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48)
알드바인의 남쪽 성벽, 그로부터 수백 미터의 숲을 지나면 곧바로 정체를 드러내는 높은 절벽…… 화이트 레이크 쪽으로 담장처럼 멀리 펼쳐진 풍경 속에서 하얀 폭포가 기둥처럼 간격을 두고 쏟아져 내리는 광경이 보이는 곳이었다.
그 절벽의 정상에서 십여 미터 정도 아래, 두껍고 단단한 바위 지형이 한 성질 하겠다는 것처럼 불끈거렸다. 그리고 곧 그 울퉁불퉁해진 모양이 오그라들었다. 암반(巖盤) 깊은 곳에서 누군가 심호흡을 하며 들이켜는 듯한 모양이었고, 그 결과로 구멍이 생겨났다.
구멍 속에서 투란이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절벽 아래와 위를 살폈다.
인기척도 없지만, 가까이에서 날고 있는 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한숨과 함께 멀리 하얀 폭포의 풍경을 보며 투란은 구멍에 걸터앉아 맹한 표정을 지었다.
―힘드냐?
‘당연하지! 아으으!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불쑥 드라고니아가 묻는 말에 투란은 울컥한 대답을 했다.
―뭐…… 동력을 축적해서 무작위 이동하는 걸 억지로 힘을 쥐어짜 내서 원하는 곳으로 옮겼으니 당연하잖아?
진지하게, 드라고니아가 짚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다독인다기보다는 놀리는 것이라는 느낌이 먼저 치솟는 말이었다.
‘으그긋! 이게 다 무빙 캐슬이니 뭐니 하고 말 꺼낸 네 탓이야!’
발끈해서 투란이 이를 갈면서도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픽, 웃는 듯한 기척과 함께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진지하게 대꾸를 한다.
―악마의 기술이 아니라 제대로 무빙 캐슬의 마법을 이용했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겠지.
‘대마법이라며! 무지막지하게 힘들다며!’
―뭐, 난이도가 높은 대마법이기는 하지만 적당히 축약해서 소규모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 안 했나?
‘얀마!’
살짝 어찔한 기분과 함께 투란은 울컥함을 짓누르는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너, 일부러 그랬지! 일부러 나 힘든 꼴 보려고!’
―음? 그럴 리가! 투란, 네 힘든 꼴에는 전혀 관심 없다!
너무나도 단호한 부정이었다.
마음 깊이 정말로 그렇다고 전해오는 그 낌새 속에서 투란은 한 가지 더 느낄 수가 있었고, 바로 묻는다.
‘악마의 기술을 보고 싶었던 거냐?’
―그런 생각은…… 조금 있었군.
‘그럴 줄 알았어! 어흣!’
―호기심은 악마의 기술 쪽이었지, 너 힘든 거 구경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니까! 그보다 오히려 잘된 일 아니냐? 악마의 기술을 사용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고 까다롭다는 걸 이제 잘 알았잖아. 함부로 쓸 것이 아니란 것도 확인했고 말이야.
‘그런 걸 꼭 겪어보고 알아야겠냐! 아이고, 힘들어!’
투란은 지지 않겠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투란의 생각은 드라고니아에게 어느 정도 동조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투덜거리고 싶은 힘든 꼴을 방금 겪어봤으니까!
‘악마의 유골’에 남겨진 지식은 말했었다, 생체공방은 어느 정도 기한에 따라서 저절로 이동한다고. 그 이동에는 딱히 뭔가 손을 쓸 필요가 없고, 굳이 원하지 않는다면 이동하지 않도록 조작해둘 수 있다고 말이다.
이를 투란은 이렇게 해석했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겠구나!’라고.
그러니 참 쉽겠거니 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생체공방의 이동에 사용되는 동력은 에너지 하트, 에네르기움에 몇 년 동안 축적되어 있어야 했다. 게다가 방향과 장소, 시기를 지정하기 위해서도 역시 동력이 상당히 소모된다.
그리고 산돌프가 막대를 뽑아낼 때까지, 형제들의 생체공방은 그런 동력축적을 하지 못했다. 즉, 거의 비어 있는 에네르기움이었고 겨우 몸뚱이 하나를 가디언으로 내뱉는 것이 고작이었다는 것!
때문에 이동을 위해서는 투란 스스로 에네르기움의 동력축적을 해야 했고, 하나도 아니고 거의 셋이나 되는 에네르기움을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 만들어야 했다. 다행이라면 마그마 로드가 형성한 에네르기움의 동력축적은 과격하고 신속했다는 정도…….
그럼에도 그 이글거리는 마그마 덩어리 같은 에네르기움 셋을 마음대로 쓰는 것은 역시 까탈스러운 작업이었다. 애초에 악마의 기술은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탓이 컸고, 투란이 에네르기움을 직접 다룬 것이 처음인 때문이었다.
유골의 지식이 뇌리에 스며들 때는 뭔가 그 경험이 고스란히 옮겨온 듯했는데,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 이를 시도하려니 완전히 처음 하는 애송이 티가 팍팍 튀고 만 셈이었다.
되새겨볼수록 다시 하기 싫다는 생각이 깊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한숨과 함께 주변의 탁 트인 풍경을 둘러봤다. 바람이 허공을 긁는 소리, 멀리서 하얗게 쏟아지다가 저 먼 곳 아래에서 거품을 일으키는 폭포…… 아련하고 아늑한 그 소리를 듣다가 퍼뜩 스쳐간 생각에 투란이 묻는다.
‘야, 왜 그렇게 힘든 거였지? 그 형제들, 자기네 컨트롤 코어랑 지식만 얻으면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기억을 남겨놨는데 말이야.’
머뭇거림 없이 드라고니아가 대답을 한다.
―두 가지 정도 원인을 추측할 수 있다. 첫째는 악마의 육체가 아니었다는 점, 악마의 기술은 자신들의 육체를 기반으로 가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 때문에 에네르기움의 통제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어려워진 것일 수 있어. 둘째는 마그마 로드, 이 몬스터의 힘이 지나치게 강력해서 에네르기움조차 완전히 수용할 수가 없었다는 거지. 에네르기움이 동력을 축적하는 과정을 다시 더듬어보면, 축적된 것보다는 흘러넘쳐서 새나간 것이 더 많다는 거, 너도 느꼈지?
‘어…… 구멍이 아주 좁은 병에 물을 퍼붓는 기분이었지.’
너무 냉큼 대답하는 드라고니아에게 입술을 삐죽거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순순히 인정했다.
에네르기움, 에너지 하트는 스스로 동력을 발생시키고 축적시키는 결정체였다. 이를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 빗어냈을 때, 발생하는 힘은 투란이 쉽게 다루기 어려웠다. 억지로 붙잡고 묶어두려 해도 굉장한 반동이 있었고, 마그마 로드가 아니었다면 절벽에 상당한 충격을 주고…… 어쩌면 이 일대를 완전히 파괴해서 알드바인 성벽 아래를 절벽으로 새로 단장시켰을 수도 있었다!
―악마의 기술, 지식을 활용하려 할 때는 웬만하면 그 준비된 육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교훈으로 삼아라. 유골도 필요할 때 꺼내서 대충 알고 다시 집어넣지 말고, 그 기술을 활용하는 동안에는 계속 유지하는 편이 좋다고 본다. 어쨌든 투란, 너는 악마종이 아니니까 말이야.
‘흐흠…… 악마종이었다면 힘이 덜 들었을까?’
―악마종이었다면 마그마 로드를 이용해서 에네르기움에 동력을 축적한다는 생각도 못 했겠지. 이동을 위해서 몇 년 기다리며 축적이 완료되기를 기다렸을 거다.
‘그렇……겠네.’
어째서인가 다시 한숨이 터져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인정하고 말았다.
애초에 이 모든 힘겨운 짓은 된다 싶어서 일단 저질러 본 투란 자신의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드라고니아가 이를 관찰하고 냉정하게 분석한 것은 호기심 때문일지는 몰라도 지금 투란에게 꽤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셈이니, 더 투덜거리면 괜히 자신만 쩨쩨하고 쪼잔해 보일 뿐이다!
생각을 하다 보니 어쩐지 몸이 더 축 처지는 듯하잖은가!
한숨도 더 팍팍 나오고!
―계속 이러고 앉아 있을 거냐?
‘응? 뭐? 왜? 잠깐 쉬는 중이잖아. 뭐 급한 일이라도 있어?’
드라고니아가 축 처진 투란에게 살짝 어이없는지 물었고, 투란은 시비 걸면 받아준다는 기분으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되물었다.
―은신처.
짧은 한마디였다.
‘에? 어…… 흐윽, 아직 마무리 짓지 못했지…….’
투란은 또다시 인정해야 했다.
저질러놓은 짓의 뒤처리가 아직 좀 남았다!
데몬스 그라토, 악마의 생체공방을 투란 자신을 위한 은신처로 다시 꾸미고 위장해놔야 했다. 알드바인에서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튀어나와 숨을 수 있도록!
‘으샤앗! 먼저 프로브부터!’
투란은 두 손을 툭툭 털며 흔들었다.
늘 드라고나이를 통해 생성해 사용하던 프로브가 모처럼 투란의 의지 하에 생성되며 펼쳐졌다. 하나, 둘…… 넷까지 생겨난 프로브는 바로 투란이 걸터앉은 구멍의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구멍의 좌우에서 지켜보는 시야를 만든 다음에 투란은 구멍 안으로 몸을 감추듯이 앉은 채로 물러섰다. 네 기(機) 프로브의 시야 속에서 투란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구멍은 살짝 그늘진 것처럼 보였다.
‘테라트…….’
투란은 흙의 정령수를 불렀고, 구멍에 들러붙게 했다.
출구이자 입구가 될 윤곽이 불끈불끈하면서 부드러운 찰흙처럼 움직였고, 프로브 네 기의 시야 속에서 구멍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가공(加工)했다. 이제부터는 이 구멍과 마주 보며 공중을 나는 녀석이 아니라면 구멍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외부를 그렇게 꾸민 다음, 투란은 구멍 안쪽을 둘러봤다.
구멍에 들어와 보면, 깊이는 3미터에 조금 모자랄 정도였고, 폭은 2미터에 모자랄 정도로 적당했다. 다만 높이는 1미터 30센티로 조금 낮았다. 작은 키라도 똑바로 서기 불편했고 아직 덜 자란 어린아이나 똑바로 서서 팔딱거리고 뛸 높이였다.
누가 들어온다 해도 서 있기보다는 앉아야 하고, 드러눕기나 해야 할 크기를 맞춘 것이다. 그다음…….
‘경사는…….’
투란은 한 손으로 작은 돌을 쥐었다.
꽉 쥔 다음에 펼친 손에 쥐인 돌은 구슬 모양이 되었다.
가만히 그 돌을 놓으니, 돌은 구멍 밖이 아닌 안쪽으로 느릿하니 굴렀다.
구멍 밖에서 안으로 뭔가 던져넣으면 미끄러져서 절벽 아래로 떨어질 일이 없어진 셈이었다.
여기까지 확인하고 투란은 앉은걸음으로 구멍 깊이 옮겨갔다.
울퉁불퉁하니 어딘가 자연스럽게 구멍의 끝이라고 우겨대는 듯한 벽, 그 위를 쓰다듬듯이 투란이 손을 움직였다. 소리나 진동이 전혀 없이 벽이 푹 꺼지면서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걷기 적당한 통로가 나타났다.
구멍과 적당히 맞춰진 폭, 대신 높이는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통로의 깊이에 맞춰져 점점 높아져서 똑바로 서기 좋게 꾸며져 있었다. 그 통로의 끝에는 탁자와 침대가 놓인 방이 기다렸다.
투란은 방에 서서 잠시 빛열매의 줄기가 밝힌 풍경을 둘러보다가 옆으로 돌아서 걸었다. 방의 한쪽에 좁아 보이는 통로 너머는 원래 칼라고드라니샥 형제들이 델아브나인폴트람의 동포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 놓았던 곳이었다. 거기에는 지금 커다란 항아리가 바닥에 박힌 채였고, 항아리 속에는 토막 난 킨사티어 몇 마리가 잔뜩 뒤엉긴 채로 담겨 있었다.
―저 엽기적인 몰골로 그냥 둘 거냐?
가만히 지켜보는 듯했던 드라고니아가 이건 못 참겠다는 듯이 물었다.
‘응? 아, 뭐…… 지금 황금매로 삼키지 않아도 나중에 삼킬 거니까. 역시 그냥 판 구덩이보다는 항아리 모양이 어울리지?’
―뚜껑이라도 덮어두지?
투란이 바닥에 그냥 구덩이를 파서 담가놓으려 하다가 즉흥적으로 그럴듯한 항아리 모양으로 꾸민 것에 대해 드라고니아는 뭐라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무리 몬스터라 해도 묶어놨다가 산 채로 토막 내서 장기보존하겠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뚜껑? 어, 덮어둬야지. 근데 왜 갑자기 비위 약한 시늉이야? 이 공방에서 이거 원래 이런 식으로 다루는 거였다고. 저렇게 해뒀어도 다시 끼워 맞추고 기워놓으면 멀쩡해지는 거라고, 이 생체공방의 몸뚱이들은 말이야. 애초에…….’
―알았어! 알았으니까, 뚜껑이나 덮어둬! 내가 할까?
‘쳇, 제대로 막을 뚜껑은 마법으로 만들면 안 돼. 기다려봐.’
투란의 팔뚝에서 악마의 유골이 불룩거리며 잠시 모양을 갖췄다.
곧바로 유골의 입이 열렸고, 검붉은 체액이 걸쭉하니 흘러내렸다.
항아리를 메운 핏빛 속으로 흘러간 체액은 부풀었고, 안을 꽉 채우더니 곧바로 항아리에서 흘러넘치는가 싶다가 단단하게 굳으면서 살짝 가라앉았다. 둥그런 윤곽을 가진 채로 도톰한 가죽깔개가 생겨난 듯한 모양이었다.
―저 안에서 저절로 다시 완성돼서 튀어나오는 거는 아니겠지?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게 두지 않았어.’
투란의 대답은 왠지 드라고니아를 식겁하게 한 듯했다.
투란에게는 그런 드라고니아의 반응이 살짝 재미있었지만, 드라고니아는 더 뭐라 하며 그 격한 반응을 노출하지는 않았다.
투란은 항아리 덮개를 조금 더 밟고서는 원래 여러 가지가 진열되어 있던 벽 쪽으로 갔다. 이제는 텅 빈 곳의 바닥에 투란의 손이 짚어졌다.
―어이, 뭐 하는 거야!
형성되는 에네르기움의 자취를 느끼자마자 드라고니아가 제대로 놀란 외침을 터뜨렸다.
‘뭘 하긴, 나중에 여길 옮길 때를 대비하는 거잖아. 미리 동력을 축적해 놓을 에너지 하트를 남겨둬야지.’
―야, 그건……!
‘걱정 마, 마법으로 탐지될 일도 없고 나 말고 다른 누가 손댈 수도 없어. 억지로 사용하려고 하면 축적된 동력이 방출돼서 사라질 거야. 어쨌든, 올 때마다 힘들게 힘을 보충시켜서 쓰지 않게는 해둬야지. 자,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