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3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27)
―이 녀석이 하는 짓은…… 위험하다!
설명을 하려던 드라고니아가 갑작스럽게 경고했다.
투란은 그 말과 함께 바로 앞에서 일어난 한순간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고, 뒤집어써야 했다. 그야말로 뭐라 할 겨를도, 따질 겨를도 없는 한순간이었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서 그런지, 그 모든 것이 단번에 뇌리에 박힐 지경이었다.
그 순간 동안 투란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오우거의 두 손이 손아귀에서 녹듯이 빠져나간 것부터였다. 손에 쥔 것이 마치 스르륵 녹아내리는 서리처럼, 바람처럼 훌렁 빠져나가는 감각은 아주 괴상했다.
한데 그 빠져나간 두 손이 새파란 광채가 되고, 줄기줄기 뻗어내는 날벼락이 되어 주먹질을 해오는 광경은 그보다 더 괴상했다!
두 주먹이라 두 갈래인 날벼락은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 시커멓게 결정화되어 있는 투란의 가슴에 꽂혔고…… 한층 더 괴상한 감각을 투란에게 겪게 했다.
‘우어?’
마그마 로드의 결정질이 그대로 붉게 물들며 뜨겁게 달아올랐고, 바로 마그마로 유동(流動)하잖는가! 마치 겹쳐진 날벼락 속에 담긴 뜨거움은 그대로 삼킬 수가 없다는 듯!
하지만 이보다 더 투란을 놀라게 한 것은…….
‘밀려나잖아!’
오우거의 덩치에 어울리게 꾸며놨던 마그마 로드의 체형(體形)을 뭉개는 파동(波動)이었다.
극열(極熱)을 머금은 강력한 파동은 마그마 로드를 마그마의 유동체(流動體)로 변화시키면서 맹렬하게 밀어내는 괴력(怪力)을 머금고 있었다.
결국 그 괴력의 물결에 휩쓸려 버티지 못한 채로 뒤로 밀려난 것이다.
‘링 오브 배틀’의 장벽에 닿을 정도로, 거칠게!
아슬아슬하게 장벽과 몇 센티미터의 간격을 두고 멈추기는 했지만 이미 오우거와 주먹질 발길질하기 위해 구성해놓은 형체는 없었다. 녹아 흐르는 용암을 두른 검은 바위벽처럼 퍼져버린 몰골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마그마 로드의 형체 깊이 품어뒀던 금가면이 징징 묘하게 울리는 듯도 했지만 그보다 투란은 오우거가 한 짓이 어이없고 궁금했다.
‘이게 뭐야?’
―섬멸(殲滅)의 뇌격(雷擊), 그렇게 불리는 대마법의…… 비술(祕術)을 저 오우거가 그대로 재현한 거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이 그렇게 했다. 두 팔을 소모시켰으니 다시 못 하겠지만…….
몬스터가 마법의 비전술식(祕傳術式)을 사용했다는 점에 난감해하고,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신중하게 말하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매우 애매모호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다만 투란도 확실히 보며 아는 부분은 있었다.
플레임 불, 파이로키네틱의 능력으로 독특한 기술을 획득했던 몬스터.
이 뇌격은 그 녀석이 뇌전을 휘둘러서 형성했던 힘과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오우거의 붉은 살갗이 온통 퍼렇게 물든 채로 전광(電光)을 머금었다는 점부터, 두 팔이 그대로 푸르스름한 액체(液體)가 되어 녹아내리다가 증발하고 있다는 것까지…… 플레임 불과 다르게 이 오우거가 자신의 육체를 훼손(毁損)하고 소모시키는 능력이었다.
‘응? 저놈 팔이……!’
팔꿈치 위까지 녹아내리다가 퍼릇한 광채와 함께 증발하는 사이로 검은 가지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검은 가지는 뒤틀리고 꼬이며 명확하게 골격(骨格)을 형성하는 중이었다. 손가락까지, 시커먼 손톱의 모양까지 섬세하게! 그 골격이 형성되면서 증발이 멈췄다. 여전히 어깨부터 녹아 흐르는 액체…… 오우거의 체액(體液)이 골격을 휘감아 부풀며 다시 복구되는 광경이 이어졌다.
‘대마법의 비술이이니까 냉큼 복구한 팔로 또 쓰지는 못하겠지?’
투란이 냉큼 묻는 말이었다.
잠깐 드라고니아가 부르르 떠는 듯한 기척이 먼저 투란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는 소리 없는 격한 마음의 외침!
―저런 썩을 몬스터 놈이!
투란은 오우거가 다시 저 ‘섬멸의 뇌격’을 쓸 수 있다는 대답으로 여겼다.
벌써 꽉 움켜쥔 두 주먹이 다시 퍼릇하고 흐물거리는 광채를 머금는 중이었고 험상궂은 오우거의 자세는 뭉개진 투란이 다시 일어서는가 아닌가를 가늠해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투란은 그 꼴을 보다가 문득 히힛거리고 웃고 싶었다.
뭔가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기분이 새록새록…… 아주 묘하게 투란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우와, 저거 더 단단해진 건가? 그렇지? 더 단단해진 거지?’
어느새 다시 변화하는 오우거를 보며 투란이 소리 없이 말했다.
그러는 사이, 오우거의 살갗이 다시 붉은 광채를 머금었다.
그 턱 아래 거뭇하게 수염처럼 돋아 있던 가시가 턱 좌우로 조금 굵고 작은 뿔의 조각을 내밀고도 있었다. 주먹의 돌기, 거기서 솟은 뿔도 조금 더 굵고 커진 듯했다. 전체적으로 몸 곳곳에 자리 잡은 검은 뿔, 각질이 짙고 굵직하게 성장한 분위기였다. 다만 발목에 찬 족쇄는 조금 줄어들었고, 족쇄에서 흘러나온 듯한 사슬은 종아리 속으로 조금 더 깊이 파고들며 가늘어진 것처럼 보였다.
기분 탓인가, 아니면 미묘하게 분명히 변한 것인가?
투란이 조금 애매해서 갸웃하는 오우거의 상태를 드라고니아도 확실히 못 박듯이 외친다.
―망할! 풀려난 오우거인데 왜 복원, 복구 마법이 발동하는 건데!
‘응? 마법?’
―족쇄! 저 발목에 찬 것이 오우거를 회복시킨다고!
‘어, 상아탑의 마법사가 만들었으니까 상아탑의 마법이겠지? 뭐, 마법물품이니까 그런 거 아냐?’
투란이 드라고니아의 격분(激憤)을 느끼며 갸웃했다.
뭘 이리 격하게 화내고 있는가?
의아해하는 사이에 시뻘건 용암이 뭉개진 검은 바위를 움켜쥐듯이 휘감았고, 다시 마그마 로드의 형체가 오우거와 비슷한 눈높이를 지닌 인간의 모습…… 투란의 모습을 갖췄다. 아까와 다르게 얼굴 한쪽에는 금가면이 걸려 있었다. 금가면은 머리가 너무 커진 탓에 얼굴에 쓴다는 것이 외눈박이가 한쪽 눈을 가린 안대 꼴이 된 채였다.
우득, 와드득.
투란은 팔다리를 시험하듯 움직였다.
검은 살갗 사이로 붉은빛이 어른거리는 줄기가 파고들며 시커먼 재를 휘날렸고, 작은 불꽃이 쉬임 없이 터지면서 살갗을 달구는 듯했다. 장벽에서 멀어지는 걸음을 딛는 발아래에는 이미 용암이 그득하게 번져 있었고, 시커멓게 찍히는 발자국에 따라 다시 검게 물들며 단단해졌다.
어느 틈엔가 ‘링 오브 배틀’의 안은 마그마 로드의 검은 결정질, 그 사이를 붉게 빛나며 너울거리는 마그마의 난잡한 그물이 찢긴 채로 퍼져 있는 광경을 이루고 있었다. ‘링 오브 배틀’의 장벽이 아니었다면 용암의 호수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영역을 구축하며 숲의 한 귀퉁이를 갉아먹었을 마그마 로드의 본능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이 풍경 속에서 오우거는 자신과 맞먹는 체격의 검은 바위형상을 뭉개고 녹여 밀어붙여 망가뜨린 셈이었다. 그것이 다시 똑같은, 아까보다 조금 더 굵직한 팔다리에 살짝 더 큰 몸집으로 커진 광경은 분명히 오우거를 위압하려는 의도를 품은 채이고!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두어 걸음 내딛자 바로 냉정해진 듯이 말한다.
―투란, 저놈의 힘은 장벽을 뚫을 수 있어. 링 오브 배틀에서 탈출할 구멍을 낼 수 있다고! 이렇게 느긋하게 보고 관찰할 때가 아냐! 저놈이 다시 섬멸의 뇌격을 쓰기 전에…….
우드득, 투란의 어깨에서 뿔이 돋아났다.
시커멓고 굵은 소뿔이 두 어깨에서 한 가닥씩!
동시에 투란은 묻고 있었다.
‘그 뇌격이란 거, 불의 속성이 아니었지? 마그마 로드가 삼키지 못하고 달아올랐어. 불길이라면 아무리 뜨거워도 삼킬 수 있다고, 이 검은 수정 같은 살갗이 말이야. 그런데 달아올라서 녹아 흘렀잖아. 뇌격이라고 해도 불의 속성을 머금어야 하는데, 불이 아니었던 거잖아. 그렇지?’
크게 몇 걸음을 내디디면서 다시 오우거와 4, 5미터의 간격까지 좁히면서 묻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잠깐 망설이는 듯하다가 대답한다.
―그래, 그건 속성(屬性)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무(無)의 경계에 속한 마법이다. 그래서 대마법이고, 그래서 플레임 불이 일으킨 뇌전 속에서 뿜어져 나온 극열극염(極熱極炎)과 다르지.
파짓, 파지직!
오우거 온몸의 뿔이 거의 일제히 번개의 파편을 흘렸다.
다시 한번, 아까보다 더 강하고 사납게 날벼락을 일으킬 분위기가 바람을 짓이기는 듯한 뇌전의 소음(騷音) 속에서 흘러넘쳤다.
이를 보며 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투란이 소리 없이 말한다.
‘다르기는 한데, 위력에는 별 차이가 없는 거잖아?’
―응? 그건, 그렇지. 하지만 속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속성을 무시하고 돌파할 수 있어. 그러니까 플레임 불의 파이로키네틱으로는 제어가 안 된다고!
대답을 하다가 드라고니아는 퍼뜩 투란의 어깨에 돋은 뿔이 뭔가 알아차린 듯이 으르렁거렸다.
아무래도 투란이 불 뿜는 소의 뿔을 끌어낸 까닭이 어쭙잖게 저 오우거의 뇌격을 제어해보자는 것처럼 보인 탓이었다.
‘불도 아닌데 뭘 제어해, 제어하긴!’
투란은 이렇게 당당하게 대답하며 오우거를 향해 굵직한 손가락을 내밀며 까닥거리고 있잖은가!
―뭐? 너 대체 뭘 하려고…….
드라고니아가 약간 당황스러워하며 물으려 할 때, 오우거가 번개를 폭발시키듯이 뿜어냈다.
파앗, 번쩍!
섬광(閃光)의 기둥처럼 날벼락이 오우거의 온몸에서 피어올랐고, 거대한 뱀처럼 투란을 삼키겠다는 듯이 요동(搖動)치며 돌격해왔다.
휘이잉, 화아악!
거센 불길이 바람을 움직이며 ‘링 오브 배틀’의 두 귀퉁이에 뭉쳤다.
투란의 몸, 마그마 로드의 형체 위로도 불길이 사납게 덧씌워졌다.
세 곳으로 뭉친 불길이 그 힘을 집중시키자, 그 속에서도 뇌전(雷電)이 방출되기 시작하는데…… 오우거의 날벼락에 비하면 미약한 잔가지에 불과해 보였다. 그런데 이 미약하고 묘한 벼락, 번개의 잔가지가 굵고 거대한 날벼락과 만나니…… 투란을 짓누르고 관통하려던 날벼락이 갈라지고 틀어지면서 저 귀퉁이 두 곳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날벼락 속에 내포된 파동 또한 그 외형을 따르듯이 갈라지며 저편으로 흘러갔다.
―유도(誘導)?
드라고니아가 흠칫했다.
플레임 불은 뇌전을 직접 다루지 않았다.
극한의 불길을 이용해서 방전을 일으키고, 이를 유도했었다.
자연을 자극해서 일으킨 번개, 벼락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끄는 것이 바로 플레임 불이 몬스터이면서도 익히고 단련한 기술(技術)이었다.
그 때문에 몬스터의 정수를 삼켰다 해도 투란이 쓸 수 없는 재주였는데…….
‘야, 파이로랑 에어로로 엄청나게 연습했잖아! 파이로 화력 높이고, 에어로를 비비고 갈아서 번개를 끌어내고! 두 가지 정령수를 연계하면 번개 정도는 목표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고 한 건 너야!’
―그걸 몬스터의 능력에 응용했다고? 너한테 그런 재주가 있었……?
‘우씨, 그만 닥쳐!’
놀라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러면서도 놀리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투에 투란이 발끈했다. 그 기분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듯, 마그마 로드가 불끈했다.
검고 가늘며 긴 바늘…… 비록 웬만한 창보다 더 길고 날카롭지만 바늘처럼 보이기만 하는 돌기(突起) 수십 가닥이 전광의 색채에 물든 오우거를 꿰뚫었다. 몇 쌈의 바늘 더미가 오우거를 실뭉치처럼 꿴 광경이 소리 없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관통한 바늘이 스륵거리며 휘어져 오우거를 휘감았다.
날벼락이 다시 한번 거세게 오우거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검은 바늘 한 개도 녹거나 흔들거리지 않았다. 대신 오우거의 살갗을 조이고 짓이기며 파고들 뿐이었다.
―이건? 아니, 이런 재주까지!
아까보다 더 놀란 듯, 그래서 더 놀리는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외쳤다.
‘아, 진짜! 닥치라고! 집중해야 하니까, 진짜로 닥쳐!’
투란이 조금 더 뾰로통하니 으르렁거렸다.
―훌륭해서 놀랐다. 파이로키네틱으로 불꽃을 제어해서 마그마 로드에게 집중시키고 그 속성을 강화해서 섬멸의 뇌격에 대항하다니, 방전 유도가 아니라 해도 불을 삼키는 마그마 로드의 성질을 이런 식으로 강화시킨 것만으로 충분히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야! 대단하다고!
투란의 기분을 알아차린 듯, 자신의 의도가 순수한 감탄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드라고니아였다.
‘응? 음…… 뭐, 그동안 스피릿 아티팩트 갖고 많이 연습했으니까.’
슬그머니 삐지지 않은 척하면서 투란은 오우거를 향해 다가갔다.
계속해서 방출되는 뇌전은 저편으로 모조리 이끌려 갔고, 오우거의 살갗은 다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쿵.
그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바닥을 새카맣게 물들이며 투란이 스윽 두 손을 뻗어 오우거의 머리를 붙들며 굴을 들이대고 소리 내어 말한다.
“잡았다, 요 쪼끄만 놈!”
오우거의 눈동자 없는 눈이 투란을 향했다.
일그러지는 그 표정은 마치 ‘누가 쪼끄매!’라고 따지는 듯했고, 그 격분으로 인해 다시 얼굴색이 퍼릇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