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3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26)
Chapter 126. 뇌격의 오우거
“링 오브 배틀.”
나직한 읊조림 속에는 강력하게 집중된 의지가 서려 있었다.
마법이 그 의지로 점화(點火)된 불꽃처럼, 사대(四大)의 정령수와 엮이면서 펼쳐졌다. 파워 서클을 내재(內在)한 황금매의 마력을 기반으로!
투란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바람과 불길이 뒤섞여 이뤄진 기둥이 치솟으며 땅을 할퀴고 긁고 밀어붙이는 원형(圓形)의 장벽이 되어 뿜어져 나갔다. 숲을 이루는 풀 이파리, 나무 한 그루 남기지 않고 그저 새카만 숯과 재로 재생(再生)시키는 듯한 광경이었고 지면(地面)의 굴곡(屈曲)을 잡아먹으면서 시커멓지만 깔끔한 평판(平板)을 깔아버린 듯했다. 마치 바람과 불에 호응한 땅이 자신의 울퉁불퉁함을 재정비라도 한 것처럼!
“역시, 돌파했네?”
키득거리는 웃음을 섞은 말투로 투란이 중얼거렸다.
불기둥을 세우고, 전방위(全方位)로 확장하면서 중심을 비운다…… 이는 불의 장벽을 원형으로 뿜어내는 짓이었다. 그 기본 형태는 방어인 듯하지만, 날카로운 바람으로 화력(火力)을 집중시킴으로써 장벽에 닿는 것을 단순히 태우지 않고 갈아버리기까지 하는 맹렬(猛烈)하고 흉폭(凶暴)한 공격이기도 했다.
하지만 확장되는 불의 장벽에 맞춰 물러서기만 한다면, 피할 수 있기는 했다. 밀어붙이는 바람보다 빠르기는 해야겠지만…… 그래도 회피수단은 노골적으로 드러낸 채라 그리 효율적인 공격 마법이라 하기는 애매했다.
오우거는 그 불의 장벽을 가르고 버텨냈다.
거센 바람의 압력도 내닫는 걸음으로 버티며 갈라낸 채로 오우거는 투란 앞에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시커멓게 변한 평평한 땅, 그 검고 고운 재 위에 발톱자국까지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면서!
그러는 사이에 전광의 색채가 흐릿하니 사라졌고, 오우거의 몸 곳곳에 돌출되었던 검은 뿔은 다소 오그라든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불의 장벽을 돌파하는 동안 몸에 둘렀던 뇌전의 힘을 많이 소모한 것처럼…… 때문에 붉은 살갗이 다시 노골적으로 드러난 채였고, 검은 각질이 맺힌 부분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오우거의 그런 모습에는 마그마 로드의 주먹에 맞고 튕겨 나간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조금 지친 듯한 분위기만 맴돌 뿐이었다. 그럼에도 투란을 향해 잔뜩 성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투란은 그런 오우거를 마주 보면서 거대한 주먹을 펼쳐 자신의 머리부터 몸을 움켜쥐어갔다. 오우거를 후려치느라 한쪽 팔만 거대해졌던 탓에 무슨 바위를 옮겨 자신을 덮어씌우는 듯했다.
쿠륵, 카칵.
몸을 덮은 시커먼 결정의 형상이 변하면서 바위가 일그러지는 거친 소리가 울렸다.
붉게 달아오른 핏줄이 검은 재를 흘리는 3미터 크기의 시커먼 석상(石像)이 형성되며 오우거 앞에 나타났다. 동시에 머리 위로는 둥글게 불길과 바람이 맺히면서 구형(球形)의 천장이 생겨났다. 천장은 원형의 장벽과 함께 거대한 돔을 형성했고, 이는 투란과 오우거를 감금한 모양이었다.
―아레나……냐?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살짝 물었다.
‘아니, 아레나 이전에 연구되었다는 마법. 아레나를 만들기 위한 기초가 되었다고 했던 그거…… 야, 알면서 뭘 물어?’
기분 좋게 답하다가 투란은 문득 깨닫고 툴툴거렸다.
퀸 아라크레온을 잡기 위한 아레나, 그 전후 과정에서 뭔가 상황이 애매할 경우에 이 ‘링 오브 배틀’로 주의를 끌려 했었다. 결국 대마법 아레나가 제대로 펼쳐졌기에 써먹지는 못했지만, 황금매의 특성을 이용해서 쓸 수 있도록 홀시딘에게 조금 자세히 배워뒀던 주문이었다. 드라고니아는 그 과정을 전부 알고 있음에도 묻는 것이니, 냉큼 으쓱대던 투란으로서는 놀리는 말이 아닌가 싶어 투덜거릴 수밖에!
―링 오브 배틀에는 스피릿 아티팩트를 섞지 않잖아. 이건 섞였는데?
드라고니아가 조금 진지하게 다시 묻고 있었다.
‘응? 그야…… 그때는 아레나에 전부 집중했어야 했고,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 하니까…… 뭐야, 그것 때문에 헷갈렸어? 헤에…….’
투란은 다시 으쓱거리는 기분이 되었고, 아예 어깨까지 으쓱했다.
한데 이 작은 몸짓이 우람한 검은 바위 같은 어깨를 통해 꽤 크게 표현되었고…….
그아아아아!
오우거가 도발로 받아들였다!
격분한 낌새를 확실히 드러내며 오우거는 포효와 함께 투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 빠른데!’
콰앙!
투란이 그 속도에 감탄하는 순간, 오우거의 주먹이 얼굴에 꽂혔다.
쇠로 바위를 치는 듯한 음향이 두어 번 더 이어졌다.
투란의 얼굴에서, 몸에서.
쾅, 카앙!
목이 휘청했고, 몸이 움푹 찌그러지는 것을 느꼈지만 투란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버텨냈다. 눈높이를 맞춘 체격이었기에 오우거와 투란이 마주 보는 듯한 상황이었고, 오우거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그런 것 상관없이 더 이어질 듯했다.
―계속 맞으면…….
‘안 맞아!’
오우거의 괴력이 일으키는 충격파는 상당했다.
마그마 로드 내부로부터 이글거리며 치솟는 마그마가 살갗을 이룬 결정을 깨고 터져나오게 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그렇게 되면 모처럼 갖춘 3미터의 체격이 허물어질 것이라 드라고니아가 짚는데 투란은 짧게 대꾸했고, 그다음에 바로 대응했다.
콰직!
오우거의 주먹이 투란의 얼굴에 붙들렸다.
얼굴의 형태가 콰득거리며 더 또렷하게 손아귀 모양이 되었다.
붙들린 주먹을 단번에 빼낼 수 없게 된 오우거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한쪽 주먹이 붙들리는 순간, 오우거의 다른 손과 발은 재빨리 멈췄다.
반사적으로 후려치는 것이 아니라 매번 가늠하고 쳤던 것처럼…….
‘이거 진짜로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놈이네?’
투란은 감탄했다.
오우거는 번개를 뿜어냈다.
검은 뿔 끝이 살짝 파리한 색채로 물드는가 싶었을 때, 오우거의 온몸을 질주하며 맴돈 번개가 가속한 힘을 모아 그대로 투란을 두들겨 팬 것이다.
―딴생각할 때냐?
드라고니아가 황당하다는 듯이 핀잔했다.
번개는 강력한 충격을 남긴 채로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스쳐갔다.
투란은 몸 안에서 들끓는 마그마, 용암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오우거를 쥔 손, 얼굴에서 뻗어나가 어깨로 내려앉으며 원래 있던 팔과 겹쳐진 팔의 힘은 계속 유지되는 채였다.
가까이 맞닿은 상태에서 뿜어낸 번개가 주먹이나 발만큼 위력이 없다는 것을 오우거도 금방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곧바로 짧은 괴성을 지르더니 이제까지 잡히지 않으려고 뒤로 빼놓았던 한 손을 냉큼 뻗어 투란의 목을 쳐올리듯이 움켜쥐고 들어 올리려 했다.
두드득.
발목 언저리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는 채로 투란의 시커멓고 붉은 줄기가 핏줄처럼 맴도는 몸이 위로 들렸다. 마치 오우거의 괴력에는 서서 버틸 수가 없다는 듯이.
―뭔 짓이냐, 대체…….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웅얼거렸다.
붉게 달아오른 마그마의 발목이 길게 늘어나는 채로 얌전히 끌려 올라가는 모습으로 투란이 어울려준 것을 짚는 말이었다. 동시에 목에서도 오우거의 손과 깍지를 끼듯이 맞잡은 손아귀가 생겨나 팔뚝을 스윽 내밀며 옮겨가니, 오우거는 어느새 두 손을 모두 붙들린 꼴이 되었다.
그런 채로 투란은 오우거, 번개를 뿜어내고 벼락을 몰아치며 몸에 그 광채를 머금어댄 검은 뿔과 붉은 살갗의 오우거를 관찰했다.
힘, 괴력이라고 불릴 힘의 크기는 무쇠뿔 오우거와 비슷하거나 살짝 모자란 듯했다. 숲을 단숨에 옮겨 다니는 능력은 아예 없어 보였다. 하지만 번개를 다루는 재주는 무쇠뿔 오우거에게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능력이니, 어느 쪽이 더 좋은가 고르라면 이 붉은 오우거 쪽이 마음에 든다! 애초에 무쇠뿔 오우거의 그 능력은 엄청 탐이 났지만, 결국 투란이 쓸 수 없으니까!
화르륵!
맞잡은 손에서 붉은 줄기가 짙고 검은 재를 흘리면서 불길을 뿜었다.
오우거의 붉은 살갗이 이글거렸고, 손톱과 주먹돌기의 검은 각질 위로 붉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인간이라면 살갗이 끓어오르고 너울거리는 불꽃의 그림자에 공황(恐慌)에 빠져 정신이 나갈 듯한 상황!
그러나 오우거의 눈동자 없는 눈이 박힌 붉은 얼굴에는 그런 두려움, 공포 따위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도 붙들린 탓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 두 손이 조금 불편하다고 느끼기는 하는 듯, 두 팔에 힘을 주고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벗어나려 할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몸의 곳곳에서, 검은 뿔과 각질 사이에서 번개가 피어날 뿐이었고…….
‘아까처럼 막지를 않네?’
투란은 조금 의아해졌다.
블랙 애쉬를 이용한 불더미, 마그마 로드의 커다란 주먹질까지 이 오우거가 막아내는 과정에서 그 몸은 번개 빛으로 퍼렇게 물든 채였다. 하지만 이렇게 맞잡고 있는 사이에는 그럴 낌새가 전혀 없었다.
하지 않은 것인가, 할 수 없게 된 것인가?
검은 뿔에서 피어나는 작은 번개가 바람을 태우듯이 파짓거리는 자잘한 소리와 살갗을 뒤트는 근육의 뿌득거리는 소리만 요란할 뿐이었다.
이런 오우거에 투란이 조금 더 흥미를 품는데…….
―이러고 시간 끌 거냐? 이 녀석을 너무 얕보지 마라.
‘얕보기는! 관찰, 관찰이라고!’
소리 없이 대꾸하면서 투란은 마그마 로드의 감각을 확장시켰다.
‘링 오브 배틀’, 그 바닥을 메우며 마그마가 번져 있는 채였기에 투란은 번개를 일으키는 붉은 오우거를 보다 자세히 더듬을 수 있었다.
머리를 가로지르며 줄줄이 돋은 작고 검은 뿔이 척추를 따라 허리까지 계속 이어지는 모습, 어깨와 등뼈를 타고 쑥쑥 돋아난 검은 뿔과 각질(角質)…… 붉은 살갗 위로 맴도는 모양이 마치 깊은 곳에서 배어나온 듯한 묘한 분위기를 띤 것…….
눈동자 없는 눈이 생각보다 더 깊고 짙은 의지를 품은 듯한 것까지, 투란은 붉은 오우거의 형상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에 온몸을 꿈틀거리는 오우거는 자세를 바꿔가면서 어떻게든 마그마 로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고, 마그마의 불길이 느긋하게 너울거리며 그 몸을 핥아갔다.
이러는 사이 ‘링 오브 배틀’, 3미터의 거구(巨軀) 둘만을 감금한 전장은 거의 30미터의 지름을 상하좌우, 모든 방향으로 갖춘 채로 서서히 번져가는 불길의 뜨거움을 장벽 너머로 흘리지 않고 모조리 그 안에 담아두며 온도를 맹렬하게 상승시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결국 쇠를 녹일 정도에 이르렀을 때가 되자 오우거의 이마 한복판에 돋은 검은 뿔이 살짝 두껍고 길어지면서 흩어지던 미세한 방전(放電)을 삼키기 시작했다.
드라고니아가 이를 짚으며 말한다.
―뭘 하려는 모양이다. 조심해라.
‘어, 조심하고 있어. 그런데 이놈, 진짜 잘 버티네?’
투란은 번개의 흐름을, 벼락이 내리칠 낌새를 가늠하면서도 감탄했다.
살갗이 지글거리며 화상(火傷)의 흔적을 띠고 있지만 오우거의 괴력은 전혀 약화(弱化)될 낌새가 없었다. 오히려 더욱 사납게 힘이 증가하는 듯한데,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었다. 마그마 로드의 검은 결정 속으로 은은히 울려오는 힘의 파동, 그 감각이 투란에게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확실히, 화염에 대한 내성(耐性)이 심상치 않은 수준이야. 이건 상아탑의 마법사가 의도해서 심어줄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해 있다.
‘음? 원래 풀려난 오우거는 이래저래 강해지는 거 아냐?’
―그것까지 고려해도 이 정도는 될 수 없어. 이건 마치…… 정령의 가호를 받는다고 여길 정도야. 하지만 정령의 가호는 없지. 순수하게 버티는 건데…… 투란, 조심!
중얼거리던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며 경고했다.
투란도 보며 놀랬다.
‘어라, 이건?’
오우거의 어깨부터 피어난 굵은 빛의 구렁이가 그 팔의 살갗 안팎을 드나드는 모양을 한 채로 좌악 피어나며 덮쳐오고 있었다. 파릇하면서 그 속이 전혀 보이지 않은 짙은 광채…… 투란은 이걸 본 적이 있었다.
불꽃의 장막 속에서 피어난 뇌전(雷電), 플레임 불이 이런 광채를 보였었다.
그때도 드라고니아가 경고했었다.
이 광채가 물질구성의 한계선을 깨버린다고, 뭐든 닿으면 그대로 증발한다고!
물론 투란은 증발하지 않았다.
대신 드라고니아가 성질냈었다.
마그마 로드의 본질에 대하여…….
―그냥 둬도 되겠네.
지금은 포기한 것처럼 한탄하는 소리로 경고하던 말을 뒤집는 드라고니아였다.
그 파란 광채의 불길은 마그마 로드의 팔을 타고 쭉쭉 번져왔고, 그대로 붉게 번뜩이는 줄기 속으로 스며오며 사라졌다.
‘얘도 파이로키네틱?’
전혀 기대하지 않은 광경에 투란이 멀뚱히 물었다.
―그럴 리가 있냐! 그때랑 전혀 달라!
‘그럼 뭐야?’
빠드득!
조금 더 오우거에게 압박을 가하며, 그 팔을 부러뜨릴 것처럼 억누르며 투란이 물었다.
붉은 오우거가 눈알을 파랗게 물들이며 포효했다.
그워으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