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33)
“거점을 마련해라, 투란. 그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처음 해야 할 일이야. 언제라도 돌아가 쉴 수 있는 곳, 그게 너의 거점이 될 거야. 아, 그리고…….”
‘은신(隱身)할 곳. 은신처도 만들라고 했었지.’
침대에 누운 채로 투란은 멍하니 천장의 나뭇결을 보면서 생각했다.
키린은 사람들과 오가면서 지낼 수 있는 거점과 아무도 알 수 없는, 알지 못하는 숨을 곳도 함께 준비해놓으라고 했다. 거점과 은신처가 가까워도 상관없고,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장소를 그 용도에 충실하게 확보하는 것이라며.
투란은 그 까닭을 납득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것이 중요하다는 키린의 말을 일단 믿어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거점이 이제 거의 완성된 듯한 것이 기분 좋았다.
‘역시…… 세란드랑 적당히 타협하기를 잘했지.’
네 남매가 아니었다면 이런 그루터기에 빈집을 꾸며놔야 했을 테고 비웠다 돌아올 때마다 이리저리 손봐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자리 잡고 지키고 있어 주니 투란은 그저 떠났다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돌아와서는 아주 기분 좋고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침대에 발라당 눕기만 하면 된다!
―뭔 도둑놈 심보냐? 다 떠넘기고 뒹굴 궁리만 하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핀잔했다.
‘어? 아니, 지금은 배부르고…… 졸리잖아. 오랜만에…… 내 방 침대라고…….’
투란이 슬그머니 몽롱한 말투를 꾸며 대답했다.
―너, 지금 누구한테 그런 졸린 시늉을 하는 거냐? 내가 어디 있는 누구라고 착각하는데?
드라고니아가 기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에? 쳇.’
문득 투란도 알아차렸다.
내면에서 투란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는 드라고니아에게 조금 전의 시도는 정말 바보짓일 뿐이었다!
조금 눈을 부릅뜨면서 투란이 슬그머니 눈알을 굴리는 채로 소리 없이 묻는다.
‘방호 마법을 걸까 말까? 오랜만인데 그냥 잘까?’
잠자리를 준비할 때는 잊지 말고 해야 할 일이었다.
주변 정리와 경계 설정, 보통은 잠들기 전에 둘러보고 조심스럽게 얕은 잠을 시도하는 것이 헌터의 기본이지만 마법을 이용할 수 있다면 마법으로 대처해놓고 푹 잠들 수가 있다.
비록 알드바인의 성벽 안, 안전한 곳이지만 그럼에도 언제 어디서든 이 습관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에 투란은 짚어보려는 참이었다.
―뭐? 새삼스럽기는! 그럴 필요 없어.
드라고니아가 말 돌리는 투란의 시도를 안다는 듯, 혀를 차는 말투로 반대했다.
‘어? 왜?’
투란에게는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늘 프로브를 잔뜩 뿌려두고 주변 경계를 오히려 더 매섭고 거창하게 하려는 짓이 드라고니아가 이번 여행 속에서 갖춘 태도였다. 순찰이라는 목적, 그 역할에 몰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면서 그런 준비하는 태도는 언제 어디서든 기본이라고 했었다. 한데 왜 지금은 필요 없다 하나?
―시알라가 이 그루터기 주변 지역을 모조리 마법으로 경계해놨다. 일이 터지면 너까지 포함해서 형제 모두에게 한꺼번에 신호가 가도록 말이야. 기본적으로 황금매의 마력이 반응하게 하는 신호라서 천칭을 두른 지금 너에게는 닿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 너도 포함시킨 마법이라 윌 라이트의 마력을 간단히 추가할 수 있었다. 네가 할 수 있는 정도의 기본대응은 전부 갖췄어. 그러니 더 뭘 할 필요가 없어.
‘요리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네.’
투란은 살짝 히힛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요리실력이 확실히 늘어서 요리만 한 줄 알았는데 시알라는 마법 쪽으로도 요리만큼 파고들었던 모양이잖은가. 드라고니아가 살짝 윌 라이트의 마력 특성만 더하면 될 정도로.
―시알라만이 아니야. 제란드도 전보다 더 정교하고 다채로운 마법물품을 갖고 있었어. 너랑 다르게 제대로 갖춘 몬스터 헌터의 모습을 한 셈이지. 뭐, 어디서 사온 것보다는 자기가 만든 것이 더 많기는 하지만.
‘음…… 역시 제란드가 많이 특이하지? 마법을 직접 쓰는 것보다 물품 만들어서 심는 걸 더 좋아하니…… 제란드가 마법사나 연금술사인 척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투란은 제란드가 그 팔뚝에 두른 반지, 고리에 가득 심어놓은 마법을 떠올리면서 갸웃했다.
―글쎄, 제란드는 뒤에 서 있기 싫어서 그러는가 싶다. 마법사든 연금술사든 사냥과 전투에 있어서는 어쨌든 한 걸음 뒤에 서는 것이라며? 인간들 사이에서는 말이야.
‘그렇지. 뒤로 빠져 있는 걸 싫어하기는 하지. 마법물품을 갖고 있는 헌터라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웅얼거리는 생각 속에 투란이 느릿하니 하품을 했다.
―진짜 자려고? 성벽에서 꽤 자고 왔잖아? 길드 창구는 구경만 했고, 잔뜩 먹은 다음에 바로 자려고?
‘원래 배부르면 졸린 거야.’
―페란드나 멜란드가 어찌 변해 있는가는 몰라도 되겠냐? 홀시딘이 감춰둔 부분이 다 드러난 그루터기 모습은?
툴툴거리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통해 투란은 눈치챘다.
지금 심심해서 떠들고 싶어 할 뿐이다!
‘나중에!’
단호하게 자르면서 투란은 제대로 잠에 뛰어들었다.
툭, 툭.
“투란.”
누가 가만히 어깨를 흔들고 건드리면서 부르는 소리에 투란의 눈이 뜨였다.
시알라의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난감해하는 표정이 보였다.
“어?”
투란이 짧게 의아해하는 소리를 내자, 시알라가 바로 말한다.
“손님. 너 찾아온…… 마법사가 있어. 산돌프라는데, 알아?”
“응? 산돌프? 산돌프 마법사가 왜?”
부스스하니 몸을 일으키면서 투란이 좀 더 의아한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산돌프는 하클 영감도 내팽개치고 간 투란이 깰 때까지 성벽에서 끝까지 곁에 있어 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순찰 파티는 산돌프에게 불만을 품고 불평을 했다. 길드에서 빨리 마무리 짓지 못한다고! 그 앙갚음이란 것처럼 마법사 못 믿는다고 징징거리며 재촉한답시고 들러붙어서 놀려댔는데…….
“약속은 없었던 거지?”
시알라가 앞장서서 문턱을 넘어가며 물었다.
“약속? 아니, 그런 거 전혀 없는데?”
갸웃하면서 투란도 그 뒤를 따랐다.
부엌을 스쳐가는 짧은 통로 저 너머, 그럴듯한 모양의 퍼브 탁자 한편을 차지하고 앉은 산돌프는 금방 보였다.
“여어, 투란. 정말로 여기 묵고 있었네?”
명랑한 말투로 일부러 더 꾸민 쾌활한 목소리란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산돌프가 투란에게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투란은 눈을 가늘게 떴고, 베즐 팀과 함께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부터 재빨리 되짚어 봤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산돌프는 투란에 대해 알고 있었던 태도였잖은가? 북쪽 성벽 너머로 혼자 들락이는 것을 알고 있었고 투란이 거래하는 가게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
“무슨 일이에요?”
투란은 일부러 딱딱한 목소리를 내며, 노골적으로 의심하는 태도와 말투로 물었다.
시알라는 퍼브의 바에 기대면서 이것이 무슨 상황인가 지켜봤고, 산돌프가 앉은 탁자 두엇 건넌 탁자에 턱을 괸 멜란드도 잔뜩 흥미로워하며 구경했다.
산돌프는 이 몇 쌍의 수상해하는 눈길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큰 웃음부터 흘렸다.
“아하핫, 뭘 그렇게 긴장해? 우리 같이 몬스터랑 싸운 사이잖아? 성벽에서 며칠이나 같이 믿고 싸웠으면서! 하하핫!”
투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알라와 멜란드는 넉살 좋은 마법사의 태도에 조금 더 수상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통 마법사가 저렇게 친근하게 굴면 속셈이 따로 있다는 것이 상식이니까!
산돌프도 자신이 너무 발랄한 태도였다는 것을 깨달은 듯…….
“믿고 싸우다 보니, 정말 믿을 만하다 싶어서 온 거야. 의뢰라고, 투란.”
소매 안에서 두툼해 보이는 주머니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주머니가 탁자에 닿는 소리에 귀를 쫑긋했다.
철컹거리는 듯한 쇳소리, 그리 가볍지는 않은 금속 덩어리가 가지런히 부딪히는 소리였다.
멜란드가 저편에서 중얼거린다.
“설마 금전이라도 나오는 거야?”
시알라도 바 너머에서 눈을 깜박이며 더 흥미롭게 바라봤다.
투란은 산돌프 맞은편에 앉으며 주머니가 뭐냐고 표정으로 물었다.
산돌프는 냉큼 주머니를 열어젖히며 안에 담긴 것을 드러내 보였다.
반짝이는 금전과 함께 산돌프의 목소리가 울린다.
“열 닢이야, 상아탑에서 보증하는 금전이지. 내 말 못 믿겠으면 당장 들고 가서 검증받아도 돼.”
“언제 나한테 금전 꿔간 적 있어요?”
투란이 불쑥 물었다.
산돌프가 표정을 구겼다.
“야, 의뢰란 말은 어디로 내팽개친 거야? 의뢰라고, 의뢰!”
투란은 잠시 뚱한 표정을 짓다가 달리 묻는다.
“그러니까 나한테 금전이 걸린 의뢰를 누가 한다고요? 장난치는 거 아니라면, 이거 가짜 금전?”
“야, 진짜라고 진짜! 상아탑 가서 검증해도 된다고 했잖아, 대체 왜 자꾸 내가 한 말을 못 들은 척 딴소리야!”
산돌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한숨을 쉬었다.
저편에서 멜란드가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더 뒤로 기대는 자세가 되면서 중얼거린다. 노골적으로, 잘 들으란 듯.
“와아, 부자네. 하급…… 마수사냥하는 초보 헌터 투란에게 일단 금전 열 닢부터 주고 보는 의뢰라니! 우와아아…….”
감탄하는 소리에 진심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 듣는 이의 뼛속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마치 멜란드가 비아냥이라는 새로운 마법이라도 쓰는 분위기였다.
산돌프는 잠깐 눈을 깜박이다가 깊은 한숨부터 쉬었다.
“젠장, 그 얘기를 밀어붙이고 있었던 거냐?”
투란이 ‘얘기를 밀어붙이다니?’라고 갸웃하니, 산돌프가 한심하다는 듯한 눈길로 투란을 보며 말한다.
“오러 마크, 알드바인의 헌터스 배너를 새겨넣고 혼자 마수 사냥에 나서는 녀석이 어딜 봐서 하급 헌터냐! 갈기 산맥의 마수가 몬스터보다 약하다는 소리 들은 적은 있냐? 그 사나운 것들은 분류만 마수라고, 분류만! 그리고 나랑 성벽에 있을 때 신나게 날뛰어놓고 이제 와서 시침 떼면 믿겠냐!”
“성벽에서 내가 뭘 날뛰어요?”
투란은 일단 시침 떼고 봤다.
어떻게 생각해도 성벽에서 하클의 작품을 이용해 이런저런 잔재주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게 딱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잖은가?
산돌프가 한심한 눈길에 보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진심이냐? 아무리 하클 영감의 괴상한 도구가 대단해도 그걸 제대로 쓴다는 것부터 이미 보통 재간은 아니라고 증명한 거라고! 몰랐어? 아, 이런……!”
투란으로서는 맹하니 ‘엥?’ 하는 소리만 낼 수밖에 없었다.
산돌프는 답답해하며 투덜거림을 잇는다.
“하클 영감의 장비가 대단한 거는 다들 알아. 하지만 그걸 제대로 활용하려면 상당히 숙련돼야 하지. 게다가 상황파악도 제대로 빠르게 해야 하고. 검부터 활에 이르기까지, 오러 윌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력을 보였잖아. 투란, 바로 네가 성벽에서 한 짓이 그런 거야. 뭔 사정이 있어서 하급 헌터 시늉을 하겠거니 하고 다들 넘어가는 것뿐이야. 그리고 내가 하는 의뢰는…… 최소한 중급 헌터 이상의 역량이 필요하고, 아주 위험한 일이야.”
조금 믿어달라는 듯이 주욱 말하는 산돌프를 가만히 보다가 투란이 묻는다.
“그래도 금전 열 닢은 굉장히 수상한 거, 알죠? 몇 명이 끼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 하나에게 벌써 금전 열 닢이면…….”
“너 하나만, 나랑 너 단둘이서만 가는 거야.”
투란의 말을 자르며 산돌프가 말했다.
투란은 눈을 끔벅거리며 ‘왜?’라는 눈빛을 세게 뿜어내봤다.
멜란드도, 시알라도 투란처럼 산돌프를 바라봤다.
이 마법사, 점점 더 수상하잖은가!
산돌프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보탠다.
“여럿이 가면 더 위험하니까.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되고. 절벽을 타고 빨리 오르내리는 재간이 필요하기도 하지. 그래, 성벽에서 줄 하나에 의지해서 날아다니던 네 재간! 그게 중요해. 그리고 여차하면 한순간이라도 오러 윌더 수준의 역량을 발휘할 필요도 있지. 둘이 같이 도망치기라도 하려면 말이야. 이 금전 열 닢은…… 내가 죽을 경우를 대비해서 너한테 미리 지급하는 거라 생각하면 돼. 아, 물론 길드에 맡길 거야! 계약서 제대로 쓸 거고! 너 살아남는 부분은 확실하니까 걱정 마!”
줄줄이 이어지는 투란의 표정에 줄줄이 대응하는 말을 하는 마법사였다.
그래서 투란은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여기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이면…….”
“비밀이기는 하지만, 끝날 때까지 소문내지 않는다면 여기서 말해줄 수 있어. 어떤가, 거기 붉은 머리 아가씨랑 사나운 형씨, 투란이랑 함께 듣겠어?”
산돌프가 시알라와 멜란드를 둘러보며 말했다.
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