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5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49)
“테라트, 손잡이! 발 디딜 곳도 좀!”
간단한 명령에 따라 테라트가 구멍 옆으로 손으로 잡을 만한 돌부리, 발끝으로 디딜 만한 울퉁불퉁한 바위 결을 만들어냈다. 투란은 그 돌부리를 잡고 결을 밟으며 절벽 위로 기어 올라갔다.
겨우 십여 미터 거리였고, 팔다리 힘만으로 넉넉했지만 투란은 다 올라간 다음에 이마에 흐르는 땀을 느끼면서 중얼거린다.
“아, 이것도 힘드네…….”
―장난하지 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한마디 했다.
‘응? 장난 아냐! 에네르기움에 힘을 축적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조금 전에도 힘들었다고! 순전히 내 팔, 내 다리 힘만으로 올라온 거라고! 당연히 힘든 거야!’
투란은 당당하게 투덜거렸다.
―에네르기움은 네가 멍청해서 저질러진 짓이잖아. 움직이기 위해서 셋을 만들고, 정작 그 에네르기움 셋에 제대로 힘을 축적 못 하고 흘러넘치게 한 거는 순전히 생각 없이 저질러서 힘든 거잖아! 하지만 고작 이 높이를 기어올랐다고 힘들다니, 은근슬쩍 악마의 심장으로 근력 강화해둔 거 내가 모를까 봐!
도저히 그냥 못 넘어가겠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리면서 짚었다.
그 사이에 투란은 슬쩍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웅얼거린다.
“내가 여길 기어 올라오다니…….”
누가 들으면 저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서 쉬지 않고 올라온 다음에 스스로 감탄했다 착각할 듯한, 나직하지만 깊은 감상을 머금은 목소리였다!
―야!
‘예에, 옙! 알아, 안다고! 농담해본 거야 농담!’
혀를 날름하고서 투란은 돌아섰다.
나오면서 장비는 다시 챙겨 입었으니, 이제는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투란은 주변 지형을 살폈고…….
“테라트, 흙집 하나 만들자.”
특징을 하나 남겨놓기 위한 명령을 했다.
이에 따라 곧바로 투란의 발아래가 움찔거리면서 땅속에서 뭔가 불끈불끈 움직이며 가까운 숲의 나무 아래로 헤집고 들어가듯이 움직였다. 그 결과인 듯, 바로 숲 언저리에서 애앵거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롭게 쏘아지듯이 투란을 향해 날아온 것이 있었다.
팍!
“엥?”
대충 손으로 쳐 내다가 손등에 푹 꽂히는 감각이 짜릿해서 투란은 놀랬다.
―뭐 하냐, 독파리잖아!
‘어? 이게?’
투란이 손등을 보니, 꽂힌 감각이 제대로란 것을 증명하듯이 몸통의 절반가량을 살 속에 파묻은 채로 날개와 엉덩이를 팔딱거리는 굵은 파리가 보였다.
그 파리 몸통의 짙은 갈색은 마치 녹슨 쇠처럼 보였고, 살갗 속에서 바둥거리는 것이 누가 끌을 박고 휘젓는 듯한 느낌이었다. 격한 날갯짓은 날아든 속도만큼 빠르게 이탈하겠다는 듯했지만, 독파리는 박힌 채로 투란의 혈관 속에 더욱 짙게 독을 뿜어내면서도 꼼짝을 못했다.
‘와아, 이거 지독한 놈이네?’
팔까지 저려 오면서 힘이 빠지는 독의 효과에 투란이 감탄했다.
하나 이를 지켜보는 드라고니아는 투덜거린다.
―뚫린 살갗이랑 핏줄로 묶어놓은 녀석이 할 말이냐.
‘아, 그야 그냥 이리 된 거고…….’
손등에 뭔가 꽂힌다 느낀 순간, 투란의 손등 안팎으로 ‘악마의 심장’이 넝쿨을 형성했다. 덕분에 독파리는 무성한 넝쿨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묶인 꼴이었다. 그런 채로 살짝 투여하고 빠지려던 독을 더욱 농후(濃厚)하게 뿜어내기는 하는데, ‘악마의 심장’이 간격을 두고 형성되어 있는 투란의 몸에는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독이 ‘악마의 심장’에 걸러지면서도 한 팔을 마비시킬 정도니, 독파리가 작아도 대단한 곤충 몬스터란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
―궁금한데, 그런 작은 놈을 삼키더라도 몬스터 로드는 커다란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거냐? 정상적인 곤충 크기의 몬스터를 삼키면 그 특성이나 형상은 어떻게 드러나는 거냐?
‘웨어랫(Wererat)의 전례를 따른다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웨어랫……?
손등에서 몸부림치는 독파리를 두 손가락으로 꽉 쥐어 빼내면서 투란은 어린 시절에 얼핏 들었던 논쟁을 이야기했다.
‘쥐였나, 다람쥐였나…… 그 비슷하게 생겨서 나무 위아래를 오르내리면서 털을 실은 바람을 휘두르는 몬스터가 있었어. 꼬리를 휘두르면 바람이 쇠뭉치처럼 후려쳐온다고 했지. 그걸 잡았는데, 그게 딱 한주먹 크기였거든. 그걸 몬스터 로드가 삼키면 어떻게 되느냐고, 싸움 난 적이 있지. 그때 고무쇠 아저씨가 그랬어. 거대한 도시 하수구에 서식하는 몬스터 쥐를 삼킨 몬스터 로드가 웨어랫처럼 돼버렸다고 말이야. 몬스터 쥐가 커봐야 발바닥만 했는데, 그걸 삼키고 형태를 삼킨 몬스터 로드는…… 체격이 작아지면서 쥐를 닮은 모양이 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원래 몬스터 쥐의 크기가 되지는 않았다는 거지. 그걸 보고 웨어랫의 전례를 따른다고 하던걸.’
우드득, 쩝쩝.
투란이 말을 하는 사이, 투란의 손가락에 잡힌 독파리는 투란의 손아귀에 볼록 튀어나온 악마의 유골에 먹히고 씹혔다.
―그건 대체 뭔 짓이야?
웨어랫의 전례에 대해 귀담아듣던 드라고니아가 갑작스러운 광경에 어처구니없어하며 물었다.
피식, 새는 웃음과 함께 투란이 대답한다.
‘나는 인간파리가 되고 싶지 않다고. 날개도 볼품없고, 머리모양을 봐. 이렇게 생긴 투구를 써도 멍청해 보일걸! 그래도 껍질이랑 독을 뿜는 능력이랑 비행 속도는 대단하니까. 적당히 채집해두는 거지. 나중에 쓸모 있을지 없을지는 두고 봐야 하고.’
―악마가 하는 짓을 따라 하는 거냐?
‘연금술사도 하는 짓이잖아. 몬스터 로드가 아니라면, 이런 곤충 몬스터가 아니더라도 몬스터의 잔재를 이리저리 가공해서 담아두기도 하고…… 뭘 그리 이상하게 생각해?’
―삼키든가 버리든가, 넌 여태 둘 중 하나만 했으니까. 새삼스럽게 분석할 표본으로 채집이라니, 전혀 생각 없는 너답지 않아서 악마의 습성이 붙은 건가 여길 만하잖냐.
비비 꼬는 이야기를 냉담한 말투로 떠드는 드라고니아였다.
손등에 파인 자국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악마의 심장’이 다시 살갗과 속살을 채워넣는 탓에 겉보기에는 손끝으로 상처를 문질러 지우는 듯한 광경을 만들면서 투란이 투덜거린다.
‘욕을 그렇게 정성껏 하냐! 하여간…….’
두 손을 펼쳤다 쥐었다 하면서 투란은 절벽에서 멀어지며 숲으로 걸음을 디뎠다. 이제 알드바인까지, 그냥 몇 백 미터만 가면 도달할 터였다. 하지만 산돌프와 나올 때랑, 투란 홀로 걷는 것은 뭔가 차이가 좀 있는 모양이었으니…….
“으긱!”
생각 없이 손으로 나무를 짚었더니 손바닥을 까칠하게 할퀴는 느낌이었다.
손이 닿자마자 나무가 소름 끼친다며 가시라도 세운 것인가?
투란이 노려보니, 곤두선 듯했던 나뭇결이 살며시 가라앉고 있었다!
정말로 나무가 누군가의 손이 타는 것을 거부하며 미세한 가시를 세운 것이다!
“왜지?”
산돌프와 지나올 때도 같은 품종의 나무였다.
이 남쪽 성벽의 숲을 이룬 나무는 몇 품종에 불과했고, 딱히 마수라든가 몬스터로는 분류되지 않을 텐데 이게 대체 뭔가?
―산돌프가 갖고 있던 마법물품…… 그중에 있었잖아. 동물이나 식물의 적대성을 억누르고 친화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 말이야.
‘그런 게 있었다고?’
―발목에 차고 있었다. 아무 관심이 없었으니까, 나도 가만히 있었지. 뭐 그런 거 없더라도 오러로 가드를 하면 별문제 아니잖아? 왜 느닷없이 무방비 상태인 맨손으로 나무를 두드렸는데?
‘두드린 거 아니거든! 그냥 걷다가 짚은 거라고. 설마 이 근처 나무도 이렇게 한 성깔 할 줄은 몰랐는데…….’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손바닥을 비비적거리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조금 특이하기는 했지만 이 나무 품종은 가지를 휘두르고 뭔가를 집어 던지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닿지 말라고 아주 소심하게 가시만 세울 뿐이었다. 긁히면 피가 맺히고, 은근히 독성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어쨌든 조금 심하게 붓는 정도가 고작인 여린 독과 흔적도 남지 않을 얕은 상처에 불과했다.
“대체 무슨 나무야, 이거?”
걸으면서 투란은 새삼 나무 열매 사이에 작게 꽃망울이 맺힌 것도 보면서 궁금해했다.
―장미목(薔薇木)이잖아. 산맥의 영향으로 좀 심하게 크게 자란 면이 있다만…… 줄기나 가지의 가시껍질도 덕분에 좀 과하게 변형되기는 했지만, 틀림없는 장미목이다.
‘원래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 가시가 더 약한가?’
갸웃하며 투란이 물었다.
―원래는 줄기에 굵고 뾰족한 가시가 단단하게 돋았겠지. 다 자란 크기도 큰 경우가 삼 미터 언저리였을걸. 뭐, 여기서 자란 나무가 7, 8미터가 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괴상한 일이기는 하지.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투란을 어이없게 했다.
‘원래 가시가 더 강했다는 거야?’
―더 강하다고는 못하겠군. 원래 가시는 저렇게 누웠다 섰다 하는 움직임이 없어. 그저 씨눈처럼 빳빳하게 돋아 있을 뿐이야.
‘그래? 흠……. 알드바인 밭에 가면 원래 장미목이 있으려나.’
문득 북쪽 성벽, 그 바로 안쪽에 지어진 알드바인의 농원(農園)을 떠올리며 투란이 중얼거렸다.
―먹을 만한 열매가 맺히는 나무 품종이 아니잖아. 알드바인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애써 키울 리가 없지. 식량 확보를 목적으로 조절된 농원이잖아. 호수에다 직접 수경재배를 시도할 정도니까, 들가에 피는 경우를 기대해야지. 농원에서는 보기 힘들걸.
‘없었구나.’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길어진 이야기를 요약했다.
알드바인의 농원, 농장에는 장미목이 없다!
성벽을 나서면 이렇게 숲을 이루면서 변형되어 크고 높게, 세게 자라고 있지만 성벽 안에는 없는 나무 품종.
‘이거 나중에 마수화하거나, 몬스터가 되기도 하려나?’
―기대하는 거냐?
‘그딴 기대 안 해! 혹시 대비해야 하나 생각한 거라고!’
―뭐, 몬스터가 규칙대로 생길 리가 없으니까. 만약의 경우를 예상하고 대비해두는 거는 좋지.
바스락, 시잇!
나뭇가지 사이로 꾸물거리며 옮겨가는 뱀이 살짝 혀를 날름하는 것이 보였다.
소리 없이 떠들면서도 나름대로 주의해 숲을 걷던 투란이 노려보니, 뱀은 재빠르게 멀어져갔다. 나뭇가지와 가지를 넘어서.
‘독사?’
―그냥 구렁이다.
픽, 입가에 웃음을 매달고 입맛을 다시면서 투란은 알드바인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새삼 산돌프랑 움직이며 잡아뒀던 뱀, 잔나비가 떠오르며 배도 고팠다.
얼른 그루터기로 돌아가서 시알라가 단련한 요리를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남쪽 성벽이 어렴풋이 느껴질 무렵부터 투란은 아예 나무 꼭대기에 후크라인을 걸면서 숲을 날듯이 돌파하기 시작했다.
바람과 나뭇잎이 스쳐갔다.
벌레와 짐승이 돌연 나타난 투란에게 놀란 듯, 여기저기로 튀었다.
스스로 잔나비가 된 것인가 궁금해하면서 투란은 남은 거리를 단숨에 지나쳤다.
그 마무리는 성벽에 후크라인을 걸고 당겨 뛰어넘듯이 올라서는 것.
“후아아! 돌아왔다!”
알드바인의 풍경을, 떠날 때 얼핏 돌아봤을 때랑 전혀 다르지 않은 변함없는 풍경을 보며 투란이 나직하기 외쳤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무래도 호숫가에 너무 붙어 온 것처럼 성벽이 언덕을 타고 올라가며 구불거렸고, 그루터기 쉼터…… 금빛매의 쉼터가 조금 높아 보였다.
투란이 올라선 성벽과 거신목의 그루터기 여관의 중간 정도에 누가 천천히 걷고 있는 모습도 보였고…….
“제란드?”
누군가 금방 알 수 있었다.
―낚시라도 다녀오는 모양이군. 들고 있는 나무통에 물고기가 담겨 있네.
뭔가 쓸데없이 날카롭게 제란드의 상황을 파악하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은 웃으면서 성벽 위를 달렸다.
손을 흔들면서, 제란드를 부르는 외침도 터뜨리면서.
“제란드!”
딱히 몰상식하게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제란드는 바로 돌아봤고, 가던 길을 거스르듯이 투란을 향해 돌아서며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투란이 성벽에 발을 딛으며, 후크라인을 걸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니 제란드가 나무통을 내려놓고 의자 삼아 앉으며 기다린다.
그 모습에 갸웃하면서, 장비를 다시 챙겨넣으며 투란이 다가가 묻는다.
“왜? 무슨 할 말이 있어?”
제란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투란, 선제압박(先制壓迫)이라고 알지?”
갑작스러운 물음이었다.
투란은 대답부터 해야 했다.
“어? 알지…… 사냥할 때 일단 먼저 한 대 쳐두는 거잖아. 몰이를 할 때도 써먹는 거고…….”
대체 무슨 일로 제란드가 묻고 있는가?
의아해하는 투란에게 제란드는 빙긋 웃기부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