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6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58)
‘여기도 도적 길드가 있었나?’
투란은 그루터기 높은 곳에 앉은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블랙 메이지가 눈치채면 어쩌려고 도청이냐?
드라고니아는 투덜거렸다.
‘거미줄로 하는 거니까, 괜찮아! 모르고 있잖아, 알면서 가만히 있는 거는 아니겠지? 알면서 가만히 있는 거면 구경하란 거니까 괜찮은 거잖아? 음, 그래…… 괜찮아, 괜찮은 거야!’
자신 있게 대답하다가 투란은 슬그머니 한 발 빼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모습을 한심하다고 노골적으로 한숨이 섞인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꾸한다.
―들키면 괜찮을 리가 없잖아! 아라크녹스 왕의 거미줄이 들통난다 해도 어디서 어떻게 몸에 묻힌 것인가 모르는 동안만 괜찮을 거다. 그냥 프로브를 통해 원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듣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니까.
‘흐흠? 거미줄로 엿듣는 거는 너한테 안 들려서 심술 난 거야?’
투란이 눈을 가늘게 하며 안개가 흐르는 호수를 보는 채로 불쑥 물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인간의 사정이다만, 너한테 매인 나까지 휘말릴 경우를 생각해서 가능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따로 검토할 수 있게 상황파악을 해둬야 하는 필요성만큼은 절실하게 느낀다만?
‘뭐라는 건지 못 알아듣겠다. 아무튼, 블랙 메이지가 대체 뭘 할 수 있는지 애매하니까 일단 마법으로 지켜보는 거는 관두자고. 그보다 배를 타고 나간다잖아. 페브라까지 배 타고 갈 수 있는 거였나? 저런 조그만 배 타고 갈기 산맥 너머로 정말 갈 수 있는 거야?’
투란은 이리저리 꼬여가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한편으로 치우면서 이자닌과 파쿠란이 라이노에게 얻고자 하는 것, 여행 수단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있었다.
―호수의 재배수역(栽培水域)을 오가는 작은 배를 타고 가자는 말이 아니야. 낚시나 물고기 잡으러 가는 배…… 그것보다 큰 여행용 배가 따로 있다. 그리 자주 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두어 번 봤잖아.
투란이 뇌리에 떠올린, 늘 호숫가에서 오락가락하는 두어 사람 혹은 대여섯 사람이 몰고 다니는 배에 대해서 부정하며 드라고니아는 어쩌다 한번 집 몇 채 정도 크기로 호숫가에 서 있던 큰 배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걸 봤을 때 투란은 과연 저것이 움직이는가 하고 궁금해했지만 그 큰 배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광경은 결국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 보니 거기 있고, 사냥 나갔다 돌아와 보니 없어졌다 하는 정도가 투란이 봤던 두어 번이었다.
‘흐흠, 그 배를 타고 가는 거란 말이지.’
살짝 투란의 얼굴에 호기심이 웃음과 함께 맴돌았다.
―글쎄, 여기 도적 길드에서는 그런 배를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며? 네가 여기 머무는 몇 달 동안 두어 번 본 배를 며칠 내로 구할 수 있을까?
‘어렵겠지…… 으흠, 그냥 계속 구경이나 해봐야 하나. 라비엔보다 못한 도적 길드에서 어떻게 하려는가 궁금하기도 하니까.’
―거기도 너한테 털려서 여기랑 별로 다를 바가 없을 듯하다만.
‘그러고 보니, 나라고 하면서도 거기 창고에 있던 거 돌려달란 말은 안 하네?’
―도적이 도둑질한 물건 도둑맞았다고 돌려달라는 것도 이상하잖아?
‘어? 그, 그런가?’
조금 민망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투란은 그루터기 쉼터의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옥상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뭔가 묘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보통 인간의 몸이라면 떨어지면 중상 혹은 죽음인 높이…… 안전대책을 잔뜩 갖춘 투란은 그저 통통 튀며 구를 뿐이었다.
‘뛰어내릴까, 벽 타고 내려갈까.’
원래는 나무껍질로 둘러싸인 것이 전부였을 벽에는 시알라와 페란드가 열심히 덧대놓은 판자와 돌장식이 붙어 있는 채라 그냥 손발을 움직여 내려가기도 좋아 보이고, 그편이 더 재미있을 듯도 싶었다.
―산만하긴! 이자닌과 파쿠란, 그 둘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해도 너 역시 여행 준비를 해야 하잖아. 둘이 갑자기 다른 수단을 찾아내서 바로 떠나자고 하면 어쩔 거냐?
‘응? 다른 수단? 뭐가 있는 거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투 속에 은근히 이자닌과 파쿠란이 라이노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강조하는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뭔가 드라고니아는 분명히 짐작하고 있는 듯싶으니, 바로 묻는 말이 나온 것이다.
―검은 연금술사 라바크, 그 인간이 자랑하는 것 중에 수륙(水陸) 병용(倂用) 선박(船舶)이란 아티팩트가 있다.
‘연금술사가 아티팩트를?’
투란이 바로 의아한 부분을 짚었다.
샤오 할배라면 마법이 없어도 아티팩트라 불릴 만한 물품이 있다고 목에 힘주고 말하겠지만, 대부분의 공방 장인들이 마법의 도움 없이 만들어내는 물품은 딱히 ‘아티팩트’라고 불리는 일이 없었다. 원래라면 뭐든 가공(加工)을 통해 제작(製作)된 것이라면 ‘아티팩트’라고 부를 수 있다고는 해도, 통상적인 물품과 다른 것을 애써 짚고자 하는 기분일 때야 ‘아티팩트’란 말을 쓰는 것이다.
지금 드라고니아도 딱 그 기분을 담고 ‘아티팩트’라 했으니 샤오 할배가 다분히 억지 부릴 때 꺼내는 경우랑 전혀 다른 상식적인 사용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연금술사가 마법 없이 대체 어떻게 ‘아티팩트’라 불리는 것을 갖고 있는가?
‘아, 마법사가 만든 것을 갖고 있다는 말이야?’
나름 상식적인 상황을 생각하며 투란이 물었다.
연금술사라고 해서 마법사가 만든 물건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는 이치 따위는 없으니까.
―아니, 본인이 만들어낸 아티팩트다. 수면과 지면을 자유롭게 딛고 질주할 수 있는 선박…… 블랙 스완이라는 별명을 지닌 배야.
‘스완? 그거 하얀 새잖아? 그 아티팩트는 하얗고 까만 무늬라도 칠해져 있나?’
뭔가 앞뒤 어긋난 색감 가득한 이름에 투란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듣고 있다 보면 물 위랑 땅 위를 내달린다는 선박…… 왜 마차가 아닌가 의아해하는 물건의 이름으로는 꽤 그럴듯하다는 기분도 살짝 들기는 든다.
―시커먼 몸통에 하얀 돛이 달렸다고 하더군. 아무튼, 그 선박은 종종 세상에 나타나고는 했어. 라바크가 검은 연금술사의 명성을 휘날리기 위해서 일곱 척인가 여덟 척을 만들어 세상에 뿌린 결과라더군.
‘그렇다고 해도, 이자닌이나 파쿠란이 여기 그런 걸 갖고 온 것 같지는 않은데?’
―갖고 있어도 모를 수가 있다, 그게 바로 아티팩트 블랙 스완의 대단한 점이니까.
‘뭐? 그럴 수가…… 있으면 마법이잖아!’
―아니라고! 마법이 아니니까 그만큼 더 검은 연금술사가 대단하다고 알려진 거야.
‘대체 어떻게 생겼는데?’
―글쎄, 그건 모르겠다. 일단 기동(起動)한 다음의 형태는 기록으로 알고 있지만, 기동 전에 어떤 모양으로 숨겨져 있는가는 기록이 없어서…….
‘너네, 대단하다 어쩌다 하면서 사실은 관심 없었던 거냐?’
문득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드라코눔의 아칸으로서 이제까지 세심하게 이것저것 마법에 대해 풍부한 설명을 하던 것과 다르게 열의가 모자란다는 것을 느끼면서 물었다.
―음, 뭐…… 그게 인간에게는 꽤 대단한 거라 하니까 일단 들어두기는 한 모양이다만…… 어차피 마차든 배든 하늘을 나는 거 아니면 관심이 없기는 하니까.
‘역시! 아, 그럼 혹시 모르니까 이자닌이랑 파쿠란을 잘 지켜봐야 하잖아! 으흠! 좀 더 자세히 이모저모로 보려면 프로브도 좀 써봐야겠군. 상아탑도 피하고, 블랙 메이지도 피하고…… 어렵잖아!’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일단 윌 라이트에 집중했고, 자취를 감추는 프로브를 서넛 자아냈다. 결코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대상을 보고 듣는 기능을 강조한 프로브였다.
그리고 거미줄의 반응을 따라 프로브를 넓게 보내며 이자닌과 파쿠란을 다시, 보다 선명하게 엿보기 시작하니…….
“쿨란, 시간 끌 수 없어.”
이자닌이 기지개를 켜듯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블랙 메이지란 본색을 감추고 이자닌이 고용한 호위 노릇을 하는 채로 파쿠란은 쿨란 이름에 그대로 반응하며 대답한다.
“시간 끌려는 게 아니잖아. 일단 알드바인에 들른 이상, 너는 이곳의 길드 지부 상태를 점검해야 할 의무가 있다. 도적 길드의 하이마스터 후보로서 말이야.”
“하이마스터는 무슨……!”
이자닌은 투덜거렸다.
쿨란으로서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하는 태도인 채로 파쿠란이 말을 잇는다.
“도적 길드 전체 마스터니까, 길드 지부의 마스터랑 분별하려면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말이잖아. 안 그래?”
“안 그래! 몬스터 로드 흉내 내는 거잖아, 그거! 몬스터 로드이기는 한데 몬스터 로드 같지는 않은……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작자들 부르려고 하이니 뭐니 갖다 붙이는 꼴 보고 그냥 따라 하는 거잖아! 그냥 길드 총괄 마스터라고 하면 될 걸, 뭘 쓸데없이 하이야, 하이는!”
이자닌의 투덜거림은 낮고 길었다.
파쿠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해자 거리를 향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호위로서 앞쪽의 위험을 미리 간파하며 앞장서는 모습이었다.
이자닌은 그 뒤를 따르면서도 혼잣말처럼 투덜거림을 잇는다.
“상아탑 자치도시면 어떠냐고, 어차피 도적질할 놈들은 넘쳐나는데 뭘 여기다가 손을 대면 안 된다고 징징거리면서 정부 수집만을 위한 소수인원 배치야…… 아니, 거의 혼자 놔뒀으니 소수라고 하기도 그렇구만! 라이노, 이 작자는 또 어떻게 생겨먹은 성격이냐고. 이십 년 넘겨놓고 안 넘긴 척하질 않나, 그 시간 동안 여기서 나고 자란 도적 애송이들만 모아도 그럭저럭 구색은 갖출 텐데 전혀 손대지 않았다니…… 무슨 생각이냐고, 대체! 그러면서 길드 지원금은 또 십 년 넘게 꼬박꼬박 받아먹다니! 쿨란, 이거 정말 말로만 윽박지르고 넘어가도 될 일이야? 길드 자문역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말해봐!”
씩씩거리며 나오던 말이 결국 자신까지 걸고넘어지려는 소리로 이어지니, 파쿠란도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늦춰 이자닌과 나란히 하며 대답해야 했다.
“이곳은…… 헌터 대공방이 자리 잡았다. 짐승을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냥꾼을 위한 대공방이지. 여기서 만들어지는 물품은 거의 모두가 사람을, 인간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야.”
“알아, 그런 거는…….”
이자닌이 살짝 눈길을 피하면서 대꾸했다.
파쿠란은 조용히 그런 이자닌의 곁을 나란히 걸으면서 말을 잇는다.
“알드바인의 공방에서는 분명히 인간이 사용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기는 하지만, 사냥을 보조하기 위한 목적 이외에는 인간을 대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만 만든다고 봐도 좋아. 이자닌, 이런 곳에서 도적이 대체 뭘 훔쳐야 하지? 몬스터 사냥을 나갈 준비를 마친 헌터의 물품을 훔쳐서 사냥을 못 나가게 막나? 아니면 대신 사냥을 가봐? 손대면 아까운 물품 하나 잃었네 하고 그냥 넘어갈 헌터가 있을까?”
“안다고 했잖아. 목숨 걸린 사냥이라고 바늘 하나라도 부족하면 바로 칼 빼 들고 도둑놈 잡는다고 설쳐대는 몬스터 헌터, 한두 번 봤냐. 안다고!”
툴툴거리면서 이자닌은 살짝 짜증도 흘렸다.
파쿠란은 거기에 마지막 쐐기를 박듯이 말한다.
“라이노는 현명하게 처신했다. 공방장인들 틈새가 아니라 빈민가에 거처를 두었고, 몬스터가 성벽 너머를 거니는 이곳에서 이십 년 이상 살면서 길드에 내놓을 정보를 쌓아왔어. 그 정보가 당장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는 해도, 하이마스터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라는 것. 이자닌, 알고 있잖아.”
“그래, 알아! 그러니까 아무 준비도 못 해준다는 그 무능함을 보면서도 멱을 따지도 않았고, 지부 마스터 자리에서 당장 꺼지란 말도 안 했잖아! 안다고, 나도!”
이자닌의 입술이 이리저리 삐죽거리는 채로 나오는 말이었다.
이를 보며 파쿠란은 적당히 끝맺음을 하겠다는 듯이 말한다.
“우리 일정은 아무 문제 없어. 그러니 너무 이 상황에 민감하게 심취하지 말아라, 이자닌. 길드 대의회가 의제를 내걸기 전에 반드시 도착할 테니까 말이야.”
“응, 그래 믿어. 믿는데, 어떻게 하려고? 타고 갈 만한 배를 못 구해올 거라고, 라이노에게 그건 무리잖아.”
이자닌이 조금 진지하게 파쿠란을 보며 물었다.
파쿠란이 피식 웃었다.
“그냥 망가진 배가 어디 굴러다니는가만 알아와도 괜찮아. 그런 것도 못 구한다면, 한밤에 한적하게 사람이 다니지 않는 방죽의 한 곳이라도 확보해주면 된다.”
“무슨…… 말이야?”
이자닌은 어리둥절해서, 너무 의심스러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길을 가늘고 날카롭게 흘리면서 파쿠란을 바라봤다.
“블랙 스완. 이자닌, 한번 타 본 적 있지?”
“한 번. 일곱 살도 되기 전이었어. 기억이 거의 안 나. 정말 갖고 있어?”
담담한 파쿠란의 말에 아련한 기억을 더듬다가 이자닌이 다시 물었다.
“물론!”
―정말로 갖고 있네?
‘얀마, 너!’
놀라는 드라고니아의 말투에 투란은 울컥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