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3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31)
Chapter 127. 그루터기 쉼터에서
길드 안은 복잡하게 와글거리고 있었다.
그나마도 이것이 많이 정리된 것이라 했다.
방어전으로 공역을 마친 이들, 공역에서 돌아와 참가한 이들이 모두 엉긴 탓이었다. 제대로 공역 완료를 기록해둬야 앞으로 몇 년이 홀가분하다고 말이다.
“몇 년?”
그 말에 투란은 갸웃해야 했다.
테란이 피식 웃었고 베즐이 한숨을 쉬면서 대답을 한다.
“방어전 참가는 예정에 없던 공역 수행이니까, 적어도 두 번 정도의 공역을 치른 것으로 해주거든. 대강 삼사 년은 공역 없이 사냥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린 먼저 받은 순찰, 그다음에 방어전 참가까지…… 한 오륙 년? 그 정도는 잡고 싶은 사냥감에 몰두해도 된다는 거지. 알았어? 좋아, 그러면…….”
“리더가 대신 보고 하는 거 맞죠?”
투란이 조금 이해가 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쑥 물었다.
순간 베즐이 흠칫했고, 테란이 눈을 번뜩했다.
동시에 베즐 팀 멤버들이 다 함께 고개를 팍팍 끄덕였고 두 명의 카엘이 합창하듯 말한다.
“투란도 아는 일이잖아!”
“그럼! 리더가 보고를 마쳐야지!”
테란이 입술을 부들거리는 베즐의 어깨를 한 손으로 팍 짚으면서 보탠다.
“팀이 참가한 파티 리더잖아. 이런 일은 당연히 리더의 의무 아니겠어? 다들 그렇게 알고 있잖아! 자, 그러니까…….”
“혼자서 저 난장판을 뚫을 리가 있냐! 팀 멤버라면 당연히 남아서 도와야지! 그렇잖아, 테란!”
베즐의 한 손도 냉큼 테란의 어깨에 올려졌다.
투란이 그 광경에 슬금슬금 한 발 두 발 물러섰고, 베즐팀 멤버 나머지도 모두 살그머니 뒷걸음질 치는 시늉을 했다. 다만 한 사람, 가몬티가 키득거리면서 베즐과 테란의 곁으로 붙으며 말한다.
“다 남는 것보다는 셋 정도 남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도 알드바인 길드에 이름 좀 올려놓고 정리해야 하니까. 다른 멤버들은 숙소라든가 다른 일도 좀 보고 말이야. 자자, 효율적으로 하자고 효율적으로!”
“너에게서 리더의 자질이 보이는군!”
베즐이 가몬티를 향해 갑작스럽게 말했다.
테란이 바로 베즐의 뺨을 꼬집어 당기며 말한다.
“또 시작이냐! 얘가 널 보고 팀에 참가한 건데 바로 리더 자리를 넘기려고 들어! 어이, 가몬티! 너 우리 팀 리더 하고 싶니?”
“아니. 전혀 하고 싶지 않은데? 난 빌붙는 게 좋아!”
가몬티는 시원한 웃음과 함께 킬킬거리며 대답했다.
투란이 그 광경을 보며 다시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는 채로, 손을 흔들면서 말하는데…….
“그러면, 파티 리더 베즐 님에게 맡기고 가볼게요! 안녕! 다음에 좋은 일로 봐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냉큼 돌아서서 뛰고 있었다.
베즐 팀 멤버들이 그런 투란을 보면서 바로 몇 마디씩 하며 움직인다.
“어이쿠, 투란! 같이 가자!”
“어허, 같이 식사 한 끼는 하고 가야지!”
“어디 좋은 여관 아는 데 있냐?”
나머지 일은 전부 팀 리더에게, 그 곁에 머무는 테란과 가몬티에게 떠넘기고 내빼는 모습이었다.
한쪽에서 산돌프가 이 광경을 주욱 지켜보다가 베즐에게 말한다.
“좋은 팀이군. 담합을 꽤 잘하는데?”
“어디가 담합인데! 저건 회피 후 도주잖아요!”
베즐이 발끈했다.
산돌프는 베즐을, 테란과 가몬티의 한숨을 외면하면서 자기 곁에 올망졸망 주저앉은 이들에게 말한다.
“보라고, 다들 복잡한 창구 일에서 해방되는 거 좋아하잖아. 자네들은 맡기고 갈 생각 없어? 나 못 믿어?”
산돌프를 보면서 이 말을 듣는 이들, 산돌프와 함께 파티가 되었던 이들이 히죽 웃으면서 저마다 몇 마디씩 중얼거리며 대답한다.
“에이, 믿지!”
“그럼, 믿지!”
“예정된 배당은 확실히 해줄 거라고 믿지!”
“그치만 마법사니까…….”
“예상을 초과하는 배당이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아, 마법사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는 해야 하는데…….”
“저 난장판에 혼자 두기도 그렇고…….”
방긋방긋하며 꺼내는 말의 요점은 간단했다.
마법사를 혼자 놔두면 예상보다 많은 배당이 발생했을 때, 예상한 만큼만 파티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마법사 몫으로 뚝 잘라간다는 이야기…… 마법사에 대한 편견이라고 인정은 하지만 오늘은 그 편견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말이었다.
산돌프는 혀를 차면서 복잡한 길드 창구를 바라봤다.
상아탑의 마법사까지 일을 돕고는 있지만, 엄청 붐비고 복잡해진 저 상황이 풀리려면 역시 하루는 지나야 할 듯싶었다. 공방과 길드, 상아탑이 처리해야 할 남은 일까지 고려한다면 알드바인의 평온한 날이 돌아오려면 사나흘은 더 필요할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있으면 나야 편하지.”
산돌프는 앞에 늘어선 줄을 가늠하다가 털썩 주저앉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다음에 가만히 길드의 문턱 너머로 산돌프의 눈길이 옮겨졌다.
마치 이 복잡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듯, 내빼버린 녀석들이 어디로 가는가 궁금하다는 듯…….
투란은 그루터기를 보며 차림새를 가다듬었다.
은빛매, 금빛매의 괴상한 간판이 흔들거리면서 투란을 마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척척, 걸음을 디디며 투란은 일단 은빛매의 간판이 붙은 대장간 쪽으로 다가갔다.
그루터기 아래층 쪽인, 이제는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대장간 안에는 페란드가 없었다.
“얼레?”
갸웃하면서 투란은 계단을 향해 두어 걸음 옮겼다.
그러다가 가만히 발을 멈추면서 투란이 인상을 구겼다.
―왜?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 기다리고 있던 가족은 없고 이상한 놈들이 집을 차지하고는 칼부림을 해오더란 얘기가 있지! 엉겁결에 죽였다가 도망쳐야 했다는 불쌍한 헌터들!’
―야…….
‘쉿!’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했지만 투란은 금빛매의 간판 아래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고 올라갔다. 과연 오랜만에 돌아온 그루터기의 쉼터, 금빛매의 간판을 내건 시알라의 퍼브는 어떤 모습일 것인가?
투란이 슬쩍 문가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뭐 해? 얼른 들어와.”
시알라가 접시 가득 음식을 담은 채로 말하고 있었다.
마침 부엌에서 탁자 쪽으로 걸어가는 모양이었고, 마치 투란이 끼니때에 맞춰서 나타날 줄 알고 있었다는 태도였다. 크고 넓은 탁자에는 이미 여러 가지 음식이 가득했고, 세 형제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기도 했다.
투란은 냉큼 탁자 한편의 빈 의자로 가서 앉으며 물었다.
“나 올 줄 알았어? 어떻게?”
시알라가 접시를 내려놓으면서 한쪽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투란을 바라봤다. 설마 그런 걸 물을 줄 몰랐다는 듯!
제란드가 그런 누나를 대신하듯이 말한다.
“투란…… 메신저 맵, 안 봤어?”
“응? 어? 에…… 앗!”
투란이 갸웃하다가 어리둥절했고, 맹하다가 흠칫하는 소리를 냈다.
멜란드가 바로 그런 투란을 보며 흐뭇한 웃음과 함께 말한다.
“헤헷, 거봐! 투란도 나처럼 그게 제대로 되는 줄 모르고 있었을 거라니까! 그러니까 아무 연락도 없었던 거라고 했잖아. 바로 성벽 위에 있으면서도 말이야. 음헷, 내 말이 맞잖아!”
“이게 대체 언제부터……?”
투란이 급하게 물었다.
시알라가 투란 앞으로 한숨과 함께 음식 접시를 밀어주면서 답한다.
“몰라. 이번에 알드바인 성벽방어에도 조금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 나서 혹시나 하고 건드려봤더니 마법이 작용하고 있더라고. 알고 나서 바로 이용하기 시작했지. 멜란드는…… 쓸 수 있는데도 자꾸 잊고 쓰지 않아서 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 많았는데 저러고 변명이나 해대고!”
“변명이 아니지! 누가 있을 때는 쓰지 말라며! 안 쓰다 보니 까먹는 거잖아!”
멜란드가 투덜거렸다.
투란은 그런 사소한 일보다 눈과 귀에 들리는 메신저 마법에 감탄했다.
“우와! 이게 되다니!”
시각과 청각, 양쪽으로 작용하는 마법이 메신저 맵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고, 대화하는 상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마법…… ‘역병의 수해’에서 어떻게든 써먹어 보려 했지만 전혀 효과가 발휘되지 않은 마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걸어놓은 마법임에도 홀랑 잊은 채로 지내고 있었다. 그 뒤로는 적당히 메시지를 전하는 마법을 가끔 쓰기는 했지만 딱히 아쉽지 않아서 적당히 넘어가고 있었는데, 여행 갔다가 돌아오니 다들 쓰고 있다니!
만약 이것이 제대로 작용하는 줄 미리 알았다면…….
“투란, 멀리서는 못써. 알드바인 끝에서 끝까지도 안 돼. 대강 절반 정도까지는 위치를 알 수 있고 메시지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말이야.”
상상의 날개를 펼쳐 휙휙 날리려는 투란에게 제란드가 불쑥 말했다.
그야말로 상상의 날개를 뚝 분지르고 바닥에 내리꽂듯이!
‘안 돼?”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투란이 물었다.
그래도 희망의 날개를 한번 더 펼쳐보겠다는 듯한 그 표정에 제란드는 조금 난감해했고, 시알라가 자기 자리에 앉으면서 말한다.
“상아탑이 필요해. 강력하게 마력을 보태주고 중계해줄 매개체. 상아탑에서는 그런 식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쓰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당분간은 쓰지 않는 게 좋아. 마스터 홀시딘이 돌아오면 그 때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아달라고 해야지. 괜히 이런 마법 자랑하다가 귀찮은 거 싫잖아?”
“음, 그렇지.”
투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투란과 남매 중에서 시알라만이 대놓고 마법을 쓸 수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적당히 위장된 모습으로 살아갈 참이었다.
이래저래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이번 방어전 같은 일이 없다면 메신저 맵도 그냥 잊은 채로 지내고 있었을 것이고, 생각해보면 그러는 편이 살기 편안한 쪽일 터였다.
“그래서, 투란…… 여행은 어땠어?”
페란드가 조용히 묻고 있었다.
투란이 ‘어?’ 하고 둘러보니 네 남매 모두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치 긴 여행의 모험담이라도 들려달라는 듯!
“그러니까, 그건 어…… 음…… 아하하…….”
기운차게 입을 열다가 투란은 점차 목소리를 낮추면서 한숨을 쉬었고, 멋쩍은 웃음과 함께 축 늘어지는 시늉을 했다.
투란이 기억을 더듬어보니, 파티를 맺고 나가서 딱히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래저래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봤고, 하이랜드에 몰아닥친 난장판을 둘러봤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홀시딘에게 사냥 의뢰도 받았고!
그런데 이런 얘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투란은 그 범위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로드 오브 몬스터라든가 붉은 오우거의 얘기까지 해야 하는가?
아니면 적당히 넘어갈 것인가?
굳이 감출 이야기인가, 그냥 투덜거리면서 털어놔 버릴 이야기인가?
―로드 오브 몬스터는 빼고, 오우거 얘기 정도는 해도 괜찮겠지. 아니면 엘데인에서 오는 길에 있었던 얘기로 적당히 때우든가.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뭔가 모처럼 호의를 베푸는 듯했지만 투란은 로드 오브 몬스터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입막음하려는 의도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할까 말까 망설이던 중이었을 뿐인데…….
“먹자! 배고파! 얘기는 나중에 해!”
멜란드가 끙끙거리는 투란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제란드도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먹고 나중에 천천히…….”
페란드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먹기 시작했다.
시알라도 가만히 다른 음식이 담긴 접시를 두엇 더 투란 앞으로 옮겨줬다.
투란은 하하거리면서 천천히 접시 위에 구워진 고기, 부드럽게 부푼 밀포를 하나씩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놀랐다.
“어? 냠!”
시알라가 짧은 소리에 바로 묻는다.
“왜? 맛이 이상해?”
“맛있어! 와, 이제는 그냥 마법으로 요리를……?”
투란이 우물거리면서 묻는데, 시알라가 활짝 웃었다.
세 형제는 먹다가 한숨 쉬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듯한 셋의 표정…….
“왜?”
시알라가 빙긋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마법으로 한 거 아니야. 이제 내 손으로 이 정도는 하거든! 망한 요리 맛을 잊지 못해서 그러니?”
“잊을 리가 없잖아, 누나!”
멜란드가 항의했다.
제란드가 나직하니 말한다.
“며칠 전부터…… 먹을 만해졌어.”
투란은 대강의 상황을 짐작하면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누나와 세 형제의 팽팽한 긴장감을 외면하고 맛있는 것을 먹겠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