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3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34)
“악마(惡魔)의 유산(遺産)이라고 들어본 적 있지? 없어? 으음…….”
산돌프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바로 멈추면서 낯을 찌푸렸다.
막상 말을 꺼내려는데 시작부터 조금 설명하기가 난해하다는 듯이 잠시 끙끙거리는 마법사의 모습에 투란은 시알라에게 슬쩍 말한다.
“뭐 먹을 것 좀 없어? 배고픈데…….”
시알라가 바로 산돌프에게 묻는다.
“뭐 좀 드시면서 이야기하실래요? 이래 봬도 여기가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퍼브인데 말이죠.”
“어? 아…… 적당히 마실 것이랑 간단한 간식을 부탁해도 될까? 특별히 먹지 못하는 것 없으니까…… 적당히 이야기하며 먹을 수 있는 걸로 말이야.”
산돌프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리고 시알라가 바로 준비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 또 잠깐 끙끙거리며 생각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축이면서 다시 말문을 연다.
“거참, 악마의 유산부터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겠구만. 옛날 옛날에…… 그래, 고대(古代)라고 불리던 까마득한 옛날에 악마종이라 불리는 녀석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온 적이 있었지. 세상을 자기네 취향에 맞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려는 녀석들이었어.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지. 악마종이란 결국 본질적으로 이 세상에 적응한 지성을 지닌 몬스터인 셈이었으니까, 공존(共存) 공생(共生)의 방법은 없었다더군. 지성을 지닌 녀석들이었지만 설득할 길이 없었다는 말도 있어. 아무튼 그 악마종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었고, 세상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 그 도구를 악마의 유산이라고 불러. 우리가 상상도 못 해본 것들이 잔뜩 있다고도 하고, 상상만 해봤던 것들도 많다고 하지. 어쨌든 이 세상에 없는 힘,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 말이야.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이 그런 악마의 유산에 속하는 것이야. 위험? 몬스터가 있는 곳에 놓여 있으니 위험하겠…… 응? 아, 그 물건이 위험하냐고? 아니, 휘두를 자가 없으면 그냥 도구야. 악마가 휘두르려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그 악마가 사라지고 남아 있는 도구일 뿐이야. 하지만 그 도구가 있는 곳에 몬스터가 어슬렁거리지. 마법사 혼자 가서 날름 집어올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아. 그렇다고 헌터를 떼로 몰고 가서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야. 떼로 몰고 가도 문제가 많을 테지만…….”
달그락, 접시와 잔이 놓였다.
시알라가 가만히 의자를 당겨 탁자 한쪽으로 앉았다.
멜란드도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한참 말하던 산돌프는 잔에 담긴 물을 흘깃하고는 냉큼 마셨다.
투란은 접시 위에 단단한 밀포 같은 것을 보고 갸웃했는데, 산돌프는 그것도 냉큼 집어서 우걱우걱 먹으면서 말을 잇는다.
“여럿을 끌고 갈 수 없는 까닭, 내가 한 명을 고용해야 하는 까닭은 간단해. 악마의 유산이 달랑 한 가지뿐이고 나눠 가질 수가 없어. 그런데 내가 그걸 필요로 하거든.”
“뭔데요?”
투란은 슬그머니 접시 위에 놓인 것을 집어 씹으면서 물었다.
바삭하게 입안에서 부서지는 맛은 투란의 입을 더 바쁘게 움직이게 했고, 그 사이에 산돌프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을 한다.
“지팡이.”
“흠?”
투란이 입을 가득 채운 채로 갸웃하는 눈길을 보냈다.
산돌프는 다시 물을 마시며 입안을 헹구듯이 들이켠 다음, 시알라와 멜란드를 흘깃하면서 투란이 짧은 소리로 드러낸 의문에 답한다.
“주재(主宰)하는…… 주인 없는 마력을 가득 담은 지팡이. 악마종이 자신들의 힘을 이 세상에 적용하기 위해서 사용했다는 마력의 지팡이. 주인 없이 버려진 지팡이,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일발조루 고치려고요?”
아삭, 한 입 더 씹으면서 투란이 불쑥 물었다.
“엥?”
멜란드가 저편에서 자신도 모르게 짧은 소리를 냈다.
시알라는 입가를 실룩이면서 산돌프를 바라보는데 뭔가 추잡하면서도 불쌍한 것을 보는 눈빛이 스산했다.
순간, 산돌프가 버럭 투란에게 소리 지른다.
“야! 앞뒤 없이 그딴 소리 하면 내가 오해받잖아! 내 몸 고치려고 악마의 유산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고! 젠장!”
투란은 눈을 깜박이다가 멜란드와 시알라가 자신을 향해 의문 가득한 눈짓을 하는 것을 느꼈고, 산돌프의 말을 한번 더 되뇐 다음에 말한다.
“아, 마력이 큰 거 한 방이면 바닥나는 마법사라고…… 이 마법사 아저씨 그래서 그런 별명이 있어. 음, 이제 설명된 거죠? 그러니까, 그 지팡이로 한 방이면 바닥나는 마력을 채우려는 거예요?”
산돌프가 한숨부터 쉬었다.
시알라와 멜란드가 ‘그런 거?’라고 산돌프에게 묻는 눈길을 보냈다.
어쩔 수 없이 산돌프는 무언(無言)의 물음에 대답을 해야 했다.
“비슷…… 대강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좀 자세히 말해보자면, 그 지팡이는 우리 계파의 마법사가 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아주 중요한 도구야. 그래, 마력이 모자라서 애먹는 거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계파 대대로 겪어온 문제야.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세상을 떠돌며 많은 연구를 해왔고…… 간신히 내 대에서 해결의 실마리 하나를 찾아냈어. 그게 그 지팡이야. 악마의 유산에 속하는…… 그러니 보물찾기하는 녀석들을 잔뜩 데려갈 수가 없지. 그 녀석들은 온전하게 지팡이를 내게 넘기기보다는 다른 곳에 넘기고 몫을 나눠 받자고 할 테니까. 다른 마법사랑 함께 가는 것도 안 돼. 연구한답시고 토막 내 달라는 정도는 귀여울 정도로 뜯어가려 할 테니까.”
길게, 가능한 쉬운 말로 설명하려는 산돌프를 가만히 보다가 투란이 툭 말한다.
“일발조루 고치는 거군요.”
산돌프가 다시 발끈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포기했다는 듯이…… 그래도 마땅치 않은 기분을 알리고 싶다는 듯이 으르렁거린다.
“그래! 마력 큰 거 원하는 만큼 펑펑 날리는 마도사가 되고 싶어서 그런다! 그러니까, 내 의뢰 받아 달라고!”
“금전 열 닢이나 쓰는데, 정말 나한테 다 주는 거예요?”
투란이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물었다.
시알라와 멜란드가 가만히 투란을 흘깃하고 산돌프를 바라봤다.
산돌프는 의자에 등을 기대 젖히면서 한숨처럼 대답한다.
“그렇다고 했잖아. 그냥 지금 넘기는 건 아니고, 길드에 예탁(豫託)해서 너 돌아온 다음에 받을 수 있게 말이야.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받는 데는 지장 없게 해준다고.”
“예탁?”
투란은 조금 갸웃하듯이 중얼거렸다.
오가면서 얼핏 들은 바는 있었다.
의뢰를 완료했을 때 지급되는 보수, 헌터 길드에서 이를 미리 의뢰인에게 받아둔 다음에 의뢰가 완료된 것을 확인하고 지급한다. 의뢰인과 의뢰에 나선 헌터 사이를 조율해주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중간에서 일어날 다양한 상황에 대응해서 헌터와 의뢰인을 지키는 방법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홀시딘도 그 예탁한 거 받으러 간 거잖아?’
―그거랑 다른 거 아니냐? 그건 매년 적립해야 하는데 없다고 해서 받아내겠다고 간 거고, 이건 지금 보여준 금전을 바로 전부 맡겨두겠다는 소리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생각을 정정하듯이 말했다.
‘아, 그런가? 그런데…… 악마의 유산, 지팡이라는 게 정말로 이 아저씨 마력이 일발조루인 걸 고칠 수 있어?’
―모른다.
‘몰라?’
―그걸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 산돌프가 어째서 확신하는가를 물어보는 게 좋을걸.
‘그러네?’
투란이 드라고니아와 짧게 생각을 교환하는 사이, 산돌프가 말하고 있었다.
“북쪽 성벽 다니면서 본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의뢰금을 받아두고 누군가 의뢰를 완수했다는 증거를 가져오면 지급하잖아. 그거랑 다른 점은 내가 개인적으로 너를 고용한다는 거고, 네가 내 의뢰를 수행한다는 약속을 하는 거지. 다른 녀석이 끼어들어 봐야 지급받을 수 있는 거는 너뿐이라고 내가 지정해놓고, 길드가 그 책임을 지고 금전을 전해주는 거. 그런 거라고!”
참을성 있게 설명하는 마법사를 보고 시알라가 불쑥 묻는다.
“예탁도 잘 모르는 투란에게 꼭 맡겨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정말로 투란이랑 둘만 가서 되는 일이기는 해요? 악마가 남겼다는 걸로 정말 마력 소모에 얽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산돌프가 ‘응?’ 하며 시알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곧 산돌프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히면서 대답이 나온다.
“마법사였군. 맞아, 고블린 슬레이어 남매 중에 마법사가 있다고 했었는데…… 내가 잠깐 잊었구만. 뭐, 복잡한 사정을 다 털어놓고 싶기는 하지만…… 투란, 간단히 말할 테니 그냥 들어라, 좀! 우리 계파…… 학파의 마법은 돌연변이로 갑자기 마력을 지니게 된 분이 시작했어. 갑자기 몸 안에 넘치게 된 마력, 그걸 쏟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주문을 외웠고, 마법사가 된 거지. 문제는 그다음 세대는 돌연변이가 아니었거든. 온갖 주문을 물려받았지만 마력이 모자라 제대로 쓸 수가 없게 된 거지. 그러고 나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파를 유지했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 거야. 그 문제는 언젠가 해결될 테고 그러면 물려받은 주문, 마법을 모두 쓸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그 문제가 나한테까지, 몇 백 년을 해결 못 한 채로 넘어왔지. 그리고 나는 그 해결의 단서를 찾아냈고, 투란에게 의뢰를 하는 거야.”
“헤에…… 그랬군요.”
투란이 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담겨 있지 않은 소리로, 누가 들어도 그걸 바로 알 수 있는 무성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산돌프가 눈가를 조금 삐딱하게 세웠고, 시일라가 말한다.
“아직 설명이 부족하잖아요. 왜 투란이어야 하는지, 투란만 있으면 충분한 까닭이 뭔지.”
“응? 그거 이미 말했잖아? 후크 라인을 이용해서 성벽을 마음껏 누비며 날아다닌 그 능력 때문이라니까. 몰랐나? 성벽에서 이번에 기어 올라오는 몬스터를 상대로 투란이 보인 재주, 몰랐구만. 어쨌든 내게 없는 그 재주가 필요하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여럿이 가서 와글거리는 것보다는 확실하다고.”
산돌프는 시알라와 멜란드가 어리둥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다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둘이 ‘그게 대체 뭐야?’라고 바라보는 눈길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줄을 이리저리 옮겨 붙이면서 성벽에서 줄타기를 좀 했어.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산돌프?”
“딱 내가 찾던 재주야. 게다가 혼자서 마수 사냥을 다닐 정도의 능력. 다른 거는 필요 없다고!”
산돌프가 분명하게 대답했다.
시알라는 ‘진짜?’ 하고 살짝 의아해하는 눈길로 마법사를 바라봤고, 멜란드가 한쪽에서 묻는 소리를 낸다.
“그렇다고 해도 오가는 길에 만날 몬스터나 짐승 생각을 하면 달랑 둘이 가는 거는 좀 아니지 않아요? 헌터 파티라면 최소라도 다섯 이상, 그게 알드바인의 상식이고 헌터 길드의 기본이라던데?”
산돌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그 보통이란 오가는 거리가 며칠은 될 경우지. 내가 투란과 다녀올 곳은 잘 풀리면 하루 안에…… 아니, 반나절이면 일을 끝내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이거든.”
“엥? 반나절?”
투란이 조금 놀랐다는 소리를 냈다.
분명히 놀랄 만큼 뜻밖의 말이었다.
악마의 유산이니 뭐니 하는 것이 알드바인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야기잖은가. 그런 것을 알드바인의 상아탑에서 그냥 두고 봤다니…….
시알라가 바로 묻는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있었다고요?”
“신경 쓸 일이 아니니까. 상아탑에서 관심을 둘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 아니야. 우리 계파, 나한테나 중요한 일이지. 악마의 유산이라고 해서 주변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애매한 곳에 깊이 파묻혀 있을 뿐이야.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도 한두 마리 있기는 하지만, 처리하기 까다롭지도 않고. 투란, 내 마법 위력 알지?”
“그야…… 보긴 봤죠.”
투란은 산돌프의 마법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확실히 위력이 있는 마법이었고, 산돌프는 아는 주문을 제대로 쓰는 마법사였다.
멜란드가 불쑥 묻는다.
“대체 어딘데요? 비밀로 할 테니까, 어딘가 대충이라도 말해줘요.”
산돌프는 흘깃 멜란드를 보고, 시알라를 본 다음에 투란의 심드렁한 표정을 쏘아보면서 대답한다.
“남쪽 성벽 너머야. 1, 2킬로 거리 안에 절벽이 있는 거 알지? 하이랜드라는 증거처럼 수백 미터 높이를 자랑하는 남쪽 절벽 말이야. 그 중간 언저리가 목적지야. 자, 이제 할 말은 다 한 것 같은데…… 투란, 금전도 넉넉히 주는 거라고. 나 좀 도와줘!”
“음…….”
투란은 가만히 산돌프를 가늠하듯 바라봤다.
어딘가 많이 애매모호한 이야기……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 가득했다.
악마의 유산, 그 주변을 어슬렁대는 몬스터.
반나절일 수도 있다는 거리, 하루 안에 끝낼 수도 있는 일감.
그리고 금전 열 닢!
뭔가 수작 부린다 하면 바로 끝장내서 버리고 와도 되는 마법사가 의뢰인.
이럴 때 적절한 대답은 무엇인가?
“당장 이 금전 열 닢, 전부 준다면 바로 가도 돼요. 싫으면 말고!”
탁자 위에 놓인 금전 주머니를 보며 투란은 당차게 대답했다.
슬쩍 욕심을 부리는 듯한 말이었고, 이에 대해 산돌프는 짧게 말한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