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5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46)
Chapter 130. 데몬스 그라토
“정리부터!”
투란은 자신에게 선언부터 했다.
―뭘?
드라고니아는 의문부터 꺼내 들었다.
탁자 위에는 이제 색다른 것이 없었고, 벽감(壁龕)의 선반이나 침대 위아래 어디에도 특이한 성향을 드러내는 물품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해 보이던 것, 신기한 기능이 담긴 것은 걸레처럼 보였던 헝겊―데몬스 러그―와 깃털 달린 가죽고리, 잉칼의 날개고리랑 황금칼날을 뿜어내는 인힐트 블레이드뿐이었다.
그걸 모두 챙긴 다음인데 대체 또 뭘 정리한다는 것인가?
남은 것은 그저 손장난으로 이것저것 꾸며놓은 듯한 조잡한 것이 전부인데.
거주구역 입구에서 악마종이 동족을…… 좀 애매하지만 고향이 같다는 동족을 위해 남긴 것은 모두 다 처리한 다음이기도 하니, 더욱 투란이 정리하자는 것이 뭔가 알 수가 없다.
“홀시딘과 얘기해야잖아. 그러니 일단 분위기 잡아야지!”
―분위기?
드라고니아가 의아해하는 사이, 투란은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킨사티어의 형상을 거둬들였고, 잠깐 벌거숭이인 채로 ‘천칭’의 문장이 검은 얼룩처럼 나타나게 했다가 재빠르게 검은 잉크가 가죽을 형성시키도록 해서 바지와 장화의 형태를 꾸몄다. 곧이어 마법 배낭 블랙레온을 불러들여 허리에 찬 다음, 마법으로 적당한 의자 모양을 꾸미고서는 탁자에 팔꿈치를 올리고 앉았다.
황금 칼자루를 적당히 손 앞에 당겨 놓은 다음, 투란은 로열가든의 징표를 향해 정신을 집중하며 중얼거린다.
“홀시딘…… 알드바인의 그랜드마스터 홀시딘, 나의…… 우리의 시크릿 키퍼 홀시딘…… 급한 이야기가 있어요. 대답해요.”
―별로 안 급하잖아?
슬쩍, 드라고니아가 딴지를 걸었지만 투란은 무시했다.
홀시딘은 로열 클래스의 부름을 무시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황금빛 안개가 투란의 손가락을 고리처럼 휘감았고 살짝 허공으로 번지면서 바로 홀시딘의 옆얼굴 형태를 갖췄다. 웅얼거리는 듯하지만 분명한 소리가 투란의 귓가에 바로 파고든다.
“왜? 지금 바쁜데!”
용건만 간단히, 빨리 말하라는 재촉이었다.
투란은 빠르고 간결하게 대답한다.
“악마가 몸뚱이를 잔뜩 쌓아두고 만드는 곳을 찾았는데 말이죠, 알드바인에서 반나절 거리인 절벽에서 말이에요.”
‘뭐? 야, 그게 무슨!”
홀시딘의 반응은 신속했다.
곧바로 옆얼굴이 홀시딘의 머리 형상으로 변했고, 으르렁거리는 표정과 마주쳐오는 눈동자까지 황금빛 안개로 뭉클거리면서 투란을 마주 보는 모습이 되었다.
―흐음? 다중사고(多重思考)의 주체(主體)를 이쪽으로 돌렸네?
드라고니아가 홀시딘의 심리상태를 계측하듯이 말했다.
조금 전까지 저쪽 일에 집중하면서 곁가지로 살짝 투란에게 돌렸던 홀시딘의 마음가짐이 투란을 주로 하고, 저쪽을 곁가지로 삼은 상태가 되었다는 말…… 마법사의 복잡한 사고방식에 대해서 지겹도록 들어온 투란이라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조금 더 신중하게, 산돌프를 떠넘길 이야기를 쏟아낸다.
“일발조루 산돌프라는 마법사가 있어요, 마법 센 거 하나 쓰면 마력이 빨리 바닥난다고 일발조루라는 별명이 붙었다는데요…….”
“빈궁마력(貧窮魔力) 학파의 후예라면 알아!”
홀시딘은 투란이 산돌프에 대해 좀 더 설명하기 전에 말을 잘랐다.
뭔가 정상적인 학파 명칭은 아니란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투란은 더 자세히 산돌프의 신상에 대해 늘어놓기보다는 본론으로 바로 넘어간다.
“모자라고 적은 마력을 채울 아티팩트를 찾았다고, 나에게 동반해서 도와달라고 의뢰를 넣었어요. 왜 나인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래서 절벽 중간 정도에 뚫린 굴로 들어왔고 산돌프는 막대기 하나 챙겨서 돌려보냈어요. 그다음이 문제인데, 여기 있는 병신 같은 사티로스 닮은 몬스터를 때려잡았더니, 멀쩡하게 날개 달린 놈이 튀어나오잖아요. 마저 때려잡고 바닥을 까뒤집어보니까, 그런 놈이 열매 맺듯이 잔뜩 있는 거예요. 하나 나오면서 빈자리에는 새로 만들어 넣기까지 하더라고요. 홀시딘, 뭔지 알겠어요?”
“육체를 옮겨 다니는 영체(靈體) 능력을 지닌 악마의 공방이로군. 정말로 알드바인 근처에 그게 있었어?”
“반나절 정도 와서 절벽을 타고 내려왔더니 있던걸요.”
“젠장, 헛소리뿐인 전설인 줄 알았더니 정말로 데몬스 그라토가 화이트 클리프에 숨겨져 있었나…….”
홀시딘이 몹시 떫고 쓴 걸 입에 문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은 투란을 의아하게 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고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는 소리니까!
“데몬스 그라토? 여기 알아요?”
동시에 투란은 드라고니아게도 소리 없이 묻고 있었다.
‘그게 뭐야, 너는 들은 적 없어?’
홀시딘보다 빠르게 드라고니아가 대답하는데, 어딘가 쓴웃음 짓는 듯했다.
―악마의 작은 정원, 그 정원에 꾸며놓은 동굴이란 뜻이다. 흔히 악마의 정원이라고 부르지. 악마의 은신처이면서 몰래 전력을 회복할 수 있는 요새를 일컫는 말이다. 굳이 이런 육체공방이 아니더라도 그리 부를 수 있어. 하지만…… 전설로라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뜻밖인데? 보통 그런 전설이 있는 곳 가까이에 도시를 세운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궁금하네.
이야기가 소리 없이 투란의 마음으로 스며드는 사이에 투란의 귓가로 홀시딘의 말도 바로 파고들고 있었다.
“거신목이 파괴될 무렵, 그 성스러운 잔재를 이용하는 악마가 있었다는 전설이야. 성스러운 힘을 거부하기는커녕, 받아들여서 보다 강력한 힘을 추구하는 악마의 일족. 그런 녀석들이 화이트 레이크 주변을 맴돌았고, 알드바인의 남쪽 절벽지대…… 그 길고 넓은 지역 한구석에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정원을 꾸며놨다는 이야기였지. 하지만 알드바인의 초대 마스터부터 내게 이를 때까지, 알드바인 근처에서 악마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고! 그러니 그냥 허풍이라 여겼는데…….”
“산돌프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여기서 산돌프가 막대를 챙겨가니까, 날개 달린 사티로스 같은 게 막 움직이는 것 같아서 말이죠.”
투란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의심 가득하다는 표정을 꾸민 채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홀시딘의 황금빛 얼굴 위로는 납득한다는, 투란이 아니라 산돌프에게 납득한다는 표정이 피어나고 있었다.
“빈궁마력 학파 녀석들은 거의 이백 년이 넘게 그 빈약한 마력을 채워줄 악마의 유품을 찾아다녔으니까. 정상적인 마력의 원천은 그 녀석들에게 많이 부족하고, 다른 학파의 마력 원천은 그 녀석들이 적응하기에는 너무 버거웠거든. 그래서 이리저리 범위를 좁히다가 도달한 것이 악마의 유품, 혹은 마수가 남긴 잔해였어. 한 칠팔십 년 전에 그 학파의 수장이 마수의 잔해를 통해 부족한 마력을 채웠다고 했는데…… 물려주지는 못해서 그 뒤로 다시 수십 년 동안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말은 들었지.”
“그래요? 그런데 하급 헌터로 위장한 나한테 금전 열 닢을 주면서 호위로 삼아 데려온 거는요? 산돌프가 나에 대해 뭔가 눈치챈 거 아닌가요?”
이백 년, 적어도 수십 년이란 말은 산돌프가 여길 어찌 알았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 투란에게 강제로 납득시켰기에 나온 물음이었다. 그렇다면 나 하나 데리고 여기 온 것은 어떠냐는, 정말 수상하지 않느냐는!
“절벽에 붙은 동굴이라며? 그러면 절벽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헌터를 섭외하는 게 당연하지. 너, 알드바인 성벽에서 붕붕 날아다녔다더라? 그 많은 헌터들 사이에서 눈에 팍 띄었다던데?”
“누, 눈에 띄었어요?”
투란이 흠칫하며 당황한 소리를 냈다.
황금빛 홀시딘이 한숨 쉬는 시늉과 함께 말한다.
“나랑 같이 쟈카라 산림에 있는 것도 봤는데, 성벽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케이라가 꽤 관심을 갖고 널 관찰한 결과를 나한테 바로 보내주더라. 대강 얼버무려놓기는 했지만, 헌터 길드에서도 너에 대해 하급이라는 평가는 전혀 없을 거야. 아, 그건 나중에 고민하고! 그래서, 그 날개 달린 악마 녀석들은? 하나씩 나오는 거, 다 때려잡고 날 부른 거냐?”
“에? 아, 그냥 바위째로 다 녹여서…… 뭉개놨어요. 그러다 보니까, 빈방이 나와서 이렇게 앉은 건데 말이죠. 여기 이런 게 있잖아요.”
투란은 얼렁뚱땅 대답하며 황금 칼자루를 들어 올렸다.
홀시딘은 투란이 악마의 정원을 파괴했다는 말을 듣고 안도한 듯이 긴 숨을 내쉬다가 칼자루를 보고 ‘그게 뭐?’ 하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려 보였다.
그래서 투란이 바로 칼자루를 쥔 손을 흔들며 칼날을 뿜어냈고, 이는 곧바로 홀시딘의 색다른 반응을 끌어냈다.
“골든 블레이드……? 하얀 안개의 무늬……! 야, 그게 정말 악마의 정원 빈방에서 나왔다고?”
“이게 뭔지 알아요?”
“그건…… 오래전에 궁정마법으로 만들어져서 하사된 마법의 보검이라고!”
“궁정……마법?”
“칠왕국, 아니 브로큰 킹덤이라 불리기 전의 에아본 왕국의 궁정에서 하사품으로 만든 보검, 화이트 미스트가 바로 그 검이야! 인힐트 블레이드이면서도 온갖 마법으로 무장한 보검이라고!”
“헤에…… 그런 걸 악마가 수집을 해놨군요.”
황금칼날의 중앙부분에 번져 있는 하얀 무늬를 보며 투란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홀시딘은 이 말을 바로 강력하게 부정한다.
“아냐! 악마가 수집할 것이 아니라고, 그건!”
그 완강한 태도는 드라고니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무슨 사연이 있나 보네?
‘사연?’
투란은 갸웃하는 기분을 그대로 담아 묻는다.
“뭐가 문제인 거예요?”
홀시딘이 지친 표정으로, 투란의 물음에 겨우 격렬한 감정이 제동(制動) 걸린 것처럼 대답을 한다.
“에아본 왕국의 자작가문에 하사된 보검이었고, 그걸 하사받은 자작은 용사로 꼽혔어. 고대 악마와의 전장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고. 에아본 왕국이 으깨져 사라진 다음에도…… 화이트 미스트의 보검은 자작 가문의 후예에게 이어지면서 많은 무용담을 남겼지. 그러다가 그 후예의 대가 끊기면서 사라졌어.”
“그러니까 그다음에 악마가 주워 놓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중얼거리던 투란은 홀시딘의 고개가 휙휙 저어지는 광경에 말을 멈췄다.
“줍는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방금처럼…… 야, 너 어떻게 그 칼날을 뽑아낸 거냐? 화이트 미스트는 자작 가문의 계승각인 없이는 사용 못 하는데! 너, 어떻게 한 거야?”
“계승각인? 뭐예요, 그게?”
“마법물품에 주인을 인식시키는 마법의 각인! 화이트 미스트를 하사받은 자작가문의 후계자가 아니면 못 쓴단 말이야! 그런 걸…….”
“몬스터, 여기서 튀어나온 몬스터를 한 마리 삼켰어요. 그 몬스터의 손으로 잡자마자 바로 칼날이 튀어나오던데요? 그다음부터는 이렇게 내 손으로 잡아도 되고.”
키링, 사르릉!
말을 하는 사이에 투란의 손에 쥐어진 화이트 미스트는 그 칼날을 거두고 뿜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홀시딘의 표정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정말 그런 거라면, 그 자작가문이 악마의 손에 떨어졌었다고 봐야 하겠군. 과연 그렇다면 거신목의 도시에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많은 일들이 해명이 되기는 하네. 내부에 악마의 첩자를 둔 셈이었을 테니까.”
“흠? 무슨 말이에요?”
투란이 묻자 홀시딘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들려줄 정도로 짧은 이야기는 아냐. 어쨌든, 대체 왜 나를 부른 거야? 감춰진 악마의 몸을 다 뭉겨놨고 거기 있는 보검도 손에 넣었어. 그렇다면 상황이 그럭저럭 정리된 거 아니냐? 뭣 때문에…….”
“산돌프요.”
투란은 갸웃하는 홀시딘의 말을 자르며 말을 잇는다.
“여기서 막대를 가져갔는데, 그거 그대로 쓸 수 있는가 모르겠고…… 그걸 뽑아낸 다음에 여기 깔려 있던 멀쩡한 몬스터가 튀어나왔어요. 그러니까, 누가 여기 악마들이 움직이지 않도록 박아놓은 거를 산돌프가 뽑아냈다고요. 그런 걸 갖고 갔는데, 괜찮겠어요?”
“뭔 소리인가 헷갈리는구만! 아무튼, 네가 보기에 그 악마의 유품이 멀쩡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이지?”
“산돌프가 그걸 잘 다룰 수 있는가, 그냥 둬도 되는가…… 어쨌든 알드바인으로 갔으니까 말이죠. 악마의 유품이란 게, 막 사람 사는 거리를 돌아다녀도 되는가도 좀 의심스럽잖아요.”
투란은 알드바인이란 한마디에 살짝 힘을 주고 말했다.
과연 그 힘준 효과가 있는 듯, 홀시딘의 눈가가 꿈틀했다.
“그렇기는 하군. 알았다, 알드바인 쪽으로는 내가 연락을 넣어두지. 그쪽은 그렇게 하고…… 투란, 너 그 악마들이 바글거리는 곳 제대로 정리한 거지? 거기서 다시 날개 달린 사티로스같이 생긴 놈이 나올 리는 없다고 하는 거지?”
“없어요. 다른 곳에 다른 악마의 정원이 있다며 모를까, 여기는 정리되었어요.”
“무서운 얘기 하지 마! 아무튼, 나 바쁘니까 지금은 이 정도로 하자.”
홀시딘의 금빛 형상이 뭉개지며 흩어졌다.
가만히 금빛 안개가 손가락의 고리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며 투란은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데몬스 그라토, 악마의 정원.
자작 가문의 보검…….
도대체 칼 어쩌구 형제들은 왕국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