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5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52)
“악마의 공방이란 곳에 갔었어?”
페란드가 물었다.
와글와글 오간 이야기 중에 그나마 건질 수 있는 부분이 그뿐이었다는 듯한 물음이었다.
투란도 그 기분에 동의한다는 듯,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어, 산돌프가 원했던 지팡이가 거기 꽂혀 있던 거라서.”
“남겨둔 것 없이 다 정리해버리고 온 거지?”
페란드의 이어진 물음에 투란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이적이니 뭐니 할 만한 거는…….”
불을 보면서 생각하는 시늉을 하는 척하며 내놓는 대답이었다.
페란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디 다쳐서 온 것도 아니지? 그럼 뭐…… 나중에 마스터 홀시딘이 알아서 하겠지. 그보다는 지금 쉬어야 할 때 아니야? 돌아오자마자 꽤 시끄러운 꼴을 봤으니까, 이래저래 더 피곤할 텐데…….”
망치 자루를 헝겊으로 문지르면서 투란의 눈길을 쫓듯 화로의 불꽃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정말 좀 쉬어야겠어. 하아하…….”
투란은 새는 웃음과 함께 나무잔을 기울여 비우면서 일어섰다.
홀시딘이 갑작스럽게 무슨 이적이니 뭐니 했지만, 무슨 얘기인가 제대로 납득이 가는 부분이 없었다. 설마 악마종의 유물을 일컫는 말은 아닐 테고…… 홀시딘이 모처럼 마법사답게 관심을 가진 일이니 조금 궁금하기는 하지만, 깊이 파보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
―야, 그건……!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이런 생각에 뭔가 반발하고픈 듯했지만, 투란이 대장간을 나서면서 바로 마주친 얼굴에 그 꺼내려던 말을 멈췄다.
“에, 무슨 일이라도?”
투란도 대장간을 나와 곁의 계단에 오르려는 길목을 딱 막아서듯이 선 이를 보며 어리둥절했고, 일단 묻는 말을 꺼내놓았다. 그냥 거기 서 있는 것이 아니니까.
가만히 한 손을 펼치고, 그 손 위에 희미한 금빛의 모래알 하나를 얹고 있는 이…… 투란이 몰래 엿본 이자닌의 동료…….
“잠시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좀 했으면 싶군. 나는 쿨란……이라고 일단 그리 알아두고 말이야. 벨라딘 파티에게 호위 의뢰를 맡긴 이자닌이 나도 고용했다고, 일단 그렇게 소개해야겠군.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조용한 곳에서 하고 싶네만.”
“조용한 곳이라면…….”
투란은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루터기 주변은 원래 고요했다.
인적보다는 나무로 된 상아탑의 가디언으로 지키던 곳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시알라 남매가 자리 잡은 다음부터는 인기척이 줄줄 흐르는 곳이 되었는 데다가, 오늘은 손님까지 와글거리는 중 아닌가!
이런 투란의 생각을 훤히 안다는 듯, 쿨란이 말한다.
“맨 위 지붕은…… 이 굵은 밑동뿐인 나무의 정상이라고 해야 하나, 옥상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완전히 비어 있더군. 사방이 탁 트이기도 했고 말이야.”
그루터기 꼭대기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거신목의 그루터기 안을 파서 가옥(家屋)의 구조를 갖췄고, 그 지붕이 되는 곳은 비워두기는 했지만 어쨌든 난간 모양을 대강 꾸며놨고, 올라가서 햇살을 받든 달빛이나 별빛을 구경하든 상관없기는 했다.
그곳을 가리키는 쿨란이 왠지 이리저리 말을 더듬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투란은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하기에는 쿨란이 살그머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이대는 금빛 모래알이 너무 마음에 걸리니까!
‘저거 그거지?’
그래도 혹시나 해서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맞아, 분명히 홀시딘이 로열가든의 마법을 쓸 때 드러냈던 금빛 입자야. 그걸 어떻게 붙잡고 있는가 모르겠다만…… 상당히 위험한 마법사란 점은 확실해. 상아탑이든 지나가던 로그메이지든, 저런 계통의 힘은 다루지 못하니까.
경계심을 잔뜩 드러낸 대답을 아주 신속하게 투란의 마음에 쏟아부었다.
그러니 뭔지 몰라도 일단은 투란 또한 조용한 곳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차해서 와장창 일을 저질러도 티 나지 않는 곳으로…… 가능하면 성벽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좋을 듯싶은 투란이었다.
하지만 쿨란은 그저 사람들의 눈과 귀에서 멀어질 수 있는 곳이면 괜찮다는 듯하니, 끌고 나갈 수 있을까?
염두를 굴리며 투란이 느릿하니 훑어보는 눈길에 쿨란이 재빠르게 말을 보탠다.
“싸우자는 얘기가 아니야. 그냥 조용히, 이거랑 관련된 얘기만 하자고.”
여린 금빛 모래알이 쿨란의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구르는 듯 보였다.
투란은 등 뒤 대장간의 기척을 점검해봤다.
페란드는 지금 문턱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알지 못하는 듯했다.
이 쿨란이 말을 하는 방법이 그만큼 은밀하다는 뜻이었다.
“얘기하러 가요, 피곤하니까 얼른!”
대충 대답하면서 투란은 바로 손을 위로 들었다.
손목에서 곧바로 후크 라인이 뻗어나갔고, 투란의 몸은 순식간에 위로 당겨지며 그루터기 쉼터의 옥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쿨란은 투란이 한번 더 후크라인을 사용해서 완전히 옥상 위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며 약간 어이없어하면서도 신중하게 손짓했다. 금빛 모래알을 올린 손이 주먹을 쥐는 순간, 쿨란 또한 무엇인가에 당겨진 듯이 옥상 쪽으로 치솟아 올랐다.
뒤늦게 페란드가 살짝 문턱 너머로 고개를 내밀기는 했지만, 이미 둘 다 옥상 너머로 사라진 다음이었다. 갸웃하며 페란드가 다시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고…….
“우와, 마법이에요?”
투란은 그루터기 쉼터의 옥상 위로 내려서는 쿨란에게 물었다.
후크 라인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날갯짓을 하지도 않으면서 쿨란은 가만히 한 걸음 디뎌 올라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법이지, 당연히…….”
쿨란의 대답은 담담했다.
“그래요? 흐흠, 어딘가 좀 느낌이 다른 것 같았는데.”
하지만 투란이 한 번 더 짚어보듯, 스쳐 가는 듯한 말을 내놓자 쿨란도 조금 설명을 더한다.
“다르겠지, 마법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다면 분명히 다른 마법사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게 당연해. 내가 쓰는 마법이 조금 색다르게도 느껴질 테고.”
“왜요?”
지체 없이 투란이 물었다.
쿨란은 조용히, 우아한 동작으로 한 손을 가슴에 대고 가볍게 몸을 숙이는 채로 대답한다.
“내가 어둠의 속성(屬性)을 지닌 마법사, 블랙 메이지이기 때문이라네.”
투란이 여기에 뭐라 하기 전, 무슨 뜻인가 생각하기도 전에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는 소리가 뇌리에 울린다.
―이런 망할! 저렇게 대놓고 나서다니!
‘응? 그럼 안돼?’
―블랙 메이지는 정직한 만큼 위험하니까! 쳇, 작정하고 있는 꼴이 쉽게 얼버무릴 수는 없어 보이는군. 아무래도 로열클래스를 제대로 감지하는 모양이다. 어쩔 거냐, 투란?
‘어쩌고 뭐고…….’
번개처럼 주고받는 대화를 마음에 묻으면서 투란이 쿨란에게 묻는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뭔가 특별한 로그메이지란 말이에요?”
―야…….
드라고니아가 먼저 어처구니없어했다.
투란의 물음은 마법에 대한 아주 철저한 무지(無知)를 드러내는 말이니까.
너무 무지막지해서 마법사에게는 오히려 의심을 부를 소리였다.
헌터가 설마 이렇게까지 무식할 리는 없다고…….
한데 쿨란은 오히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고 있으니…….
“로그메이지란 원래 악당짓을 하며 떠도는 마법사를 일컫는 말이었지. 이제는 그저 정착하지 않고 방랑하는 마법사를 일컫는 말처럼 돼버렸지만 말이야. 덤으로 이런저런 사고 치는 마법사를 일컫기고 하고…… 하지만 그 기원은 바로 블랙 메이지라네.”
―저놈, 속셈이 뭐지?
드라고니아가 오히려 쿨란을 의심하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투란은 뇌리를 울리는 드리고니아의 말을 한편으로 치우면서 쿨란에게 말하니…….
“그래요? 흐흠, 그러면…… 로그메이지의 기원인 블랙 메이지란 분이 나한테 무슨 할 얘기가……?”
느슨하게 말끝을 흐리는 소리였다.
쿨란은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한다.
“다시 내 소개를 하지. 이자닌의 호위로서 쿨란이란 이름을 쓰지만, 내 진짜 이름은 파쿠란, 블랙 메이지인 파쿠란이라네.”
이는 투란의 눈을 깜박거리게 했다.
‘어라?’
―허?
드라고니아도 투란만큼 이 상황을 아주 의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계단을 밟아 옥상에 올라온 이자닌 또한 쿨란의 이름을 내던지는 파쿠란에게 한소리 한다.
“잠깐 한눈판다고 정체를 나불거리다니, 꼭 그래야 해?”
파쿠란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자닌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투란을 보는 채로 대답한다.
“그래, 내 사정으로 인해 거짓이라 여겨질 장막을 두른 채로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없으니까.”
“아, 네…… 그럼 나는 망이라도 봐줄까?”
이자닌이 사뿐사뿐, 아주 가볍게 다가오며 말했다.
파쿠란은 여전히 투란을 보는 채로 말한다.
“벨라딘 파티에게 호위의뢰를 한 이자닌이야. 도적 길드 소속이고…….”
“야, 잠깐! 왜 그런 말까지!”
이자닌이 바로 질렸다는 듯이 파쿠란의 어깨를 잡으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파쿠란의 태도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말했잖아, 제대로 된 대화를 위해서…… 감추는 것 없이 대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정직해야 하는 거잖아. 자, 이쪽 소개는 이 정도면 넉넉하게 된 것 같은데…… 로열클래스인 그대에 대해서 좀 물어도 되겠나?”
“말려도 물을 거잖아요? 그래, 뭐가 궁금한데요?”
투란은 방긋 웃으면서 파쿠란에게 되물었다.
이자닌이 그런 투란을 보며 살짝 낯을 구겼다.
얼핏 들으면 투란은 파쿠란이 한 말을 모두 인정한다는 듯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채로 파쿠란이 뭐라 하는가를 끝까지 듣겠다고 수작 부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자닌은 파쿠란이 뭐라 하기 전에 재빠르게 먼저 묻는다.
“본명이 정말로 투란이야?”
“맞아요, 내 이름은 투란. 다른 이름은 몰라요.”
가볍고 빠른, 쾌활하면서 재미있어하는 대답이 바로 투란의 입에서 튀어나갔다.
이자닌이 볼을 실룩이며 골난 표정을 지었고, 파쿠란은 한숨 쉬고 싶다는 듯이 살짝 실룩이는 볼을 억누르듯이 묻는 말을 꺼낸다.
“이름은 뭐라 해도 좋아. 중요한 것은 자네가 로열클래스이고…… 지금 자리를 비운 상아탑의 마스터 홀시딘이 그랜드 마스터이며, 자네는 바로 그와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지.”
“음, 네?”
투란은 갸웃하는 소리를 냈다.
파쿠란의 말을 조금 알아듣기는 하겠지만 뭐라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는 듯, 마법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지금 나온 소리가 무슨 의미인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듯!
한데 이자닌도 지금 투란과 비슷한 반응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기, 파쿠란? 그게 대체 뭔 소리야? 알아듣게 좀 얘기해!”
투란이 잽싸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동의한다는 모습을 보였다.
파쿠란은 이자닌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했지만, 투란의 태도에는 민감하게 대응하듯 말한다.
“투란,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아니 우리는 부탁하고 싶은 거야. 로열클래스로서, 네가 그랜드 마스터 홀시딘에게 내 말을 전해주기를 말이지. 나는 블랙 메이지 파쿠란, 이쪽은 도적 길드의…… 계승자 이자닌. 우리가 검은 연금술사 라바크, 블랙 메이지 바라크의 유물을 찾고 있다고 말이야. 가능하다면 카티야를 계승한 그랜드 마스터에게 우호적인 도움을 청한다고, 그렇게 전해줬으면 해.”
―목적이 홀시딘이었군.
드라고니아가 이야기를 요약했다.
투란도 그 요약을 납득했다.
파쿠란에게는 투란이 누구인가, 뭐 하는 녀석인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이자닌은 아무래도 이렇게 저렇게 까발려지는 소리에 거의 경기(驚起)라도 할 듯한 모습이지만, 파쿠란을 말릴 수는 없어 보였다.
다만 문제는…….
“왜요?”
왠지 삐딱해지는 투란의 기분은 순순히 응할 마음을 저 한편으로 치워놓고 있다는 것!
사람을 무슨 마법의 도구처럼 말을 전하는 데 이용하겠다는 파쿠란의 태도를 투란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이대로 말을 전했다가는 홀시딘에게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뭔지 모를 놈이 이러쿵저러쿵 떠들다가 ‘아, 그렇군요!’라고 대뜸 불러주는 것도 로열클래스가 할 일은 아니니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아도 카엘의 이적이니 뭐니 뒤숭숭한 상태인데, 저런 영문 모를 소리를 하겠다고 다시 홀시딘을 부르기도 귀찮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