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4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36)
Chapter 128. 악마의 유산
“자, 그럼 다녀올게!”
투란은 훌쩍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계단을 밟지 않고 그대로 2층에서 아래로, 그다음에는 바로 파다닥 소리가 날 정도로 뛰어서 남쪽 성벽의 문을 향해 내달렸다.
페란드가 은빛매의 간판 아래에서 손을 수건으로 문지르며 나오다가 이 광경을 보며 소리친다.
“투란, 가져간 거 성능은 확실히 시험해봐야 해!”
“응!”
투란이 손을 흔들며 대꾸했다.
그리고 2층 계단 위, 열린 문 안쪽에서 시알라가 으르렁거린다.
‘뭔 소리였어! 엘데인에서 쟌이랑 벨라딘이 왔다니! 라비엔에 있을 애들이 왜 엘데인? 아니, 루비까지 와 있다니, 대체 뭔 말인지 설명을 해야지!”
문 너머를 보며 제란드와 멜란드가 누나의 성난 소리에 대꾸하듯 중얼거린다.
“설명이 필요한가?”
“누구 의뢰로 왔다잖아. 그러면…… 우리 찾아오려나?”
시알라가 둘을 향해 다시 으르렁거린다.
“찾으러 갈 생각이냐? 하지 마! 십만 명 이상, 아니 이십만 명이랬나?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 얘기 들을 리가! 일부러 찾아가지 마! 알았지?”
“일부러 찾아갈 일은 없지. 하지만…… 찾아올 때의 대비는 어느 정도 해둬야 하는 거 아냐? 설마 하다가 당황하는 것보다는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게 좋잖아?”
멜란드가 어깨를 으쓱하고 입을 다무는데, 제란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시알라를 잠시 생각하게 한 모양이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려본 다음, 시알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좋아, 만약을 대비해두는 게 좋겠지. 귀찮지만…… 둘러댈 말을 생각해두고, 적당히 맞춰놓자. 페란드, 너도 좀 올라와!”
아래에 있던 페란드가 사정을 몰라 ‘응? 왜?’라는 작은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문턱 너머로 손만 내밀어 까닥거리며 부르는 누나의 말을 거부하지는 않고 계단을 올랐다.
그 사이에 투란은 백여 미터 너머의 굳게 닫힌 성문에 이르렀고…….
“엥? 문을 열고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 물음에 산돌프가 어이없다는 듯이 투란을 보며 대답한다.
“안 열려, 이 문은 열리지 않은 지 수십 년은 넘었을걸. 강철 빗장에 쇠사슬을 걸어놓은 모양만 봐도 알잖아. 게다가 마법까지 동원해서 봉쇄한 문이라고. 소문에는 문을 없애고 아예 벽으로 쌓을까 하다가 관뒀다더만, 그냥 봉쇄하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힌다고 말이야.”
“그럼, 어떻게 나가요?”
“성벽에 올라가서 뛰어내려야지.”
산돌프는 투란에게 간단히 말하더니, 문 곁에 이끼와 넝쿨이 가득 차 있는 계단을 밟으며 앞장섰다. 얼핏 보면 그냥 이끼와 넝쿨이 성벽에 달라붙어 불룩한 걸로 착각할 지경인 계단이었고, 미끄러운 듯했다. 그래도 산돌프의 걸음은 전혀 흔들림 없이 계단을 딛고 있었다. 마치 성벽의 무성한 넝쿨을 밟고 올라서는 듯한 모습이었다.
투란은 냉큼 그 뒤를 따라 올라가려고 발을 디뎠는데…….
“으앗, 미끄러!”
첫 계단에서 주륵 발을 흘리듯이 미끄러지며 놀란 소리를 냈다.
올라가던 산돌프가 뒤돌아보며 다시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 부츠, 접지력 조절하는 거 아니었냐? 제대로 밟으라고, 이끼 얇은 곳으로.”
“미리 조심하라고 말을 해주지…… 체엣!”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조금 더 조심해서 미끄러운 계단을 밟고 산돌프의 뒤를 따랐다.
이십여 미터 높이의 성벽은 위쪽도 사람의 손길이나 발길이 별로 닿은 흔적이 없었다. 그나마 불에 그을리고 남은 흔적이 며칠 동안의 싸움을 되새기고 있을 뿐이었다. 통나무 같은 우드 가디언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몰골은 그냥 방치된 곳이라고 강조하는 듯했고!
투란이 이 풍경을 보면서 산돌프를 보니, 이미 흉벽 위에 올라서고 있잖은가!
“아, 진짜 뛰어내리려고요? 밧줄도 안 걸고 무슨……!”
산돌프가 뭘 꺼내 흉벽에 걸 낌새가 전혀 없는 것을 뒤늦게 보고 투란이 놀라 묻고 말았다. 한데…….
“뭔 밧줄이야? 마법사한테…….”
스윽 고개 돌려 투란을 흘깃하더니 산돌프가 이리 중얼거리잖는가.
그리고 다시 투란이 뭐라 하기 전에 훌쩍 뛰어내리고 있었다!
“아, 진짜…….”
뭔가 울컥해서 투란은 냉큼 흉벽 위로 올라서며 내려다봤다.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산돌프는 성벽 밖의 해자 너머를 향해 비스듬히 흔들거리며 내려가고 있었다. 돌멩이처럼 처박히거나 곧장 성벽에서 미끄러져 뚝 떨어지는 광경이랑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투란은 그 모습을 잠깐 구경하다가 버럭 소리친다.
“마법사님, 나는……?”
먼저 훌렁 내려가서 마법을 걸어줄 것인가, 기대해서 묻는 말이었다.
하지만 살랑살랑 내려가는 채로 산돌프는 버럭 대꾸한다.
“후크라인! 있잖아!”
바로 투란의 입술이 삐죽였다.
‘와, 치사하게! 야, 저 살랑살랑 마법 얼마나 버텨? 무게 말이야, 무게.’
―대강 두 사람 정도는 버틸 거다. 물론 떨어질 때의 충격을…… 야!
드라고니아가 대답을 끝내기도 전에 투란은 흉벽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크앙!”
입으로 짐승이 짖는 소리까지 흉내 내면서, 산돌프를 향해!
살랑살랑 내려가던 산돌프가 흠칫해서 고개를 돌렸고…….
“어흐! 얀마, 뭔……!”
화들짝 놀라고 당황해서 외침을 터뜨리는 순간에는 이미 투란이 부딪히면서 덥석 끌어안고 있었다.
잠시 마법사의 때아닌 묘한 비명 같은 목소리가 말을 이루지 못한 채로 울렸고, 투란과 함께 비스듬히…… 애초에 가던 방향으로 더 빠르게 미끄러지며 추락했다.
털썩.
“야, 이놈아! 위험하게 뭔 짓이야!”
끌어안은 투란 아래에 깔린 채로 산돌프가 외쳤다.
“음하핫! 산돌프, 대단해요! 나까지 거뜬히 버텨줬잖아요, 대단한 마법이었어요!”
발딱 일어서면서 투란이 날름날름 칭찬하는 소리를 내던졌다.
“너, 인마! 진심이 전혀 담겨 있지 않잖아!”
허우적거리며 앉은 채로 산돌프가 성난 목소리를 울렸다.
투란은 그런 산돌프에게서 스윽 눈길을 돌린 채로, 주변을 진지하게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진심이에요, 진심. 진심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성벽 밖이라고요. 긴장 좀 하세요, 그렇게 앉아서 풀어져 있지 말라고요. 아무리 성벽 바로 밖이라지만…… 앗, 저기!”
한참 단조롭게 읊는 듯하다가 갑자기 투란이 한쪽을 가리키며 외쳤기에 산돌프는 재빠르게 일어서면서 그쪽을 향해 눈을 부릅뜨며 여차하면 펼칠 마법까지 준비했다.
“다람쥐, 귀여워!”
투란이 히힛거리며 이런 소리로 매듭짓고 있었다.
빠득, 이를 갈며 산돌프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뒈지고 싶냐, 투란!”
하지만 곧바로 투란이 산돌프의 앞을 막아서면서 냅다 던진 단도가 다람쥐 아래편에 꽂혔고, 나뭇결이 요동치는 듯한 모습으로 뱀이 나타났다. 다람쥐를 노리고 몸의 색채를 위장해서 기어 올라가던 뱀이었다.
“뭔 놈의 뱀이 몸 색깔을 바꾸는 거래요? 몬스터 뱀인가요?”
스윽,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투란이 산돌프에게 물었다.
어깨를 떨구며 한숨을 쉬고 나서 산돌프가 이를 가는 소리를 섞어 대답한다.
“아니야. 하이랜드의 밀림에서…… 갈기 산맥 쪽이 아닌 이쪽의 늪과 숲이 뒤죽박죽인 곳에서 살아남은 보통 뱀이다. 냄새도 거의 남기지 않고 소리 나지 않게 움직이는 데다가 저렇게 색채변화 능력까지 있어서 살아남은 품종이지. 어떻게 알았어?”
“무늬가 움직였어요. 카멜 리저드랑 다르게, 나뭇결 무늬가 꾸준히 움직이면서 올라가더라고요. 가만히 있었으면 안 보였을 텐데…… 다람쥐가 귀여워서 보다가 보니 눈가에 걸리더라고요. 다람쥐, 귀엽죠?”
꾸물거리는 뱀의 머리를 완전히 잘라서 내던지면서 투란은 멀리 달아나는 다람쥐를 보는 채로 말했다.
산돌프는 울화를 머금고 누르는 표정으로 다시 대답하는데…….
“그래, 귀엽구나! 가자! 야, 뱀은 왜 챙기는 거야?”
투란이 머리가 없어진 뱀의 몸통을 둘둘 말아 배낭 귀퉁이에 담고 있었으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 먹어야죠!”
해맑게 대답하는 투란을 보며 산돌프의 낯이 조금 실룩거렸다.
하지만 결국 말문을 닫으며 산돌프는 방향을 잡았다.
성벽 넘으며 소소하게 짓궂은 짓을 했지만, 일단 밀림에 발 디딘 순간부터 투란이 제대로 헌터답게 움직인다는 것을 봤으니 의뢰한 마법사로서는 참을 수밖에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콰아아아!
멀리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호쾌하게 귓가를 간지럽혔다.
길게 늘어진 벼랑이 발아래로 보이고, 간격을 둔 채로 서 있는 듯한 폭포가 여럿 저 멀리 벼랑을 장식하듯이 붙어 있는 듯했다.
“우와, 이런 절벽이 있었네!”
투란은 자신이 딛고 선 절벽이 하이랜드 쪽으로는 경사(傾斜)를 이루며 낮아지고, 화이트 레이크 쪽을 향해서는 어느 정도 높이를 유지한 채로 이어진 광경을 보며 즐겁게 외쳤다.
“그루터기에 살면서 이쪽으로는 안 나와봤냐?”
산돌프가 숨을 고르는 채로 묻고 있었다.
투란은 히힛하고 새는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이쪽으로는 몬스터가 많다길래…… 초보 헌터가 나오기는 힘들잖아요. 성문도 꽉 닫혀 있잖아요. 지키는 사람도 없고, 마법으로 만든 통나무 가디언만 있다고 하고…….”
“그렇긴 하군.”
산돌프는 가만히 납득하면서 절벽 아래를 흘깃 내려다봤다.
절벽을 타고 번성한 듯한 우거진 넝쿨, 넝쿨에서 길고 단단하게 뻗어나간 것처럼 보이는 나무줄기가 무성했고 까마득한 아래는 하얀 안개와 거품 파편 사이로 흐릿하게 우거진 숲의 정경이 보였다.
투란이 묻는다.
“그런데, 여기서 길이 끊어지잖아요? 이제 어떻게 해요? 이쪽으로 내려가는 거예요? 아니면 저 폭포 쪽으로?”
“내려간다.”
산돌프는 폭포 반대쪽을 가리키며, 절벽을 따라간다는 손짓과 함께 대답했다. 투란이 그 손짓을 따라 주욱 눈길을 주고는 다시 묻는다.
“이대로 습지, 수림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알드바인 남부 대습지, 혹은 대수림이라 불리는 지역으로 곧장 절벽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 절벽의 정상에서 산돌프의 손짓대로 간다면 결국 숲과 늪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려 했다면 그냥 알드바인의 서쪽 장벽, 방어전을 하던 긴 성벽의 문으로 나가서 들어오는 편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산돌프가 투란의 물음 속에 담긴 의혹을 느낀 듯이 대답한다.
“절벽을 벗어나지 않아. 멀지 않다. 가자, 가다 보면 알 테니까.”
투란은 ‘그렇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절벽 아래를 보며 걷기 시작했다.
선반처럼, 절벽 위를 매운 숲의 형상은 아래로 떨어질 위험을 피하듯이 간격을 두고 있었다. 덕분에 숲에서처럼 뭔가 숨어 있다가 튀어나올 상황은 꽤 면한 채로 투란과 산돌프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알드바인을 나와 대여섯 시간 정도 흐른 뒤…….
“여기다, 투란.”
절벽 아래를 가리키며 산돌프가 말했다.
여전히 높디높은 절벽가에 멈춘 채였기에 투란은 몇 시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풍경을 훑어보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잖아요? 설마…… 여기서 뛰어내리려고요? 그 마법, 저 아래까지 닿을 정도로 오래 유지되는 거예요?”
“오십 미터 정도 높이에서만 유효한 마법이야. 그걸로 내려갈 생각 전혀 없어! 여기서부터는…… 밧줄을 박아서 매달려 가는 길이야. 돌아올 때도 사용할 거니까, 괜히 밧줄에 손상을 주지 마!”
묻는 투란에게 대답하면서 산돌프는 자신의 헐렁해 보이는 로브 안쪽에서 밧줄을 꺼내고 있었다. 둘둘 말린 손가락 굵기의 밧줄은 은색이었고, 그 끝이 살짝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마법 밧줄?”
투란이 눈을 잠깐 끔벅이고는 물었다.
잘못 봤나 했지만 여전히 은색 밧줄 끝이 꿈틀거리는 것을 확인했다는 듯이!
산돌프가 바닥의 견고함을 확인하고는 굵고 긴 쇠못을 박으며 대답한다.
“그래, 마법 밧줄이다. 마법 쇠못이기도 하지. 웬만해서는 끊어지지 않고, 빠지지 않아. 그렇다고 너무 안심해서 막 다루지는 말란 말이야. 이건 어디까지나…… 가는 길만 안전할 수 있으니까, 여차하면 네 힘으로 이 절벽을 타고 올라와야 한다고. 수백 미터를 말이야.”
“여기 높이가 어느 정도나 되는데요?”
수백 미터란 말에 투란이 아래를 향해 눈을 가늘게 하면서 물었다.
“바닥까지는 칠백에서 팔백 미터 사이. 하지만 우리 목적지는 여기서 이백여 미터 아래, 넝쿨로 덮인 동굴이다.”
산돌프는 쇠못에 건 밧줄을 아래로 던지며 대답했다.
휘리릭, 밧줄은 살아 있는 것처럼 산돌프가 말한 곳을 향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