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3)
‘이 팔을 치워 놓으면 달빛에 상관없지 않을까?’
발로 나무를 밟아 꺾고 뭉개면서 투란은 생각했다.
물가를 따라 걷는 사이에도 슬금슬금 떠올랐던 생각이다.
주변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제대로 더듬지는 않았지만, 막상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며 본격적으로 밤을 대비할 상황이 되니 저절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붉은 털이 살랑이는 왼팔을 내려다보며, 아직 햇살이 맴도는 이 시간에는 정말로 얌전한 그 꼬락서니를 느끼면서 투란은 되새김질하듯 생각을 더듬었다. 별일 없이 물가를 따라왔기에 드문드문 떠올랐던 생각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결말은 항상 한 가지로 끝났다.
‘늑대의 팔을 감추고 그랑츄의 팔을 꺼내 놓으면…… 달빛이 훤하든 말든 상관없지 않을까?’
애초에 달이 뿜어내는 은빛 불꽃을 보게 된 것도, 그 불길을 끌어당기는 것도 모두 웨어울프의 특성일 뿐이었다. 몬스터 엠블럼 깊이 웨어울프의 성질을 넣어 두고 그랑츄의 팔을 스윽 달에 들이대고 있으면, 아무 일 없는 달밤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은 여러 번을 되풀이해도 아주 그럴듯하게 여겨졌다.
만약 투란의 기억 너머에서 구슬프게 징징대던 몬스터 로드의 일이 떠오르지만 않았다면…….
“어우으흐흑! 왜, 왜 자꾸 촉수가 되냐고! 왜 비싸게 주고 구한 비비나비 왕족의 팔이 안 나와!”
그자는 야심만만하게도 한 팔에는 검은 가시 촉수를 달고, 한 팔에는 귀하다는 비비나비 왕족의 팔을 달려고 했다. 원래는 두 팔 모두 희귀한 검은 가시 촉수를 보유한, 나름대로 중급 수준의 몬스터 로드였다. 하지만 검은 가시 촉수만을 사용하는 두 팔은 상황에 따라 굉장히 곤란한 일이 잦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새로운 형태의 팔을 구하려 했다. 두 가지 형태의 다른 팔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몬스터 로드라면, 중급을 넘어 상급에 도달할 수 있지 않느냐는 야심도 그런 결정에 큰 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결과는 금전을 열 닢이나 주었다는 비비나비 왕족의 팔을 제대로 꺼내 보지도 못하고 그래서 울고불고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비비나비 왕족의 팔을 보며 침만 삼키던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는 그 꼴을 보고 마냥 좋아했다.
‘음, 둘이 상당히 사이가 나빴는데 대체 왜…… 아, 지금 그런 생각 할 때가 아니고!’
투란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당시 그 신기한 일의 결론은 간단했다.
부적, 그 몬스터 로드의 부적이 중급을 넘을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터진 일이란 것. 그냥 어느 정도 수준의 비비나비를 포획해 삼켰다면 괜찮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더 좋은 부적을 구하기 위해 더 실력 있는 사제를 찾아간다며 떠났다. 웃어 재끼고 있는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에게 주먹질을 좀 하고 나서.
투란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봤다.
바람결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붉게 살랑이는 늑대의 팔.
달빛을 받으면 그의 몸을 통째로 웨어울프의 것으로 바꾸려는 마성을 드러내는 팔이었다. 어쩌면 완전히 웨어울프로 바꿔 버릴 수도 있는 진짜 괴물.
‘바뀌지 않았어.’
물가를 거닐면서, 한가하게 몰려오는 덩굴줄기에 대해 고려하며 간혹 만나 터지는 눈깔꽃의 보라색 안개를 들이쉬면서 투란은 분명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물가의 나무를 잡을 때, 보다 단단하고 거친 손을 써 보겠다고 몇 번 마음먹고 왼손을 내밀었지만 늑대의 팔은 결코 그랑츄의 손으로 변하지 않았다. 까칠한 나뭇결을 그대로 느끼고, 가죽의 일부에 흠이 파이며 자국이 남았지만, 결코 그랑츄의 손에 자기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익숙하지 않나 보다 했고, 나중에는 조금 깊은 곳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따져 볼 겨를이 없었다.
이렇게 아예 물가로 올라와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며 궁리하기 전에는 정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투란이다.
‘이거 그 아저씨 촉수처럼 된 거면…….’
투란에게는 부적이 아예 없다.
그러니까 더 좋은 부적을 얻기 위해 사제를 찾아간다는 선택 따위는 전혀 답이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난 부적을 써서 몬스터를 다룬 적이 없는 거네?’
약간 곤혹스러운 생각도 조금 늦게 떠올랐다.
다시 돌이켜 보면, 삼킨 몬스터에 대해 문장이 스스로 가늠하며 균형을 잡아 준 것이 전부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문장에게 투란은 열심히 소원을 빌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짧은 순간동안 더 기울어져 버린 해와 늘어진 그림자를 느끼면서 투란의 입가에서 한숨이 새 나왔다.
“해 보자고.”
곧 투란은 좀 더 거칠게 물가 숲 어귀의 나무를 밟고 꺾어 바닥에 깔기를 서둘렀다. 그렇게 어느 정도 널찍하니 나무를 깐 다음, 억세게 밟아 다졌다. 일단 드러누워 뒹굴 곳을 푹신하게 해 둘 참이었다.
그랑츄의 바위 같은 발바닥은 굉장히 단단하고 까칠해 보이는 이 숲의 나무를 지푸라기처럼 짓이겼고, 부드럽게 뭉개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투란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그랑츄의 무리가 숲을 향해 거침없이, 무슨 길쭉한 풀잎을 젖히고 누이듯이 밟고 가는 꼴을 봤으니까.
해가 저무는 광경을 가늠하며 투란은 좀 더 빠르게 밤에 누워 뒹굴 곳을 다듬었고, 결국 붉은 노을이 주변을 물들일 때가 되자 푹신하게 짓이겨진 나무로 된 바닥에 편히 앉을 수 있었다.
‘좋아, 다음!’
누군가 봤다면, 숲의 한구석을 짓이기고 뭉갠 이 광경에 ‘괴물이 나타났다!’라고 외치며 달아날 짓을 했지만 투란은 산뜻하게 자신의 다음 예정을 따랐다.
먼저 왼손을 노려보고 오른손에 나란히 한 다음, 잠깐 옆을 더듬어 얇은 나뭇가지 하나를 쥐어 올려 오른편 손바닥을 스윽 문질러 봤다.
단단하고 거친 나뭇가지의 껍질이 사정없이 새싹빛 손바닥에 흠집을 냈지만 가죽을 가르고 피가 배어 나오는 정도는 아니었다. 파인 흠집도 금세 메워지고 부풀며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역시.’
기대한 그대로인 것을 보고, 이번에는 나뭇가지로 늑대의 손을 긁었다.
흠집이 파이고, 거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지만 늑대의 손은 긁힌 자국을 복구하지 않았다. 그 흔적이 아프거나 시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한 감각이 조금 더 파이면 피가 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다음 투란은 나뭇가지로 발등을 스윽 그어 봤다.
나뭇가지의 껍질이 파이고, 반쯤 까져 버렸다.
그랑츄의 살갗은 ‘지금 뭐 했우?’ 하듯이 감각도 없다!
무신경함이 너무 지나치지 않나 하면서 투란은 나뭇가지를 옆으로 던져 버렸다. 방금 그랑츄의 손을 쓸 수 있었다면, 발만 가지고 깡충거리지 않고 좀 더 편안하게 나무를 분지르고 꺾어다가 제법 그럴듯한 바닥을 꾸밀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투란의 두 팔이 형성하고 있는 두 가지 몬스터의 형상은 어느 쪽도 그랑츄의 팔에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은근히 느끼던 그대로, 기억 너머의 그처럼 투란은 완전하게 이 몬스터를 제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부적 없이 이를 해내야 했다.
원하는 순간, 원하는 형상을 자유롭게 꺼내기 위해서!
‘뭐, 안 되면 또 버티는 거지.’
한층 더 기울어지고, 이젠 어둑해져 가는 풍경을 보면서 투란은 조금 더 편하게 마음먹기 위해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왼손을 노려보며 의지를 불태웠다.
투득! 꽈드득!
억지로 팔다리를 뒤틀다가 힘줄과 살집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붉게 물든 바위 같은 살결이 왼손에 서서히 피어올랐고, 가늘고 긴 갈고리 같은 손톱이 움츠러들면서 굵고 까칠하며 짧고 두꺼운 방패 같은 손톱으로 변했다. 새끼손가락은 굵어지고 엄지랑 비슷하게 변하며, 손이 엄지가 두 개 돋은 것처럼 변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된 건가!’
손등에 은근히 붉은 털이 잔잔하게 남아 있었고, 손목을 타고 팔뚝을 슬슬 휘감은 꼴인 것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투란에게는 늑대의 손을 재우고, 그랑츄의 손을 제대로 끄집어낸 것이 대단했다!
부적도 없이 굉장한 일을 해낸 것 같잖은가!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런 일을 해낸 것을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고개를 쳐들면서, 발갛게 물든 채인 하늘을 보며 투란은 활짝 웃었다.
그 하늘을 향해 왼손을 밀어 올리자, 두껍고 굵은 그랑츄의 팔이 그 독특한 손을 활짝 펼친 모습이 보였다.
‘좋아, 해냈어!’
투란은 조금 더 팔을 치켜 올린 채로 기쁨을 즐겼다.
붉게 물든 하늘이 어둑하게 변하고, 은은한 달빛이 밀려올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해가 뜨는 것처럼, 달이 서서히 그 모습을 하늘 위로 굴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보지 않아도 느끼지 못해도 달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밤하늘 위로 치솟을 뿐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그 광경을 아주 생생하고 색다르게 지켜볼 수 있었다.
살랑이는 붉은 털이 먼저 은빛의 불씨를 튕겼다.
‘어?’
그 작은 순간에 투란이 조금 당황할 때, 붉은 털 가닥은 작은 촛불처럼 하늘하늘 은빛을 밝혔고, 곧 팔뚝 전체를 은빛 불꽃이 휘감으며, 투란은 이제 자기 팔이 그랑츄의 형상을 한 횃불이 된 꼴을 봐야 했다!
하늘이 불타올랐다.
은색의 불길이 밤을 지웠다.
지켜보는 투란의 눈동자는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그 황금색 주변으로 투명하고 가는 넝쿨의 가닥이 맴돌며, 눈알을 조이는 그물처럼 번져 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눈동자의 황금색은 환한 금빛을 일렁이며, 하늘을 불사르는 은빛에 호응했다.
하지만 투란은 이미 보고 듣는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투란의 이마, 미간, 볼 언저리로 붉은 털이 쑥쑥 돋기도 했다.
이런 변신과 함께 투란이 열심히 애써서 드러냈던 그랑츄의 팔은 한순간에 늑대의 휘황한 붉은 털가죽을 뒤집어쓰며, 웨어울프의 것으로 변해 버렸다. 덤이라는 듯이 붉은 털이 살갗 위로 번지며 투란의 어깨를 타고 목덜미에서 가슴까지 덮으려고도 했다.
투란의 허리도 잘록해졌고, 뱀 가죽 아래 드러난 허벅지와 정강이도 붉은 털빛이 수북이 돋아나며 가늘고 날렵한 꼴로 변하려 했다.
투란이 뭔가 느끼기도 전에,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완전히 차올라서 훤히 떠오른 달빛이 일으켜 준 변이였다.
‘이게 뭐야, 이러지 마!’
뒤늦게 투란은 저항하는 마음을 일으켰고, 강렬하게 이에 호응한 것은 오른쪽 가슴에 숨어 있던 ‘이상한 심장’이었다. 왼쪽 가슴에서 맥동하던 악마의 심장은 한순간에 이어지며 뻗어 온 늑대의 핏줄과 만나면서, 순식간에 웨어울프의 심장을 낳으며 ‘작은 늪’과 더불어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여태 호응하던 조율자를 잃은 것이라고 여긴 것인지, ‘이상한 심장’은 잠깐 그 맥동을 헝클어트리다가 돌연 사납게, 강력하게 본래 자신의 박동을 찾겠다는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강렬한 고동이 투란에게 힘이 되었다.
마구 번져 오며, 투란의 몸을 통째로 갈아엎으려던 은빛 불꽃의 열기가 ‘이상한 심장’의 억센 맥동과 만나면서 멈칫하고 있었다. 오른팔과 오른쪽 가슴에서 맴돌던 피의 격류는 오히려 몸에 번진 열기를 식히면서 투란의 머릿속까지 차갑게 돌려줬다.
덕분에 투란은 겨우 주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헝클어진 감각 속에서 뒤틀렸던 광경이 제자리를 찾았다.
‘아, 전부 냄새가 나.’
흑백의 광경 위로 온갖 냄새의 집결체가 떠돌고 있는 듯했다.
은빛의 불꽃이 밝혀 주는 세상이었다.
윤곽이 뚜렷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 어스름하니 번져 가는 형상으로 은빛 하늘 아래에서 흐느적대는 것처럼 보였다. 물결도, 숲의 그림자도 모두…….
그 속에서 투란은 자신의 형상 또한 그렇게 물든 것을 느꼈다.
은빛 불꽃은 더욱 치밀해졌고, 녹색과 검은색, 회색의 몸을 구석구석 스며들며 물들이다가 결국 궁극에 이르면 투란의 몸 깊은 곳에서 붉은 늑대의 형상을 끄집어낼 작정이었다.
‘이런 놈이었나, 저 붉은 늑대!’
투란은 검은 그림자 위로 붉게 일렁이는 형상을 씌운 듯한 늑대의 형상이 심장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것을 냄새로 볼 수 있었다. 그 늑대가 자신의 존재를 투란에게 선명하게 드러내는 셈이기도 했다. 저 붉은 늑대와 사람인 투란이 섞일 때, 다시 한 번 달빛을 향해 포효하는 ‘웨어울프’가 세상에 발을 딛고 손톱을 휘두를 것이라고, 본능을 관통하며 알려 주고 있었다.
쿠웅! 콰콰쾅!
‘이상한 심장’이 거칠게 맥동하며 투란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목구멍 아래, 가슴 쪽에서 작게 악마의 심장이 줄기 속에서 다시 그 싹을 틔우고 뿌리를 만들며 흐르려 했다. 목표는 늑대의 심장이었고, 가서 잡아먹겠다는 분명한 투지를 드러내는 움직임이었다.
‘그렇지, 좋아!’
늑대의 심장이 달궈지며 뿜어내는 은빛 불꽃의 열기가 흘러간 악마의 심장을 구워 삼키고 지웠다.
‘헐?’
투란이 되새겨보니, 저 은빛 불꽃이 이미 한번 왼쪽 가슴에서 악마의 심장을 박살 내고 그 자리에 새겨 넣은 것이 늑대의 심장이다.
투란이 처음 겪는 만월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