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4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39)
“잘되었네요! 그럼, 산돌프! 이거 받으시고, 들고 도망쳐요. 아무래도 내가 실수한 모양이니까, 내가 책임지고 시간 끌죠.”
배낭과 두 자루의 검을 칼집째로 넘기면서 투란이 하는 말이었다.
“뭐? 실수라니?”
환하게 웃던 산돌프가 어리둥절했다.
두 손에는 이제 1미터가 조금 넘는, 원래 자그마한 막대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진 지팡이를 꼭 쥔 채로 되묻는 마법사를 향해 투란은 한쪽을 손짓하며 다시 말해줘야 했다.
“썰어버리면 끝날 줄 알고 좀 무리해서 썰었더니, 병신 대신에 아주 멀쩡한 새 걸 들이대려나 봐요.”
산돌프는 눈을 끔벅거리면서 거대한 수정의 알이 튀어나온 벽을 봤다.
그 알 속에서 두 팔, 두 다리와 두 뿔이 선명한 산양 머리가 느릿하니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놀란 목소리가 잠긴 목을 간신히 헤집고 나오는 것처럼, 산돌프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모습은 분명히 산돌프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 육체공방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투란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어떻게 여길 찾아냈는지 모르겠다만, 모르는 게 보통이겠지. 악마종과의 전쟁은 고대의 일이고 현세대의 인간에게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칠 일이 아니니까.
드라고니아가 놀라는 마법사를 두둔하는 듯, 쓴웃음이 맴도는 것처럼 말했다.
투란은 산돌프에게 다시 배낭을 내밀며, 아예 그 목에 배낭을 걸어주면서 또박또박 다시 말한다.
“아직 센 거 한 방 확실히 못 날리죠? 그 지팡이, 제대로 쓰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이는데…… 그러니까, 도망가라고요. 저거 썰지 않고 시간 좀 끌다가 나도 튈 테니까. 얼른 가요. 알드바인으로, 뒤돌아보지 말고 바로 가요. 나도 적당하다 싶으면 바로 뛰어나가 절벽 타고 튈 테니까. 가요, 마법사!”
산돌프는 엉겁결에 투란의 배낭을 짊어 메기는 했지만, 바로 나갈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자, 잠깐! 투란, 저건……!”
“방해된다고요, 방해!”
살짝 손가락 끝에 오러를 일으키며 투란이 조금 더 엄격하고,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는 조금 더 분명하게 마법사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엉거주춤하니 두어 걸음 물러서며, 다시 두 손으로 지팡이를 꽉 쥔 채로 산돌프가 말한다.
“함께 싸워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아니라고요. 산돌프, 몇 대에 걸친 꿈을 여기서 망치고 싶어요? 손에 든 걸 놔버리고 싶어요?”
투란이 얼른 떠나라 다시 입구를 손짓하며 말했다.
쩌정, 수정알에 금이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산돌프가 움찔했다.
주춤거리면서도 여전히 제대로 발을 움직이지 않는 마법사의 모습에 투란은 혀를 차며 다시 말해야 했다.
“산돌프! 금전 열 닢짜리 헌터를 훼방 놓지 말고, 빨랑 가라고요! 미적거리면서 훼방 놓다가 같이 죽자는 생각이에요? 얼른 가요!”
동시에 조금 험악하게 흘려낸 오러의 파동이 산돌프에게 닿았다.
순간, 산돌프의 표정이 기묘하게 뒤틀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느릿해도 분명한 대답이 나온다.
“알았다…… 가서 기다리지.”
“지팡이, 제대로 길들이고 있으라고요. 알드바인에서!”
투란이 두 손에서 너클 블레이드와 팜 블레이드를 번갈아 넣었다 뺐다 하며 말할 때, 산돌프는 입구를 향해 달려나갔다.
점차 지니고 있는 물품의 마법으로 가속하다가 금방 입구로 나가는 마법사의 행적을 끝까지 확인한 다음에 투란이 중얼거린다.
“테라트, 에어로. 막아. ”
바람이 세차게 입구를 흔들었고, 입구의 흙덩이가 뭉실거리다가 막처럼 흘러내렸다. 바람결이 흙덩이를 휘젓고, 그로부터 생겨난 흙의 장막이 입구를 바로 봉쇄하는 광경이었다.
째앵!
수정알이 깨어졌다.
푸르릇, 므흥!
산양의 머리에서 거센 콧김과 입김이 동시에 성난 것처럼 뿜어졌다.
가만히 돌아보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날개가…… 없네?”
토막 낸 녀석이랑 뭔가 심하게 다른 부분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뿔, 팔, 다리는 모두 균형 잡힌 채로 멀쩡한데 날개가 없었다.
그런 상태의 모양이라면 어떻게 봐도 사티르, 사티로스라고 해도 될 듯했다.
―속내는 전혀 다르다. 흔한 몬스터의 형태를 이용하고는 있지만, 저건 악마의 육체공방에서 제대로 제작된 거라고.
‘제대로? 아니, 여태 병신인 채로 놔두다가 갑자기 왜? 역시 내가 썰어버린 탓이야?’
조금 성급하게 썰어놨는가 살짝 투덜거리는 말투로 투란이 물었다.
―산돌프가 지팡이를 뽑아낸 것도 한몫했겠지.
‘응? 그게……?’
―마력의 흐름이 바뀌었거든. 왜곡 때문에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만, 지팡이를 뽑아내니 제대로 흐름을 탄 마력이 감지되잖아. 왜곡까지도 지팡이와 함께 사라진 모양이야.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래도 이 공방의 기능을 뒤틀고 정지시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막대 모양인 채로 꽂혀서 말이다.
‘그 말은?’
―누군가 이 공방을 무해(無害)하게 정지시켜 놨다는 거지. 그걸 산돌프가 다시 멀쩡하게 돌려놨고, 너도 망가진 가디언을 완전히 폐기(廢棄)시켜서 제대로 멀쩡한 가디언이 나오게 돕고 말이야. 아, 날개가 뒤늦게 돋는군.
왠지 담담하게 말하는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악마의 육체공방이 새로 뱉어낸 가디언의 등 뒤에서 날개가 치솟고 있었다. 깃털이 없는, 박쥐의 가죽날개 같은 모양으로 짙은 흑청(黑淸) 빛깔을 한 날개였다.
그 모습에 투란은 다시 이 사티로스를 닮은 몬스터, 악마가 제작한 육체의 형태를 살펴봤다.
‘조금 묘하게 생기기는 했네.’
목 아래로, 배꼽 위까지 인간 남성의 형체였다.
두 손에 윤기가 맴도는 검은 가죽이 덮여서 팔뚝까지 이어진 것은 착 달라붙는, 손끝을 뾰족하게 만든 특이한 장갑이라도 낀 모양이기는 하지만…… 등에서 가죽날개가 돋은 것 또한 특이했지만 어쨌든 사람, 남자의 모양이었다. 배꼽 아래로는 검은 색채와 갈색이 엮인 털이 무성하게 덮었고, 산양이 굵고 긴 뒷다리로 일어선 듯한 모양이었다.
투란이 듣던 사티로스라면, 머리와 허리 아래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인간의 상체인 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놈은 날개와 손, 그 두 부분이 확연히 달랐다.
―뿔도 사티로스랑 다르게 특별하다. 저 뿔, 마력을 품고 있어. 제대로 쓸 수 있는가는 모르겠다만…….
드라고니아가 신중하게 검토하는 사이, 투란은 피식 웃고 말았다.
‘대체 산돌프는 여길 어떻게 찾아낸 거지? 그 지팡이, 진짜 쓸모가 있기는 하려나?’
생각해보니 의아한 것이 잔뜩이었다.
산돌프는 분명히 이렇게 될지 전혀 모르고 손댄 듯한데, 애초에 여길 어떻게 찾아냈던 것일까?
―글쎄, 나중에 물어보는 수밖에 없지. 그래서 투란, 당장 어쩔 거냐?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투란은 바닥을 내려다봤다.
수정알인 채로 옮겨져 벽에서 튀어나온 놈이랑 닮은 녀석들이 줄줄이 파묻힌…… 얼어붙은 것처럼 파묻힌 채로 쉽게 셀 수도 없을 만큼 잔뜩 있었다. 눈앞에서 콧구멍을 실룩이며 날개를 느릿하니 펄럭대려는 저놈을 잡으면 다음에 또 한 마리가 더 나올 것처럼!
‘한 마리 잡고 튈 수는…… 없겠지?’
―가디언은 계속 기동(起動)할 거다. 이 안에서 가만히 있을지, 활동영역을 넓히려 할지는 전혀 모르겠다만……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알드바인 쪽으로 바로 낯짝을 들이댈 가능성이 커.
‘왜?’
―이 육체공방의 소재로 인간이 꽤 쓸모 있으니까. 알드바인은 여분의 육체를 만들기 위한 소재가 가득한 셈이지.
‘그런 거냐.’
작은 한숨이 투란 입가에서 새나왔다.
알을 깨고 나온 놈이 푸륵거리며 투란을 노려봤다.
마치 왜 나를 한심하게 보냐고 따지듯이!
바로 덤벼들기보다 이것저것 갓 깨어난 몸을 시험하는 듯이 움찔움찔 꿈틀거리는 녀석을 보며 투란이 갸웃했다.
‘그래도 한 마리니까, 대강 성벽 못 넘게 툭탁거리면서 막아두는 정도로 해결되려나? 어차피 남쪽 성벽으로는 드나들지 못하게 막혀 있으니까 말이야.’
매우 색다른 발상을 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저거 한 마리만 움직일 거라 여기는 거냐? 육체공방이 움직이면 이 아래 깔린 놈들이 다 튀어나오는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영혼 없는 악마의 몸이랑 알드바인이 격전을 벌이는 상황이 되겠지.
‘쳇. 한 마리 잡아서는 안 되나. 그래서 여길 다 때려 부수는 방법은? 그냥 마구 쪼개고 뭉개면 되는 거야? 그러면 뒤탈 없어?’
―그렇게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거는 의미 없을 거다. 오히려…… 망가진 기능까지 완전히 원상 복구되기 쉽지.
‘어쩌라고!’
휘잉!
투란은 구부린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할퀴어오는 것을 훌쩍 뛰며 피했다.
투란이 생각이 많은 사이에 육체공방의 가디언은 상황파악이 끝난 것처럼 공격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펄럭, 싸악!
날개가 펼쳐지고 휘둘러졌다.
날개 끝에 스친 수정 바닥이 긁히며 파여나갔다.
피핑, 투란이 손을 내밀었고 새끼손가락의 겨냥을 따라 하클의 핑키 볼트가 쏘아졌다. 팽팽하게 펼쳐진 가죽날개는 작은 볼트 따위는 무시하듯 움직였고, 가죽에는 흠집도 남기지 않고 튕겨냈다.
투란은 가볍게 뛰며 산양 머리를 노려보는 채로, 그 주변을 맴돌 듯이 움직였다.
푸르흣!
거센 입김을 뿜어내면서 갈고리 같은 손가락이 움직였고, 날개와 함께 발길질도 이어졌다.
―마력이 움직인다, 뭐가 올지 모르니 주의해라.
드라고니아의 말과 함께 투란은 산양의 뿔이 달아오른다고 느꼈다.
뜨거워지는 것이랑 다르지만, 어쨌든 뭔가가 한 쌍의 뿔 안에서 꾸물꾸물 어딘가로 움직이는 흐름, 그 흐름이 느껴지는 것이다.
‘목? 가슴?’
뭔가 삼키는 듯한 산양의 꿀떡임 속으로 뿔의 마력이 흘러갔다.
그 결과는 곧 토해져 나왔다.
넓고 두꺼운 입김, 화염(火焰)의 형태로!
화르르르— 화악!
“파이로.”
입술 너머로 가볍게 소리를 흘리며 투란은 소리 없이 재촉한다.
‘어떻게 때려 부수면 되는 거야?’
불꽃의 정령수가 불길을 막는 사이, 드라고니아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원천(源泉), 이 공방을 움직이는 핵(核)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다. 마법과 다른 힘을 간직한 부분일 거야. 그걸 찾아서 부셔야 한다. 그러면 공방 전체가 해체될 거야.
‘그게 어디 있는데?’
―그, 글쎄.
‘야!’
므흐흥!
투란이 어처구니없어 이를 꽉 다물며 으르렁거릴 때, 공방의 가디언 또한 짜증 난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불길을 막는 불꽃인 파이로가 투란의 앞에서 해체되듯이 흩어졌다.
“에? 파이로!”
다시 불렀지만, 파이로는 움찔거리는 듯하면서 투란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듯한 낌새만 흘릴 뿐이었다.
―정령을 쫓는 기술이다! 파이로를 내세우지 마!
‘헐? 그런 것도 할 줄 안다고? 영혼 없는 악마의 몸뚱어리가?’
―기본적으로 갖출 것은 다 갖춘 몸이라고! 사티로스가 아냐!
‘귀찮기는.’
투란은 훌쩍 뒤로 뛰면서,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 꽂히는 불기둥을 봤다.
불기둥 속에서 새파란 빛줄기가 삐죽거리며 번개처럼 뿜어졌다.
수정이 밝혀졌고, 사방에 파괴의 흔적이 새겨졌다.
폭음은 뒤늦게 울린다.
콰앙, 콰쾅!
―번개는 마법이고, 불길은…… 마력이 섞인 숨결일 뿐이군.
드라고니아가 뒤늦게 가디언이 보인 능력을 분석하고 있었다.
‘얼마나 넓은지는 가늠할 수 있어? 이 공방 크기 말이야.’
투란이 불쑥 물었다.
화아앙!
다시 뭉쳐서 쏘아지는 불길, 휘둘러지는 날갯짓을 보며 두어 번 더 이를 피한 다음에야 투란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프로브 상태로는 무리야. 게다가 이 공방, 확실하게 드라코눔의 탐지마법에도 대응이 된 모양이다.
‘흐흥, 꼭 이럴 때 쓸모없어야겠냐! 쳇, 에이 몰라! 저질러!’
투란은 투덜거렸다.
허리춤의 물통, 마법배낭 블랙 레온이 달랑거렸고 투란이 벗어던진 장비를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블랙 레온을 입구 쪽으로 내던지면서 투란의 살갗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번들거리는 검은 사자의 머리, 블랙 레온의 형상을 닮은 모습이 투란의 머리가 되었다.
윌 라이트의 마력이 순간적으로 폭증했고, 드라고니아가 바로 외친다.
―아, 찾았다. 핵은…… 에네르기움이네? 이런…….
‘처리하기 곤란하다고 하지 마! 부수면 안 된다고 하지마! 짜증 난다고!’
―오, 벌써 눈치챘냐?
‘어흐!’
와드득, 우드득!
육체공방의 가디언이 모든 관절을 거꾸로 접히고 묶였다.
아라크녹스의 왕이 한 손을 휘두르는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