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3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29)
사륵.
가만히 움직인 하피의 날개, 검은 바탕의 붉은 무늬 날개가 움직이는 광경은 부드러운 바람처럼 보였다. 그 아래에 선 오우거를 이제는 완전히 휘하에 거둔 듯한 하피의 도도함이 물씬 풍겨나오는 듯도 했다.
하지만 오우거, 알드바인의 초대 마스터 펠카윈과 함께 했던 ‘레드’는 우두커니 선 채로, 그 고요한 태도 속에서 의문을 품고 상황을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하피, 로드 오브 몬스터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만 과거의 기록―기억―을 통해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한…….
투란에게 그 의문은 아주 선명한 물음처럼 느껴졌다.
‘또 해방?’
오우거는 언젠가 다시 풀려나느냐고, 또다시 홀로 어딘가로 떠나야 하느냐고…… 이 지배에서 또다시 풀려나서 홀로 방랑하는 때가 오는가를 알고 싶어 했다.
콱!
하피의 발이 오우거의 머리를 짓밟듯이 움켜쥐었다.
하피의 얼굴이 새가 모이를 쪼기 위해 움직이듯, 짓밟은 오우거의 얼굴 앞으로 움직였다.
섬뜩하게 하피의 눈동자가 빛날 때, 투란은 거기 담긴 의지를 알아차렸다.
사람의 말로 표현하자면…….
―뒈질래? 감히, 어딜 튀려고!
―너는 영원히 여기 있는다!
―결코 어디 혼자 가는 일 따위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한다!
따위의 여러 가지 말이 한순간의 눈빛 속에서 뿜어져 나간 듯했다.
과격한 하피의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드러난 듯했다.
투란으로서는 조금 민망하고 멋쩍은 상황이었다.
‘아니, 내가 몬스터 로드니까…… 그야 당연하기는 한데…… 아, 이게 뭐야! 왜 문장 속 풍경이 이 모양인데! 내가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일부라고! 너네 몽땅!’
이 생각에 대응하듯, 몬스터 세란드가 가볍게 그르렁거리는 듯했고 마그마 로드가 퐁퐁 용암의 거품을 터뜨리는 듯했다. 파이로칸은 치익거리는 금빛의 괴상한 콧김을 뿜어대는 듯도 하고…… 투란에게는 황금상의 몬스터 형상이 풍경 곳곳에서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는 듯했다. 마치 오래된 순서대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
그리고 그 끝을 맺겠다는 듯, 오우거 ‘레드’가 옥좌를 바라보면서 가만히 앉았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댈 듯 말 듯 한 자세로, 한쪽 무릎을 꼿꼿이 세운 채로 경외(敬畏)를 표현하면서도, 살짝 웃는다!
투란은 오우거의 붉은 얼굴 속에서 드러난 이가 온통 뾰족하면서도 새하얀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 * *
―투란, 뭐가 잘못된 거냐?
“응?”
귓가를 쟁쟁거리고 울린 소리에 투란이 눈가를 찌푸리면서 소리 냈다.
곧 뜨거운 열풍(熱風)이 몸을 휘감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아직 ‘링 오브 배틀’은 유지된 채였다.
덕분에 쇠를 녹일 열풍도 느릿하니 유지되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온몸에 불이 붙어 홀랑 타버릴 상황이었다.
황금매의 방호마법이 아니었다면 진짜로 몸에 불이 붙었을 터였다.
게다가 어느새 발끝은 마그마의 열기 속에 살짝 닿아 있었는데, 일렁거리는 주변의 용암상태를 보니…… 잠깐 독립시켜놨던 마그마 로드가 으르렁거리듯이 투란을 덮쳐올 낌새를 과시하는 중이다!
투란은 두 손으로 가슴을 문지르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열풍을 들이쉬었다.
황금매의 문장이 사라졌고 투란의 온몸에 검붉은 반점이 피어났다.
반점은 곧 시커먼 살갗이 되었고, 검은 재를 휘날리는 붉은 핏줄이 도드라졌다.
‘링 오브 배틀’을 맴도는 마그마 로드가 다시 투란과 그 형상을 섞으며 귀환하기 시작했다.
―잘 안 된 거냐? 없앴어?
드라고니아가 다시 묻고 있었다.
‘어? 없애? 뭘…… 야, 기껏 삼킨 오우거를 왜 없애!’
투란은 멀뚱히 대답하다가 물음의 의미를 깨닫고 툴툴거렸다.
황금매의 풍경 속을 바로 알 수 없으니 지금 물은 것이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다시 ‘천칭’의 문장을 두르고 난 다음에야 그 ‘마음’을 통해 알 수 있을 테니, 그보다 먼저 답을 구하고자 묻는 것인데 어째 망했냐고 묻는 말투가 아닌가!
때문에 투란이 툴툴거린 것이다.
―네 표정이 굉장히 심란해 보였으니까. 뭔가 꼬여서 그냥 없애버린 것이 아닌가 의아했다.
드라고니아가 불쑥 하는 말이 조금 묘했다.
‘심란?’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갸웃했다.
가득했던 열풍은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 열기를 삼키면서 잦아들었다.
잠시 후에는 ‘링 오브 배틀’을 해제해도 될 듯싶었다.
해제를 한 후에 오우거가 남긴 반 토막 족쇄 둘이랑 금가면을 챙겨가면 그만이었다.
조금 격하게 툭탁거리기는 했지만 투란에게는 상처 따위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설혹 어디 긁히거나 부러졌다 해도 황금매의 마법이 벌써 치료했겠지만…….
‘내가 심란해 보였어?’
모든 것이 순조로웠는데 드라고니아는 무슨 말을 하는가?
묻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는 말투로 답한다.
―드레이크를 없앴을 때처럼,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처럼 잔뜩 거슬리는 일이 있는 것처럼 표정이…….
‘그랬냐.’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을 끊었다.
드라고니아가 무슨 말을 하는가, 이제야 대강 납득이 된 것이다.
‘별일 아냐. 그냥 이 오우거가 지난 일을 좀 자세히 기억하더라고.’
―기억?
‘음…… 뭐랄까 일부러 잊지 않으려고 되새겨놓았다고 해야 하나? 암튼 굉장히 또렷해서…….’
―기록이군. 마법사가 제작한 오우거니까 그런 기능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겠지. 그래서 뭘 봤는데?
두루뭉술한 투란의 이야기를 끊으면서 드라고니아가 바로 물었다.
한숨과 함께 투란은 일단 ‘링 오브 배틀’을 해제하면서, 사대 정령수를 거둬들이면서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해방될 때…… 중상을 입은 마법사가 아주 아까워하면서 풀어놨다고 해야 하나? 보내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보내는 걸 봤지. 레드가…… 이 오우거가 그래서 굉장히 헷갈리는 것 같았어.’
―마법사 중에는 자신이 만든 오우거를 귀한 소모품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 하지만 이 오우거는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닐 텐데? 투란, 오우거를 통해 마법사의 애정을 느꼈나?
‘얀마, 뭔 애정이야!’
두드러기 돋고 소름 끼친다는 듯이 두 팔죽지를 손으로 감싸 안아 문지르면서 투란이 발끈했다. 하지만 곧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 속에서 기묘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깐, 그게 뭔 말이야?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고?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고 애정을 품었다고?’
―족쇄를 봐라.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거기 담긴 마법이 뭔가 느껴봐. 너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이니까.
‘마법?’
투란은 가만히 반 토막 족쇄 둘, 오우거의 두 발목에 채워져 있었던…… 사라진 절반이 아예 몬스터 에센스에 섞여버린 두 토막의 족쇄를 손에 쥐고 살폈다.
‘복원, 재생…… 방어?’
물품을 복원시키는 마법, 손실된 몸을 재생시키는 마법과 함께 처음부터 그런 손상이 일어나지 않게 막기 위한 실드 마법이 있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투란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기초적인 마법이라 해석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 기초가 아주 튼튼해서 똑같은 마법을 펼치기에는 굉장히 난감했다.
‘왜 이리 복잡해!’
그 난해함이 조금 짜증 날 지경이라 투란은 울컥해서 물어야 했다.
드라고니아가 담담하고 차분하게 말한다.
―마법이 방해받지 않도록 구성해놓은 거니까. 이 정도면 산맥 깊은 곳에서도 거의 장애 없이 오우거가 활동할 수 있는 수준이다. 처음 오우거를 제작할 때부터 절대로 놔줄 생각이 없이 만들었다고 해야겠지. 그럼에도 풀어놔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급하기는 했겠지만…… 아무튼 이건 마법사가 후대(後代)에 물려줄 작정을 하고 정성을 기울인 걸작(傑作)을 시도했다는 증거라고. 그런 정성이 담긴 아티팩트, 수준이 떨어지는 아이템이라면…… 마법사라도 애정을 품을 수밖에 없지. 투란, 정말로 마법사가 오우거를 놔줄 때 그저 아까운 물건 버리는 태도였냐?
‘몰라! 따지지 마!’
투란은 족쇄와 금가면을 담을 주머니를 만들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드라고니아도 더 묻지 않았다.
그게 더 속을 긁는 듯해서 낯을 구긴 채로 투란이 걷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드라고니아에게 새로운 물음을 끌어냈다.
―어딜 가는 거냐? 방향을 잘못 잡았잖아?
투란은 알드바인으로 귀환하는 쪽이 아니라 오우거가 있던 쪽을 향하고 있었다.
입술을 삐죽이는 채로 투란이 소리 없이 대답한다.
‘챙길 거는 챙겨 가야지! 오우거한테 잡혀 죽은 것들!’
―어?
‘카멜 리저드였잖아. 알록달록해지면서 아예 안 보이게도 되는 것들! 그게 얼마나 편하겠냐고! 시체줍기니까, 편안하게 챙길 기회라고! 성벽에서 잡은 것들은 내가 챙길 수가 없었으니까, 여기서라도 얼른 챙겨야지! 에헴!’
―음…… 그러냐. 그런데…….
‘그런데? 왜?’
훌쩍 나무 위로 뛰어올라 저편을 흘깃하며 투란이 미묘한 드라고니아의 말투를 의아해했다. 하지만 투란은 그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허억! 저, 저것들이!”
오우거가 뛰어오며 걷어차고 뽑아낸 탓에 뚫린 숲길, 그 너머로 오우거가 목을 졸라 분질러 죽인 몬스터를 입에 물고 으적거리는 녀석들이 훤히 보였으니!
―링 오브 배틀이 유지되는 사이에 몰려온 녀석들인데 말이지.
뒤늦게 드라고니아가 웅얼거리듯,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을 더했다.
“야아! 이 흉악한 것들아아아!”
투란은 박차고 나뭇가지를 밟으며 내달렸다.
날다람쥐가 나무를 건너듯, 질주하는 투란의 외침은 잘 전해진 모양이었다.
으적거리면서 오우거에게 당한 사체를 들쑤시고 먹어치우던 녀석들이 스윽 몸을 일으켰다.
그 외형은 분명히 랩티드와 닮았지만, 랩티드와는 다른 품종이었다.
검은 줄무늬가 갈색 바탕의 몸을 빼곡하게 휘감았고 앞발이라기보다는 세 손가락 달린 팔에 가까운 지체(肢體)가 목덜미 언저리에 붙어 있었다. 어깨가 몸통 안에 숨겨진 듯한 모양이었고, 그 지체를 오므리면 얼룩 줄무늬 랩티드인데 덩치가 더 큰 놈이라고 착각하기 딱 좋았다.
그런 녀석들이 대량 십여 마리가량 뭉쳐서 오우거가 죽여놓은 카멜 리저드 떼의 사체를 먹어치우다가 으르렁거리며 날듯이 다가오는 투란을 봤고…….
으적, 꿀꺽.
쿵, 쾅, 쿵, 쾅.
뜯어서 씹어 먹던 것을 날름 삼키더니 남은 것을 들고 달아나잖는가!
팔처럼 보이던 것이 사실은 진짜 손 달린 팔이었다고 자랑하듯!
“으아, 이 못된 놈들이! 저건 또 뭐야아아!”
투란은 그 광경을 보면서 더 억울한 외침을 터뜨렸다.
랩티드처럼 가볍고 빠른 걸음이랑은 엄청나게 다른 육중한 뜀박질이었는데, 한번 발 디딜 때마다 거의 십여 미터를 이동하고 있었다. 덕분에 육중한 모양새랑 다르게 이동하는 속도만큼은 랩티드에 가깝다!
터억, 투란이 내려서서 혹시나 하고 둘러보니 역시나 남은 조각이 전혀 없었다.
―야아, 눈치 빠르네? 과연 칼카드, 자신보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세 보이면 가차 없이 도망치는군!
드라고니아는 시침 뚝 뗀 말투로 달아나는 몬스터를 칭찬했다.
“카, 칼카드?”
―아, 몰랐냐? 히엔나처럼 죽은 고기를 탐식하는 녀석들이지. 겁이 많아서 상대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일단 도망치고 돌아보지 않아. 하지만 약간이라도 틈이 보이면 가차 없이 뜯어 먹는 놈들이야. 몬스터다운 구석이라고는 저 뜀박질뿐이다. 뭐, 기본적으로 저 덩치니까 작은 마수 정도는 넉넉히 상대하기도 하고…….
“미리 신경 써서 한 마리 챙겨놔 줄 수 있었잖아!”
투란은 결국 드라고니아에게 투정 부렸다.
―그런 여유를 부릴 상황이었냐? 오우거가 냅다 나무를 뽑아 들고 달려들었잖아. 너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잖아? 그보다 이제 얼른 돌아가서 성벽에 합류해야지? 틈내서 나온 거라고, 너.
드라고니아는 단칼에 투정을 잘라버리며 재촉했다.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돌아섰다.
그러다 문득 갸웃하며 투란이 중얼거리는데…….
‘내가 세 보여? 지금은 거의 맨몸이잖아?’
―오우거랑 맞붙은 광경을 다 보고 있었거든.
드라고니아가 간단히, 이미 칼카드 무리에 대해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것을 자랑하듯 설명했다.
그 바람에 투란은 조금 더 짜증 난 기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