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4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37)
“버려.”
“에? 에엥! 왜요!”
산돌프의 말에 투란은 대놓고 징징거렸다.
“그런 걸 갖고 간다는 소리가 지금 나오냐!”
대뜸 투란의 옆구리, 짊어진 배낭 아래로 주욱 삐져나온 것을 가리키면서 산돌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그 소리에 겨우 눈길이 간다는 듯이 자기 등 언저리를 흘깃했다.
절벽을 따라 오는 길에 주운 열매, 잡은 뱀이라든가 죽어있는 쥐 따위가 배낭의 한편으로 삐져나온 채로 꼬리를 대롱거리고 있었다. 덤벼들다 칼 맞고 죽은 고양이 닮은 맹수는 아직 피도 마르지 않은 채로 그 틈에 끼어 있었다.
모두 숲을 거닐며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식량으로 챙겨 든 것이다.
산돌프는 투란이 그러는 것을 가만히 두었는데, 막상 절벽가에 멈춰서 다 왔다고 하더니 버리라 하고 있었다. 그 과정을 되새기듯, 투란이 다시 항의한다.
“먹을 건데, 왜요! 같이 먹을 건데! 절벽에 매달려서도 찢어먹을 수 있다고요!”
“날로 뜯어 먹잔 소리잖아! 아니, 이게 아니고! 피 냄새 풍기면서 내려갈 수 없단 말이야!”
잠깐 투란이 하는 말을 이해하듯 말하다가 산돌프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으르렁거렸다.
“음? 피 냄새 풍기면 안 된다고요? 뭐가 있는데요?”
이번에는 조금 신중한 물음이었다.
초롱초롱하기까지 한 투란의 눈동자를 보며 산돌프는 한숨부터 쉬었다.
“일단 버려…… 내려놓으라고!”
슬쩍 배낭을 가슴 앞으로 옮겨 끌어안는 시늉을 하는 투란을 향해 산돌프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툴툴거리는 시늉을 하며 투란이 말한다.
“뭐가 있길래 그러는지 말을 해야 대비를 하죠.”
“그러니까, 일단 내려놓고 준비하면 들으라고!”
산돌프는 로브 아래에서 뭔가 꺼내면서 울컥했다.
투란은 투덜거리면서도 배낭에서 줍고 잡은 짐승을 담은 주머니를 분리했다.
―어차피 딴 주머니 있으면서 뭘 그리 투덜거리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배낭 안에 사냥에서 얻은 고기, 먹을 것을 따로 담을 수 있는 보자기를 준비해놨고, 주머니 모양을 만들어뒀다. 이러쿵저러쿵 할 것 없이 그냥 그걸 분리해서 땅에 묻거나 나무에 매달아두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투란은 곱게 산돌프 말을 듣기보다 일단 투덜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안 돼! 마법사가 하자는 대로 고분고분하면 큰일 나!’
―대체 그건 뭔 편견이냐!
‘시꺼, 지금 집중해야 하잖아! 조용히 하고, 아래 뭐가 있나 미리 좀 봐달라고.’
투란이 소리 없이 툴툴거리는 사이, 산돌프가 한쪽 바닥을 발로 다듬으면서 마법을 쓰고 있었다.
“디거. 디거.”
짧은 키워드, 그리고 적은 마력이 연이어 움직였다.
산돌프의 발이 밟힌 자리가 네모나게 움푹움푹 패였고, 작은 벽돌을 뽑아낸 듯한 모양이 연거푸 찍히며 네모난 구멍이 생겨났다. 어느 정도 넓이, 깊이의 네모난 구멍을 만들고 가늠하다가 산돌프가 또 다른 마법을 쓴다.
“박싱.”
네모난 구멍의 테두리가 풀썩거리는가 싶더니 구멍을 덮는 뚜껑이 생겨났다.
투란이 신기해하며 가만히 보니, 아예 처음부터 벽돌로 된 상자를 땅에 처박은 듯한 모양이었다. 그다음에 산돌프가 한숨과 함께 다시 투란을 보며 묻는다.
“진짜로 안 버려?”
“꼭 버려야 해요?”
“하아…… 여기 담아라. 괜히 냄새 흘려서 좋을 것 없으니까, 나중에 썩은 꼴을 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지.”
포기했다는 말투로 산돌프가 말했다.
그 얘기 속에서 ‘썩은 꼴’에 대해 투란이 갸웃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냉큼 상자가 된 구멍 안에 짐승 담은 주머니를 던져 넣었다. 산돌프가 그 위에 더하듯이 밧줄이 달린 작고 둥근 쇳덩이를 올려놓더니 손짓하며 마력을 움직인다.
“록커.”
흙이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곧 구멍 뚜껑이 닫혔고, 조금 센 소리와 함께 잠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 이어져 나온 것은 쇳덩이에 이어진 밧줄…….
산돌프는 그 밧줄을 절벽 아래로 늘어뜨리면서 투란에게 사슬이 달린 끈을 내민다.
“끈은 허리에 감고, 사슬은 이 밧줄에 걸어. 밧줄을 따라 내려갈 거야. 이 사슬이랑 밧줄이 조합돼서 마법이 효과를 발휘해. 절벽이지만 편안하게…… 걸어 내려갈 수 있어. 뛰어가고 싶으면 뛰어도 되겠지만 관둬.”
말을 하면서 시범도 보이는 산돌프였다.
허리띠에 끈을 잇고, 그 사슬을 밧줄에 걸고 태연하게 산돌프는 절벽으로 몸을 던지듯이 허공에 발을 딛고 있었다. 투란은 가만히 허리춤에 끈을 감으면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딱히 절벽을 평지처럼 걸어 내려가는 모양은 아니었다.
밧줄과 팽팽하게 이어진 끈을 질질 끌듯이 절벽 아래를 향해 축 늘어진 몸을 가누면서 걷는 시늉을 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쨌든 산돌프는 밧줄타기를 마법으로 해결하고 있는 셈이었다.
팔 힘과 다리 힘, 제한된 움직임과 다르게 아래로 축 몸을 늘어뜨린 채로 느슨하게 걷는 시늉을 하며 내려가고 있으니까.
투란에게는 색다르고 이상한 광경이었고, 꽤 호기심을 일으키는 광경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마법이야?’
엄청나게 복잡한 마법도, 대량의 마력을 소모하는 주문도 없었다.
땅을 파고, 구멍을 꾸미고, 밧줄을 늘어뜨리고…… 뭐 하나 당연한 듯한데 전혀 당연하지 않은 마법이 동원되는 상황이었다.
―현자의 방식이라니까. 사물에 영향을 끼치지만 아주 미미하게 보이지. 그러나 그 효과는 마법이 아니면 보일 수 없는 영역. 아슬아슬하면서도 분명한 마법의 활용이야.
절벽에 발을 딛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는 유쾌하게 말하고 있었다.
줄에 매달린 채로 걷는다는 이색적인 경험을 받아들이면서 투란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산돌프가 늘어뜨린 밧줄, 감겨 있다가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렇게 길어 보이지는 않았다. 한데 지금 보니 수백 미터 아래로 치렁치렁하게 흔들거리며 늘어져 있잖은가!
‘이 밧줄, 무슨 마법이야?’
―무슨 마법이긴, 주변의 티끌을 끌어모아 저절로 길어지는 밧줄이지. 테라트로 로프를 짜는 거랑 같은 이치야. 단지 마법의 핵은 정령이 아니라 상자 속의 원형(圓形) 철괴(鐵塊)이고, 거기서 짜낸 밧줄을 계속해서 밀어내고 있는 거지. 말하자면 그게 실패이고, 밧줄은 실인 거야. 누군가 매달려 있는 한, 계속 길게 내려갈 거야. 산돌프가 정지시키지 않는 한 말이지. 그러니까 이 절벽 바닥까지도 닿을 수 있는 밧줄이 되는 셈이다.
‘흐흠…….’
투란은 산돌프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번 더 갸웃했다.
마력의 용량은 확실히 쪼금인데, 그걸 이용해서 보이는 마법은 소소해 보이면서도 꽤 유용한 마법사……. 미리 준비해둔 마법 도구의 활용조차도 이리저리 듣던 것이랑은 꽤 다르다.
과연 이 마법사가 마력 용량의 문제를 해결하면 대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어디를 향하는 건지 아직 몰라?’
투란은 세찬 바람결을 느끼면서 비척거리면서도 산돌프가 꿋꿋하게 내려가는 광경을 보며 다시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밧줄을 죽 따라가면 절벽에 뚫린 동굴에 도달할 것 같다. 저 아래 나무와 넝쿨이 엉긴 곳 보이지? 그래, 그 넝쿨 장막 안에 동굴이 있다. 밧줄은 거기를 향해 내려졌어.
‘굴 안에는?’
―특별한 것은 아직 없다. 그냥 종유석이 가득하고…… 꽤 깊어서 단번에 파악이 안 되는데?
‘깊어? 흐흠. 경계 좀 해둬야겠네.’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며, 멀리 눈길을 흘리면서 조용히 산돌프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수백 미터를 기묘한 자세로 걸어 내려온 다음, 산돌프가 몸을 뒤틀면서 투란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저 넝쿨! 저 안쪽에 굴이 있어. 그리로 들어가면 된다! 넝쿨은…… 칼로 좀 잘라내야겠어! 투란, 칼 좀 휘둘러봐!”
주르륵, 말과 함께 산돌프는 넝쿨에 엉겨 발을 헛딛고 미끄러졌다.
보통 저런 모습이라면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몰골이겠지만 산돌프의 허리에 이어진 사슬이 밧줄을 물며 고정된 덕분에 그냥 대롱거리며 넝쿨에 몸을 파묻은 채로 허우적대는 몰골이 되었을 뿐이었다.
뭔가 몸을 제대로 못 쓰는 마법사의 본보기처럼 보이는 산돌프에게 혀를 차는 시늉을 하며 투란이 차분하게 절벽을 밟으며,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는 채로 걸어 내려가면서 말한다.
“가만히 좀 있어요! 끊어줄 테니까.”
투란은 넝쿨을 자르고, 산돌프를 풀어주고 동굴 입구를 가린 넝쿨까지 자르고 걷어냈다. 널찍한 구멍 입구는 비스듬히 절벽 아래로 기울어진 채였고, 발을 딛고 조금 넘어가야 미끄러지지 않는 안전한 평지 형태가 나타났다.
“후아앗! 젠장, 생각보다 힘들구만!”
손발을 다 써서 겨우 동굴 안으로 들어온 산돌프가 가쁜 숨과 함께 투덜거렸다.
투란은 그 곁에 서면서, 저 깊은 곳까지 밝은 동굴 안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어디서 햇살이 들어오는 거예요, 아니면…….”
“아, 빛열매 줄기야. 동굴 안이라 줄기까지 빛나지. 횃불은 필요 없어. 괜히 불씨 튕기지 마! 빛열매가 바싹 말라서 불이 바로 붙을 수도 있으니까.”
산돌프의 대답은 투란의 낯을 살짝 찌푸려지게 했다.
빛열매, 낯에 활짝 열렸다가 밤이 되면 웅크려지는 열매는 어둠 속에서는 한껏 웅크려진 채로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웅크리면 빛을 뿜어낸다. 때문에 빛열매가 있으면 밤을 밝히기 위해서,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불을 피울 필요는 없다. 딱히 마수인 것도 아닌 춤추는 산맥 곳곳에서 발견되는…… 산맥 밖에서 온 사람에게만 신기한 열매였다.
“누가 여기다 빛열매를 잔뜩 옮겨 심은 거예요? 씨뿌리기라도 했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냥 동굴 안에 빛열매가 많이 있네 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투란이 보기에 이 빛열매는 일부러 동굴을 밝히려고 깊이 누군가 던져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산돌프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자란 것들, 거의 연령이 백 년 가까워. 누가 씨뿌리기를 해다 해도 백 년 전이겠지. 백 년 정도면 열매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는 깔리는 게 빛열매니까 누가 뿌려놨다고 하기도 어렵지.”
“그래요? 그러면…… 뭐가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투란은 밝은 동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가면서 물었다.
산돌프는 성큼 투란을 스쳐 지나가며 대답한다.
“여기는 없어. 여기는…… 우연히 열린 샛길이니까.”
“샛길? 여기는……?”
투란이 의아해하는 사이, 산돌프는 당당하게 앞장서서 내딛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아직은 말이지.
드라고니아도 산돌프처럼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면서 일단 산돌프의 뒤를 따라갔다.
동굴은 깊어졌고, 넓어졌다가 좁아졌고, 가끔 구불거렸다.
하지만 외길이었기에 돌아 나올 때 길을 헤맬 염려는 없었다. 단지…….
‘숨을 곳도 없잖아? 완전히 밝아서!’
보통 동굴에 서식하는 놈들이라면 시각보다는 후각이 좋은 경우가 많겠지만 이 동굴에서는 그냥 눈만 좋아도 될 듯싶었다. 뭐든 마주치면 민망하게 서로를 마주 보면서 어찌해야 할까를 궁리할 상황인 셈이었다.
―응? 저게 뭐야?
투란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드라고니아가 흠칫했다.
거의 동시에 산돌프가 멈췄다.
“다 온 것 같군.”
투란은 산돌프 앞쪽이 아래로 길게 이어져 내려가는 경사를 이룬 것을 봤다.
빛열매는 그 비탈진 구멍까지 밝히고 있었다.
수십 미터 아래에 훤히 열린 광장(廣場)이 얼핏 보이는 듯했다.
“저 아래에요?”
“그래. 쉿, 여기서부터는 목소리 낮춰. 잠깐 기다려.”
가만히 앉으면서 산돌프는 소매 안에서 작은 통을 꺼냈다.
투란도 그 곁에 앉으면서 지켜봤다.
산돌프가 통을 만지작거렸고, 통의 껍질이 벗겨지듯이 줄이 흘러내렸다.
‘엥? 뭐야, 그냥 줄감개야?’
줄이 비탈을 따라 흘러내려 가면서 통이 가늘어지는 것을 보며 투란이 웅얼거렸다.
―감지선이야. 마력을 이용해서 줄이 닿은 주변 상황을 엿보거나 엿들을 수가 있지. 꽤 효율이 좋은 물건이로군.
‘아, 그래? 그래서 아래 뭐가 있어?’
―없다.
‘뭐?’
―뭘 찾아온 건지, 아직 모르겠어.
‘프로브로 보이는 게 없다고?’
―그냥 밝은 동굴일 뿐이야.
‘그래?’
투란이 갸웃할 때, 산돌프가 말한다.
“내려가자.”
“음? 꽤 가파른데 그냥 내려가요?”
“너나 내 장화라면 별 어려움 없어.”
산돌프는 딱 잘라 말했고, 비탈로 걸음을 내디디며 작은 통은 한편에 내려놨다.
투란은 통이 동굴의 단단한 바닥에 반쯤 파고드는 것을 확인하면서 산돌프의 뒤를 따랐다.
‘대체…… 악마의 유산이니 뭐니 하더니, 그냥 빈 동굴이라니.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는 거야?’
앞장선 마법사에게는 없는 의아함을 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