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6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63)
휘이이, 사아아!
높이 솟은 절벽, 수직에 가까운 절벽 저 아래로 넓게 펼쳐진 숲이 보이는 것만큼 반대편으로도 느슨하게 기울어진 숲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원래 하나의 넓은 숲이었는데, 갑작스럽게 토막 나서 한쪽은 치솟아 오르고 한쪽은 가라앉은 듯한 풍경이었다. 치솟아 오른 절벽, 단면이라 할 부분은 암석(巖石)과 지면(地面)이 티끌을 휘날리며 긴 띠처럼 장식된 모양이었다.
그 띠를 길로 삼아 블랙 스완은 검은 선체(船體) 위로 하얀 돛을 내걸고 부양한 채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투란은 그 뱃머리에서 위아래의 숲을 바라보고, 절벽의 깎아지른 풍경을 보며 맹한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그런 투란의 뒤편에서, 타륜을 잡고 있는 파쿠란과 이자닌이 툭탁거리는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요리를 할 줄 모르면 맡기라고! 불구덩이 만들어서 던져넣는 게 요리가 아니란 말이야! 털가죽부터 내장까지 통으로 굽는 걸 요리라고 하지 말라고!”
시작은 이자닌이 이렇게 울분을 토해낸 것이었고…….
“먹을 만하지 않았나?”
파쿠란이 가만히 타륜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듣고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대꾸를 하면서 이어졌던 말다툼이었다.
그 첫 말대꾸 덕분에 이자닌이 한층 더 울컥해서 쏟아내는 얘기 속에는 투란도 움찔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설마 마법사인 주제에 그딴 걸 요리라고 할 줄은 몰랐다! 털도 안 뽑고, 가죽째로 내장에 뭐가 들었는지 모를 짐승을 불구덩이에 처박아서 재가 튀어오를 때까지, 숯을 만들 작정인 것처럼 통으로 구워…… 아니, 태워 뭉개놓고 그걸 요리라고 하냐! 어쩐지 루비네 요리를 갖다 줘도 그냥 잘도 처먹는다 싶었는데! 평소에 몰래 숨어서 따로 뭔 맛있는 거 해 먹는 척하더니, 이런 흉악한 숯덩이를 만드느라고 그랬을 줄은 몰랐어! 구경도 안 해봤냐고, 구경도! 이건 아예 날로 처먹는 쪽이 훨씬 요리답잖아! 아, 그런 짐승이나 괴물 같은 짓을 하라고 권하는 게 아냐! 요리를 하려면 제대로 하란 말을 하는 거라고!”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움찔거리는 낌새를 느끼고 몇 마디 보탰으니…….
―널 욕하는 소리 같잖아? 권하지 않아도 날로 처먹는…… 짐승이든 몬스터든 가리지 않고 우걱우걱.
투란은 슬그머니 ‘와아, 저기 보기 좋아 보여!’라는 말과 함께 뱃머리에 들러붙은 채로 말다툼에서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 이 말다툼의 시초를 다시 되새겨보기도 했는데…….
‘아, 파쿠란 눈치가 없어. 그냥 맛없더라도 일단 배나 채우자고 했으면 넘어갔을 텐데…… 어쩌자고 바싹 맛있게 구울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서…….’
갑판에 꾸며놓은 신기한 불구덩이에 사슴을 통으로 쳐넣은 파쿠란이 ‘맛’이라는 말에 대해 걱정 없다고 다 구워지기만 하면 맛있을 거라고 큰소리만 치지 않았어도 이자닌이 저러지는 않았을 터이기는 하지만, 뒤늦게 따져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투란은 바삭바삭…… 반쯤 숯덩이가 된 사슴이라도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살덩이를 뜯어먹었고, 이자닌이 추궁하고 파쿠란이 외면하는 저 다툼의 마당에서 슬쩍 멀어진 채로 항로의 풍경을 구경할 뿐이었다.
이렇게 블랙 스완은 탑승객이 맛을 따질 정도로, 제대로 된 요리에 대해 이자닌이 길고 긴 잔소리를 할 정도로 여유로운 항행(航行)을 지속하는 중이었다.
일단 자리 잡은 뱃머리에서 투란이 색다른 것을 보게 된 때는 몇 시간 뒤, 이자닌이 목이 쉬지 않으려고 잔소리를 멈춘 다음이었다. 숲의 잔잔한 소음(騷音) 속에서 툭 터진 크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블랙 스완이 향하는 방향에서 뭔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광경…….
처음에는 거리가 꽤 멀다 여겨졌지만 블랙 스완이 주욱 내달리는 덕분에 금방 가까워진 광경 속에서 몬스터와 몬스터 헌터 일행이 생사(生死)를 가르는 결전(決戰)을 치르고 있었다.
그 광경이 튀어나오자마자 투란은 뒤편을 향해 소리쳤다.
“파쿠란! 이자닌, 저거!”
파쿠란을 타륜을 잡은 자리에서 그대로 낯을 찌푸렸고, 이자닌은 바로 뱃머리로 와 투란 곁에서 앞을 봤다. 이자닌의 투덜거림이 바로 투란의 귓가에 울려퍼진다.
“아, 뭐야! 대체 왜 이렇게 운이 나쁘냐고! 엘데인에서 그 꼴을 겪었는데 이런 곳에서 또 뭐야! 마르크 왕국 변경인데, 왜 트롤이냐고 트롤은!”
투란은 눈을 살짝 가늘게 하면서 이자닌이 파악해낸 몬스터를 살폈다.
두툼한 덩치에 회색이었고, 나무줄기를 꺾어 휘두르는 사나운 녀석이었다. 포효인가 절규인가 알 수 없는 괴성을 쳐 울리는 몬스터를 향해 갈고리와 투창, 화살이 꽤 많이 던져지고 쏘아진 듯, 그 몸에는 갈고리와 이어진 밧줄과 화살, 투창이 잔뜩 꽂혀 있는데 전혀 그 움직임이 둔해진 낌새가 없이 날뛰고 있었다.
‘트롤이야? 오우거 아닌가?’
―트롤이다. 포레스트 트롤일 거야. 이자닌이 보고 알았다기보다는 원래 여기 살던 놈이라 알고 있었던 듯하군.
‘어? 그래?’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냉큼 이자닌을 향해 묻는다.
“아직 멀고 쪼그마해서 잘 안 보이는데, 트롤 맞아요? 나무 뽑아 휘두르는 게 오우거 같잖아요?”
이자닌이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대답한다.
“그레이 트롤이라고 유명한 놈이야. 이 길목에 나올 놈이 아니고, 저 숲 깊은 곳에서 뒹굴어야 할 놈이지! 변경 숲 깊은 곳에 사는 놈이니까, 이 절벽 가까이로는 원래 안 오는 놈인데! 저 머저리들이 보금자리에서 몰아내면 약해질 거라고 착각하고 끌어낸 모양이네! 아, 진짜 재수 없네! 파쿠란, 여기서 멈춰 구경하다가 저거 정리된 다음에 지나가면 안 될까?”
파쿠란이 바로 이 소리에 응답하는데…….
“지금 속도를 줄이면 일정이 하루가 더 늘어난다. 그리고 저 헌터 녀석들은 전멸하겠지. 저 녀석들, 그레이 트롤에 대해 제대로 알고 덤비는 게 아니야. 투란, 어떻게 생각하나?”
투란에게 묻는 말로 맺고 있었다.
투란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되묻기부터 했다.
“그레이 트롤이 어떤 트롤이에요?”
이자닌이 바로 대답한다.
“포레스트 트롤이고, 이름이 그레이야. 살색의 재를 처바른 것처럼 허옇게 생겨먹은 트롤이니까, 그레이 트롤이라고 알려졌지. 여기서 벌써 한 이삼십 년 처박힌 놈인데 일부러 건드리지 않으면 사람 사는 곳으로 나오지도 않는 놈이지. 특징이라면…… 포레스트 트롤답게 그냥 치유재생하는 거. 목을 잘라 던져놓으면 몸뚱이가 그 목을 주워서 다시 붙일 정도라니까, 포레스트 트롤 중에서도 이상할 정도로 자가치유능력이 뛰어나기는 하다고 들었어.”
“이 근처에서 살아본 적 있어요? 잘 아네요? 흐흠…….”
투란은 조금 엉뚱한 부분을 짚으며 다시 그레이 트롤과 몬스터 헌터의 사투(死鬪)를 향해 눈길을 보냈다. 이자닌이 잠깐 어이없다는 듯이 투란을 보다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린다.
“인적이 드문 곳에 처박혀 있어도 마르크 왕국의 현상금 순위 이십 위권 내에 들어가는 몬스터니까. 저놈 때문에 숲의 여러 곳에 자리 잡았던 도적의 은신처가 망가지기도 했었고…… 아무튼 나랑 사이가 좋을 수 없는 몬스터라고.”
투란에게는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도적의 은신처가 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가?
거기서 누군가 다친 탓에 원망하는 것인가?
아니면 거기 있다가 본인이 다쳤다는 것인가?
앞뒤 없는 이야기라 납득하려 해도 의문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그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따져 묻는 대신에 이 상황에 집중하는 물음을 꺼낸다.
“치유재생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지금 입은 상처를 믿고 덤비는 저 사람들…… 곧 다 죽거나 두엇 살아남겠는데요? 이대로 배로 밀고 지나가요? 아니면 저 파티를 도와 싸울 거예요?”
이자닌이 마땅치 않아 하는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파쿠란에게 묻는다.
“마법으로 흔적도 없이 해칠 수 있어?”
“무모하고 불가능한 요구는 하지 마라. 내 마법으로 저놈 잡기 쉽지 않아서 예전에도 손 안 댔잖아. 그리고 저 녀석들 전멸하더라도 흔적은 남아. 하물며 돕기로 한다면, 바로 현장을 본 증인이 생기는 상황이다. 투란, 너는 어떻게 하고 싶지?”
파쿠란은 이자닌의 요청이 무리라는 점을 짚고 나서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잠시 거리가 좁혀드는 것을 지켜보며 생각을 하던 투란이 느릿하게 대답한다.
“일단…… 그레이 트롤을 잡죠. 저 헌터 파티 일은 그다음에…… 상태를 좀 살피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질 테니까.”
이 말은 바로 파쿠란을 웃게 했다.
“좋은 판단이다, 투란.”
이자닌도 ‘어?’ 하는 소리를 잠깐 냈다가 투덜거리는 말투로 투란에게 말한다.
“냉정하네, 애송이 낯짝을 하고서는. 좋아, 나도 찬성.”
투란은 입술을 삐죽하고는 현재 무장 상태를 점검하며 둘에게 묻는다.
“그레이 트롤 사냥법은? 머리 잘라서 멀리 던져놔야 하나? 심장을 뽑아내야 하나? 완전히 조각조각 토막 내야 해?”
이자닌이 ‘뭐든 하는 거냐!’라고 어이없어했지만, 파쿠란은 냉정하게 투란에게 대답한다.
“머리를 몸통과 분리하고, 부숴놓는 것이 첫 번째. 심장을 파내서 몸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것이 두 번째. 그다음에 완전히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 심장과 머리가 다시 복구되지 않도록 계속 부수면서 시간을 끈다. 이게 그동안 그레이 트롤의 정보를 취합해서 나온 사냥법이야. 할 수 있겠어?”
“과격하네, 어쨌든 해봐야겠지.”
투란은 뱃머리 위로 올라서면서, 모처럼 벨트 안에 숨겨놓았던 상아탑의 인힐트 블레이드를 꺼내 쥐면서 대답했다.
이자닌이 바로 투란의 발목을 손으로 잡는 시늉을 하며 묻는다.
“그걸로 되겠어? 겨우 칼 두 자루만 쓸 거야?”
“대강 이 미터 오십. 저 녀석, 포동포동하지만 그렇게 커다랗지는 않아! 그러면 일 미터 이십의 칼날로 어떻게든 해체할 수 있어! 자, 간다!”
어느새 블랙 스완은 전투의 한복판으로 들이박듯이 끼어들었고, 투란은 이자닌에게 빠르게 대답한 다음에 그레이 트롤을 향해 뛰쳐나갔다.
이자닌은 투란이 그레이 트롤과 맞닥뜨리는 광경을 보며 2미터 50센티미터가 어떤 의미인가를 파악했다.
‘키? 몬스터의 체고(體高)를 따졌어?’
1미터 20센티미터의 칼날 길이라면 확실히 저 트롤의 가슴에서 등짝까지 꿰뚫을 수는 있을 터였다. 포동포동해 보이는 두툼한 몸 두께라 해도 트롤의 형태와 저 키로 인한 체격의 한계란 것이 있으니까.
다만 한 가지, 이자닌에게 의아한 부분은 남았다.
과연 투란이 두 자루의 검만으로 몬스터를 해체할 수 있는가?
‘오러 윌더인 칼잡이도 그레이 트롤한테 머리가 깨져 죽었는데? 투란, 진짜로 칼부림만으로 해낼 수 있나?’
도구의 성능, 규격과는 완전히 다른 사용자의 능력이 심각하게 문제였다.
당장 봐도 그레이 트롤의 몸에 저 많은 투창을 꽂아넣고 화살을 박아넣고, 갈고리를 걸어놓은 채로 도끼창과 대형 낫을 휘두르는 헌터 파티가 지쳐서 몰살당하게 생긴 상황이었다.
과연 투란은 라비엔의 입구에서 보였다는 몬스터 로드의 능력과 무관하게 칼 두 자루로 현상금 순위 이십 위 내에 든다는 마르크 변경 숲의 난폭한 몬스터를 제압할 수 있는가?
이자닌은 일단 자신의 채찍을 꺼내 준비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레이 트롤과 싸우던 헌터 파티는 갑작스럽게 밀고 들어온 블랙 스완에 놀라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었고, 그레이 트롤은 느닷없이 전장에 끼어든 커다란 물건에 격노한 채로 거기서 뛰어내린 투란에게 분풀이하겠다는 듯이 큰 나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파삿, 뻐걱.
경쾌하면서 단출한 파괴음과 함께 그레이 트롤의 몽둥이가 깨져 흩어졌다.
두 자루 검이 휘둘러진 궤적과 만난 덕분이었다.
그레이 트롤이 격노한 괴성과 함께 손톱을 세우며 겁 없이 칼날을 빈손으로 후려치려 했다. 칼날은 그런 손아귀를 무시하고 손목을, 팔뚝을 휘감으며 겨드랑이에서 어깨를 향해 새로운 궤적을 그었다.
써걱, 촤악!
그레이 트롤의 두 팔이 어깨에서 떨어져 나가며 맑고 붉은 핏줄기가 뿜어졌다.
격노에서 고통으로 변한 괴성이 그레이 트롤의 입에서 우렁차게 터져나왔고, 발톱을 세운 발길질이 검을 휘두르는 인간의 몸통을 향해 내질러졌다.
빠각, 콰득!
괴성을 지르던 그레이 트롤의 머리가 조금 둔탁한 음향과 함께 옆으로 튕겼다. 몸은 그 자리에서 발길질하는, 한 발을 내밀고 한 발로 선 채였다.
“쳇, 목뼈가 단단하네. 두껍기만 한 모가지가 아니야.”
피분수를 뿜어내는 그레이 트롤의 쇄골을 밟은 채로, 그 위치 때문에 피분수를 온통 뒤집어쓰는 모습으로 투란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투덜대는 듯한 말이 누군가의 귓가에 스며들기 전에 투란은 두 자루의 검으로 그레이 트롤의 가슴을 뚜껑 따내듯이 상하(上下) 방향으로 쨌고, 드러난 가슴의 뼈와 뼈 사이를 헤집으며 심장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파쿠란이 가벼운 헛기침을 하며 이자닌에게 말한다.
“머리통, 당겨. 이자닌, 트롤 머리통!”
“어? 아…….”
뒤늦게 이자닌은 저쪽으로 떨어졌다 다시 튀는 그레이 트롤의 머리통을 향해 채찍을 날렸다. 채찍이 머리통을 휘감아 당긴 다음, 이자닌은 파쿠란을 향해 던져줬다.
곧바로 갑판에 움푹 구덩이가 파였고, 사슴을 구웠던 때처럼 그레이 트롤의 머리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