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66)
Chapter 134. 두 왕국이 만나는 도시
“함정이었군! 처음부터 우릴 속이고…….”
여전히 묶인 채로 쪼그려 앉은 꼴인 멜키가 내는 목소리는 경악과 당황, 공포에 분노가 살짝 섞여 들어간 채였다.
한젤부터 시작해서 일행의 팔다리 힘줄을 칼날로 그어놓고 절벽 너머로 휙휙 내던지는 투란을 보는 동안에는 충격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겨우 입이 트인 모습인데, 그러자마자 멜키는 블랙 스완이 자신들에게 악의(惡意)를 품고 접근해서 함정을 팠노라고 따지는 소리부터 질러댄 셈이었다.
이에 대해 투란은 이자닌과 파쿠란을 둘러보면서 태연하고 뻔뻔한 태도로 묻는 말을 꺼낸다.
“우리가 뭘 속였어요? 나 자는 동안에 이 아저씨한테 무슨 사기라도 쳤어요?”
이자닌은 혀를 날름 하며 고개를 홱 돌렸고, 파쿠란은 조금 진지하게 대답을 한다.
“없다, 그런 거…… 이봐, 가이드 헌터라면 지금 하는 말이 얼마나 헛소리인가 스스로도 알지? 그만하라고, 그런 거. 죽이지 않을 것 같다고 너무 막 나가는 소리를 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담담한 말투였지만 멜키의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투란의 입에서 나오는 의문을 막지는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헌터 가이드라고도 하고, 지금 가이드 헌터라고도 하고…… 정말 그런 거 해주는 헌터가 있는 거였어요?”
멜키의 눈가에 살짝 치켜뜨는 낌새가 어릴 때, 파쿠란은 살짝 갸웃하면서 투란에게 대답한다.
“정확하게는 헌팅 가이드를 하는 거고, 그 역할을 맡은 헌터가 가이드 헌터지. 뭐, 헌터 가이드라고 대충 마구 부른다고 누가 혀를 자르러 다니지는 않으니까. 아무렇게 불러도 결국 같은 거야. 그리고 봤다시피…… 여기 멜키 씨가 가이드 헌터로서 아까 골 빈 녀석들의 헌팅 가이드를 해주고 있었던 거지.”
“헤에…….”
투란이 희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멜키가 결국 못 참겠다는 듯이 묻는다.
“뭘 그리 처음 듣고 보는 것처럼 놀란 시늉을 하는 거야?”
“어? 아, 진짜로 길잡이가 아닌 가이드 헌터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런 거 요새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투란은 방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멜키는 그런 투란의 표정에 움찔했다.
조금 전에 사람 여럿을 폐인 만들어서 절벽 아래로 내던졌던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것이 아무래도 섬뜩하다는 몸짓이었다. 그래 놓고서 어찌 저리 태연하고 뻔뻔하게 말하며 웃는가!
이런 멜키의 태도와 다르게 이자닌은 투란에게 구박하듯 말한다.
“요새 없기는 뭐가 없어! 길잡이나 나설 정도로 깊이 들어가는 경우가 없으니까 가이드 헌터 보기 힘든 곳이 있는 거지! 그런 데서 살다 나온 티를 내지 말라고, 옆에서 듣다가 황당해서 입에 거품 물 테니까!”
“엥? 그래요? 아하하…….”
투란은 이자닌의 말을 호의적인 충고로 받아들인다는 듯, 넉살 좋게 웃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냐?
드라고니아는 오가는 대화를 이해할 수 없는 듯 따지고 있었다.
‘음? 아, 잠깐만.’
마음속의 물음을 접어둔 채로 투란은 멜키를 손가락질하며 파쿠란과 이자닌을 둘러보며 묻는다.
“이 아저씨, 풀어줘야 해요? 그냥 둬야 해요?”
이자닌이 ‘음? 하면서 파쿠란을 바라봤다.
파쿠란은 아직 묶인 채로 있는 멜키를 타륜 너머로 바라보다가 되묻는다.
“풀어주기 꺼려지는 점이라도 있나?”
“트롤을 그랑츄라고 시침 뚝 떼는 아저씨잖아요. 뭐, 그것 말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지만…….”
투란이 냉큼 대답했다.
멜키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이자닌이 킥킥거리고 웃었다.
파쿠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그런 거라면, 이제 풀어줘도 될 거야. 가이드 헌터의 역할 중 하나가 사냥의 이득을 지켜주는 거니까 말이야.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별 힘든 모습 없이 한몫 끼려 하는 걸로 보고 파티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한 짓이라면…… 납득할 수 있잖아?”
“으흠, 그러면…….”
투란이 살짝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을 때, 이자닌이 재빨리 소리친다.
“심한 짓이라고, 이 아저씨 한 짓은! 그냥 놔뒀으면 그레이 트롤은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서 도망쳤을 거고…… 그레이 트롤의 능력이라면 저 높이에서 그 몰골로 떨어져 봐야 죽을 리가 없으니까, 완전히 실패한 사냥이었어! 그걸 투란이 잡아줬는데 그랑츄 사냥한 거라고 눙치고 넘어가려 했잖아! 심하잖아, 아주! 그렇잖아요, 가이드 헌터 멜키 씨?”
길고 빠른 말과 함께 얼굴을 가까이하며 날카롭게 노려보기까지 하는 이자닌의 태도에 멜키는 어색한 표정을 띤 채로 슬쩍 눈길은 다른 곳으로 돌렸다. 투란에게는 이런 멜키의 모습이 약점을 찌르는 얘기를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자닌에게는 굉장히 다른 의도가 엿보였던 모양이었다.
“발정하냐!”
퍼억!
“커으— 꽥!”
퍽, 퍽.
갑작스럽게 멜키의 가슴팍을 걷어차 자빠뜨리더니 그냥 세게 허벅지와 엉덩이를 연이어 걷어차는 이자닌의 모습!
무슨 상황인가, 무슨 일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투란의 놀란 소리도 뒤늦게, 꽤 나지막하게 나왔다.
“엑?”
“이자닌…….”
파쿠란이 내는 한숨 섞인 부름은 투란의 목소리에 덧붙여진 덤처럼 울렸다.
멜키는 서너 차례 더 걷어차였다.
그러고 나서야 속이 시원하다는 듯, 상쾌한 표정과 함께 이자닌이 투란과 파쿠란을 보며 여유롭게 외친다.
“풀어줘도 되겠어. 잘못을 지적했더니 얌전히 발에 차일 성격이라면, 등에 칼 꽂는 시늉할 때 뒷발질로 차 죽여도 괜찮다고 할 거야. 그러니까 배 속에 가득 찬 똥이랑 오줌 정도는 멀리서 싸지를 수 있도록 풀어줘도 괜찮아.”
투란은 눈을 껌벅이면서 파쿠란을 바라봤다.
저게 다 뭔 소리인가, 조금 전의 그게 뭔 짓거리인가 전혀 납득 못 하겠으니 대신 설명 좀 해달라는 투란의 눈길을 파쿠란은 외면하는 채로 말한다.
“풀어줘도 될 거야. 최소한 밤에 갑판 구경하고 가는 그리핀에게 묶인 채로 쪼여 죽는 꼴은 피하게 해주자고.”
“어, 예…….”
뭐라 할 말이 없어서 투란은 이자닌을 흘깃 보고, 차인 채로 꼬물거리면서 신음하는 멜키를 향해 다가갔다. 적어도 갑작스럽게 덮쳐올 수 있는 몬스터에 대해서 저항할 여지는 주자는 말은 알아들었으니, 곧바로 멜키를 풀어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가까이 가니, 멜키가 꿍얼대는 소리가 바로 투란의 귓가로 스며온다.
“젠장…… 그런 차림새로…… 그렇게 들이대 놓고…….”
“뭐라고 하는 거예요?”
투란이 멜키의 묶은 끈을 자르면서 물었다.
풀려난 손목을 문지르며 일어나며 멜키는 눈알을 굴리다가 재빨리 외친다.
“아프다고! 맞아서 몸이 아프고 오해받아서 마음이 아파!”
그 모습이 어딘가 ‘함정이었어!’라고 외치던 때를 십 년 전의 과거로 날려 보내 잊은 듯했다. 그럭저럭 파티가 어떤 꼴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잊겠다는 자세가 분명한 셈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내기로 했다.
“가이드 헌터라면, 여기 어딘가 알겠어요? 우리 어디로 가는가 짐작 가요?”
“뭐? 어, 그거야…….”
칭얼거리던 멜키의 눈알이 데굴데굴 주변을 훑듯이 굴렀다.
허공을 둥실둥실 떠가는 배의 항로에 대해서 아는 척해도 좋은가 하는, 괜히 아는 척하다가 ‘넌 너무 많은 것을 알아!’라고 절벽으로 던져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미묘한 불안감에 망설이는 멜키였다.
멜키가 보기에 이 일행에게 함부로 아는 척하는 것은 위험한 느낌이 가득했다.
냉정하게 따져서 한젤 녀석들이 먼저 흉악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이 녀석들의 대응방식은 피도 눈물도 없이 냉혹하다는 몬스터 헌터의 전형(典刑)이었으니 멜키로서는 칭얼대며 할 말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하는 말을 걸러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이 수상한 일행이 앞으로 어디로 갈는지에 대해 멜키 자신이 본 바에 대해 말해도 되는가 아닌가 망설이는 것인데…….
파쿠란이 멜키의 속내를 엿본 것처럼 말한다.
“그레이 트롤 사냥 파티를 이끄는 가이드 헌터의 솜씨를 보여보라고. 우리가 지금 헤매고 있는가 조금 궁금하기도 하니까.”
멜키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말투는 부드럽지만 파쿠란은 까불지 말고 보고 아는 대로 다 토해내라고 강요하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마르크 왕국이랑 페브라 왕국의 국경도시로 가는 길이잖아. 숲의 위아래가 만나는 곳이니까 이 절벽 경계면을 타고 가는 걸 테고. 뻔한 길이라고 여겨지는데? 아니면 몰라. 내가 아는 대로라면 그게 전부야.”
더는 모르겠으니 째고 싶으면 째라는 듯이 배짱을 부리며 나온 멜키의 대답이었다.
파쿠란은 픽 하고 새는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국경도시 스타폴. 두 왕국의 경계로 가는 길이야. 거기라면 그레이 트롤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지?”
“포상금이야 나오겠지.”
멜키는 눈매를 살짝 가늘게 하고 대답했다.
파쿠란의 말은 마치 그레이 트롤의 사냥을 나왔다고, 가능한 한 빨리 돈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하는 듯했지만 멜키로서는 그럴 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일행이었다. 이 숲을 이 괴상한 배로 지나가고 있다가 그냥 엇갈리는 김에 그레이 트롤의 사냥에 끼어든 것이 맞을 터였다. 어쩌면 기왕 엇갈린 김에 포상금 제법 높다는 그레이 트롤이니 한몫 끼자고 나선 것일 수도 있고…… 슬그머니 무지하고 무능한 척해서 한젤 형제처럼 막 나가는 놈들의 몫을 작정하고 빼앗은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멜키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따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젤 녀석들이 한 짓, 이 일행의 대처…… 문젯거리야 가득했지만 따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포상금이 얼마인데요?”
투란이 묻는 말은 멜키를 조금 당황시켜 생각을 멈추게 했다.
“어? 그레이 트롤인 줄 알잖아?”
“몰랐어요, 나는! 얼마에요, 포상금!”
투란이 짧게, 번뜩대는 눈길을 들이대며 다시 물었다.
이자닌이 풋 하고 저쪽에서 웃는 소리를 냈고, 파쿠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상황을 흘깃거리면서 멜키가 엉거주춤한 태도로 대답한다.
“금전 육십 닢…… 심장이나 힘줄, 피를 채취해서 팔 수 있으니까, 포상금 이상의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몬스터지. 그래서 전부 절단해서 배에 실어도 아무 말 안 한 거잖아?”
“아, 그랬군요! 파쿠란, 팔면 얼마나 나와요?”
투란은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파쿠란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파쿠란은 심드렁하니 대답한다.
“글쎄…… 팔아본 적이 없어서 몰라. 트롤의 잔해라고 해도…… 트롤 품종마다 취급이 전부 다를걸. 그레이 트롤은 얼마나 하려나…… 이자닌, 알아?”
“치유와 재생이 특기인 포레스트 트롤이잖아. 그중에서도 몇 십 년 동안 명성을 휘날린 놈이기도 하고…… 저 정도면 저절로 복구되는 가죽갑옷 정도는 간단히 만들 수 있으니까, 힘줄이랑 뼈대, 피를 적당히 팔면…… 한 이백 닢? 그 언저리는 나올 것 같은데? 완전히 사기당하지만 않으면 말이야.”
“오오오옷! 이백 닢! 포상금 육십 닢에 이백 닢!”
투란이 눈을 반짝거리며 중얼거렸다.
순간 입술을 뒤트는 표정으로 멜키가 말한다.
“포상금 받을 때 잔해를 증거품으로 넘겨야 할걸. 그 증거품에 대해서는 따로 계산해서 지불하지 않아. 그러니 포상금에 잔해까지 다 돈으로 바꿀 수는 없어.”
“엥? 뭔 소리예요? 증거품을 봤으면 그냥 포상금 주면 끝이잖아요? 포상금 준다고 몬스터 잔해를 가로챈다니…… 그런 게 어딨어!”
곧바로 투란이 투덜거렸고, 멜키는 어이없어서 말문이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되묻는 소리를 한다.
“대체 뭔 소리야? 증거품을 줘야 포상금 절차가 마무리되잖아? 안 주면 어쩌겠다고!”
이에 투란이 ‘어?’ 하는 소리를 내는 사이에 이자닌이 냉랭하게 끼어들어 말한다.
“북부 왕국에서나 그렇지. 남부에서는 그딴 식으로 안 해.”
이번에는 멜키가 눈을 깜박였다.
“여기는 그린우드라고…… 여기서 뭔 남부 왕국을…… 설마 아프론…… 아니, 쥬레인에서 갈기산맥을 타고 이리로 나온 거야? 헐…….”
“묻지 마, 그런 거 물으면…… 묻어버리는 수가 있어!”
이자닌이 상쾌한 웃음과 함께 멜키를 협박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투란은 파쿠란을 보며 저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눈길을 보냈고, 파쿠란은 입술만으로 ‘나중에.’라고 대답했다.
그 사이에 멜키는 ‘쳇, 먼저 말 꺼내놓고는!’이라고 몇 마디 툴툴거렸지만 바로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갑판에 주저앉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어찌 되었든 멜키로서는 일단 이 일행이 가는 길에 동참해야 했다. 최소한 인적이 있는 곳에 멀쩡하게 내던져지려면, 말다툼도 져줘야 할 듯했고!
이렇게 해서 그럭저럭 오가는 이야기가 멈췄지만, 블랙 스완은 멈추지 않고 죽죽 절벽을 따라 둥실거리며 항행을 멈추지 않았다.
두 나라의 국경도시라는 스타폴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