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4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38)
“웃차, 여기다!”
바닥을 디디면서 산돌프가 번뜩이는 눈길로,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투란은 그 곁에 서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빛열매에 의해서 밝아진 동굴, 종유석이 고드름처럼 위아래에서 열심히 솟아난 광경만이 가득했다. 뭔가 특별한 것은 전혀 없었다.
‘기분이 좀 묘한데?’
살갗으로 스며오는 감각이 투란에게 뭔가 어긋난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풍경 어딘가에 어긋나 있는 뭔가 있는데 알 수가 없다고.
―지금 프로브의 감지 영역 안에 특별한 것은 없다. 감지 영역을 확장시켜 볼래?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투란은 산돌프를 흘깃했다.
적은 마력이라지만 한껏 북돋우고 있는 마법사…….
‘아니, 프로브에 힘주면 산돌프가 바로 눈치챌 것 같으니까 관둬.’
산돌프의 집중력이 한층 더 짙어지는 것이 마력의 농도를 통해 투란에게 보다 확실하게 느껴졌다. 공연히 자극하는 것보다는 지금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더 낫게 여겨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상황은 금방 변했다.
‘어라?’
―응?
투란도, 드라고니아도 순식간에 변화하는 지형(地形)에 놀랐다.
아무런 조짐도 없이, 빛열매와 그 줄기로 밝혀져 있던 동굴이 다른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이제까지 보고 있던 풍경은 헛것이었다는 듯!
이 변화 중에 무엇보다 투란을 놀라게 한 것은 미끄러져 내려온 구멍이 사라졌다는 부분이었다. 대신 입구까지 길 이어지는 통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마치 오는 동안 그냥 훤히 열린 입구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것처럼!
‘이게 뭐야?’
분명히 어딘가 어긋난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위아래 없이 괴상해질 줄은 몰랐기에 투란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면서 소리 없이 긴장하며 물어야 했다.
―악마의 왜 능력이야. 젠장…… 이런 게 아직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왜곡?’
―마법이 아니야. 악마 중에서 특별하게 세상에 간섭할 수 있는 놈들이 있다. 그 능력은 마법과 다른 이치로 움직여. 미리 알고 찾지 않으면 아예 모르는 채로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뭐야, 그게!’
마법도 아닌 것이 마법처럼 작용한다는 것에 투란은 한층 더 놀랐다.
―다른 세상의 이치를 이 세상으로 끌어들이는 혼돈…… 그런 거다. 아무튼 여기는…… 육체공방(肉體工房)이네?
‘뭐?’
육체공방, 투란은 이해할 수 없는 낱말이었다.
이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설명하기 전에 산돌프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투란, 이제부터 조심해. 가디언이 어디서 올지 모른다!”
“가디언?”
투란이 ‘좀 더 설명을!’이란 의미를 담아 되뇌었다.
산돌프는 방향을 손짓하면서 한쪽으로 움직이는 채로 대답한다.
“시간만 끌어주면 돼. 그리 어려운 놈은 아니니까, 가능하면 저 밖으로 유도한 다음…… 도망가. 위로 말이야. 성벽을 탈 때처럼, 그 녀석을 유인해서 도망만 치면 된다고.”
“산돌프는 뭘 할 건데요?”
“저걸 손에 넣는다.”
투란에게 대답하며 산돌프의 손끝이 향한 곳에는 뒤틀린 막대처럼 보이는 것이 당에 꽂혀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물론 ‘아, 그렇군요!’라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저게 뭔데요?”
여기까지 온 까닭이겠지만, 그래도 슬쩍 묻는 말이었다.
산돌프는 그 막대를 향해 다가가면서 단호히 대답한다.
“악마가 마력을 축적시키는 도구. 악마의 마법 지팡이!”
투란이 보기에는 지팡이라기보다는 그냥 부러진 채로 뒤틀려 너덜거리는 막대였는데 마법사에게는 분명한 마도구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름대로 마법에 대해 감지한다고 생각했기에 투란은 슬쩍 드라고니아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맞아?’
―모르겠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군. 저거 이 육체공방을 기동시키는 열쇠야.
‘열쇠? 뽑으면 위험해?’
―뽑으려 들면 확실하게 가디언이 온다. 그걸 유도해달라고 널 부른 셈이지. 싸우란 말 대신에 유인해 멀리 끌어놓고 도망치라 한 걸 보니…… 쉬운 놈은 아니라 여기는 모양이다만……. 아, 뽑네?
‘엥? 으……!’
투란은 산돌프가 막대를 두 손으로 잡는 광경을 봤다.
육체공방이 뭔가 물을 틈도 없이 마법사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셈!
그리고 그런 마법사에게 호응하듯, 입구 쪽에서 뭔가 나타나고 있었다.
프로브의 감각을 되새기며 투란이 볼을 실룩였다.
‘저건 또 어디서 온 거야? 왜 제대로 안 보이지?’
절벽에서 내려오거나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입구 쪽에서 나타나 통로를 어슬렁거리듯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 시야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걸음걸이는 한쪽 발을 질질 끄는 듯했고, 뭔가 두툼한 것을 몸에 얹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채로 프로브가 지닌 시각에 포착되지 않고 있으니, 통로의 굴곡을 지나 나타날 때까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곡능력이다. 아무래도 이 공방을 만든 악마는 자기 몸의 예비품을 가디언으로 쓰는 녀석이었나 보군.
‘뭔 얘기야?’
투란은 산돌프를 흘깃하며, 다가오는 녀석을 가로막는 자리로 슬쩍 옮기면서 되물었다.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는 여전히 ‘육체공방’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한마디랑 이어지고 있는 듯했지만, 대체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오려면 일이 분 정도는 시간이 있군. 설명해주지. 싸울 준비 하면서 들어.
‘그래.’
이미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였지만, 산돌프와 간격을 두면서 나타난 악마의 가디언이 바로 덮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리를 잡으면서 투란은 대답했다.
―악마 중에는 자신의 영혼을 다른 몸으로 전이(轉移)시키는 놈이 있다, 이건 예전에 아겔페스의 아바타리안과 엮일 때 얘기했었지? 그런 악마 중에서 분열(分裂)한 화신(化身)을 꾸미지 않고 새로운 육체를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존재하는 육체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성향과 능력에 맞게 육체를 만들고 키우는 경우지. 타자(他者)의 육체를 강탈하는 능력이 모자란 경우도 있지만…… 이런 공방을 꾸민 경우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몸을 필요로 하는 놈이겠지.
‘그 얘기는, 헌터가 공방에서 자기 손에 맞는 무기를 구하는 것처럼…… 새 옷 입은 것처럼 새 몸을 입기 위해서 아예 새 몸을 만든다는 얘기야? 그래서 육체공방?’
―호오? 제대로 이해했군. 그래, 그런 경우다. 여기는…… 그리고 저 녀석은 그 새 옷이 지정된 명령에 따라 혼자 움직이는 경우겠지!
이제 투란은 앞에 나타난 육체공방의 가디언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 모습에 대한 감상을 담은 한마디가 두 자루 검을 뽑아 든 투란 입술 사이로 새나간다.
“병신……?”
―불구이기는 하군.
드라고니아도 인정했다.
뿔이 둘 달린 산양의 머리를 했지만, 한쪽 뿔이 자라다 만 듯한 모양이라 얼핏 보면 부러져서 망가진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한데 좌우의 균형이 맞지 않는 모양은 뿔만이 아니었다. 등에 솟아난 깃털 달린 날개도 한쪽은 파닥거리며 펼칠 수 있어 보이는데 한쪽은 축 늘어져 그저 등에 매달려 있기만 했다. 날개가 아니라 그저 등에 무거운 것을 짊어진 몰골이었다. 게다가 다리도 한쪽은 우락부락하고 사나운 근육이 도드라졌는데, 한쪽은 간신히 땅에 발끝이 닿은 모양이라 똑바로 설 수 없어 보였다. 그나마 두 팔의 길이는 좌우가 맞는 듯하지만, 한쪽은 손가락이 하나뿐인 손이고 한쪽은 일고여덟은 되는 손가락이 주렁주렁 매달린 손이었다.
그런 뒤틀린 모양은 눈가에도 나타나 한쪽 눈이 불그스름한 눈알을 홀랑 드러낸 반면에 한쪽은 눈곱이 껍질처럼 덮이고 늘어진 눈꺼풀을 밀어내는 모양이기까지 했다.
때문에 어떻게 봐도 이상한 몰골.
‘저런 걸 몸으로 쓰겠다고 만들어?’
―글쎄…… 일단 보이는 모양이랑 다르게 힘은 있어 보인다만?
투란의 의심에 드라고니아가 냉정하게 말했다.
일단 프로브의 마법적인 지각에 대해 완전히 벗어난 채였고, 눈앞에서 보고 있는 사이에 딛는 걸음이 바닥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고도 있었다. 한쪽은 굵은 발자국, 한쪽은 그저 땅을 쿡쿡 찌르는 정도였지만 단단한 동굴 바닥을 제대로 후벼내고 있다!
투란은 산돌프를 살짝 돌아봤다.
집중한 마법사는 뭐가 다가오는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야말로 투란을 믿고 맡긴 모습으로 막대를 느릿하니 뽑아내고 있었다. 그 손길에 따라 뒤틀린 막대가 느릿하니 펴지면서 새 눈이 돋는 나뭇가지처럼 서서히 형태를 바꾸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지듯 주변의 풍경도 조금씩 변화하는 중이었는데…….
동굴 바닥은 투명한 수정처럼, 처음에는 색채가 흐려지다가 나중에는 그냥 수정으로 이뤄진 동굴처럼 변해갔다. 한데 얕게 그 속이 보이다가 점차 그 깊은 속을 드러내는 바닥의 모습은 다가오는 녀석이 진짜 잘못 만들어진 것이라는 증거까지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 안에 얼어붙은 듯이 파묻힌 형상…….
‘저게 제대로 만들어진 것?’
투란은 완전히 망가진 채로 다가오는 것과 비교해보면서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산양 머리에 도도한 한 쌍의 뿔, 팔과 다리…… 모두 좌우의 균형이 맞는 형상이 수정처럼 변한 동굴 바닥 깊이 줄줄이 묻힌 광경이 드러나고 있으니까.
―정신 차려!
드라고니아가 불쑥 경고했다.
투란은 다가오는 가디언의 짧은 다리에 걷어처여 날아오는 돌멩이를 팔뚝으로 쳐내면서 산돌프를 다시 살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산돌프는 막대를 반쯤 뽑아내고 있었고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푸릇!
입가에 침을 흘리고 성난 태도로 가디언이 닥쳐들려 했다.
사앗!
투란이 뽑은 검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가디언의 옆구리를 핥고 지나갔다.
푸읏!
손가락이 주렁주렁 매달린 손, 하나뿐인 손까지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스쳐간 투란을 때리려 들었다. 한쪽 날개가 어설프게 펼쳐졌고, 한쪽 날개는 그냥 짐덩이 그대로인 채로 공방의 가디언이 몸을 돌렸다.
그 순간에 투란은 가디언의 목 줄기를 찔렀다.
검은 칼자루의 장검, 붉은 칼자루의 장검이 번갈아 가며 가디언의 목을 후비고 저미다가 빠져나왔지만 완전히 절단은 하지 않았다.
‘뼈가 튼튼하잖아!’
알드바인의 은전 다섯 닢짜리 검이 칼날만 상하고 빠져나온 듯했다.
푸으읏!
격노한 산양 머리가 불균형인 뿔을 흔들며, 목이 덜렁거리는 채로 두 손을 마구 휘둘렀다. 뼈가 끊어지지는 않았어도 절반이 베인 목인데 움직임에는 전혀 상관없는 듯했다.
그 꼴을 보고 투란이 소리 없이 묻는다.
‘목 자르면 일단 죽는 척하고 쓰러지기는 하는 놈이냐?’
―그럴 거다. 잘려도 상관없는 몸이라면 저렇게 뼈대를 튼튼하게 해놓지는 않았겠지. 산돌프도 거의 끝내가는 모양인데, 유인하지 않고 가까이서 이러고 있을 거야?
‘아니, 이놈 생긴 거랑 다르게 재빠른 데다가 영리해. 계속 산돌프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어. 그러면서 나는 견제만 하는 중이라고. 끝내버리는 게 좋겠어.’
투란은 육체공방의 가디언이 자신에게 침을 튀기며 흥분하는 모양과 다르게 산돌프 쪽으로 가까이 자리를 옮겨가는 광경을 파악하고 있었다. 주먹질은 그저 허풍일 뿐이고, 뼈를 가르지 못하는 무딘 칼날은 아예 무시하는 태도로!
순간적으로 투란의 손바닥 쪽이 검은 잉크로 물들었다.
검은 잉크는 칼자루를 타고 칼날로 가늘게, 눈에 띌 듯 말 듯한 실가닥처럼 흘렀고, 어느 순간에 아라크레온의 실이 되었다.
다시 투란이 두 자루 장검을 휘둘렀고…….
푸으, 무아앗!
산양 머리에서 비명이 터졌다.
특별한 소리 없이 날개부터 어깨까지, 허리에서 다리까지 제멋대로 썰려 토막 나며 가디언의 형체가 부서져 내렸다. 이번에는 튼튼한 뼈 따위는 없다는 것처럼, 목도 제대로 절단되어 머리가 굴러가고 있었다.
투란은 재빠르게 잉크를 지웠고, 산돌프를 봤다.
막대는 어느새 길어진 채였고, 제대로 지팡이라 할 수 있는 형상이 되어 있었다.
산돌프는 이마에서, 볼과 목 줄기까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채였다.
그런 채로 지팡이가 마침내 바닥에서 뽑혀 나온 순간…….
―이런! 투란, 육체공방이 제대로 된 가디언을 꺼내놓을 모양이다!
드라고니아가 경고했다.
‘엥? 뭔 소리야!’
소리 없이 묻기는 했지만 투란도 보고 있었다.
바닥에 파묻혀 있던 형상 하나가 통째로 움직이고 있는 광경이었다.
형상은 벽을 향해 옮겨졌고, 벽 속으로 치솟더니 커다란 알 모양을 한 수정째로 돌출되고 있었다. 더불어 바닥에 묻힌 형상들이 줄줄이 움직이면서 다시 자리를 잡는 광경은 그다음 순번을 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하핫, 성공이야! 뽑아냈어!”
아직 주변 상황을 모르는 산돌프가 즐겁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