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6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64)
두 자루 칼날에 꿰인 그레이 트롤의 심장이 쿵쾅거리듯이 맥동했다.
투란은 그대로 그레이 트롤의 남은 몸통을 걷어차듯이 발로 밀며 옆으로 멀찍이 뛰어내렸다.
저쪽에서는 투란이 자르면서 튕겨버린 그레이 트롤의 두 팔이 땅을 긁어댔다.
이자닌의 채찍에 감겨 블랙 스완의 갑판 위로 당겨 올라간 그레이 트롤의 머리는 씩씩거리는 거센 콧김을 뿜어내며 눈알을 굴렸다.
파쿠란은 돛이 완전히 감긴 채로 서서히 멈춰서는 블랙 스완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투란이 한 짓에 감탄했고, 얼굴 깊이 웃음을 새겼다.
‘운이 나빴구나, 그레이 트롤.’
파쿠란의 뇌리에 저절로 스쳐가는 생각이었다.
그레이 트롤이 몬스터로서 과시하는 능력은 분명히 치유재생뿐이었다. 나머지는 그 덩치에 걸맞은 근력(筋力)과 숲에서 단련된 교활함이었다. 단순히 본능에 의지해서 미쳐 날뛰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숲에 적응한 교활한 사냥꾼, 맹수(猛獸)였기 때문에 그레이 트롤은 수십 년 동안 잡히지 않았다.
단지 능력만 따진다면 그레이 트롤을 잡을 여유가 넘쳐나는 몬스터 헌터라면 적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있었고, 그저 마주치는 순간에 그레이 트롤을 압도할 수 있는 오러 윌더라든가 전투 전문의 마법사라면 마르크 왕국에 분명히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그레이 트롤은 이제까지 변경의 숲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살아남았다.
맹수로서 지닌 교활함이 그레이 트롤이 자신을 넘어서는 강자를 회피하게 해줬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상태, 평소처럼 숲의 한곳에 숨어서 지나가는 블랙 스완을 볼 수 있는 그레이 트롤이었다면…… 투란에게 저런 몰골이 되도록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전에 수상한 분위기를 피해서 멀리 도망쳤을 테니까.
조금 전까지 싸우고 있던 헌터 파티에게서도 그레이 트롤은 반쯤은 도망치고 있었다. 몸에 투창, 화살, 갈고리가 잔뜩 꽂혔고 그물과 밧줄을 질질 끌고 채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마도 그레이 트롤은 더 지치기 전에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작정을 했을 터였다. 그래도 죽지 않으니까. 쫓는 쪽에서는 죽을까 봐 뒤따라 뛰어내리지 못할 테고, 완벽한 도주로 끝났을 상황이었다.
거기에 뛰어든 투란은…….
‘단순한 칼부림이 아니야, 분명히 오러 윌더의 정식 검술이었어. 오러의 위력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검술의 정교함, 위력만큼은 제대로였다. 대체 이 녀석은 몬스터 로드가 되기 전에 어떤 신분이었지? 보이는 대로의 나이가 아닌가? 아니면 로열클래스이기 때문에 외모조차 변형된 채인가?’
파쿠란은 자신의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파쿠란은 생각을 멈췄고 그레이 트롤의 머리통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코를 실룩이며 콧김을 내뿜으려 하지만 목 아래가 사라진 탓에 제대로 된 숨결을 토해내지 못하는 몰골이었다. 그럼에도 눈알을 굴리고 귀를 실룩이며 콧등을 꿈틀거리는 것이 갑판 아래 몸뚱이를 묻어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머리통이었다. 그래도 조금 길고 삐죽한 귀를 촉수라든가 날개처럼 쓸 수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혀를 내밀어 뭘 할 수도 없어 보였기 때문에 일단은 무력화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파쿠란은 슬슬 주변 분위기를 둘러보기 시작했고…….
“뭐야, 뭐 하는 짓이야!”
씩씩거리면서 소리치는 이는 투란을 향해 사납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차하면 손에 든 투창을 내던질 낌새가 역력한 모습이었다.
투란이 눈가를 훔치며, 얼굴을 적신 피를 팔뚝으로 밀어내면서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인가 알 수 없다는 태도인 셈이었다.
다가온 이가 으르렁거리면서 토막 난 채로 꿈틀거리는 그레이 트롤을, 두 자루 검에 꿰여 맥동하는 심장을 손에 든 투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우리가 사냥을 다 끝낸 참이었어! 그런데 끼어들어서 몫을 주장할 셈이냐!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
“멀리서 봐서 말이죠. 다들 질질 끌려가고 죽기 직전이라 도우려 한 건데요?”
투란은 고개를 옆으로 빼꼼히 내밀면서, 앞으로 나선 이의 뒤편에서 헉헉거리며 주저앉은 그 일행을 눈짓하며 대답했다.
“뭐? 죽기 직전이라니, 대체 누가!”
홱 돌아서면서 자기 일행이 얼마나 힘이 남아도는가를 가리키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 또한 투란이 말한 바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나서서 투창을 내밀고 이 상황에 따질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혼자뿐이었는 듯, 나머지는 모두 제자리에 주저앉거나 벌러덩 누운 채로 훅훅거리면서 숨을 몰아 내쉬는 모습이었다. 겨우 숨돌릴 틈을 얻게 되어서 아주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오는 광경이었다.
“이런 망할! 뭘 벌써 지쳤다고 그렇게 뒹굴고 있냐고! 그러니까 이렇게 무시당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 꼴이니까 온갖 고생 다 해놓고 마지막 마무리를 뺏겨서 몫을 떼줘야 하잖아!”
으르렁거리며 동료들에게 잔소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투란은 그레이 트롤의 몸에 박힌 투창 하나를 빼서 심장을 꿰었다. 그다음에 인힐트 블레이드를 빼서 다시 벨트 안으로 밀어넣으면서 블랙 스완에서 내려다보는 이자닌에게 묻는다.
“이거, 계속 팔딱팔딱 힘찬데 그냥 둬도 되겠어요?”
이자닌은 투란을 내려다보면서 볼을 실룩였다.
갑자기 애송이다운 말투로 이런 사냥 처음이에요 하듯이 묻는 투란의 모습이 매우 가증스럽다고 느끼는 탓이었다. 그래도 이자닌은 실룩이는 볼 탓에 미묘하게 떨리지만 또박또박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냥 두면 안 돼! 그런 거는 일단 가죽 주머니나 흙구덩이에 파묻어야지! 다시 몸뚱이랑 얽히게 둘 수 없어!”
“그래요? 흐흠…….”
투란은 투창에 꿰놓은 심장을 잠깐 고민하듯 보다가 앞에 나서 있는 사냥 파티의 헌터에게 묻는다.
“뭐 가져온 거 없어요? 이거 담을 만한 거…… 이런 거 상대하려면 미리 준비했을 텐데…….”
“배낭이 있어! 야, 배낭!”
잠깐 움찔하다가 대답이 나왔다.
그런 모습에 투란은 그저 ‘다행이네!’라고 웃음 지어 보였다.
투란에게 대답한 헌터는 재빨리 힘들어서 뒹구는가 싶었던 일행에게 다가갔고, 가까이 있는 한 명이 허리에 감은 것처럼 두른 가방을 벗겨냈다. 거의 뜯어내는 듯한 거친 동작이었고, 가방을 멨던 작자는 땅바닥을 구르면서 알아서 하란 듯이 헐떡거리는 채였다.
그는 그걸 가져와 투란 앞에 내밀면서 당당하게 말한다.
“자, 여기 담으면 돼! 미리 준비해놨다고!”
투란은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면서 꿰인 심장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좀 작아 보이는데…….”
중얼거리며 흘깃 주머니를 내미는 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추, 충분히 들어가!”
“음, 넣어보죠.”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하는 말에 투란은 일단 주머니 안에 구겨넣었다.
잔뜩 부풀고 살 귀퉁이가 삐져나온 몰골이 되었지만, 그럭저럭 주머니 안에 그레이 트롤의 심장이 담겼다. 그 주둥이를 단단히 조이면서 헌터는 살짝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를 보며 투란은 웃음 때문에 볼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꼈지만 억눌러 참았다.
“그런데 이런 신기한 그랑츄랑 어디서 만난 거죠? 어디서부터 싸우다 이런 벼랑 끝까지 온 거예요?”
슬쩍 묻는 시늉도 하니…….
“뭐? 그랑……? 아니,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지. 이 녀석이 회색인 주제에 이렇게 살이 뚫리고도 버틸 줄도 몰랐고…… 이거 잿빛 살갗을 보면 알겠지만, 단단한 놈이거든! 우리가 열심히 약 바르고 찔러놔서 야들야들해진 거야!”
눈알을 빙빙 돌리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대답을 줄줄 흘려내고 있었다.
―뭐야, 이 녀석들…… 지금 거짓말하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투란은 바로 그 대답에 호응해서 말한다.
“오호? 그랬군요! 어쩐지 회색 바위 같아 보이는 게 잘 썰린다 했어!”
“그, 그렇지! 그러니까 이 녀석에 대한 몫은 우리가 더 크게 가져야 한다는 거, 인정하지?”
“중간에 끼어들었으니까요, 뭐…… 아, 그런 거 받을 시간이 있으려나? 우리 며칠이나 남았다고 했죠? 이렇게 멈춰서면 안 되는 거였는데…….”
투란이 끄덕끄덕하다가 퍼뜩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이자닌을 올려다보면서 묻고 있었다. 가는 길이 급한데 어쩌다 멈춘 것이라 곤란하다는 웅얼거림을 줄줄 흘리는 물음이었다.
이자닌은 그런 투란을 내려다보면서 눈꼬리를 치켜올린 다음에 대답한다.
“그냥 밀고 지나가야 한다고 했잖아! 절벽으로 확 밀어버리고 그냥 가야 하는데 괜히 멈춘 거라고! 거기 그냥 다 던져놓고…… 팔 한 짝이나 대강 주워와! 어이, 그 정도는 괜찮지? 몬스터 팔 한 짝이면 어디 가서 대강 팔아넘길 수 있겠지, 그 정도로 하고…… 우린 바쁘다고!”
“그렇죠, 바쁘죠! 어, 그러면…… 팔 한 짝, 팔 한 짝.”
투란은 냉큼 한편에서 꿈틀거리는 그레이 트롤의 팔 한 짝을 집어 들었다.
뭔가가 닿는 순간 잘린 팔뚝이 불끈거리고 손이 허우적거리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투란이 조심스럽게 그 팔뚝을 잡고 그레이 트롤의 손바닥이 자신에게 닿지 않도록 주의하는 시늉을 하면서 이자닌에게 외친다.
“뭐 좀 줘요! 사다리든 밧줄이든! 내려와 보니 높네!”
블랙 스완은 지상에서 대강 1미터 정도의 높이에 둥실거리며 뜬 채였고, 뱃머리가 치솟은 곳은 대강 3미터는 훌쩍 더 될 듯이 보였다. 뛰어내릴 때처럼 껑충 뛰어오르기에는 벅찬 것이 당연해 보였다.
이자닌은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에게 채찍을 늘어뜨렸다.
“꽉 잡아봐. 끌어당겨 줄 테니까.”
투란이 그 채찍의 끝을 손으로 잡아 팔목에 감았고, 이자닌이 이를 위에서 힘든 척하며 끌어올리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자, 잠깐! 잠깐만! 우리도, 우리도 데려다 달라고! 이봐, 멜키! 우리 길 잃은 채라고! 우리 몫을 떼줘! 십 퍼센트…… 아니, 이십 퍼센트? 젠장, 삼십 퍼센트 떼줄 테니까! 우린 간신히 본전이라고! 그거 나눠줄 테니까 우리도 데려가 줘! 그 배…… 그 신기한 배에 우리도 태워가 달라고!”
엎어져 헐떡대던 헌터 일행 중의 한 명이 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심장을 담은 주머니를 몸에 두르던 헌터, 멜키가 ‘어?’ 하는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일행을 다시 둘러봤다. 아무래도 멜키는 이대로 투란이나 이상한 검은 배와 갈라서는 쪽으로 생각했는데, 그 동료들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한젤, 뭔 소리야? 우리는…….”
“멜키! 무리라고! 너무 멀리 왔어! 장비 소모도 심하고! 저쪽 신세를 져야 우리 모두 안전하게 살아 돌아갈 수 있는 지경이란 말이야!”
한젤이란 동료가 하는 말에 멜키는 움찔하면서 숲을 흘깃했다.
그레이 트롤과 싸우며, 도망치려는 녀석을 쫓아 지나온 숲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보였다. 지나온 흔적을 다시 찾아 돌아가는 것이 전혀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멜키는 바로 한젤과 동료들의 의견을 납득할 수는 없는 듯…….
“삼십 퍼센트나 줄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는 우리가 쓴 돈이…….”
한젤 곁으로 다가서면서 나직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젤이 그런 멜키에게 눈살을 찌푸리면서 주변 동료들에게 눈짓하며 말한다.
“먼저 살고 봐야지! 모처럼 좋, 은, 사람들을 만났잖아. 몫을 나눌 만하다고. 우리 형제들은 찬성이야. 멜키, 네 몫은 그대로 두고 우리 몫에서 떼어주면 되잖아. 우린 살아 돌아가고 싶다고.”
“알았다. 나누는 거는 내 몫까지 포함해서 나누자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멜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투란 쪽을 돌아봤다.
투란은 이미 뱃머리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중이고, 그 곁에서 이자닌도 멜키와 한젤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블랙 스완은 볼일 다 봤다는 듯이 서서히 다시 움직이려 하는 중이었다.
멜키가 무엇보다 블랙 스완의 움직임에 놀란 듯…….
“어, 어이! 그냥 가려고 하지 말라고! 아직 여기 정리도 안 끝났는데! 우리도 좀 데려가 달라고오! 이봐! 우리 얘기 들었잖아! 우리 좀 태워 달라니까!”
두 팔을 휘두르면서 블랙 스완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어깨를 대고 미는 시늉까지 하면서 외치고 있었다. 여기에 바로 한젤이 가세해서 배의 아래편을 손으로 잡는 시늉을 하며 외친다.
“이봐, 우리 좀 살려달라고! 이대로는 무사히 돌아갈 수 없어! 이 배, 굉장히 크구만! 붕붕 나는 게 힘도 좋아 보이고! 우리 좀 태운다고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 사정 좀 봐줘! 현상금도 삼십 퍼센트…… 에잇, 절반! 절반 떼줄게!”
“야, 절반은……!”
멜키가 뭐라 하려는데, 한젤이 고개를 홱홱 저으면서 다시 동료들을 가리키는 눈짓을 하며 외친다.
“우리 형제들은 찬성이라니까! 얘들아, 그렇지?”
멜티는 한젤과 형제들, 자신의 동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는 꼴을 보고는 표정을 구겼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블랙 스완을 올려다보면서 함께 외친다.
“준다잖아! 팍팍 떼서 준다잖아! 그러니까…… 우리 파티를 태워달라고! 이거 정리해서 올라갈 테니까, 좀 멈춰! 그냥 가려고 하지 말란 말이야!”
“아, 우리 말 좀 들어보라고!”
기웃기웃하면서 블랙 스완이 이리저리 나아갈 방향을 잡는 듯한 광경에 한젤의 외침이 더욱 울컥하면서도 절박해졌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투란과 이자닌에게 파쿠란이 타륜을 고정하면서 느릿하니 말한다.
“어쨌든…… 태워볼까?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