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6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60)
해가 다시 저물었다.
달이 높이 떴고, 호수의 하얀 안개는 유령처럼 꿈틀거렸다.
투란은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와, 산돌프 대체 뭐 하는 걸까? 거미줄 한 가닥 걸어놓을 걸 그랬나. 어차피 알드바인에서 보겠거니 했더니…… 그 지팡이 길들이는 게 며칠 걸리는 일인가?’
―당연히 며칠 걸리지! 원래 지닌 마력의 몇 배를 길들여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 일이다. 어설픈 자라면 실패할 수도 있어.
‘헤에…… 그런 위험한 일을 하는 거였구나. 그럼, 결국 다시 보려면 갔다 온 다음에 산돌프가 알드바인에 있어야 하는 거네? 흐흠, 꽤 싸돌아다니는 것 같던데…… 다시 보기 힘들려나.’
―뭐가 궁금해서 그러냐? 새삼 산돌프의 안위가 궁금한 것도 아니면서.
‘궁금한 거야…… 당연히 그 마력이 얼마나 크고 대단해졌는가 보고 싶잖아. 그 대단한 마법을 몇 번씩 쓸 수 있게 되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건…… 나중에 알아보고, 지금은 여행 준비나 제대로 하지?
‘응? 뭐, 내가 준비할 거야. 더 필요한 게 있나?’
―블랙 레온은 정말 두고 갈 거냐?
‘응. 생각해보니, 그건 너무 튀잖아. 두고 갈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산돌프한테 맡긴 배낭이랑 칼이 조금 아깝네.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데…….’
―은전 몇 닢이 아깝냐? 어차피 알드바인의 아무 공방에서나 새로 살 수 있는 거였잖아. 지금도 아예 새로 장만한 것들이면서…….
‘길들인 손맛이 있다고, 손맛이!’
투란은 투덜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안개가 흐느적거리는 틈새로 물살을 흐트러뜨리며 작은 배 한 척이 움직였다.
그 배를 보며 투란이 바로 소리 내서 중얼거린다.
“음, 설마 저걸 타고 이 넓은 호수를 건너게 될 줄이야.”
“아니거든!”
이자닌이 투란의 뒤통수에 대고 바로 소리쳤다.
투란이 히죽 웃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밤의 어스름한 분위기에도 별빛과 달빛, 알드바인의 야경(夜景)을 밝히는 불빛 덕분에 이자닌의 금발은 반짝반짝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불어 이 어둠을 밝힌다고 손에 든 작은 토치 라이터는 이자닌의 눈동자 색을 더욱 짙게 해줬다. 덕분에 마치 녹색 그림자가 맴도는 눈동자는 손에 든 불빛과 어울려 신기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이자닌의 표정은 몹시 울퉁불퉁해서 심통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럼, 저 작은 배를 타고 나가서 큰 배를 타는 거예요?”
투란이 묻는 말에 이자닌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옆을 돌아봤다.
물끄러미 알드바인과 호수를 오가는 눈길로 이 풍경을 마음에 새기는 듯했던 파쿠란이 그 눈길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띠며 투란의 물음에 답한다.
“그런 셈이지.”
“흐음? 그런 게 아니고 그런 셈이요? 뭘 하려고요? 무슨 마법이라도?”
“마법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아니, 아마 그렇게 보일 거야.”
“헤?”
파쿠란의 말에 투란이 더욱 기대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에 밤의 호수를 가르며 작은 배는 더욱 가까이 왔다.
남쪽 성벽이 호수로 기울어지면서 빠져들듯이 길게 부두의 한 가지가 된 곳이라 인적이 드물고 다들 관심을 두지 않는 장소였지만, 작은 배의 노를 젓는 이는 그럼에도 더욱 은밀하게 보이겠다는 것처럼 살살 움직이고 있었다.
이자닌이 그 조심스러움이 짜증 난다는 듯이 버럭 소리친다.
“빨리 와앗! 뭘 그리 꾸물거려!”
작은 배에서 화들짝 놀란 몸짓이 보였고, 노가 수면을 흔들고 때리는 소리가 조금 더 크게 울려퍼졌다.
그렇게 해서 당도한 이, 라이노에게 투란이 냉큼 묻는다.
“누구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라이노는 당황해서 이자닌을, 파쿠란을 번갈아 봤다.
파쿠란은 담담하게 배를 향해 움직였고, 이자닌은 볼을 볼록거리면서 투란을 흘겨보는 채로 말한다.
“장난이야, 장난! 라이노, 긴장하지 말라고!”
“헤에, 라이노 씨구나! 라이노 씨도…… 길드의 밤 나그네예요?”
투란이 히힛거리면서 물었다.
라이노는 조금 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밤 나그네, 도적 길드의 멤버인 도적을 일컫는 말이었다.
동화 속에서…….
파쿠란이 풋, 하고 살짝 새는 웃음을 흘렸다.
이자닌은 목뒤를 잡으면서 투란에게 으르렁거린다.
“그런 말을 누가 쓰는 걸 봤어? 뭔 애들 놀이라도 하는 중이냐! 라이노, 긴장하지 말라고! 그런 표정 지으니까 이 녀석이…… 투란이 더 재밌어하잖아!”
“어…… 예, 투란…… 나는…… 음, 그러니까 길드 소속의 라이노라고 해요.”
어정쩡하니 라이노는 투란에게 인사했다.
투란은 바로 먹이를 문 맹수처럼 라이노에게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묻는다.
“라이노 씨가…… 알드바인의 도적이란 도적은 모두 다스리는 거예요? 여기서 살면서 마스터 한다면서요!”
“에? 어, 으…… 으음, 그러니까…….”
당황한 라이노는 이자닌을, 파쿠란을 다시 둘러봤다.
도대체 이 녀석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고 따지고 싶다는 표정인지라, 이자닌이 어쩔 수 없이 대답한다.
“일단…… 지부의 길드 마스터잖아. 그러니 그렇다고 했지. 여기 우리 일정을 당겨줄 배를 몰고 온다고 말이야.”
라이노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자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투란의 표정, 이자닌의 뾰로통한 모습…… 가만히 보니 이 투란이란 녀석한테 자랑하겠다고 거창하게 길드 마스터니 뭐니 큰소리친 듯한 분위기가 맴돌지 않는가!
라이노의 사정을 알고 그렇게 구박했으면서 대체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투란이 창백해진 라이노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한다.
“난 갔다가 돌아올 거에요! 돌아오면, 친하게 지내요! 길드 마스터 님!”
“응? 아니, 그건!”
추켜 올려주는 말투가 명백하게 ‘으하핫, 이 높으신 분이랑 이제 아는 사이닷!’이라고 선언하는 의미를 듬뿍 담은지라 라이노는 경악했고, 당황했다. 하지만 뭐라 라이노가 변명하려 몇 마디 하려는 찰나, 파쿠란의 담담하면서 강철 같은 목소리가 먼저 울린다.
“라이노 씨, 좋은 소재를 가져왔군. 됐어, 이제 내게 맡기도록 하게.”
“예? 아, 예…….”이노는 엉겁결에 배에서 내렸고, 멀뚱거리며 파쿠란의 내민 손을 보다가 뒤늦게 자기 손에 든 노를 넘겼다.
이자닌은 냉큼 배 위로 올라섰고, 투란은 가만히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묻는다.
“이대로 타고 나가는 거예요? 타면 되는 거예요?”
“그래.”
파쿠란은 간단히 대답했다.
배로 옮겨타면서 투란이 다시 라이노를 향해 말한다.
“다음에 봐요! 몇 달 뒤일지 모르지만!”
손까지 흔들며 하는 말인지라 라이노는 자신도 모르게 마주 손을 흔들고 말았다.
“어, 그, 그러자고…….”
이자닌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고, 파쿠란은 가만히 노를 저어 배를 움직였다. 투란은 멀어지는 라이노를 향해 계속 히힛거리는 채로 손을 흔들었다.이노로서는 마주 손을 흔들면서 배가 안개 사이로 사라지는 광경을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쯤이면 되겠군.”
파쿠란이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안개가 사방을 둘러싼 것처럼 보였고, 알드바인의 불빛은 희미한 안개 너머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투란은 이자닌처럼 배 한편에 앉아서 가만히 파쿠란을 바라봤다.
이제부터 대체 뭘 하려는 것인가, 줄곧 궁금했던 것을 보게 되는 것이라 기대가 잔뜩 어린 표정인 채! 한데 이런 투란의 마음속에서 바로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응? 마법이네?
‘뭐? 마법이라니? 마법 아니라며! 블랙 스완이잖아, 마법 아니라며!’
뭔가 기대를 팍 깨는 말이었다.
물론 이런 투란의 심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쿠란은 허공에 손짓하며 나직한 노래 같은 소리를 흘려냈다.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인 듯, 손짓에 휘말린 듯한 허공이 틈을 열고 뭔가 내민 것은 금방이었다. 파쿠란은 그것을 열심히 당기고 받아내서 좁은 배 위에 옮겼다.
“어? 저게 무슨…….”
투란이 낮게 웅얼거리면서 이자닌을 쳐다봤다.
이자닌이 이 눈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로 낮은 소리로 대답한다.
“마법사라고 했잖아, 마법사! 당연히 마법이지.”
“무슨 마법인데, 공중에서 뭐가 막 나와요?”
“공중에서 뭘 막 끄집어내는 마법이지! 보면서 뭘 물어!”
심통 가득한 이자닌의 대답에 투란이 어이없어하다가 결국 묻는 말을 바꾼다.
“마법으로 가는 여행이었어요?”
“아냐, 마법으로 여행도구를 꺼내는 것뿐이야.”
이자닌은 파쿠란이 이쪽에 전혀 관심 없다는 듯이 집중하는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투란은 갸웃하면서 파쿠란이 하는 일을 지켜봤다.
―블랙 스완은 마법이 아니다만, 그걸 보관해서 옮겨 다니는 수단으로는 마법을 선택했군. 저렇게 허공을 매개체로 삼는 마법은 드문데 말이지…….
‘시꺼!’
뒤늦게 이 마법의 상태를 설명하는 듯한 말에 투란은 소리 없이 투덜거렸다.
키득거리는 듯한 낌새와 함께 드라고니아가 침묵했다.
입술이 저절로 삐죽거리며 왠지 이자닌과 비슷한 표정이 떠오를 듯한 기분을 억누르면서 투란은 파쿠란이 작은 배 위에 내려놓은 것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지켜봐야 했다. 곧 그 변화가 투란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드라고니아의 놀리는 수작은 순식간에 투란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무슨……?”
파쿠란이 처음 꺼내놓은 것은 커다란 배낭, 끈이 전혀 없는 주머니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그대로 작은 배에 엉겨 감는가 싶었는데, 주머니가 점차 퍼지면서 배를 감싸며 나긋나긋하게 부풀며 새로운 형태를 꾸미고 있었다. 장난삼아 빈 주머니에 숨결을 가득 담으면 둥글게 부푸는 것처럼, 둥글지 않게 묘한 모양을 꾸미면서 부풀고 있었다.
검은빛의 가죽이 작은 배를 덮었고, 투란과 이자닌은 이리저리 몸을 옮기다가 결국 주머니가 부풀어 이뤄진 쪽으로 넘어가야 했다.
진짜 변화라 할 만한 팽창은 그다음에 일어났다.이노가 애써 구해온 대여섯 사람이 넉넉히 앉을 수 있는 배가 검은 주머니에 완전히 먹힌 듯했고, 부푼 주머니는 우아하고 새로운 배의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는 가죽으로 보이던 질감이 목재(木材)로, 석재(石材)와 금속성까지 드러내는 변화였다.
새로 드러난 검은 배는 열이나 스물은 거뜬히 감당할 수 있는 넉넉한 너비로 무럭무럭 자라나듯 부풀다가 검은 기둥을 둘 정도 뿜어냈다. 앞과 뒤에 나란히 솟아난 두 기둥에서 하얗게 펄럭이는 돛이 떨어졌다.
파쿠란이 입을 연 것은 그 돛이 바람에 펄럭이며 팽팽하게 당겨질 때였다.
“이 정도면 세 사람에게 충분하겠지?”
이자닌이 냉큼 대답한다.
“너무 넓어!”
“그래도 이 정도라야 속도가 날 텐데?”
“이거 혼자 다루는 배 맞아? 혼자 할 수 있냐고!”
“이자닌, 달랑 세 사람인데 구경만 할 생각이냐?”
“에잇,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렇게 사람을 부려먹을 궁리나 하고! 투란, 배 타 본 적 있……?”
이자닌은 투덜거리며 투란에게 항해 중에 선원 노릇에 대해 말하려다가 목소리를 흐리며 하던 말을 멈췄다.
안개 속에서 환하게 반짝이는 듯한 투란의 표정, 이 상황이 엄청나게 신기하고 재밌다는 저 분위기!
“너, 배 처음 타 보냐?”
“처음이야! 아하핫, 나 배 처음 타 봐! 알드바인에 와서도 구경만 했었는데! 우하핫, 이게 배로구나! 처음 타는 배가 허공에서 꺼내는 배라니, 우하핫! 대단해! 굉장해! 엄청나! 우핫!”
투란의 대답에 이자닌은 이마를 한 손으로 짚고 다른 한 손으로 목뒤도 잡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투란이 이자닌의 걱정을 할 리는 없으니, 결국 포기했다는 듯이 이자닌이 외친다.
“에이이잇! 배우면 될 거야, 배우면 너도 뱃사람 노릇 할 수 있어! 투란, 힘내! 열심히 배우라고!”
“오오! 좋아, 배울게! 배울 테니까! 이런 배 어디서 구할 수 있나도 알려줘! 우하핫, 신기해!”
투란은 열정 가득한 대답을 했다.
파쿠란이 여기에 찬물을 끼얹듯이 말한다.
“투란, 이런 배는 구할 수 없어. 이 배는 연금술의 아티팩트, 블랙 스완이고 세상에 몇 척 없고, 존재하는 블랙 스완에는 모두 주인이 있다. 아무도 자신의 블랙 스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을 거야. 사용법을 모르면 받아봐야 쓸모가 없고 말이지.”
“왜에! 새로 만들 수도 없어요?”
버럭 소리치다가 갑자기 투란이 진지하게 물었다.
이자닌은 고개를 홱홱 저었지만, 파쿠란은 이 물음에 잠시 흠칫하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이런 파쿠란의 태도가 이자닌을 놀라게 하는데…….
“라바크, 검은 연금술사로 가장한 바라크 님의 유물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블랙 스완의 제작법…….”
파쿠란이 갑자기 투란의 열의를 옮겨 받은 듯이 들뜬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타고 있는 이들이 뭐라 떠들든, 형태를 갖춘 블랙 스완은 하얀 돛을 팽팽하게 펼친 채로 검은 몸을 안개와 달빛 사이로 밀어넣으며 빠르게…… 날듯이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며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