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6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59)
“크아아! 결국 술이었잖아! 으아악! 물 내놔, 물!”
“조용히 좀 해라, 자랑이냐!”
벨라딘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쥐어뜯는 시늉을 하면서 바에 팔꿈치를 올린 채로 시알라를 향해 징징거렸고, 시알라는 술을 가득 담았던 커다란 나무 컵에 물을 한껏 담아 내밀면서 구박했다.
벌컥거리며 물을 들이켠 다음에 벨라딘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손짓과 함께 다시 징징거린다.
“과일즙이라더니, 머리가 울린다고! 취하지 않을 거라며!”
“과일즙이라도 그렇게 마시면 머리가 아픈 거야!”
시알라는 당당하게 대꾸했다.
벨라딘이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손을 바 위에 올리면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시알라는 더욱 당당하게 물 한 컵을 더 들이밀어 줄 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벌컥거리면서 다시 물을 들이켠 다음에 벨라딘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긁어내든 쥐어뜯든, 어떻게 해서든 두통(頭痛)을 덜어내겠다는 듯한 손짓이었다.
시알라가 그런 벨라딘 앞에 새로 접시를 들이밀었다.
스프가 뭉클거리는 알맹이를 품은 채로 김이 모락모락 피워내며 담긴 접시를 보며 벨라딘이 묻는다.
“뭐야, 먹는 거야? 독극물은 아니지?”
“농담할 정도로 멀쩡하면 닥치고 먹어. 속이 시원해질 거야. 머리 아픈 것도 배고파서 그럴 수 있으니까, 얼른 먹어.”
시알라는 숟가락을 벨라딘의 손에 쥐어주면서 말했다.
손에 숟가락까지 쥐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시늉을 하면서 벨라딘이 스프를 떠 마셨다. 그리고 잠깐 그 맛을 감상하는 표정을 짓다가 불쑥 묻는다.
“으음…… 당신 누구?”
“뭔 소리야?”
“내가 아는 시알라가 이렇게 맛있는 스프를 만들 리가 없잖아! 페란드보다 요리 못하던 시알라가 말이야!”
“닥치고 먹어!”
“닥치면 입을 다물어서 못 먹는다고, 흥!”
한 마디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웅얼거렸지만 벨라딘은 스프를 떠먹으면서 말은 멈추고 있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어느 정도 먹는 속도가 더디다 싶을 때, 시알라가 차분하게 묻는다.
“이자닌의 의뢰는 왜 받은 거야?”
“응? 아, 그거…… 하아…….”
왜 묻는가 안다는 듯, 벨라딘이 한숨부터 쉬고는 다시 숟가락을 움직이면서 느릿하니 대답한다.
“음, 냠냠. 테리랑 테루, 그년들 때문이지 뭐.”
“빚 거의 다 갚았다며?”
시알라가 잠시 라비엔에서 있었던 일을 되새기다가 쓴웃음과 함께 물었다.
벨라딘이 바로 표정을 확 구기면서,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짜증 난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빚은 갚았지! 다 갚은 마지막 날에 그동안 쌓아온 불만을 푼다고 춤추던 주점에서 난동을 부리지만 않았다면, 빚 갚고 끝날 일이었지! 아, 생각만 해도 성질난다! 그 난동 때문에 또 갚을 빚이 쌓이다니! 꼼짝없이 이자닌한테 걸렸잖아. 대신 물어주고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세트반까지, 어디든 왕국 영토 안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고. 이건 뭐…… 선금받은 꼴이 되어서 빼지도 못하고! 진짜 이년들 언제 철들려나 모르겠어.”
시알라는 듣다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조금 두서없이 꼬인 이야기였지만 결국 이자닌은 테리와 테루의 성격을 이용해서 벨라딘 파티를 끌어들였다는 말이었다. 대강 벨라딘의 사정은 어렴풋하면서도 분명하게 이해가 되었다.
“왜 왕국에 간다는 건데? 루비는 또 왜 끼어든 거야?”
시알라에게는 아직 의아한 부분이었다.
벨라딘이 픽 입가에서 새는 웃음과 함께 숟가락으로 시알라를 겨냥하면서 대답한다.
“이자닌이 자기 사정을 이야기할 리가 없잖아! 루비는…… 몰라! 이 아줌마, 대체 뭔 생각으로 우리 파티랑 동행하겠다고 설치며 나섰는지, 도통 모르겠어. 뭐, 어쨌든 이자닌의 사정 덕분에 우리는 빚을 갚고 상황을 당분간 무마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선 거지. 하지만 알드바인으로 올 줄은 몰랐어. 엘데인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면서 알드바인에서 배를 이용하면 일정을 당길 수 있다고…… 아, 거기서 큰일에 휘말린 바람에 며칠 늦어졌어. 그 일정을 당긴다고 방향을 틀었지. 뭐, 일단 여기까지 오면 우리 일은 끝난 걸로 해준다고 말했으니까, 잘됐다 싶어서 그냥 가자는 대로 가자 한 거고…… 여기 길거리에서 멜란드랑 제란드가 부엌에서 쓸 식재료를 찾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뭐, 내 사정은 대강 이렇고…… 시알라, 어쩌다 알드바인으로…….”
“루케인. 잊었어? 우리 루케인이랑 온 거야.”
“아, 그랬지. 그럼, 와서 그냥 눌러앉기로 한 거네. 여기 마음에 드는 곳이야?”
탁탁, 숟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치면서 벨라딘이 물었다.
시알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괜찮다고 해야겠지. 이전에 뭘 했나 따지는 작자도 없고, 몬스터 헌터가 그렇게 이상하고 신기한 곳도 아니고…….”
“음? 아, 그러네! 하하핫, 나도 나중에 여기서 은퇴해버릴까.”
키득거리면서 벨라딘이 숟가락으로 접시를 박박 긁었다.
시알라가 다시 부엌에서 한 접시를 더 내왔다.
벨라딘이 다시 그 접시에 숟가락질을 시작할 때, 시알라는 신중하고 진지하게 묻는 말을 꺼낸다.
“벨, 정말로 그럴 생각은 없어?”
“응? 정말로?”
숟가락을 입에 물고 핥으면서 벨라딘이 시알라를 쳐다봤다.
느닷없이 무슨 말인가 의아하다는 듯한 벨라딘에게 시알라가 다시 말한다.
“라비엔 같은 곳으로 돌아갈 이유가 있냐고. 이자닌의 의뢰라고는 해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잖아. 이제 라비엔에 처박히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란 뜻이잖아. 그러니까…… 굳이 몬스터 사냥을 해야 한다면, 이곳도 괜찮은 곳이잖아. 라비엔보다는 험하지 않을지 몰라도 여기도 나름대로 경계선의 영역이니까.”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나는 돌아가야 해. 음, 나는 말이야.”
벨라딘이 다시 스프를 떠먹으면서 나직하게 대답했다.
시알라는 갸웃하는 표정으로 벨라딘을 바라봤다.
지금 한 말은 뭔가 미묘하게 아니라고 하는 것도 같고, 그래도 된다는 것 같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시알라가 잠시 생각하고 다시 물으려 하는데, 안쪽 계단에서 우당탕거리면서 분홍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쟌이 굴러 내려왔다. 굴러서 바닥에 엎어진 채로 쟌은 걸쭉한 목소리를 내니…….
“아파, 머리 아파! 속 쓰려! 약 줘! 배 속을 달랠 거 줘! 뭐든 내놔! 제발! 안 주면 그냥 안 둘 거야!”
부탁을 하는 건지, 협박을 하는 건지 모를 징징거리는 말이었다.
시알라는 혀를 차며 벨라딘의 접시 옆으로 접시 하나를 더 내놓으며 엉금거리는 쟌에게 소리친다.
“와서 먹어! 바닥 청소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얼른 이리 와!”
“소리치지 마…… 머리 울려…….”
엉금엉금, 어기적거리면서 쟌은 벨라딘 옆에 앉았다.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야, 받으라고!”
시알라는 숟가락으로 쟌의 머리를 두드리고 그 손에 쥐어줬다.
“맛있었단 말이야…… 라비엔의 그 못된 술처럼 쓰지도 않고 한참 달고 맛있었는데…… 꿀처럼 쌉쌀한 맛도 아니고…… 시알라, 그 술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나도 좀 가르쳐줘! 냠냠!”
쟌은 웅얼거리다가 느릿하니 숟가락질을 시작하더니, 어느새 지금 두통을 선물해준 술맛을 다시 기억해내면서 묻고 있었다.
시알라가 이를 어처구니없어하며 쳐다봤고, 벨라딘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 정도로 맛을 포기할 우리 쟌이 아니지. 시알라, 무슨 비밀이 아니면 좀 가르쳐줘. 만들기 어려운 거야?”
“여기서는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북쪽 성벽 앞에 과수원이 있거든. 그 앞의 호숫가, 아니 호수 안에 직접 여러 가지를 재배하고 있어서 여기서는 구하기 쉬운 재료야. 물론 시간과 노력은 좀 들어가. 배울 시간은 있니, 쟌?”
시알라는 접시를 숟가락으로 파낼 듯이 열심히 먹는 쟌을 보면서 느릿느릿 말했다.
쟌은 볼을 우물거리는 채로 대답한다.
“적어줘. 적어주면 나중에 어떻게든 만들어보지 뭐!”
“그냥 있는 동안 배울 만큼 배워라. 얼마나 있을 거야, 쟌?”
포기했다는 듯이 대답하면서 시알라가 물었다.
쟌은 ‘어?’ 하다가 벨라딘을 보며 그 물음을 되풀이한다.
“우리 얼마나 있어? 이자닌은 여기까지 함께 와주면 된다고 했잖아? 더 같이 갈 거야? 아니면…….”
숟가락을 혀로 핥으면서 생각하는가 싶더니 쟌이 두서없이 이런저런 말을 꺼내 더하고 있었다.
벨라딘이 가만히 그런 쟌을 보다가 대답하지 않고 되묻는다.
“여기서 얼마나 더 오래 있고 싶어? 헌터 대공방이 있는데…… 뭐 보고 싶은 거 없어?”
“응? 그야 많지! 보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쟌이 눈을 번뜩이며 대답하고 있었다.
벨라딘은 그런 쟌에게 조금 질린 표정부터 지었고, 시알라가 바로 묻는다.
“돈은 많이 모아뒀나 보네?”
“돈? 으음, 돈! 그야, 으으음!”
갑자기 쟌이 말을 더듬었다.
시알라는 그 움찔하는 쟌을 향해 물어뜯는 것처럼 바로 묻는다.
“라비엔에서 꽤 열심히 벌었잖아. 우리 떠날 때만 해도 거의 혼자 다 삼킨 돈도 있을 텐데? 너의 마탄은 딱히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대체 왜 빈털터리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벨라딘, 얘 대체 왜 이래?”
벨라딘이 낯을 실룩이면서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된다는 태도를 보였고, 쟌은 그런 벨라딘에게 강하게 항의하듯이 말한다.
“내 탓이 아니잖아! 내 탓이! 테리랑 테루를 빨리 빼내 와야 제대로 파티 사냥이 가능해지니까! 우리 파티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우리 팀을 위해서 그랬는데…… 거기서 그렇게 난리 소동이 터질 줄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
“흐음?”
시알라가 가만히 쟌의 얼굴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면서 ‘뭔 소리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쟌은 고개를 뒤로 빼면서, 얼굴 앞에 숟가락을 세우며 꾸역꾸역 설명한다.
“그니까, 테리랑 테루가 진 빚을 내가 갚았…… 전부는 아니고, 남은 것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해서 춤추느라 고생한 둘을 내가 빼오는데…… 아, 씨! 거기서 취한 것들이 놔주지 않으려고 했단 말야. 그것들 좀 얌전히 밟아주고 나오려고 한 것뿐인데…….”
“주점을 폐허로 만들어놨지. 창고까지 다 망가뜨리고. 덕분에 이자닌한테 약점 잡힌 꼴이 되었고, 우리는 지금 여기 와 있지!”
벨라딘이 쟌의 머리를 쥐어 헝클면서 으르렁거렸다.
“켁, 아파! 아프다고! 벨, 놔줘! 아프다니까! 그래도 잘 풀렸잖아! 빚도 다 갚고, 이자닌이 의뢰비는 별개로 따로 주기도 했잖아!”
쟌이 투덜투덜 징징거렸다.
시알라는 이 말을 가만히 되새기는 표정으로 벨라딘을 바라봤다.
콩, 가볍게 쟌의 머리를 손마디로 두드리고 놔주면서 벨라딘은 시알라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자닌이 후할 때는 한껏 멋지게 후하잖아. 우리 빚이랑, 여기까지 왔다 가는 비용 전부…… 충분히 한몫 챙겼다 싶을 정도로 줬어. 뭐, 그걸로 남은 인생 편안하게 보낼 정도는 물론 아니긴 하지만…… 두어 달은 여기서도 놀고먹을 정도는 될걸.”
“그래…… 그러니까 정말로 여기서부터는 너네 두고 간다는 말이네.”
시알라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벨라딘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고, 쟌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한다.
“원래 왕국 영토까지만 같이 가기로 한 건데? 우리랑 약속한 게 그 정도인데…… 왜 시알라는 우리가 버림받는 것처럼 말해? 뭔데, 왜?”
“버림받기는…… 이자닌이 챙겨준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시알라가 쟌에게 새로 접시를 밀어주면서 말했다.
쟌은 고개를 갸웃했고, 벨라딘이 묻는다.
“무슨 일인가, 짐작 가는 일이라도 있어?”
“짐작 가는 일이 전혀 없어. 단지 위험하다는 느낌이 조금 있지. 뭔지 몰라도 이자닌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일에 휘말리는 것 같잖아. 누님이라고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들 다 놔두고 너네한테 의뢰한 것도 그렇고…….”
시알라는 대강 짚어본다는 듯이 대답했다.
쟌이 슬쩍 벨라딘을 쳐다봤다.
이자닌이 무슨 일에 휘말렸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는 듯, 쟌은 꽤 의아한 표정이었다. 과연 이대로 헤어져도 괜찮냐고 묻는 것처럼.
벨라딘이 숟가락으로 허공을 젓는 시늉을 하면서 말한다.
“말할 일이면 말했겠지. 우리가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했겠지. 굳이 우리한테 말하지 않은 일에 나설 필요는 없어. 그래, 그런 거니까…… 그런데 쟌, 테리랑 테루는 왜 안 내려오는 거니?”
“어? 아, 침대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이불 부둥켜안고 뒹굴고 있어.”
쟌이 하는 말은 벨라딘의 표정을 뒤틀리게 했다.
시알라는 어처구니없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