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3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32)
마법은 이상하고 엉뚱하다.
이 생각은 투란이 세란드가 넘겨줬던 천 가지 주문을 하나씩 실험해보면서 느낀 바였다. 황금매의 독특한 마력을 기반으로 대부분의 마법이 효과를 발휘했지만, 어떤 것은 될 듯하면서도 안 되고 안 될 듯하면서도 돼버리는…… 그야말로 제멋대로였으니까.
드라고니아는 그것이 나름대로 명확한 까닭이 있다고 했지만 투란에게는 잘 베이다 안 베이다 멋대로인 칼을 믿고 쓸 수는 없다고 딱 잘라서 으르렁거릴 일이었다. 그래서 ‘역병의 수해’를 넘으면서 효과가 있는 마법을 가려냈고, 스피릿 아티팩트를 이용하는 방법에 몰두했었다.
메신저 맵은 그 분류 속에서 효과 없는 쪽이었다.
메시지 마법은 되다 말다 하는 부류였고…….
때문에 정령수를 키웠고, 정령수를 이용해서 서로 신호하는 방법을 익혔다.
덕분에 ‘역병의 수해’를 나설 무렵에는 메시지든 메신저 맵이든 까맣게 잊을 지경이 된 것이고, 라비엔을 거치면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잊어버렸다. 루케인이 링 메신저를 보여줬지만 투란이나 네 남매는 우리도 할 수 있는 마법인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험한 곳이라고 쓸모있는 것만 챙기려고 했잖아. 여기 와서는 신분 위장이니 뭐니 해서 아예 쓸 생각도 하지 않았고! 마법이란 언제 쓸모 있을지 모르니까 탐구할 수 있을 때…….
드라고니아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투란에게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투란은 재빨리 목청을 울려 세 형제랑 툭탁거리는 시알라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이제는 요리책 마법 없이도 이만큼 요리 한다는 거네?”
시알라가 발끈해서 동생들을 보는 채로 투란의 물음에 답한다.
“그래! 열심히 노력했지! 그런데 뭐가 불만이야!”
투란은 움찔했다.
딱히 불만이 있어 묻지는 않았는데…… 그저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를 마음 한편으로 몰래 밀어넣고 못 들은 척하려고 물은 것인데! 이럴 때는 다음 말을 뭐라 해야 하는가?
불만이 있는 멜란드가 징징거리는 소리를 낸다.
“실패해서 맛없는 걸 우리가 먹었잖아! 노력은 누나보다 형들이랑 내가 더 했다고! 성벽에서 기어 올라오는 고블린이랑 도마뱀이랑 싸우면서 씹는 밀포가 더 맛있을 지경으로 엉망이었잖아, 누나가 노력한 연습…… 실험 요리!”
“먹었지…….”
“아까워서…….”
페란드와 제란드가 슬그머니 한마디씩 보태고 있었다.
풋, 투란은 어쩔 수 없이 새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어쩐지 조금 전에 떠난다고 문 열고 나갔다가 바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에 겪었던 모든 일이 단숨에 기억 너머로 가라앉으면서 오직 이 순간의 티격태격하는 풍경만이 중요해진 듯한 분위기가 투란을 웃게 한 것이다.
“웃지 말고, 얼른 먹어!”
시알라가 탁탁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투란부터 세 형제까지 다시 빙 둘러보면서 외쳤다. 중요한 것은 식사이니 재촉한다는 듯!
냉큼 고개를 끄덕이면서 투란은 제대로 먹기 시작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입에 넣고 씹으면서도 전혀 뭔지 모르는 시알라의 다채로운 요리를…… 투란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접시가 비워지고 쌓였다.
시알라와 제란드가 계속해서 오락가락하며 요리된 것을 전부 내오는 듯했고, 가끔은 멜란드와 페란드가 이를 대신했다. 투란은 그 오가는 모습을 흘깃거리면서 계속해서 입속에 우겨넣고 열심히 먹어치웠다.
그렇게 조금 긴 식사가 끝난 후…….
“페란드는 이제 뭘 만들 수 있어?”
먹다가 지쳐 의자에 축 늘어진 모습으로 투란이 물었다.
페란드도 등받이에 기댄 모습으로 가만히 허공을 보며 셈하는 듯이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대답한다.
“칼 종류는 대강 꾸밀 수 있다고 해야겠지? 은전 다섯 닢짜리, 철검 같은 거…… 이제 그럭저럭 공방의 초보만큼은 만들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공방 초보가 쇠 두드리는 허락받는 데 이삼 년은 걸린다는데 형은 자기 대장간이랑 화로가 있다고 마구 두들겨서 억지로 초보 된 거라서…… 조금 거칠어.”
멜란드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투란이 ‘거칠어?’라는 한마디와 함께 갸웃했다.
제란드가 느릿하니 설명한다.
“공방에서는 칼자루와 칼날을 맞물리기만 하면 되게 만드는데 형은 망치질로 못을 박거든. 아직 그렇게 세밀하고 정교한 모양을 못 만들어서 말이야. 그러다 보니 못이 삐죽거리기도 하고 나중에 보강한다고 묶은 끈이 거칠어서 날카로운 보풀이 휘날리기도 하지. 그러니까…….”
“거칠구나.”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드바인의 공방에서는 물품을 장식 조각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모양을 꾸미기 위한 것처럼 붙여놓은 장식도 사실은 물품을 고정시키고 균형을 잡는 쓰임새를 숨긴 채였다. 물품을 구성하는 부분을 제각각 만든 다음, 결합하는 것만으로 완성된다. 도검(刀劍)이든 노궁(弩弓)이든!
북쪽 성벽을 오가면서 투란이 둘러본 바로는 망치질로 못을 박아 부품을 고정시키는 짓은 실력 없는 녀석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대놓고 비웃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맞물리는 형태로 완성된 물품을 이루는 부품을 구상하는 것, 알드바인 공방에서는 그걸 기본이라 했다.
눈높이가 거기 맞춰져 있으면 망치로 못질하거나 나중에 끈으로 동여매서 겨우 모양을 갖춘 물건을 보면 ‘거칠다’ 하는 것을 손으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완성품만 구경한 이에게 처음부터 시키면 뭘 어찌해야 하는가 알 리가 없다. 그래서 알드바인 공방의 초보 장인들은 부지런히 심부름하면서 어떤 물품이 어떤 부품으로 나눠진 채 제작되는가를 열심히 구경하는 걸로 시작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그런 구경만 일이 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을 갖추게 되니까!
페란드가 픽 웃으면서 말한다.
“공방에서 만드는 거랑 똑같이 만들려고 하면 당장 만들 수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모양을 내 나름대로 하다 보니 마무리할 때 망치질하고 끈으로 묶게 된 것뿐이야. 조금 더 익숙해지면 망치질은 필요 없고 끈은 촉감을 더하려고 감는 정도가 될 거야.”
자신 있고 당당한 목소리였다.
제란드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방 날붙이가 어떻게 생겨먹었나야 하나 사다가 마법으로 해체하면 금방 알 수 있으니까.”
“음? 그런데 그렇게 안 만들고 다르게 만들려고?”
투란이 의아해서 페란드를 바라봤다.
페란드는 빙긋 웃었고, 멜란드가 투덜거리듯이 말한다.
“공방마다 같은 검이라도 다르게 만든다고, 형도 자기만의 검 제작법을 만들겠다고 그러는 거래. 완성된 검을 보면 어느 공방에서 만들었나 대강 티 난다나…….”
“그랬어!”
투란이 흠칫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칼날이라든가 칼자루의 균형, 전체 길이나 두께는 유심히 봤지만 검의 구성품이 어떻게 꾸며져 있는가는 전혀 관심 없어서 투란이 아예 모르는 이야기였다.
터텅, 탁자 위에 도자기 컵이 주르륵 놓였다.
시알라가 한 손으로 큰 통을, 한 손으로 컵 여럿을 붙잡고 와서 내려놓은 것이다.
“목마르지? 일단 마시고, 천천히 얘기하라고.”
투란은 우선 매끈한 도자기 컵을 보고 놀랐다.
손잡이를 주먹 쥔 것처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는 것은 일단 제치더라도, 그냥 토기(吐器)와 다른 도자기(陶瓷器)라고 강조하듯이 광택을 머금은 컵이라니! 마법으로 빚어낸 것이 아니라고 은근히 매만진 손자국이 무늬처럼 박힌 채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샤오 할배가 여러 차례 실패하면서 ‘바를 약이 없어서 그래!’라고 변명하며 어떻게든 성공시킨 경우랑 거의 맞먹는 모양이었다.
“이런 것도 할 줄 알게 된 거야?”
순수하게 투란이 감탄하는 사이에 시알라는 큰 통에 삐죽 튀어나온 꼭지를 기울여서 불그스름한 액체로 컵을 채웠다. 그리고 툭 하니 묻는데…….
“투란, 포도 먹어봤어?”
투란은 바로 낯을 찌푸리며 대답한다.
“그거 엄청 신맛 나는 거잖아? 음? 아냐?”
“포도 맛은 원래 달아. 어디서 맛본 포도야, 대체!”
멜란드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짐승 뒷다리에 걸려 끌려온 넝쿨 포도라서 그런가?”
샤오콴 마을 근처에는 제대로 자라는 포도가 없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갸웃하는 채로 대답해야 했다. 마을 근처를 지나며 도망치던 짐승 뒷다리에 걸려 질질 끌려온 것을 ‘포도다!’라고 좋아라 집어왔다가 그 신맛에 울상이 된 헌터들이 다 같이 괴롭자고 애들한테 나눠줬을 때 투란도 맛봤을 뿐이었다.
신맛을 기억하며 입가를 실룩거리는 투란에게 제란드가 묻는다.
“여기 거리 오가면서 과일 가게 구경 안 했어? 온갖 싱싱한 과일을 팔고 있잖아.”
“어? 음…… 요리된 것만 맛보고 다녀서 생과일은 좀…….”
살금살금 군것질하던 것을 떠올리면서 투란이 배시시 웃었다.
요리된 것, 조리과정을 조금이라도 거친 것에 군것질을 집중했는데 그 까닭은 간단했다.
“사람이라면, 날것이 아니라 구운 것! 제대로 요리된 것을 먹는 거야!”
키린이 이렇게 투란의 뇌리에 새겨준 탓이었다.
그냥 말로 한 것이 아니라 그 과격했던 학습과정을 통해서!
그래 봐야 배고프면 일단 닥치는 대로 뜯어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도시 안에 들어오고 나니 왠지 그 소리가 쿵쾅거리며 열심히 뇌리를 울렸기에 생과일이라든가 날것에 가까운 음식은 되도록 피해 투란은 군것질을 했다.
“포도를 짜낸 즙이야. 신맛 아니니까 마셔봐.”
시알라가 빙글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괄괄 쏟아진 불그스름한 액체에서 나는 단 내음에 갸웃하면서 투란은 한 모금 마셔봐야 했다.
“어, 달다? 꿀이랑 다른데, 암튼 달잖아!”
혀를 할짝이면서 투란이 쭉 들이켰고 컵을 비웠다.
그 모습에 멜란드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한다.
“며칠 전까지는 짠맛이 났었지. 도대체 어떻게 포도를 짜내면 짠맛이 나는가 아주 신기했는데 말이지…….”
“짠맛?”
입가를 손등으로 문지르면서 시알라에게 다시 컵을 내밀면서 투란이 갸우뚱했다.
시알라가 탁자 아래로 멜란드의 정강이를 걷어차면서 투란의 컵을 다시 채웠다.
정강이를 차인 멜란드는 낯을 더 구기면서 외친다.
“소금통도 이렇게 생겼거든! 소금통 비웠다고 거기다 들이부어서 짠 포도맛이 나게 했다니까!”
“그래서 그거 내가 다 마셨잖아! 한 모금 머금었다 뱉은 녀석이 뭔 불만이야, 불만은!”
시알라가 호쾌하게 으르렁거렸다.
페란드와 제란드가 큭큭거리면서 낮게 웃었다.
웃는데 묘하게 눈가를 실룩이며 억울한 표정이라니?
그 표정으로 투란은 알았다.
멜란드만 뱉고, 둘은 억지로 단숨에 들이켠 모양이다!
시알라는 그 나머지를 몽땅 들이마셨고…….
네 남매가 또 다른 모습으로 툭탁거리는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뭔가 이래저래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전과 비슷한, 아주 닮은 분위기도 이 풍경 속에 있기는 했다.
“그런데…… 퍼브하자는 것 아니었어? 손님은 한 명도 없는 거야? 아, 소란 때문에 왔다 갔나?”
그루터기에 자리 잡고 금빛매가 새겨진 간판까지 내걸었는데 이 자리에는 투란과 네 남매뿐이었다. 그동안 손님을 받았다가 알드바인을 덮친 몬스터의 소란으로 비워진 것인가 갸웃해보는 투란이었다.
손님이 있었다 해도 남쪽의 성벽이 불타고 난리가 났으니 가까운 그루터기보다는 도시 안쪽으로 피해 도망쳤을 수도 있었으니까.
“응? 손님? 그런 거 없었지! 페란드 형 대장간에도 없었고, 여기도 없었어. 그냥 우리만 사는 집처럼 돼버렸어.”
멜란드가 시큰둥하니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이 눈을 깜박거리며 보니, 시알라가 컵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여기는 여관이랑 주점이 가득한 곳이 아니니까. 일단 여기까지 찾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 우리도 알리러 다니지는 않았어. 아직 준비할 일이 많으니까. 아직 시작이니까, 서두를 필요도 없고.”
“음, 그렇기는 하지.”
투란도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였다.
상아탑에서 우드 가디언을 매설해 놓은 곳이었다.
웬만해서는 가까이 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정상인 곳이다.
딱히 그루터기 아래 땅속에서 고블린 잡을 생각이 없다면…… 그나마도 네 남매가 지하에 장벽을 세워놨으니 한층 더 까다로워진 일이 되었을 테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되새기다 보니 저절로 투란의 입에서 하품이 나왔다.
그 모습에 바로 페란드가 말한다.
“천천히 자리 잡고 있으니까 괜찮아. 투란, 졸리면 잠부터 자둬.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거잖아. 침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고.”
“응? 아, 침대!”
방긋 웃으면서 투란은 자신의 방을 떠올렸다.
누가 와서 찾기 전까지 푹 잘 수 있는 방, 이 그루터기의 쉼터에는 투란을 위해 그런 방이 준비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