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43)
―진심이냐?
드라고니아의 물음은 아주 진지했다.
‘진심이겠냐!’
투란은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이제는. 그러니 진심이든 장난이든 하려고 한다면…….
‘안 해!’
한층 더 신중하게 묻는 말에 투란이 울컥해서 대답했다.
소리 없는 대답이었지만 산양의 머리와 입에서는 푸릇거리는 거센 숨결이 토해지면서 투란의 기분을 몸짓과 함께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러면…… 어쩔 거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 냉철하게 묻고 있었다.
산양의 입가에서 새삼스러운 한숨이 나오며 그 눈길이 까닥거리는 뿔의 움직임과 함께 앞에 놓인 광경을 다시 한번 훑었다.
‘일단은…… 에네르기 하트, 에네르기움을 챙겨 넣어야지. 공방과 별개로 여길 유지하고 있는 저걸 없애야 여길 어떻게 해볼 테니까.’
―에네르기움이 하나 더 있다고?
‘응. 어? 저거 에네르기움인데 못 알아봤어?’
투란은 투명해져 허공 같은 벽 안의 한 곳, 미세한 균열이 맺힌 듯한 허공을 눈짓하며 대답했다.
―못 알아보겠다, 전혀.
‘그래? 흠…… 확실히 공방을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거랑 다르긴 다르다니까. 저건 거주구역의 방어, 채취한 수집품을 유지보존하려는 목적이라 작동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저걸 기반으로 새 공방을 위한 에네르기움을 만들 수도 있…….’
―프로토 타입! 에네르기움의 원형이 있단 말이냐!
‘엥? 원형?’
투란은 갸웃했다.
손바닥에 불룩한 무늬 가득한 두개골, 그 안에서 나오는 지식은 드라고니아가 에네르기움이라 부르는 에네르기 하트가 용도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한다고 했다. 똑같은 에네르기 하트라도 용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작용만 할 뿐이라고.
한데 드라고니아의 놀라는 말투는 뭔가 원형이란 것이 따로 있고 거기서 상황에 맞춰 변형된 에네르기움을 만들어낸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이런 생각을 인정하듯…….
―육체공방의 에네르기움은 다른 용도로 변형이 불가능해. 오직 공방을 위해 작동할 뿐이야. 그 원래 형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단지 그게 악마종의 독특한 동력원이고, 어떤 형태로도 가공할 수 있는 원형이 따로 있다고 추측만 하고 있었어. 드라코눔에서는 그 이상의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그래? 하지만 이 머리뼈는 생체공방의 에네르기 하트도 필요하면 변형시켜서 사용할 수 있다는데? 흠, 얘네 능력으로만 되는 거려나.’
―뭐? 에네르기움을 변형할 수 있다고!
‘우선 좀 챙기고, 여기 좀 정리하고 나서 얘기하자.’
투란은 벽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뿔을 들이밀듯이 바싹 붙은 다음에 왼손을 밀어넣었다. 손바닥에서 두개골이 입을 열었고, 벽 속의 일그러진 허공을 물었다.
곧바로 빛이 맺히며 번져갔다.
두개골 안에서, 두개골에 새겨진 무늬에서…… 그리고 벽 안에 가득했던 온갖 것들 사이로 이어지며 산란하는 빛이 벽을 가득 채웠다.
투란은 자신의 손등이 불룩거리는 것을 봤고, 손목도 울룩불룩하면서 팔꿈치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뒷골로 이어지는 감각은 이 벽에 모아둔 수집품이 빛의 형상을 한 특별한 벌레…… 나노미터 단위의 벌레 군체(群體)를 통해 기억(記憶)의 형태로 저장(貯藏), 보관(保管)되는 과정을 알게 해줬다.
에네르기 하트가 그 중심에 있었고, 단순히 뒷골이 욱신거리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이 영혼으로 스며들며 ‘기억’이란 형태를 갖는 상황이었다.
이 악마의 거처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 와중에 투란은 산양 머리의 뇌수 안에 ‘악마의 심장’을 겹쳐놨고 스며드는 기억을 받아들이는 ‘투란’을 형성시킨 채였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을 기반으로 킨사티어의 생체공방을 만들어낸 악마종족이 어떤 수작이라도 부리면 바로 대처할 준비를 한 셈이었다.
하지만 칼 어쩌고 형제들이란 악마종에게 다른 속셈은 없는 모양이었다.
킨사티어의 팔을 먹어치우고 그 자리를 차지한 컨트롤 코어는 고유마력에 어우러지면서 명확하게 투란의 생체조직의 일부가 되어 있었고, 그 안에 담긴 기능은 자연스럽게 몬스터 로드에게 귀속될 뿐이었다. 마치 킨사티어, 이 몬스터의 본능이 새로 익힌 기술일 뿐이란 듯.
푸르르…… 푸흣!
거센 콧김과 함께 빛을 움켜쥐듯이 주먹이 쥐어졌다.
벽이 사라졌고, 허공에 고정되어 있던 엽기적인 형상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빛이 희미하고 여리게 불씨처럼 여기저기에서 휘날렸지만 쥐어지는 손아귀에 빨려 들어간 빛과는 어울리지 않는 티끌처럼 보일 뿐이었다.
문득 투란은 손을 펼치면서, 희미한 빛의 잔재만이 남은 채로 무늬 가득한 두개골이 사라진 것을 봤다. 마지막으로 흡수한 에네르기 하트의 따스한 느낌이 서서히 흐려지는 것을 확인하며 투란의 눈길이 다시 한번 주변을 훑어갔다.
나불나불 떠들던 머리통이 놓여 있던 나무 받침대는 원래 나무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빛의 흐름 속에 사라진 채였고, 킨사티어를 낱낱이 해부해놨던 공간도 그저 불씨의 여린 광채가 점점이 흩어진 채로 텅 빈 채였다. 벽도 사라지고 바닥도 단단하니 바윗덩어리 같은 텅 빈…….
“넓네?”
불쑥 투란이 푸릇거리는 숨결과 함께 중얼거렸다.
계단에서 올라서는 입구 주변은 좁았지만 점차 넓어지면서 거의 15미터 정도의 폭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 폭으로 길이는 어림잡아도 이십여 미터를 훌쩍 넘어가고, 천장과 바닥 사이도 4, 5미터 간격을 둔 채니 킨사티어의 몸뚱이라 해도 넓게 느껴졌다.
―투란, 창고가 더 있다.
‘어?’
갑자기 나온 말과 함께 투란은 한편을 짚어주는 감각을 느꼈다.
입구 한쪽 벽을 타고, 눈으로 보면 그냥 매끈하게 이어진 듯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풍경 속으로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하네, 저쪽은 공방도 아니고 에네르기 하트도 없는데?’
악마가 남긴 지식을 되새기다가 갸웃하면서 투란은 그쪽으로 갔다.
과연 옆으로 새는 통로 속에는 뭐가 있을까.
―악마의 유품이지만 악마의 능력이나 기술과는 상관없는 것을 모아둔 모양이다.
‘상관없는……?’
한층 더 의아해하며 투란은 통로로 발을 디뎠다.
어둠이 바로 걷혔다.
통로 벽을 타고 빛열매의 줄기가 잔뜩 뻗어 있다가 반응한 때문이었다.
‘이거 캄캄한 곳에서는 저절로 빛나는 거 아니었나?’
마치 불을 꺼뒀다가 켠 듯한 광경에 투란은 어리둥절했다.
답은 손바닥에서 바로 뒷골을 타고 뇌리로 스며들었다.
생체조작, 컨트롤 코어가 이 거주구역 내에 들여놓은 모든 생체조직을 지배하고 조작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집품이나 해부된 조직 따위와는 상관없이 이 거주 구역 안은 아직 칼 어쩌고 형제들이 남긴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뭐냐?
갑작스럽게 투란의 마음에 스며오는 다양한 지식, 심상 속으로 투영되는 것들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의태(擬態), 위장(僞裝)을 위한 도구들…… 델아브나인폴트람의 기술, 문명과는 너무나도 어긋난 이 세상의 것들……이라는데?’
―아, 그랬군. 그래서 마법의 자취가 맴도는 거였어.
‘자취라니?’
―들어가서 보면 알 거다. 산돌프가 얻은 지팡이,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겠지만…….
말을 들으면서 투란은 통로를 걸었다.
통로는 이십여 미터 정도로 생각보다 길었고, 그 끝에는 침대 모양과 함께 커다란 탁자, 벽감의 형태를 갖춘 방이 있었다. 탁자와 벽감에는 물건, 그릇 따위가 대강 얹어진 채였다.
그중에서 투란의 눈에 바로 들어온 것은 탁자 위의 칼자루였다.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칼자루, 칼날이 없는 칼자루뿐인 형태였기에 투란으로서는 바로 인힐트 블레이드를 생각하며 다가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달칵, 치이잉.
칼자루를 쥐고 올리는 순간, 투란의 기대에 호응하듯 칼날이 뿜어져 나왔다.
중심에서 하얀 무늬가 넝쿨처럼 번져가는 황금의 칼날, 황금 상감 위로 푸르고 투명한 보석이 치장된 칼자루의 묵직함이 바로 마음에 드는 투란이었다.
―악마종이 만들 리가 없는 검인데?
드라고니아가 깊은 의심을 품은 듯이 말했다.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인간이 만들었어. 마도구 장인…… 인간으로 의태해서 의뢰한 거야. 강인해서 악마의 손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그걸 조건으로 말이지. 강철로 된 악마라도 쪼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검으로 만들어냈다네.’
―이런 검을 만들 정도의 마도구 제작자가 상대가 악마종인 걸 몰랐다고? 그거 굉장히 의심스러운 이야기다만?
‘그래? 그건…… 여기 의태용 도구를 썼다는데?’
투란은 칼날을 거두고 칼자루를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서 그 곁에 놓인 목걸이를 집어 올렸다. 목걸이의 굵은 줄이 살아 있는 듯했고, 장신구(裝身具)는 붉은 색채의 눈알처럼 보였다. 이를 투란이 목에 거는 순간, 붉은 막(膜)이 킨사티어의 온몸을 완전히 덮었다.
―투란?
‘의태……하는 거야, 기다려봐.’
투란은 이질적으로 시야에 끼어든 광경을 보며 대답했다.
눈앞으로 투명하고 붉은 막이 펼쳐졌고 그 속에 킨사티어, 지금 투란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모습을 덮은 붉은 막이 어떤 형체를 꾸밀 것인가를 묻고 있는 광경이었다. 체격의 크기부터 머리, 손 모양까지 모조리 지정하면 이 막이 자신의 모습…… 킨사티어의 형체를 그 속에 구겨넣어 감춘다는 걸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생체장착형 의태, 그런 거래.’
그 지식을 통해 얻은 이름을 전하며, 투란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마음속에 떠올려서 붉은 막으로 투영(投影)했다. 머리에 스며든 지식을 그대로 따른 셈이었다.
그리고 투란의 몸을 덮었던 붉은 막은 2미터 20센티, 뿔을 셈하지 않더라도 그런 높이인 킨사티어를 뿔까지 억눌러서 170센티미터의 인간 형상…… 투란 본래의 모습으로 구겨넣었다!
“후아! 아하핫, 이렇게 변신하는 거네? 변신한 채로 본 모습이라니!”
일부러 목소리를 울리면서 투란은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둘러봤다.
킨사티어의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그 위에 덧씌워진 인간의 감각이 별개로 기능하는 것을 훤히 알 수 있었다.
―본모습이 아니잖아! 키도 더 크고, 팔뚝도 더 굵고, 어깨도 더 넓구만!
드라고니아가 잔소리했다.
투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원래대로 되는지, 아니면 내가 상상한 대로 되는지 확인하려고 일부러 차이점을 만든 때문이지! 원래 내 몸에 비하면 조금 둔하다고, 이 의태의 몸!’
―슬쩍 체격 키우고, 모양 잡은 거잖아. 아무튼…… 그만해라, 악마종의 변신능력이 겨우 도구만으로 이 정도인 걸 보니 짜증 나거든.
‘응? 이거, 너네 마법으로 구별 못 해?’
―안 돼, 마법으로 투시해봐야 그냥 보통 사람으로 보여. 단순히 킨사티어를 압축시키고 껍질을 씌운 게 아냐. 내부 골격까지 미세한 살점 속으로 전부 구겨넣어서 인간의 골격, 내장까지 완전히 구현해놨다. 어지간해서는 간파할 수 없어.
‘헤에…… 몬스터 로드인 것도 알 수 없다는 말이야?’
―뭐? 그건…… 그러네! 이런 망할!
드라고니아가 깜짝 놀라서 욕을 하는 사이, 투란은 다시 킨사티어의 형체로 변하고 있었다. 한데 변신이 끝나고 나니 목걸이는 완전히 사라졌고, 오직 킨사티어의 몸만이 남았다.
―그거 몸속에 감춘 거냐?
욕하다가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아무래도 마법으로 분별할 수 없는 변신을 하게 해주는 도구를 따로 더 관찰해보고 싶었던 듯한 말투였다.
‘생체장착형이라고, 일단 붙여놓으면 그냥 몸의 일부가 되는 도구. 한번 쓰고 나면 그냥 몸에 그 기능이 생기는 셈이야. 음, 그리고…….’
―이런 못된 악마종자들! 그런 식으로 몸을 바꾸면서 쉽게 의태하고 다녔었구나! 어쩐지 새로운 육체에 변신능력을 너무 쉽게 갖춘다 했더니만!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당했어!
‘대체 언제 적 얘기냐? 이제 와서 뭘 그리 분하다고. 야, 그보다 이거 보라고, 이거. 이 헝겊!’
―이차원(異次元) 주머니잖아? 꽤 오래된 형식이네?
‘오래된?’
―요새 그런 식으로 만드는 녀석 없으니까. 드라코눔이든, 이 산맥의 고대왕국이든 말이야. 간단한 손수건, 이건 걸레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 기본적인 모양에서 몸에 두를 수 있는 망토 모양으로 확대 가능하지. 옛날에 다용도 물품으로 구상해서 이게 기본적인 모양이었다만…… 척 봐도 걸레잖아, 걸레.
투란은 ‘데몬스 러그’라는 이름까지 붙어 있는 헝겊을 다시 봤다.
확실히 수건이라기보다는 걸레에 가까운 넝마로 보이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