르르…….
‘와, 저놈 배 좀 봐! 아주 매끈하게 근육 덩어리잖아!’
투란은 우거진 나무 틈새로 보이는 붉은 오우거를 보며 감탄했다.
거의 3미터에 달하는 눈높이, 뿔 길이를 제외하고도 그런 키를 지닌 오우거의 체형은 무쇠뿔 오우거랑 완전히 달랐다. 마치 인간의 단련된 육체, 굶으면 바로 다음 날 죽을지도 모른다 여길 정도로 군살 없이 근육만으로 엮어 놓은 듯한 몸이었다.
그렇다고 어깨너비라든가 다리 굵기가 딱히 무쇠뿔 오우거보다 처지는 수준도 아닌데, 아주 매끈하게 쭉쭉 빠진 몸매가 오우거라기보다는 온몸에 가시랑 뿔이 돋는 병에 걸린 3미터짜리 사나이, 시뻘겋게 칠한 사람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 가시와 뿔의 배열도 어딘가 정교하게 균형이 잡혀 있어서 보기 좋기까지 하잖은가.
‘아래턱에 난 뿔 좀 봐! 괜히 턱 언저리 치려다가는 어딜 때려도 먼저 뿔에 걸려 찢어질 것 같잖아!’
투란은 붉은 오우거의 아래턱, 양쪽으로 돋은 작은 뿔과 그 사이를 수염처럼 메우다가 목줄까지 덮은 가시철망의 상태를 보며 멋지다가 감탄하며 칭찬했다.
―지금 그런 외형을 평가할 때가 아냐! 저놈 주변을 봐! 저 불씨 휘날리는 꼴을 보라고! 저 정도 잔불만 남기고 뭘로 숲을 도려내듯이 파괴했는가 보란 말이야!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감상을 짓밟듯이 으르렁거렸다.
갸웃하면서, 살짝 웃음을 흘리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대꾸한다.
‘벼락으로 후려친 것 아닌가? 그렇게 보이는데? 벼락불 때문에 불탄 흔적이 남았지만, 벼락 치는 충격 때문에 불이 번지지 못하고 홱 꺼진 것 같잖아.’
―보긴 봤구나. 맞아, 홀시딘이 케이라와 상성이 어쩌구 했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라이트닝 체인이랬으니까, 저거 벼락 치는 놈 맞겠지.’
살짝 가볍게, 투란이 드라고니아의 장황해질 듯한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 말이 꽤 의외였던가, 잠깐 드라고니아가 기묘하게 고요했다.
그 고요함을 느끼다가 문득 투란은 알 수 있었다.
‘너, 라이트닝 체인 얘기 홀랑 까먹고 저 녀석 주변만 봤냐? 마법사와 몬스터의 상성이란 얘기에만 집중했어?’
―잡담할 때가 아니다, 저놈 아무래도 널 찾는 것 같군!
드라고니아가 돌연 화제를 돌렸다.
아주 진지하게, 심지어 살그머니 윌 라이트의 마력까지 키우면서!
때문에 투란이 흠칫해야 했다.
‘얀마! 그러면……!’
붉은 오우거가 홱 고개를 돌리며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투란을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그르르, 그아아아!
괴성과 함께 투란이 숨은 곳으로 붉은 오우거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놓고 드라고니아가 태연하게 중얼거린다.
―어라? 마법사가 만들어서 그런가? 마력을 아주 민감하게 감지하네?
‘일부러 그래 놓고! 누굴 죽일 작정이냐아아!’
투란은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붉은 오우거가 주먹을 내질렀다.
아직 수십 미터의 거리가 있음에도 전혀 상관없다는 듯!
내지른 오우거의 주먹, 주먹 관절이 돌출된 것처럼 보이는 세모난 검은 뿔에서 번개가 뿜어졌다. 여러 가닥의 뇌격(雷擊)이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짓이기면서 검은 자취를 남기는 채로 투란을 향해 쏘아져 왔다.
앞으로 두 자루 단검을, 바닥으로 세 자루를 던지면서 투란은 옆으로 뛰며 다시 위로 한 자루를 던졌다. 무장 생성으로 만들어진 금속성을 띤 단검이 뇌격을 유도하기를 바란 셈이었다.
하나 뇌격은 단검을 차례대로 휘감았고, 번쩍이는 뱀처럼 휘어지면서 투란을 쫓아온다!
파칫, 파지직!
허공을 찢고, 나뭇가지를 태우며 날아드는 광채에 투란이 손을 내밀었다.
“에어로!”
스피릿 아티팩트, 바람의 정령수가 두꺼운 바람결을 휘저으며 투란 앞을 막았다.
환한 전광(電光)이 펼쳐졌다.
여러 층의 바람벽에 막힌 뇌격이 빛으로 변해 버린 듯했다.
그아아아! 와지근!
굵고 짙은 괴성과 함께 나무가 통으로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다가왔다.
―맞히기보다는 늦출 작정으로 날린 모양이네. 제법 싸울 줄 아는데?
드라고니아가 뜬금없는 말로 붉은 오우거를 칭찬했다.
투란은 바닥에 두 발, 두 손을 딛고 내려앉으면서 투덜거린다.
‘벼락도 날리고, 힘도 좋구먼. 오우거는 오우거네.’
부러진 나무, 인간의 입장에서는 얇아도 어쨌든 통나무라 할 만한 것이 붉은 오우거의 한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 통나무를 몽둥이 삼아 휘두를 작정으로 한껏 팔을 젖혀 치켜올린 자세로 붉은 오우거가 가로막은 나무를 발로 걷어차 뿌리째 날려 보내면서 투란을 향해 다시 포효한다.
콰득, 그아아아앙!
투란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괴물의 포효를 뒤집어쓴 채로 한쪽 주먹을 내밀었다. 거리는 아직 10여 미터, 붉은 오우거의 체격과 과격한 돌진을 본다면 그냥 밟으러 들어올 듯한 거리였고 휘둘러지는 통나무 몽둥이를 고려하면 처맞기 딱 좋은 거리였다. 때문에 투란의 모습은 마치 오우거의 포효에 짓눌린 채로 맞아 죽기 직전인 불쌍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검게 물든 주먹, 붉은 핏줄이 시커먼 살갗 사이로 번졌다.
핏줄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검은 재가 짙게 휘날리며 주먹 앞에 재의 소용돌이, 회오리를 일으켰다.
오우거의 살갗보다 더 짙은 홍염(紅焰)의 폭발이 소리를 잡아먹은 듯이 고요하게 터졌다.
오우거가 휘두른 통나무는 공중에서 충격파에 으스러져 톱밥처럼 퍼졌고, 불길에 휩쓸리자마자 재가 되어 날려갔다. 그 불길이 오우거까지 잡아먹겠다는 듯이 확장되며 거세게 휘몰아쳤다.
―투란, 뚫고 나온다!
블랙 애쉬, 마그마 로드의 우악스러운 폭발 공격으로 시계(視界)가 불길의 여파에 휘말려 막힌 채로 투란이 과연 어찌 되었나 궁금해할 때, 드라고니아가 외쳤다.
거의 폭발과 동시에 나온 듯한 말이었다.
금가면에 가려진 투란의 표정이 구겨졌다.
막 결과가 궁금하다 여기는 순간에 불길 한복판을 뚫고, 홍염 사이로 창백한 전광(電光)에 물든 탓에 퍼릇하게 보이는 살갗 속에 여전히 검은 뿔과 가시를 또렷하게 드러낸 채로…… 오우거가 힘이 가득 채워진 근육질의 몸뚱이를 들이밀고 있다!
‘뭐야, 불이 아예 닿질 않았어?’
충격이 일으킨 파문이야 오우거의 괴력이라면 어찌어찌 돌파할 수도 있다 여겼다.
하지만 어째서 이 시뻘건 불길이 오우거의 살갗에 전혀 닿은 낌새가 없는가?
닿았으면 분명히 불에 그을리거나 살갗을 파고드는 불씨가 번지고 있을 텐데, 그런 흔적이나 자취가 전혀 없었다.
흡사 뇌전(雷電)으로 빈틈없이 몸을 둘러싼 것처럼.
―그렇게 했어! 이 녀석, 라이트닝 체인을 갑주 삼아 둘렀다! 마그마 로드의 불씨가 아예 닿질 않았다고!
드라고니아의 급한 설명에 투란은 땅을 짚었던 다른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침 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검은 발톱을 자랑하며 투란을 밟으려던 오우거는 갑작스럽게 부풀어 올라 쳐올리는 마그마 로드의 주먹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콰앙, 쩌억!
‘이것도 막았네?’
투란은 튕겨 나가는 오우거를 보면서 짜증과 감탄을 동시에 느꼈다.
동시에 찾아온 알드바인 방어전은 아무래도 저 오우거로 마무리될 듯한 예감은 투란을 설레게 했다.
그 싸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