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40)
‘에네르기움이 뭐야?’
뼈마디를 오드득거리는 육체공방의 가디언을 내려다보면서, 왕의 감각을 확장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공방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 동력원(動力源)이라고 하는 거다.
‘동력원? 그게 없으면 이 악마의 공방이 완전히 멈춘다는 말이야?’
―그렇지. 일단은…… 하지만 있는 거 하나 없애놓는다고 멈출 공방은 아닌 모양이다. 여길 만든 악마 녀석, 꽤 재밌는 방법으로 에네르기움을 숨겨놨어. 아래를 봐라, 투란.
‘아래……?’
투란은 아까와는 아예 다른 풍경을 보이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수정처럼 투명한 바닥, 묶어놓은 가디언과 같은 모습을 한 육체가 층층이 쌓인 것처럼 깊이 파묻혀 있었다. 수정이 없었다면 저 육체만으로 이 절벽을 쌓아 올릴 수도 있어 보였다.
그 속에서 독특한 광채를 머금은 것이 하나 있었다.
‘저거?’
산양 머리, 구부러진 뿔…… 묶어놓은 가디언이나 다른 육체랑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 미묘하게 다른 색채를 머금었다. 마치 너무 깊어서 수정의 광채로 인해 살짝 그 색이 왜곡된 것처럼 여겨질 정도의 미묘한 차이였다.
―그래, 그게 에네르기움을 품고 있다. 뭐랄까, 공방에서 제작한 육체 안에 숨겨둔 거라고 해야 하나? 다른 육체가 차례대로 알의 형태로 배출되더라도 저건 나오지 않고 저기 머무는 채로 이 공방이 기능하게 하지.
‘흐흠, 어쨌든 저걸 없애면 되는 거야? 그럼 나머지는 저절로 다 망가지는 건가? 하나씩 때려죽이지 않아도 되는 거야?’
투란은 쌓여 있는 몸뚱이를 흘깃하며 물었다.
수정인지 차갑지 않은 얼음인지 조금 애매한 이 바닥 안에 쌓인 사티로스를 닮은 육체…… 대충 가늠해도 몇 백은 될 것 같고 자세히 세려 하면 천은 바로 넘길 듯했다. 이걸 모조리 때려죽인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으니 살아 있지 않다 치고 때려 부순다고 해도 꽤 지겨운 일이 될 듯했다.
―에네르기움을 처리하면 일단 공방은 기능을 멈춘다만, 이미 만들어진 것들이 저절로 망가지거나 사라지지는 않아.
‘쳇. 그럼, 이대로 파묻고 가야 하나?’
―투란, 공방의 기능 중에는 만들어진 것을 유지, 보존하는 것도 있다만.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설마……?’
검은 사자의 입을 열고, 가볍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투란이 물었다.
그런 투란 앞에서 우득거리며 뼈를 부수고 살을 가르는 근력을 발휘하며 어떻게든 왕의 그물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가디언이 멈칫했다. 투란이 낸 목울림 소리가 너무 살벌해서 긴장한 것처럼!
―짐작할 수 있잖아. 저 육체들은…… 살아 있어. 악마의 영혼이 깃들지 않아도 풀려나면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거지.
‘아, 진짜!’
투란은 짜증을 냈고, 그 분풀이로 가디언의 뿔을 하나 분질러버렸다.
마력의 파동이 짙게 퍼졌고, 수정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야, 그런 짓 하면 공방의 방어체계가……!
드라고니아가 움찔하는 말을 하는 순간, 투란은 봤다.
마력의 파동에 따라 아래에 파묻힌 육체들이 줄줄이 움직이면서 벽으로 몇 개 옮겨지며 수정알의 형태로 불룩불룩 튀어나오는 것!
‘내놓은 가디언이 다치거나 하면 다른 놈을 더하는 거야?’
―그래! 애초에 망가진 놈을 부숴놔서 저게 나왔잖아! 공방 기능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니 당연한 거다! 가디언 하나로 안 되는 상대라면 여럿 내보는 거라고! 여럿이면 연계(連繫) 기능이 있을 거다! 하나 상대하는 거랑 난이도가 달라진다고!
‘아, 그래?’
째앵, 째쟁!
수정알을 깨며 산양 머리의 가디언 서넛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 입이 열리고 콧김이 뿜어지기 전에 왕의 두 팔이 움직였다.
우득, 와드득!
푸흐— 푸르읏!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꾸로 접히고 묶인 산양 머리들이 일제히 괴성을 질렀다.
하나씩 묶고, 다시 커다란 그물로 휘감고…… 순식간에 수정알에서 튀어나온 공방의 가디언들이 제압되었다.
―터무니없군, 정말.
드라고니아가 맥없이 말했다.
그물을 향해 가디언 두엇이 마력을 담아 불길로 변한 숨결까지 뿜어냈지만, 왕의 그물은 그 마력을 흩어버렸고 여려진 불길을 삼키며 더욱 강도를 높일 뿐이었다.
투란은 놀라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덜거렸다.
‘터무니없기는 산돌프가 터무니없지! 대체 여길 어떻게 찾아낸 거야? 뭔 생각으로 나 하나 달랑 끼고 여길 오겠다고 작정한 거냐고! 이런 것들이 있는 줄 몰라서 그랬을까?’
―알고 저지른 짓은 아니겠지. 네가 쫓아 보내지 않았다면 남아서 싸움을 도왔을 거란 거, 알잖아.
‘그건 내가 귀찮은 거고…… 에잇, 빨리 정리하자고. 이 공방,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야?’
투란은 제압된 공방의 가디언 한 무리를 흘깃하면서 공방 전체의 규모를 가늠해봤다. 왕의 감각이 갖춰지면서 프로브의 지각범위도 확연히 달라졌기에 금방 알 수 있었다.
위로 수십 미터, 아래로 수백 미터…… 사방으로 수백 미터인 거대한 바위상자처럼 공방은 절벽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야, 저 위에 있는 거는 뭐야? 에네르기움이 위아래로 있는 거야?’
―공방을 움직이는 에네르기움은 아래쪽 하나뿐이다. 위는…… 아무래도 공방과 함께 만들어둔 거주지 같은데?
‘거주지?’
―영혼을 옮겨 새로운 몸을 얻었다 해도 거기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사이에 나름대로 생활하기 위해 준비해둔 구역으로 보인다.
‘악마가 생활하는 곳이라고?’
투란으로서는 뭔가 어이없는 기분이었다.
악마의 일상생활이라니!
드라고니아가 쓴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일단 악마종도 기본적인 생명활동을 하는 존재니까. 지성까지 갖춘 몬스터, 쉽게 생각하면 그런 걸 악마종이라고 불렀다고 봐도 된다. 그중에는 자기 거주지에 이것저것 물건을 모아두는 녀석들도 있었어. 공방에 생활구역을 더해놨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아.
‘뭔가 이름만 악마이고 하는 짓이 몬스터인 거지, 인간과 별 차이 없는 녀석들이었나 보네?’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만, 절대로 인간과 함께…… 아니, 이 세계와 함께 존재할 수는 없는 녀석들이었다. 세계를 파괴하거나, 아니면 자신들만이 생존할 수 있도록 세계의 섭리를 바꾸려 한 녀석들이니까.
뚜득, 뚝!
투란과 드라고니아가 이야기하며 공방 전체를 가늠할 때, 그물 속에서 거칠게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응?”
―허?
투란도 드라고니아도 뭐가 부러졌는가 보다가 놀랐다.
묶어 그물에 싸놓은 녀석들이 악착같이 부대끼고 움직여서 자신들의 뿔을 서로 비비적대며 분질러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공방이 조금 큰 울림을 토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만들어진 육체가 가디언의 역할을 위해 줄줄이 벽으로 밀려 올라오며 수정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야말로 수를 더해서 밀어붙이겠다는 단호한 태도!
―뭘 하든 빨리해야겠다, 일단 저 아래 에네르기움부터!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말했다.
투란은 조용히 왕의 형상을 완성했다.
수정알이 깨지려는 위로 그물이 덧씌워져 그것을 묶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그물이 몇 겹이 되었고, 이미 그물 안에 갇혀 묶인 녀석들은 이제 눈조차 멋대로 깜박거리지 못하는 몰골이 되었다. 가죽, 살갗, 뼛속까지 스며든 왕의 거미줄에 저항할 수가 없었으니!
고요해진 풍경 속에서 검은 잉크를 발아래로 흘리는 아라크녹스의 왕이 발끝을 움직였다.
수정은 아무 기척도 없이 갈라졌다.
왕의 형상이 그대로 수정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갈라진 틈새는 불룩거리며 넓혀졌다 좁혀들었다 하며 아라크녹스의 왕을 지정된 한 곳, 에네르기움을 품은 육체 앞으로 옮겨줬다.
그 앞에서 투란은 보다 분명하게 알아차렸다.
이 투명한 수정, 이것이 사실은 에네르기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힘의 흐름이란 것! 그 힘의 흐름이 세계에 간섭해서 수정이란 형질을 빚어냈다는 것! 바로 앞에 서지 않으면 아라크녹스 왕의 감각으로조차, 그저 수정을 닮은 어떤 물질이라고 여길 정도!
‘이건 꼭…….’
문득 에네르기움의 흐름, 그 빚어진 형질…… 수정이 쌓여 이뤄진 거대하고 단단한 상자의 형태가 무엇인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투란의 마음을 스쳐갔다. 낯설기보다는 아주 낯익은 방식, 하지만 에네르기움과는 아예 다른 성질을 지닌 특별한 것.
스읏, 왕의 손끝이 가볍게 산양 머리부터 인간의 가슴팍까지 그어 내렸다.
검게 맺힌 잉크방울이 곧바로 그어진 금을 따라 열리는 틈새로 흘러갔고…… 붉은 줄기를 머금으며 변해갔다.
―뭘 하는 거냐? 심장 부위에서 그냥 파내면 연결이 끊어지는데……. 이걸 남겨두면 다른 몸뚱어리를 전부 부셔도 소용없어. 여길 다 때려 부숴도 헛짓이 될 수 있고…….
드라고니아가 의아한 듯, 물으며 재촉했다.
투란의 마음속으로 드라고니아가 에네르기움이 어떻게 악마의 예비 육체 속에 숨겨져 있는가를 투영시키며 하는 말이기도 했다. 만약의 경우에는 에네르기움을 품은 육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로운 육체공방을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한번 더 짚어주면서.
‘기다려봐, 이거 아무래도 마그마 로드가 맛봐야 할 것 같다고.’
―에네르기움을? 그건…… 암석이나 광물이 아닐 텐데?
‘하지만 닮았다고. 마그마 로드의 결정처럼, 이것도 특별한 물질을 형성하잖아. 기다려봐.’
―그 전에, 이 녀석이 발광하지 못하게 묶어둬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거, 영혼은 없어도 살아 있거든?
‘어? 엥?’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과 함께 에네르기움을 품은 악마의 예비 육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살짝 갈라놓은 상처 주변이 움찔거리더니, 시퍼런 눈알을 데굴거리면서 수정 형체 안에 박혀 있음에도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두 팔을 움직여 투란을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런 몰골을 보며 투란은 가볍게 어깨를 움직였다.
왕의 허리춤에서 두 가닥 지체(肢體)가 재빠르게 움직였고, 악마의 예비 육체가 멈췄다.
―정말 터무니없군. 지금 체내 신경이랑 혈관, 근육에서 골격까지 전부 묶어버린 거냐? 아예 따로 움직이지 못하게 두개골 안의 뇌수까지 모조리 묶고 꿰어버렸어?
‘알면서 뭘 물어.’
투란은 간단히 대답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심장으로, 에네르기움을 향해 불어넣었다.
반응은 금방 일어났다.
주변 수정이 짙은 회색을 머금었다.
회색 사이로 붉은 광채가 가늘게 번개가 치듯이 뻗어나갔다.
악마의 예비 육체가 갈라졌다.
가슴부터 일어난 균열이 수직으로 번지고, 서서히 좌우로 퍼지면서 심장 한 덩이만 덜렁 남겨진 꼴이 되었다. 육체의 파편이 회색 수정 형체 속에 고정되었고, 이상한 무늬가 새겨진 하얀 심장이 마그마 로드의 검은 손아귀에 얌전히 놓인 광경이었다.
‘마법 각인인가?’
무늬 속에서 맥동하는 힘을 느끼며 투란이 물었다.
―아니야. 에네르기움은 마법이 아니야. 저건…… 음, 설명하기 난감하군. 연금술의 극한에 이르렀지만 결코 마법의 영역으로는 넘어서지 않는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데…… 살덩이로 이뤄진 기계라고 하면 알겠어?
‘알 리가 있냐! 그래서, 저건 그냥 낙서 같은 거라고?’
―낙서일 리가 있겠냐! 의미가 있어, 단지 그 의미는 이 공방을 만든 악마 녀석만 알고 있…… 너, 왜 마법 각인이라고 물었지?
으르렁거리던 드라고니아가 문득 이상함을 느낀 것처럼 되묻고 있었다.
투란은 가만히 에네르기움, 하얀 심장을 왕의 텅 빈 눈구멍에 가까이하며 대답한다.
‘이 무늬가 이 심장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지시하거든. 가늘게 이어진 아주 많은 실, 그게 이 무늬를 만들어. 그래서 무늬를 건드리면 심장이 지시를 받고, 그 지시대로 움직여. 알아듣겠어?’
―무늬가 조작(操作)의 핵이란 말이군. 알아들었다.
‘왜 넌 알아듣고 난 못 알아듣는 거냐고!’
투란은 투덜거렸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느낄 수 있었다.
투덜거림은 겉 핥기에 불과하고, 투란의 마음은 온통 에네르기움을 휘감아가는 마그마 로드에 집중된 채란 것…… 마그마 로드가 에네르기움을 맛보면서 변화하고 있다는 것!
더불어 왕의 감각이 에네르기움의 구조를 완전히 간파했다는 것까지!
―이 터무니없는 녀석…….
과연 투란이 여기서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
드라고니아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순수한 몬스터의 감각으로 악마의 공방을 해체하고 그 안을 탐색했다는 경우는 드라코눔의 기록에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