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57)
해자(垓字)의 거리, 하얀 안개가 엮인 화이트 레이크에 맞닿은 알드바인의 호숫가를 장식하듯 둘러친 긴 방벽으로 인해 생긴 거리였다. 방벽은 댐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했지만, 물보다 낮은 긴 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생김새가 딱 해자 형태였기 때문에 이곳은 해자의 거리라 불리었다.
그리고 알드바인의 빈민가(貧民街)이기도 했다.
“원래 사람 살라고 이렇게 둔 곳이 아니었으니까요.”
사내는 헤헤거리는 웃음과 함께 이자닌에게 설명했다.
이자닌은 잔뜩 뾰로통한 얼굴로 사내를 봤다. 더 이상 허름한 나무 창 너머로 보이는 해자 거리에 눈길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듯…… 그런 이자닌의 분위기를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처럼, 설혹 위험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느끼는 것처럼 사내는 재빠르게 하던 말을 이어간다.
“호수를 타고 괴수(怪獸)라든가 마수(魔獸)라든가…… 이제는 호수를 타고 알드바인으로 오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다지만 아직 몬스터도 있으니까요. 알드바인을 건설하기 시작한 상아탑의 마법사들은 이 거리를 완충지역으로 삼으려 했거든요. 그러니 여기서 살지 말라고 했죠. 뭐, 그것도 한 백 년쯤 되고 많이 안정되다 보니까 이전처럼 심하게 뭐라 하지 않으니까 다들 아무렇게나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갖다 쌓고 둘러친 채로 대강 사는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거주지는 아니니까요, 공방 장인이라든가 헌터라면 제대로 된 위쪽 거주지에서 살지 이런 곳까지 내려와 살려고는 안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래, 그래서 여기 자리 잡았다는 얘기는 대강 알겠어. 그러니까 필요한 물품을 구해 올 수 있다는 얘기야, 없다는 얘기야?”
이자닌이 귀찮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사내는 잠깐 침을 삼키면서 아까보다 더 조심스럽게 대답을 한다.
“구해올 수는 있습니다…… 그저 시간이 조금…… 음, 기대하신 것보다 더 걸릴 수 있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 양해를 좀…….”
이자닌은 사내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잠깐 침묵했다.
그런 이자닌을 보며 사내는 두 손을 탁자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발을 가지런히 한 채로…… 감히 다른 곳을 보지 못한다는 듯이 의자에 앉은 몸을 꼿꼿하게 세운 모습으로 바싹 긴장한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파쿠란은 이자닌이 의자에 앉으며 탁자 너머로 조금 더 사내를 보는 눈길을 매섭게 하는 광경을 보다가 입을 연다.
“며칠 걸리는 일인가? 알드바인의 도적 길드 마스터가 나서도?”
“에, 그…… 제가 일단 길드 마스터이기는 합니다만…… 그게, 딱히 제가 유능해서는 아닌 건데 말이죠…… 아니, 원래 알드바인에는 도적 길드가 제대로 자리 잡지를 못한 탓에 엉겁결에…… 길드 소속으로 여기 머무는 경우가 저밖에 없어서 어쩌다 보니 연락책으로 남으면서 엉겁결에 제가 길드 마스터 소리를 듣는 것뿐이라 말입니다.”
사내가 주눅 든 표정으로 중얼중얼 더듬으며 말하고 있었다.
이자닌은 그런 사내를 향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한다.
“알아. 원래 상아탑이 지배하는 마을에 도적 길드는 발 담그지 않는 것이 원칙이니까. 그런데 여기 몇 년째 살고 있었다고?”
“그, 그게 그러니까 한 십…… 이십 년은 안 된 것 같습니다만…….”
슬슬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이자닌과 마주치려 하지 않으며 사내는 대답을 더듬었다. 이런 사내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자닌의 말투가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완전히 은퇴하셨네요?”
사내가 움찔했고, 파쿠란이 바로 끼어든다.
“이자닌. 도움을 청하는 건 우리 쪽이다. 여기를 어떤 식으로 운영하든, 그건 간섭할 일이 아니야.”
“운영? 그런 게 아예…….”
이자닌이 울컥한 소리를 하려 할 때, 파쿠란은 손가락을 입술에 세우며 조용히 밖을 내다봤다. 순간적으로 이자닌의 입이 다물렸고, 사내는 밖에 뭐가 있는가 하고 놀라 움찔했다. 하지만 곧 파쿠란의 말이 이어지니…….
“상아탑이 다스리는 도시잖아. 기본적인 거처라도 있는 게 다행이지.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면 다른 곳으로 불티가 날아다니면서 난리가 났을 수도 있잖아. 라이노 씨는 길드 마스터로서 나름대로 최적의 선택을 한 거야. 여긴 상아탑의 마스터가 다스리는 알드바인이라고.”
“에이! 자꾸 강조하지 마! 안다고, 알아! 그치만 이건 너무하잖아! 빈민가에, 제대로 거주지에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이런 거리에 창고 하나 없이, 아예 빈민으로 눌러앉아 있으면서 길드 마스터라니, 이게 뭐냐고! 이러면서 뭔 도적이야, 뭔 길드 마스터냐고! 너무하잖아, 라이노!”
이자닌은 목소리를 낮추면서, 조금 전에 파쿠란이 괜히 누가 오는 척 협박한 것에 대한 화풀이라도 하듯이 으르렁거리는 말을 쏟아내며 사내, 알드바인의 길드 소속 도적 라이노를 후려패듯이 노려봤다.
라이노는 한층 더 주눅 든 모습으로 움찔거리면서 이자닌의 목소리를 회피하겠다는 듯, 그 눈길에서 숨고 싶다는 듯한 태도로 입술만 달싹이며 제대로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알드바인뿐이 아니라, 상아탑의 자치도시에는 애초에 도적 길드가 자리를 잡지 않았다. 마법사의 영향력이 큰 도시에서 도적질할 만한 가택이라면 마법사와 연관이 깊을 터이고 건드리면 마법에 의해 이모저모로 귀찮은 일이 잔뜩 생길 테니 아예 피하는 편이 좋다고, 길드에서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그런 도시를 스쳐가듯 들르는 일이 없을 수는 없는 터라 그럴 경우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 하루나 이틀은 머무를 수 있는 기본적인 거처를 마련해두기는 했다.
원래대로라면 라이노는 그런 기본적인 안전을 위한 가옥을 관리하는 길드 소속의 도적으로 반쯤 은퇴한 처지였을 것이다. 라이노가 알드바인에 처음 당도했을 때는 거의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라이노가 도착해서 처음 겪은 알드바인은 도적 길드는 없어도 도적은 가득한 해자 거리의 풍경이었다. 애초에 안쪽의 경계도시인데, 경계도시의 상태를 벗어난 도시라는 이상한 소문에 따라서 찾아오기도 했지만…… 길드 소속 도적으로서 빈민이 저지르는 도적질의 피해를 입을 수는 없어서 대처하다 보니 엉겁결에 이 동네 도적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고, 이를 머나먼 길드에 보고했더니 여기에 길드 지부를 둔다는 답신이 왔었다.
지부를 관리하는 마스터는 라이노에게 맡긴다는 말과 함께 온 답신이었다!
당시 달리 갈 곳도 없는 라이노였고, 지부를 맡긴다는 말은 나름대로 지원금이 온다는 소리라서 그냥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서 자신이 제법 마스터답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하는 기대도 조금 하면서!
그리고 거의 이십 년 정도 세월이 흘렀다.
라이노는 자신이 거의 잊혔다고 여겼고, 알드바인은 예전보다 더 번성해졌다.
이십 년이면 충분히 그럴 만한 세월이니까…….
그런데 오늘, 갑자기 알드바인의 도적 길드를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오라고 한 적도 없고, 온다고 한 적도 없는 손님이었다.
라이노로서는 왜 자신이 이런 상황이냐고 성질내야 맞는 날이었다.
하지만 라이노는 이 손님 둘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둘이 자신을 찾아온 방식, 자신에게 들이댄 증표…… 도적 길드에서, 라이노가 운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진짜 도적 길드에서 찾아온 이들이란 증거가 잔뜩이었기 때문에!
덕분에 거의 이십여 년 만에 라이노는 원래 도적 길드 분위기가 어떠했는가를 되새기고 있는 중이었다. 둘에게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나마 파쿠란은 이런 라이노의 사정을 납득하며 도우려는 듯한 말을 하긴 하는데…….
“이자닌, 적당히 좀 하라고. 이쪽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라이노 씨가 완전히 손 놓고 구경만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너무 말이 심해. 며칠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잖아?”
라이노에게는 무리니까 시키지 말란 소리는 없다!
물론 라이노로서도 둘에게 그런 일은 자신의 역량으로는 며칠 내에 해낼 수 없으니까 몇 달 기다리라고 말할 배짱이 없기도 했다. 둘이 무슨 전설적인 보물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어, 최선을 다할 테니까 며칠 기다려주시면…….”
“배 한 척 구해달라는데, 바로 앞에 항구가 있는 도시에서 배 한 척 구해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고! 그냥 여기 산다고 부탁하나, 길드 마스터한테 부탁하는 거 아니냐고!”
이자닌이 다시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라이노는 다시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이자닌의 말이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곳에 십여 년 이상 자리 잡은 도적 길드라면 원래 갖추고 있어야 했다.
길드의 도적이 찾아오면 안전하게 지낼 거처, 어디론가 바로 떠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여행의 보탬이 되는 것들…… 항구가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배 한 척 정도는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길드 마스터의 역할이 맞기는 맞다.
문제는 라이노가 이 빈민가인 해자 거리에서 살면서 이런 여러 가지 준비에 대해 매우 소홀할 수밖에 없는, 아침저녁으로 먹고 살기 빠듯하고 바쁜 삶을 이십여 년간 반복하다 보니 그런 준비가 전혀 없다는 것!
먹고 사는 일이 힘들고 바빠서 길드에서 몇 번 보내온 지원금조차 거기 다 써버린 라이노로서는 둘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고, 그 사정을 밝히는 것도 아주 곤란했다. 그러니 일단 날짜의 여유를 얻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인 셈이었다. 한데 그조차도 왠지 둘은 그냥 기다려준다고 물러설 듯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길드였다면 요청을 한 다음에 바로 돌아서서 연락을 기다린다고 했을 텐데, 둘은 라이노를 찾아오자마자 문 걸어놓고 자리 잡은 채로 확실하게 준비를 해줄 수 있느냐고 따지고 있었다.
애초에 들어서면서부터 라이노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의심하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였는데, 라이노는 거기에 대해서 항의할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이야기는 지금 두어 바퀴 돌아서 제자리…….
이자닌은 보채고 파쿠란은 말리고, 라이노는 주눅 든 채로 눈치 보고!
그야말로 제자리 뜀박질 같은 짓을 하는 중이었다.
결국 여기서 누가 가장 인내심이 없어서 이 상황을 아무렇게나 끝내려 할 것인가 나서기만 하면 되는데, 역시 이자닌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내가 여기서 며칠 기다릴 정도로 여유가 없다고! 여기 사나흘만 더 머문다고 해도 막 흘겨보는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단 말이야! 내가 왜 시알라한테 그런 눈치를 보고 있어야 하냐고! 아, 정말 사람을 무슨 납치범 보는 것처럼 쳐다보더라니까! 오늘은 그래도 그냥 도둑년 보듯 했지만 내일은 인신매매하기 위해 사람 납치하는 년으로 볼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 오래 있고 싶겠어? 그치, 아니지? 얼른 떠나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당연하지 않아? 아니야?”
“다, 당연합니다! 네, 당연하죠. 어, 그런데 시알라가 누굽니까?”
엉겁결에 동의하면서도 라이노는 낯선 이름을 깨닫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시알라인가를 설득해서 눈빛을 부드럽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며칠 여유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자닌이 눈꼬리를 치켜올렸고, 파쿠란이 혀를 차는 소리부터 내고 말한다.
“어제오늘 사이에 듣자 하니 고블린 슬레이어라고 나름대로 소문났다고 들었는데, 전혀 들은 바가 없나?”
“에? 어, 고블린…… 고블린 슬레이어라면 남쪽 성벽의 거대 그루터기 아래 구멍에 자리 잡았다는…… 헌터 파티 말입니까? 어, 그 파티에 있는 사람인가요?”
라이노는 눈치를 보면서 일단 허겁지겁 자신이 바람결에 들었던 이야기를 쥐어짜 내야 했다. 여기서 ‘전혀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는, 본능적인 위기감 때문이었다. 왠지 모른다고 하면 죽지는 않더라도 심하게 구타당할 듯한 기분이 등골을 쭈뼛하게 해준 덕분이었다.
“이 아저씨, 안 되겠네.”
이자닌이 결국 포기했다는 듯이 한마디 하는 순간, 라이노는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확신해야 했다. 이런 라이노의 판단을 증명하듯…….
“폐기할 정도로 엉망은 아니야, 이자닌. 이곳 상황에 적응하다가 완벽하게 여기 맞춰진 사람이 된 것뿐이다. 시알라란 이름은 몰랐어도 대강 흐르는 소문은 파악하고 있었잖아. 우리가 조금 불편하다고 지부의 길드 마스터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는 없어. 라이노 씨, 긴장하지 말고…….”
파쿠란이 줄줄 읊는 소리는 무시무시하게 라이노의 귓가를 파고들어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말이었다.
라이노는 여기서 뭐라든 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뭐든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테니까!”
이렇게 나오는 소리는 그야말로 되는대로 마구 나올 뿐이지만, 그래도 조금 통한 것인가?
“배편, 배를 못 구하면 얻어탈 수 있는 배편이라도 알아봐 줘. 라이노,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죠?”
“예? 아, 그야…… 구해보겠습니다! 네, 가능한 한 빨리 떠나는 배편으로…….”
라이노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이자닌은 한숨을 쉬었고, 파쿠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라이노는 항구를 떠날 배를 구하는 것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니까, 과연 여행 일정을 맞출 수 있을까…… 이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해도 둘은 일단 라이노에게 알드바인을 떠나는 배를 알아봐 달라 말하고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