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3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28)
번쩍!
오우거의 이마에서 뿔이 섬광을 뿜어냈다.
그 얼굴이 뇌전의 광채에 물든 순간, 오우거의 머리통에서 날벼락이 치솟으려 했다. 가까이 들이댄 마그마 로드의 검은 형체, 머리는 이 날벼락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날벼락은 마그마 로드의 형체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커다란 머리통, 한쪽 눈을 가릴 정도의 크기 탓에 안대처럼 매달린 금가면이 바르르 떨면서 오우거의 얼굴로 들러붙은 때문이었다. 주머니 뒤집듯이 가면이 그 굴곡을 뒤집으며 오우거의 코부터 눈가까지 들러붙으며 날벼락을 모조리 삼켜 버렸다. 그 전열(電熱) 때문이란 듯, 금가면은 부글거리는 거품과 함께 얇고 넓게 퍼지며 오우거의 얼굴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오우거를 위해 만들어진 듯한 금가면의 변형(變形)이었다.
‘역시 홀시딘도 대강은 짐작했었네.’
투란은 오우거의 뇌전을 삼키면서 찐득하니 달라붙어 느릿하게 거품을 통통 터뜨리는 금가면을 보며 생각했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생각을 바로 부정했다.
―아닐걸. 이건 섬멸의 뇌격을 감당 못 해. 지금 유도해서 분산시키는 덕분에 어느 정도 통하는 거다. 하지만 오우거의 자잘한 뇌격은 확실히 봉쇄하는 모양이네. 음……? 이거 아무래도 이 녀석의 능력기반을 봉쇄하려는 목적인가 보다. 뇌전 방출이 멈추고 있어.
‘좋아, 지금이다!’
상황을 분석하는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이 바로 결정했다.
오우거의 뇌전은 이제 희미한 광채와 함께 스러지고 있었고, 검은 각질과 붉은 살갗도 팽팽함을 잃고 늘어진 듯했다.
콰드득, 마그마 로드의 형체 한복판이 으스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돌출되었다.
3미터의 체격 속에서 투란이 본래의 모습과 크기로 툭 튀어나온 광경이었다.
부유(浮遊)하는 투란의 가슴에는 황금매의 부리가 돌출되어 있었고, 두 손바닥에는 황금의 발톱이 일렁이며 자리 잡은 채였다. 부리가 토하는 금빛 숨결과 함께 황금의 발톱이 오우거의 가슴에 박히려 했다.
움찔, 퐁퐁.
오우거의 온몸이 경직(硬直)하는 순간에 금가면에서 거품이 자잘하고 세게 튀었다.
다음 순간 오우거의 온몸은 잘게, 가늘지만 길게 경련(痙攣)을 일으켰다.
황금매의 발톱이 오우거의 붉은 살갗에서 일어나는 반발력에 미묘하게 밀려났다.
하지만 금빛 숨결이 투란의 온몸을 맴돌아 다시 팔로 옮겨지고 발톱으로 밀려가는 순간, 황금빛 발톱이 예리하게 붉은 살갗을 뚫고 베며 파고들었다.
몬스터 에센스를 느끼고 움켜쥐면서 투란이 갸웃했다.
‘마력 반발이잖아, 이거?’
―그래, 하지만 의미 없지. 족쇄랑 사슬의 단순한 마력으로는 황금매의 고유마력…… 몬스터 로드의 마력에 대항할 수 없지!
드라고니아의 단언(斷言)처럼, 투란은 곧바로 오우거의 정수를 거침없이 움켜쥐고 끌어모으는 황금매의 힘을 느꼈고 휘둘렀다. 하지만 투란의 마음 한구석으로는 여전히 갸웃하는 의문이 맴돌았다.
‘풀려난 오우거가…… 마법사에게 풀려난 오우거가 계속해서 마법사가 붙여놓은 마법에 영향을 받는 거야? 이상하잖아, 그치? 이상한 거지?’
―무쇠뿔 오우거가 정령의 가호를 받던 것만큼이나 이상한 상태이기는 하다만, 상아탑의 마법사가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넌?’
―알 게 뭐냐! 정보 부족이야!
드라고니아가 성난 듯이 으르렁거렸다.
아무래도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짜증 난 듯했다.
투란은 툴툴거리는 입술 모양을 만들면서, 오우거의 정수에 집중했다.
검은 뿔과 각질이 투명하게 변해 갔고, 붉은 살갗이 흐릿해졌다.
파아아…….
투명한 잔해가 흩어졌다.
팅, 금가면이 단단하게 굳어진 듯이 검은 바늘 쌈이 엉겨 만든 그물 위로 떨어졌다.
투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족쇄 둘이 떨어졌다. 사슬은 온데간데없고, 고리 모양은 겨우 절반만 남은 족쇄였다. 마그마 속에 빠졌다면 바로 녹았을 듯했지만 검게 물든 바닥은 가만히 족쇄를 바칠 뿐이었다.
여전히 부유하는 채로 투란이 두 손을 가슴으로 모았고, 금빛 숨결과 함께 황금매의 부리가 반짝이며 집결되었지만 뭉클거리는 황금조각을 삼켰다.
후욱, 숨을 들이쉬면서 서서히 바닥에 발이 닿아가려는 듯이 부유하며 투란은 문장의 풍경에 마음을 집중했다.
붉은 오우거, 뇌격을 휘두르는 녀석이 과연 황금매의 풍경 속에서 어찌 나타나려는가…….
오우거는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헐, 이놈 움직이네?’
투란은 어이없어하며 놀랐다.
금빛의 광채가 붉은 살갗 위로, 검은 뿔과 각질 위로 무늬처럼 번져간다는 특징을 새로 갖춘 채로 오우거는 황금매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움직인다는 듯, 이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고민한다는 듯!
반 토막 난 족쇄가 뒤꿈치에 박힌 채로 종아리에서 늘어진 사슬을 물고 있는 모양이 한층 더 오우거의 걸음을 특이하게 꾸며줬다.
티잉, 찰캉.
투란은 잠시 오우거를 지켜봐야 했다.
왠지 뭐라 말을 걸거나 하면 ‘왜요?’라고 대답이라도 할 듯한 이 괴상한 분위기…… 황금상(黃金像)이 된 다른 몬스터랑 완전히 어긋난 모습의 오우거가 꾸미고 있었으니까.
‘이놈, 세란드랑 같은 상태인가?’
문득 투란은 제멋대로 자기 영역을 구축한 채로 틀어박힌 세란드랑 오우거를 비교해봤다. 저 오우거가 그런 경우가 된다면 이 풍경 한곳에 황금의 굴을 파고 들어가 박힐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 제발 좀!’
그런 상황은 왠지 질색하고 싫은 투란이었다.
이런 투란의 기분을 느꼈을까, 오우거는 어슬렁거리면서 사슬 흔들리는 소리를 내는 걸음으로 풍경의 중심이자 이 풍경의 핵을 이루는 옥좌(玉座)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누가 나를 불렀냐고 따져보겠다는 듯한데…….
사아아, 휘이.
느닷없이 바람과 휘파람소리를 내며 옥좌를 향해 강렬한 시선을 던지는 것이 있었다. 오우거에만 신경을 쓰던 투란이 흠칫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호소하는 것…….
“응? 왜?”
투란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풍경을 울리면서 물을 수밖에 없게 하는 그것은 하피, 여왕 하피였다.
로드 오브 몬스터, 적극적으로 투란에게 뛰어들었던 원래 여왕의 후계자이며 이 풍경 속에서도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워 이런저런 녀석들을 거느리는 모습을 꾸며 새로운 여왕의 품격을 갖춘 하피가 투란을 보며 허락을 구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 해봐.”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투란은 이 풍경 속에서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녀석끼리 뭘 하는가 보고 싶어 말해버렸다.
순간, 몸에 두른 황금빛 안개를 떨쳐내며 로드 오브 몬스터가 몸을 일으켰다.
붉은 무늬가 맴도는 날개가 팔을 대신해서 펼쳐졌고, 붉은 왕관을 쓴 듯한 머리가 도도하게 움직였다. 봉긋한 가슴이 곱게 흔들렸고, 붉은 뿌리에서 검게 흘러나온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황금매에 깃든 여왕 하피의 눈가에 화장처럼 맺힌 붉은 무늬가 금빛을 품은 듯한 순간, 로드 오브 몬스터의 눈길이 어슬렁거리는 오우거에게 꽂혔다.
날벼락을 뿜어내던 오우거가 날벼락에 맞은 것처럼 멈췄다.
‘어?’
투란은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우거의 구조, 그 내부의 구성…… 몬스터 에센스를 관통하는 직관(直觀).
그 직관을 통해 몬스터의 정수 깊이 파고들어 새로운 지배(支配)를 받아들이게 하는 ‘로드 오브 몬스터’의 권능(權能)!
그 과정이 투란에게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
오우거의 기억, 기록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는 기억과 함께!
‘어라?’
투란은 볼 수 있었다.
이 오우거, ‘레드’가 처음 풀려났을 때부터 기억―기록―은 자동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 * *
중상(重傷)을 입은 마법사가 정교한 조각과 무늬가 새겨진 검은 막대를 들이대면서 말하고 있었다.
“레드, 미안하구나. 이제 작별해야 할 모양이다.”
막대, 마법사의 완드가 ‘레드’의 몸에 꽂혀들면서 말이 이어진다.
“너를 알드바인의 수호자로 남기고 싶었는데…… 아니, 수호자가 되었다 해도 언젠가 닥칠 일인가…… 미안하구나, 레드.”
검은 막대가 ‘레드’의 배꼽 위로 완전히 박히며 자취를 감췄다.
“그래도 수호자가 되면…… 알드바인이 상아탑만 갖췄다면 이러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레드, 그 꿈을 너와 함께 이루고 싶었다.”
마법사의 손이 오우거의 가슴을 더듬으며 올라왔다.
그리 크지 않은 오우거, 사람과 비슷한 체격인 오우거의 짙고 붉은 살갗의 민머리 위에 마법사의 손이 얹어졌다.
“미안하다…… 정말…… 알드바인의 미래를 위해…… 너를 해방한다. 해방과 함께 마지막으로 명령한다. 몬스터를 죽여라, 저 고블린 호드를 모조리 죽여라. 몬스터를 죽여라, 저 사티로스의 대군(大軍)을 분쇄해라! 몬스터를 죽여라, 정명(正命)을 갖추지 못한 모든 몬스터를…… 죽이며 살아라. 가능한 한 오래 살아라. 이 춤추는 산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너의 존재를 알려라. 너는…… 나, 마도사 펠카윈의 최고 걸작이니까…… 나의 아이이니까…… 가라, 레드!”
망설임, 회한(悔恨)이 가득한 마법사의 말이 맺어졌다.
의도하지 않은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인가, 마법사는 더 이상 상처를 견디며 서 있지 못하고 쓰러졌다.
‘레드’는 그런 마법사를 부축할 수가 없었다.
힘든 짐을 대신 짊어지고, 때로는 나란히 서며 마법의 매개(媒介)가 되어 싸우고…… 그 모든 ‘기록’이 기억이 되어 ‘레드’에게 새롭게 새겨졌다.
그래서 ‘레드’는 기억했다.
중상을 입고 쓰러진 자신의 창조자, 마도사 펠카윈에게 동료들이 다가서는 광경…… 강렬한 마법에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여전히 그 무리의 빈 자리를 다시 채우며 몰려오는 고블린과 사티로스의 대군단…….
‘레드’는 할 일을 기억했고, 명령을 수행했다.
온몸으로 마법의 뇌격을 뿜어내며, 풀려난 오우거답게 폭주하는 마력으로 그 체격을 부풀리며 몬스터의 대군단을 향해 돌격했다.
춤추는 산맥의 가장 깊은 곳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그렇게 붉은 오우거는 해방(解放)되었다.
* * *
‘진짜 이름 대충 짓는구만! 정말로 붉다고 레드라고 불렀잖아!’
투란은 툴툴거렸다.
하지만 그 툴툴거림은 별로 진지하지 못했다.
붉은 오우거, 그래서 ‘레드’라 불렸던 오우거의 그다음 기록이 투란의 마음에 스며들며 이상하게 슬프고 아련한 분위기를 새겨 넣어준 탓이었다.
‘레드’는 분명히 해방되었지만, 몬스터가 되었지만 마법사의 마지막 명령을 잊지 않았고 어기지도 않았다. 고블린, 사티로스의 대군단…… 인간처럼 조직적이라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무리를 짓고 서열이 생겨 뭉쳐 다니는 녀석들을 짓이겼고 남부의 늪지대를 돌파하며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으로 쳐들어갔다.
체격이 3미터인 오우거라도 작게 여기는 거대한 마물, 괴물들의 틈새를 헤매며 ‘레드’는 파괴(破壞)하고 살육(殺戮)하면서도 몬스터의 맹목적인 본능보다는 마법사의 말에 집착하며 복종했다.
가능한 한 오래 살아남기를 새로운 본능으로 각인하며, ‘레드’는 떠돌았다.
그리고 다시 늪지대로 돌아왔다.
죽이려 쫓던 몬스터를 따르다가 돌아오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풍경, 발목에 채워진 족쇄와 사슬이 반응하는 마법을 느끼게 되는 곳까지 돌아온 ‘레드’는 이전과 다른 방황을 시작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헤맬 때와 다르게, ‘레드’는 자신이 떠나온 곳을 느꼈고 돌아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결정하지 못한 채로 맴돌았다. 가까이 가야 하는 것인지, 명령대로 멀어져야 하는 것인지 ‘레드’는 알 수 없었기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다행이라면 때려죽일 몬스터가 널려 있었으니 다시 깊은 곳을 향해 몬스터를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맴돌다가 갑작스럽게 몰려나가는 몬스터 떼를 느꼈고, ‘레드’는 그 방향이 자신이 망설이던 귀향(歸鄕)과 일치하는 것을 본능으로 깨닫고 쫓았다. 명령에 복종하면서 망설임을 슬쩍 밀어낼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투란을 만났다.
‘음, 이 녀석 참…….’
어느 틈엔가 하피의 날개 그늘 아래에 우두커니 선 오우거를 보며 투란은 살짝 심란해졌다.
이 오우거, ‘레드’는 해방된 몬스터인가 아닌가?
황금매는 그 존재가 완전히 일그러졌다고 날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