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6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56)
Chapter 132. 도적의 사정
“왜?”
시알라가 눈을 부릅뜨고, 이런저런 말을 하려다가 달싹거리려던 입술을 모으듯이 물었다. 결국은 성난 것처럼 살짝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였고, 듣고 있던 투란은 반사적으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어? 아니, 그러니까…….”
말을 더듬는 투란을 보며 시알라는 미간을 손가락 마디로 누르면서 성질을 가라앉히는 시늉과 함께 다시 묻는다.
“투란, 투란이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고. 이자닌이나 그 쿨란…… 딱 봐도 알 수 있잖아. 어디 가서 위협받을 정도로 어설프지 않다는 거! 게다가 여긴 알드바인이야, 헌터대공방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많은 헌터들이 와글거린다고. 이자닌이 라비엔에서 보인 재주라면, 여기서 열흘만 돌아다녀도 필요한 인원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그리고…… 정말로 도적 길드 소속이라면 며칠 걸릴 일도 아냐. 여기 도적 길드를 통해서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일이라고.”
“음, 그랬었나…… 아, 근데 그게 그러니까, 이자닌만 문제가 아니고 그 쿨란이 사실은 파쿠란이라고 했잖아, 블랙 메이지인데…… 로열클래스를 찾아낸다고, 그러니까…….”
“잠깐, 로열……을 찾아내? 블랙 메이지?”
시알라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다시 짚었다.
조금 전에 투란이 어설프게 꺼낸 이야기는 벨라딘 파티를, 루비까지 합류한 벨라딘 파티를 대신해서 여기서부터 이자닌의 여행에 투란이 대신 동반하기로 했다는 말이 그 대강의 내용이었다. 거기에 갑자기 뭔 블랙 메이지라든가 로열클래스가 끼어든 셈이니, 시알라는 바로 그것부터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투란도 자신이 요령 없이 되는대로 말을 꺼낸 것을 깨달은 듯,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다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며 이야기한다.
“아까 대장간에서 페란드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었어. 그 사이에 홀시딘이 멀리서 말을 걸어왔거든. 아마 그때 파쿠란, 쿨란이라고 위장하고 있던 블랙 메이지 파쿠란이 상황 이상한 것을 느꼈나 봐. 뭐, 말로는 항상 준비된 마법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홀시딘이 말을 걸어온 덕분에 확신하긴 한 모양이야. 로열클래스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보니까 정말로 그럴 수 있더라고. 일단은 나부터 말을 걸어온 것 같기는 한데, 알고 있는 모양이야. 시알라랑 페란드랑…… 다 관계있다고 말이지.”
“그래서, 그거 입막음하려고 따라가겠다고 했어?”
시알라가 조금 험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순간 시알라의 서늘한 눈빛은 마치 블랙 메이지고 나발이고, 일단 파쿠란을 반쯤 뭉개놓은 다음에 생각해보자는 듯했다.
“어? 아니, 그건 아냐!”
투란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시알라의 눈길이 조금 가늘어졌다.
느슨한 저녁을 넘어서, 하루를 신나게 먹고 마시고 떠들던 쟌을 중심으로 한 듯했던 벨라딘 파티에 루비까지 얹어서 퍼브 위에 마련된 여관방에 다들 처박아놓은 다음에 나온 이야기였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함께 지쳐서 아래층으로 가서 드러눕는다고 자리를 비웠고 페란드는 일찌감치 투란에게 끌려나가서 대장간에 숨은 것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이자닌은 쿨란, 정체가 파쿠란이라는 작자랑 함께 여행 준비를 한답시고 미리 나갔는가 싶었더니 투란과 묘한 이야기를 한 다음에 알드바인 시가(市街)로 나간 모양이었다.
덕분에 투란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시알라만 듣고 있는 상황인데…….
“분명한 다른 이유가 있어? 감출 일이야?”
툭툭 찌르듯이 묻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하잖는가!
“감출…… 일은 아니야.”
투란이 대답했다.
―감춘 일이 많기는 하지.
드라고니아가 뇌리를 울리며 골리는 소리를 했지만, 투란은 못 들은 척하고 계속 쏟아지는 시알라의 눈길에 대답을 이어가야 했다.
“굉장한 보물을 걸기도 했고, 보물이 없어도 금전 오십 닢을 낸다잖아.”
“금전 오십 닢은 크긴 하지만 무시할 만하고, 보물은 뭐야? 정체를 모를 이상한 것이지만 보물이니까 괜찮다고 넘어간 거야?”
“잉? 아냐, 아니라고! 금전 낳는…… 코인 백이라는 거래. 이자닌은 동전 가방 아니냐고 하는데, 파쿠란이 전설적인 아티팩트라고 하는 중이야. 뭐 없어도 금전 오십 닢이라잖아!”
“그러니까, 금전 오십 닢은 무시하고! 동전 낳는 가방 때문에 이자닌을 따라가 보겠다고?”
툭툭, 조금 더 날카롭게 시알라가 따지고 있었다.
투란이 살짝 당황하는데…….
―흠? 일리가 있네! 과연 이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최저의 기대치를 따져본다면 시알라의 말이 맞잖아! 금전 오십 닢을 무시하지 않으면 몰라도, 무시한다면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뭐가 신났는가 시알라의 말에 추임새를 넣듯이 떠들고 있었다. 정작 도움을 받는 시알라는 전혀 듣지 못하는데!
‘아, 좀 닥쳐줘. 헷갈린다고!’
마음 깊이 드라고니아에게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결국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시알라에게 주눅 든 표정으로 대답을 꺼낸다.
“페브라로 간다잖아. 거기 지금 홀시딘이 가 있는 곳 근처 같아서…… 자꾸 거기서 뭐가 늦어진다면서 대도감을 안 갖다주니까…… 가서 대도감이라도 얼른 받아올 수 있으려나 싶어서…….”
“대도감?”
시알라가 갸웃했다.
투란이 냉큼 말을 보탠다, 열정적으로!
“상금도 상금이지만, 내가 홀시딘에게 열심히 기대하고 있는 거잖아. 세상의 온갖 것들이 전부 담겨 있다는 대도감! 상아탑에서 수백 년 동안 쌓고 쌓고 쌓아왔다는 온갖 보물, 마수, 몬스터, 왕국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는 대도감 말이야! 겨우 읽을 수 있다 싶었는데, 홀시딘이 안 오잖아! 대체 뭘 하고 있는가 가까이 가서 따져보고 싶어지잖아!”
이번에는 시알라의 입가에 한숨이 걸렸다.
신기한 대도감에 혹한 듯한 투란의 모습은…… 막내인 멜란드가 별 필요도 없는 물건에 혹해서 눈을 반짝일 때랑 거의 똑같다! 멜란드야 이제는 그래도 다 큰 시늉을 한답시고 어릴 적보다 덜하기는 한데, 투란은 그런 시늉 하지 않았다. 뭔가 눈에 들어오면 일단 그걸 어떻게든 갖고 싶어서 눈동자가 지금처럼 반짝거리기부터 하니까,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투란이 어린 멜란드처럼 답도 없이 징징거리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위험한 곳이라든가 급한 상황이 닥쳐오면 투란은 남매 모두를 책임졌던 맏이 세란드보다 더 굳센 방벽이 되어 준다. 산맥 깊은 곳에서 네 남매를 데리고 나온 일은 그런 면에 있어서 투란이 보여준 소소한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한데 그 소소한, 투란 본인에게는 그저 조금 귀찮은 정도인 일이 네 남매에게는 목숨을 이어준 일이었고 세란드를 찾아내려 나선 네 남매의 목적을 완전히 마무리 짓게 해준 중대하고 중요한 결과를 품게 해줬다.
게다가 이 알드바인까지 와서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까지 더한다면, 네 남매는 그야말로 일생을 빚진 셈이었다.
웬만해서는 갚을 수 없는 빚…… 어지간한 경우라면 ‘은인이에요, 은혜가 커요!’라고 둘러댄 다음에 그냥 잊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고 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알라는, 시알라의 결단을 따라 맏이인 세란드를 찾겠노라고 나섰던 세 형제에게는 그런 정상적인 영역의 판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생에 거쳐 갚아야 할 빚이라면, 일생에 거쳐 갚을 뿐이다!
갚을 수 없는 빚이라면 계속해서 이자를 물며 산다!
이것이 시알라와 세 형제가 ‘역병의 수해’를 통과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이는 세란드를 찾으러 나설 때 했던 각오이기도 했다.
맏이라는 이유로 네 남매를 안전한 곳에 두고 목숨을 걸었던 세란드를 위해 네 남매는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다. 새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고 투란에게 갚을 빚을 몰라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조금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투란이 때로는 막내보다 더 막내 같지만 때로는 맏이보다 더 맏이 같다는 점이 문제였다.
투란의 판단이 그냥 억지를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성숙한 사고과정을 거쳐 내린 것인지…… 지금 같은 경우에 참으로 헷갈리는 것!
때문에 시알라로서는 이자닌과 쿨란, 파쿠란이라는 블랙 메이지가 정체라고 해서 왠지 꺼리는 마음이 더 짙어지는 둘이랑 왕국 두엇을 넘어 여행하겠다는 투란을 말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니 이럴 경우라면…….
“그러면, 제란드나 페란드 중 골라서…… 아니면 아예 내가 함께 가는 걸로 할까?”
시알라는 투란에게 이렇게 제안을 해봤다.
나름대로 생각하고 양보한 제안이었다.
한데 이에 대한 투란의 반응이란…….
“어? 시알라도 그 아티팩트에 관심이……?”
시알라로 하여금 저절로 걸레를 움켜쥔 손으로 한 대 치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잖나!
“없어! 그런 게 있으면 혼자 가져도 돼! 그 전에 투란, 생각을 좀 하라고, 생각을! 여기서도 하급 헌터니 뭐니 하면서 촐랑거리며 다녔는데 결과가 뭐야! 웬 마법사가 금전 열 닢 들고 와서 의뢰하는 거였잖아! 그나마 그 산돌프는 막 나가는 로그메이지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다행이지, 그런 놈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무슨 일에 휘말렸을지 모른다고! 하물며 알드바인보다 더 크고 넓은 왕국에 가본다고 생각해봐. 투란, 그런 곳에서는 귀족이니 뭐니 하며 능력 없이 거들먹거리는 녀석들도 가득하다고! 괜히 한 대 쳤다고 병사를 몰고 오는 연놈이 한둘이 아냐. 그런 거 보면 가만히 꾸벅꾸벅하고 넘어갈 수 있겠어? 투란이 자란 산골 깊은 곳에서 그런 경우 어떻게 한다고 했지? 대답해봐!”
“쥐어패서 숲에다 던져놓지. 대부분 아저씨들이 그랬다고 했잖아.”
벅벅,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긴 여행을 함께 하는 사이, 투란은 네 남매가 살던 곳의 이야기를 들었고 자신이 살던 샤오콴 마을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다. 그 결과 네 남매는 투란이 산맥 깊은 곳, 인간의 상식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곳에서 살았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경계도시를 벗어나서 제법 사람 사는 곳에 깊이 들어오면 투란이 나서서 뭘 하기보다 네 남매가 먼저 움직이기로, ‘역병의 수해’를 벗어나기 전에 단단히 약속을 받아두기도 했었다. 결국은 경계도시에서 살짝 벗어난 알드바인인지라 뭔가 애매해지기는 했지만, 지금 투란이 가겠다고 하는 곳이라면 그 약속이 유효한 곳이다.
“그래, 왕국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런 상황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잖아, 우리가 같이 가서 그런 상황을 피하게 해준다고!”
시알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투란은 잠깐 눈알을 굴리다가 시알라를 향해 말을 더하니…….
“그치만 내가 지금 누굴 쥐어패러 가는 거 아니잖아? 음, 그리고 이자닌도 나름대로 수를 줄이고 실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 같고…… 굳이 시알라나 페란드, 제란드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걸.”
“앙? 이자닌의 사정을 봐주려고? 안 봐줘도 돼! 여태 이자닌이 우리한테 자기가 도적 길드에 속했다는 말을 한 적 없거든! 그러니까 그런 도적의 사정 따위는 모르는 척해도 된다고!”
시알라는 시원하게 싹둑, 이자닌의 사정 따위는 알 바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너무 시원해서 투란이 잠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투란은 생각을 조금 더 한 다음에 차분하게 말해야 했다.
“시알라, 정말로 그런 아티팩트에 관심 없으면 가지 않는 게 좋아. 여기서 시알라가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랑 자리 잡고 있는 편이 나한테 더 좋은 상황이거든. 여차하면 도망쳐올 곳이 있는 거니까. 그리고 홀시딘을 찾아가는 거라고, 뭔 일 생기면 홀시딘한테 잽싸게 떠넘길 거야! 누굴 패야 할 일이 생기더라도, 홀시딘이 알아서 잘 덮어줄 테니까 걱정 없어. 그렇잖아?”
“투란, 패지 말고 참는 편이 더 좋을 때가 있어. 꼭 패야 하면…… 가면이라도 쓰고 패고 말이야.”
시알라는 나름대로 타협할 부분을 만들기 위해 말했다.
하지만 곧 투란이 ‘오, 가면!’이라고 하자마자 바로 시알라는 자신이 실언(失言)한 것을 알아차렸다.
뭔가 가면 쓴 채로 마음 놓고 패라고 권한 것 같잖은가!
멜란드처럼 막내답게 알아들었다면 투란은 반드시 그리 할 것이니…….
“아니, 패지 말라고! 아, 대체 얘기가 어디로 새는 거야! 아무튼! 혼자 가야 하는 거야? 우린 여기서 기다리면 되고?”
탁탁, 걸레로 탁자를 치며…… 투란에게는 탁자가 자기 대신 쳐맞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시알라는 다시 진지하게 말투를 가다듬으며 실언한 부분을 회수(回收)하고서 묻고 있었다.
“어, 그래! 이곳은…… 알드바인은 중요한 거점…… 거처라고. 여기를 중심으로 살아볼 거니까. 누군가 꼭 기다려주길 바라. 기왕이면 여러 사람이 기다려주면 더 좋고 말이야.”
투란은 슬슬 노려보는 시알라의 눈길에 급히 답해야 했다.
잠시 팔짱을 끼며 투란을 바라보다가 시알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꼭 그래야 한다면…… 꼭 그래야 하는 거야?”
“이자닌의 의뢰라니까, 일단 의뢰인 요청에 맞춰줘야지!”
투란은 이자닌의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고 다시 둘러대야 했다.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알라는 그런 사정 무시하라는 표정이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