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5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54)
“누군가에게 해로운 이야기는 전혀 없어, 그러니 진정해 이자닌.”
파쿠란은 이자닌이 어깨를 들썩이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차분한 눈길로 진지하고 신중하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어설픈 대답이었다가는 바로 이자닌이 주먹질에 발길질을 하며 앉은 채로 덤벼들어 깔아뭉갤 것이라고 예상한 듯한 태도였다.
그 태도를 받아들인 듯, 이자닌은 이를 으득으득 갈기는 했지만 일단 입을 다물고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그런 둘을 맹한 표정으로 보면서 기다렸고, 파쿠란이 말을 잇는다.
“도적왕이 로열클래스로 인정받게 된 까닭이 바로 도적왕의 보물 때문이지. 그 보물을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어설픈 이들의 손에 넘어가게 할 수가 없어서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그 의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그 결과, 도적왕의 보물 중에 몇 가지는 도적이면서 로열클래스가 된 자만이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지. 여기서 도적이란 것은 진짜 도적질을 하는 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도적 길드의 인정을 받는 길드 멤버란 뜻이야. 그 인정은 여기 이자닌이 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투란, 자네는 로열가든에 숨겨진 도적왕의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게 되는 거야. 우리 의뢰를 받아들이면 말이지.”
“의뢰?”
투란이 맹한 표정을 살짝 지우면서 눈을 번뜩하는 채로 짧게 되물었다.
이 번뜩이는 눈길은 이자닌도 똑같이 띄웠다.
“의뢰? 여기 투란에게?”
이야기가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는 분위기가 맴돌았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파쿠란은 전혀 개의치 않고 하던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다.
“자네가 우리 의뢰를 받아들이면, 우리의 비밀을 자네가 지켜준다는 것이 되고 우리도 자네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되는 거야. 그러면 자연스럽게 로열클래스란 자네의 신분에 대해서도 비밀이 보장되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이자닌과 나는 자네에게 의뢰를 하고, 자네는 그걸 받아들이고…… 덤으로 전설적인 도적왕의 보물에 대해서 의논해볼 수도 있고! 이런 핑계로 서로 돕는 관계라면, 그랜드 마스터 홀시딘이라도 우리 얘기에 잠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고 말이야. 그러면 자연스럽게 도적 길드의 검은 연금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거기서 카티야의 전승 속에 숨겨진 블랙 메이지의 유물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지. 대강 어떤 관계가 이어지는가 감이 잡히지?”
이자닌은 입을 다물었다.
투란은 이자닌이 대강 납득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투란 스스로는 납득했는가?
“음, 그러니까…… 내 비밀을…… 여기 시알라랑 모두에게도…… 계속 비밀이도록 지켜준다, 이 말인가요?”
순간 이자닌의 눈빛이 반짝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로열클래스의 비밀을 투란이 시알라 남매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듯! 이것을 약점으로 삼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재빨리 가늠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 이자닌의 얼굴에 은근히 못된 웃음을 얹고 번져가는 모양이었다.
하나 파쿠란의 눈빛은 많이 달랐다.
의아한 듯, 그러나 한편으로는 납득하는 듯이 이자닌의 눈길을 슬쩍 피하는 표정으로 파쿠란이 투란에게 말한다.
“원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로열클래스를 획득했다는 것은 때로는 가족이나 동료에게도 비밀로 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 그걸 원하나?”
말끝에 붙은 조심스러운 물음에 투란은 방긋 웃었다.
“남몰래 간직한 비밀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대체 무슨 의뢰를 하겠다는 거죠? 의뢰금은 얼마나……?”
파쿠란은 순간적으로 투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한다고 느꼈다.
특히나 ‘의뢰금’이란 말을 할 때, 그 빛이 아주 또렷했던 것 같은데……?
이자닌도 그 반짝임을 조금 느낀 듯, 불쑥 말한다.
“응? 의뢰라는 거는 핑계인데 의뢰금까지 받으려고?”
투란이 순식간에 실망해서 시무룩한 얼굴로 돌변하려는 찰나, 파쿠란이 번개처럼 말을 쏟아낸다.
“가짜 의뢰를 왜 해? 이자닌, 우린 진짜로 의뢰할 일이 있잖아. 자연스럽고 당연히, 진짜 의뢰를 해야지. 어설픈 핑곗거리로 삼으려고 의뢰라고 둘러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아, 이 기회에 제대로 도적왕의 보물 한 가지 정도를 목표로 삼을 수도 있다는 말은 내가 안 했나?”
이자닌이 눈을 끔벅거렸다.
금발 아래에서 녹색 눈동자가 짙은 의아함을 품는 광경이었다.
덕분에 투란은 이자닌의 얼굴이 꽤 질 좋은 균형을 갖췄다고 느낄 수 있었다.
―투란, 사람 얼굴을 놓고 물건처럼 품질 따지는 거는 아니라고 들었다만?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심경을 느낀 듯, 인간사회의 상식에 대해 되뇌듯이 중얼거렸다. 그 말투를 통해 드라고니아가 자신이 방금 한 말을 별로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투란은 금방 알았다.
‘글쎄, 하피나 사이렌이라면 여자 얼굴이 얼마나 균형 잡혔냐에 따라서 얼마나 강한가도 대강 판별한다잖아? 라미아 같은 거는 일단 사람 정신줄 놓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마력을 간직했다고 하고…… 아, 이게 아니군! 정신 사납게 좀 하지 마!’
옆으로 새려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투란은 느릿하게 이자닌을 흘깃거리는 태도로 파쿠란에게 묻는다. 옆에서 이자닌도 의심스러워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보물을 목표로 삼는다는 거죠?”
“하루에 서른 닢의 금전을 낳는 가방은 어떤가?”
지체 없이 파쿠란의 대답이 나왔다.
투란은 멀뚱하니 이자닌을 쳐다봤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이자닌에게 대신 설명해달라는 듯!
이자닌은 한숨을 쉬면서 삐딱한 말투로 투란을 위한 설명이자 파쿠란을 향한 질책을 시작한다.
“이봐요, 쿨란 아저씨! 그건 오래전에 길드 마스터가 없다고 확인한 마법 가방이잖아! 핑곗거리 의뢰가 아니라면서 그런 얘기부터 꺼내나!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고! 그랜드 마스터 만나겠다고 알드바인까지 와서, 엉뚱한 사람 붙잡고 멍청한 소리만 할 거야?”
“이자닌, 검은 연금술사가 확인해둔 아티팩트가 있다. 길드 마스터가 확인할 수 없는 전승유물이 있다는 말이지. 블랙 메이지의 전승을 잇는 자가 나서지 않는 한, 찾을 수 없는 보물이다.”
파쿠란은 신중하면서도 명확하게 말했다.
이자닌이 어이없다는 듯, 파쿠란이 지금 진담을 하는 것인가 농담을 하는 것인가 분별하겠다는 듯이 바라봤다. 아무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과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전설적인, 누군가가 퍼뜨린 허풍으로 결론이 난 전설의 보물을 실재한다고 주장할 줄은 전혀 예상 못 한…….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이야기래?’
투란은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하는가, 고민하는 표정을 꾸미며 생각했다.
드라고니아는 파쿠란과 이자닌을 가늠하는 투란을 놀리듯이 말한다.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잖아?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블랙 메이지가 로열클래스를 간파할 수 있다는 것뿐이고…… 투란, 네 말에 따라 남매들의 이야기는 이 도적 여자에게 하지 않겠다고 슬쩍 넘어가 줬잖아. 이자에게 협력해서 의뢰라는 것을 받아들일까 말까만 결정하면 되는 일 아닌가? 보물이야…… 그 가방보다 더한 것을 이미 갖고 있고 말이지.
‘흠, 하루에 금전 서른 닢이라…… 의뢰도 진지하게 하겠다는 듯하고…… 거참, 애매하네. 아닌 척하는 것도 이상하겠고…… 아, 얘기 너무 복잡해! 까망이든 하양이든 마법사랑 이런 거 따지는 게 아니야!’
투란은 잠깐 머리를 굴리려던 시도를 포기했다.
조금 더 깔끔하게 일찍 포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당장 복잡한 이야기를 내버리고 상황을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질척질척하게 이자닌과 파쿠란의 사정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고, 뒤늦게 결단한 셈이었다. 그래서…….
“우아아, 우아! 엄청난 보물이네요, 하루 서른 닢이면 이틀이면…… 육십! 사흘이면…… 어, 음…… 구십! 나흘만 넘어가면 금전이 백 닢 이상이잖아요! 우아아…….”
일단 놀랐다는 생각을 그대로 토해내 보는 투란이었다.
이자닌이 그런 투란을 보면서 조금 전에 파쿠란을 보던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의 의미는 어떻게 봐도 뻔했다. 세상에 이렇게 성의 없고 마음에 없는 감탄은 없을 거라는 감동!
파쿠란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투란의 말을 해석한 듯했다.
“투란, 장난하는 것 아니라네. 결코 농담이 아니고, 허튼수작도 당연히 아니지! 그 아티팩트는 실제로 있어!”
“아, 네…… 그런데 대체 그런 엄청난 금전 가방을 누가 만들었대요? 아, 혹시 전설적인 대마도사 카엘? 그쯤 되는 거물인가요?”
투란이 이자닌을 흘깃하면서 조금 지루하다는 듯이 나른하게 될 대로 되라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는 듯한 태도가 목소리를 곁들여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야, 대마도사 카엘이 그따위 아티팩트를…….
드라고니아는 겨우 금전을 낳는 가방을 대마도사 카엘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마땅치 않은 듯이 투란에게 투덜거리려 했다. 한데…….
“그렇다고 하더군. 연금술의 궁극에 이르러야 하는 아티팩트이고 그 궁극에 이른 것을 과시하려고…….”
파쿠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투란의 말을 인정하고 있잖은가!
투란이 파쿠란을 향해 입을 떠억 벌렸고, 이자닌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가 다시 파쿠란을 보면서 소리가 나지 않는 입을 벙긋거렸다. 이 태도에 담긴 의도를 이자닌이 바로 알아차렸다는 듯, 기꺼이 대신 목소리를 울리며 파쿠란에게 묻는다.
“파쿠란, 정말 장난치는 거 아니었어요?”
“장난 아니라니까. 도적왕이 대마도사의 일을 거들어주고 받은 선물이 바로 그 가방이야. 코인 백이라고, 이자닌도 한두 번은 들어봤잖아.”
“동전 가방이잖아, 그건!”
“동전만 나오는 가방이 아니라고, 보관하는 가방도 아니고!”
“진짜 그게 전설적인 대마도사가 만든 아티팩트 이야기라고?”
“그래, 검은 연금술사가 직접 확인한 거다. 카티야가 그랜드 마스터로 인정받기 전에 자금사정으로 굉장히 곤란했을 때 그 아티팩트의 실존 여부를 탐문했었고, 그 탐문이 계기가 되어서 검은 연금술사와 어울리게 되었지. 그리고 그걸 찾아냈을 때,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는 블랙 메이지와 친교를 맺었다. 이자닌, 이건 자문역으로서 하는 말이야. 투란, 이건 도적 길드 내에서도 거의 아는 이가 없는 이야기야.”
파쿠란은 강하게, 물러서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자닌은 슬슬 믿기 시작한 듯했고, 투란은 일단 따져봐야 했다.
“그래서, 그걸 찾아내서 날 주겠다고요?”
파쿠란이 이 물음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잠깐! 자아암깐! 파쿠란, 그걸 멋대로 정하면 안 되지! 없는 것을 놓고 헛소리하는 거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는데, 정말로 그런 아티팩트가 있다면…….”
“그건 도적 길드의 소유가 아니야. 애초에 도적 길드가 도적왕의 보물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그랜드 마스터 카티야에게 확실히 넘긴 아티팩트다.”
“응? 확실히 넘겨요?”
투란이 귀를 쫑긋했다.
이자닌이 ‘엥?’ 하는 소리를 냈다.
지금 파쿠란의 말은 그랜드 마스터의 계승자가 금전 낳는 가방의 새로운 주인이라 하는 듯하잖은가?
파쿠란은 그 의문에 바로 답하며 이야기를 잇는다.
“후세에 찾아올 약속된 계승자를 위해서, 그 보관을 그랜드 마스터에게 맡긴 거다. 바로크 님은 그런 보물을 도적 길드가 보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지. 애초에 온갖 사연을 들이대면서 도적질하는 놈들이 모인 곳이다. 길드 안에 뭘 보관하든 가장 먼저 탐낼 녀석들이 가득한 곳에 그런 아티팩트를 둔다면, 그건 전부 싸우다 죽으라고 독을 살포하는 거랑 다름이 없지. 그래서 검은 연금술사로서 상아탑의 그랜드 마스터에게 부탁한 거지. 자격을 갖춘 자…… 이 경우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로열클래스라고 지정까지 해놨지. 그런 자가 블랙 메이지의 인도를 받아서 찾아왔을 때, 그랜드 마스터의 계승자는 아티팩트 탐색을 시작할 수 있다.”
“탐색?”
이자닌이 한 마디를 짚었다.
가만히 듣던 투란도 ‘응? 탐색?’ 하며 중얼거렸다.
파쿠란이 빙긋 웃었다.
“블랙 메이지에게 반 토막, 그랜드 마스터에게 반 토막의 마법이 전해져 있어. 따로 두면 의미 없고, 하나가 되면 지도를 부를 수 있는 소환 마법이지. 투란, 너는 로열클래스이고 나는 블랙 메이지다. 그리고 홀시딘은 그랜드 마스터지.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의뢰가 되는 거예요?”
투란이 너무 복잡해서 더는 따라갈 수 없다는 듯이 툭하니 묻는 말을 던졌다.
파쿠란의 눈길이 이자닌을 향해 옮겨졌다.
이자닌이 눈살을 찌푸렸다.
“파쿠란, 설마?”
“아까부터 하던 이야기잖아. 벨라딘 파티는 여기까지만 의뢰를 받았어. 이자닌, 페브라까지 가는 길도 험하지만 도착해서도 상황은 만만치 않아. 이럴 때 그랜드 마스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로열클래스라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지금 파쿠란의 말에는 은은한 열정이 배어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갸웃했고, 이자닌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