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7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68)
휘이이, 시이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바람결이 거인의 손처럼 돛을 밀어낸 듯했다.
블랙 스완이 햇살을 가득 받아 검은 가죽빛을 일렁이며 기우뚱거렸다.
그 갑판 뱃머리에서 멀리 손가락질하며 멜키가 외친다.
“저기, 저거! 저 짙고 퍼런 숲 너머야! 저 숲만 지나면 바로 도시 성벽이 보일 거야. 스타폴은 분지(盆地) 형태의 도시라서, 중심가로 갈수록 낮아지거든. 저 숲을 넘을 때까지는 성벽조차 제대로 안 보여.”
투란이 그 곁에서 멀리 보는 시늉을 하다가 돌아보며 말한다.
“이대로 숲을 넘어서 성벽 보이는 데까지, 배 타고 가요?”
이자닌이 ‘그건…… 그래도 되려나?’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파쿠란은 바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런 배 가졌다고 자랑할 일 없어. 절벽이 끝나는 곳까지, 저 숲에 닿으면 거기서부터는 걸어가. 스타폴에는 여러 학파의 마법사가 있으니까, 스타폴에 도달하면 바로 목적지까지 마법으로 이동할 수 있을 거야.”
투란은 다시 진청(眞靑) 빛깔로 번들거리는 숲을 보며 멜키에게 묻는다.
“저기, 걸어서 지나가려면 얼마나 걸려요?”
멜키가 잠깐 파쿠란과 이자닌 쪽을 서글픈 눈으로 흘깃하고는 투란에게 나직하게 대답한다.
“한 이틀 걸려. 잡아먹히지 않고 무사히 통과하면.”
“뭔 소리야! 뭐가 잡아먹어? 아저씨, 배 오래 타고 편히 가고 싶다고 협박을 하는 거는 아니지!”
대뜸 멜키의 목뒤 옷자락을 쥐면서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멜키는 휘청휘청 투란의 손에 흔들리면서 빽빽 고함을 쳐서 대꾸한다.
“협박은 무슨 협박! 저긴 위아래로 갈린 그린우드의 대문 노릇을 하는 숲이라고! 저기가 바로 그 유명한 코발트 게이트란 말이야! 뭘 모르는 척…… 진짜 몰라? 아니, 왜 모르는데! 이봐, 이쁜 아가씨! 타륜 잡은 아저씨! 설마 당신네도 몰라?”
말을 하다가 멜키는 문득 투란이 코발트 게이트에 대해서 정말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란 소리를 냈다가 이자닌과 파쿠란조차 모르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속내를 고스란히 토해내고 있었다.
투란도 이 소리를 들으면서 이자닌과 파쿠란을 슬쩍 보니…….
“들은 적은…… 있는 것 같네? 코발트블루의 색채로 물든 그린우드의 관문, 국경도시랑 마주한 숲의 관문이라고 코발트 게이트라고 한다는 숲이었나? 맞지?”
이자닌이 한 손으로 턱을 긁적거리면서 반쯤 팔짱을 낀 모습으로 떠들다가 파쿠란에게 확인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파쿠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타륜을 한쪽으로 기울여 배를 지면에 앉히는 조종을 하며 말한다.
“맞아. 거울 마수가 가장 위험한 숲이지만, 코볼트나 게놀 같은 개머리 몬스터도 가끔 무리 지어 나타난다고 하더군. 늑대는 말이나 소보다 큰 대형종이 살고 말이지. 그래도 숲의 길은 제대로 뚫려 있어서 스타폴까지 길 잃을 염려는 없는 곳이라고도 하고.”
“잠깐, 코볼트나 게놀까지는 알겠어! 근데 거울 마수가 뭐야? 나만 모르나? 저, 여러분? 그게 대체 뭔가요?”
투란이 귀를 쫑긋하는 자세로 듣다가 묻고 있었다.
멜키는 이자닌과 파쿠란이 하는 말에 의심스럽게 다시 투란을 보다가 잡고 흔드는 손길에 흔들거리는 꼴이 되어서 급하게 대답을 해야 했다.
“흔들지 마! 말할 거니까! 아, 어지럽잖아! 젠장, 설마 여기까지 와서 코발트 게이트에 사는 거울 마수를 모르다니…… 아, 알았어! 처음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으니까 내가 친절하게 설명한다고! 간단히 말해서, 남의 모습을 거울에 비춘 것처럼 비추다가 지가 몸을 홀랑 그 모습으로 바꾸는 마수! 잔나비처럼 생겼지만 비비나비는 아닌 마수야. 모습이 바뀌면 그 모습에 담긴 힘은 거의 그대로 쓴다는 그런 마수라고! 그래서 잠깐이라도 한눈팔면 갑자기 쌍둥이처럼 둘이 된 동료가 생겨나고, 누가 진짜인가 당황하는 사이에 뱃가죽이 찢어져 죽는 꼴을 당할 수 있는 그런 곳이라고, 코발트 게이트는!”
“변신 마수……? 변신하면 말도 하고 똑같은 사연도 토해내는 그런 거?”
투란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징징거리는 채로 말을 맺은 멜키에게, 이자닌과 파쿠란에게 눈길을 전부 돌리면서 물었다.
이자닌은 ‘몰라!’ 하는 채로 파쿠란을 봤고, 파쿠란은 타륜을 고정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대단한 카피 변신은 아냐. 거울 마수는 그냥 외형만 그대로 베껴내. 말을 하거나, 속에 숨기고 있는 사연까지 그대로 떠들거나 하는 짓은 못 해. 그저 눈에 보이는, 거울을 놓고 거기 비치는 부분만 고스란히 베껴내는 마수지. 다만 검이나 방패 같은 장비는 그 외형이나 강도(强度)를 그대로 베끼니까, 그 부분은 조심하는 게 좋겠지. 자, 다들 어서 내려.”
멜키는 배에서 내리란 말에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달리 뭐라 말할 처지도 아니기에 한숨으로 미련을 드러내면서 내렸다.
하지만 이자닌은 가볍게 내려서면서 코발트 게이트, 진청의 숲을 보며 나직하니 휘파람을 불며 감탄하는 말을 한다.
“정말로 숲에 길이 보이네? 그린우드의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마음대로 갈 수 있구만. 숲에서 물려 죽는 일만 없으면 정말 좋은 관문이네.”
투란도 배에서 내려서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중얼거리는데…….
“절벽을 올라가든 내려가든 온통 숲…… 도시까지도 숲 하나…… 바다까지 온통 숲이라니…… 늪이 아니라 다행인가. 근데 도시 앞은 마수가 날뛰는 숲이라니…… 거울 마수라, 대체 얼마나 위험한 놈이려나.”
뭔가 근심하는 중이라고, 걱정된다고, 알아달라고 떠드는 소리였다.
곁에서 듣고 있던 멜키가 어이없다는 듯이 투란에게 말하는데…….
“그레이 트롤을 그렇게 썰어낼 솜씨면서 무슨 걱정이야? 걱정은 내가 해야 하는 거라고! 내가 갑자기 둘이 되었다고 바로 칼질해서 확인하자고 하면 안 돼! 거울 잔나비는…… 어? 아, 그야 마수가 된 잔나비니까. 거울 마수, 거울 잔나비라고 부르는 거지. 당연하잖아! 암튼, 그건 말을 못 한다고! 그러니 내가 멜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말 못 하는 놈을 베라고, 알았어?”
손짓 발짓에다가 표정까지 섞어 하는 호소였다.
투란은 멜키를 가는 눈길로 잠깐 바라보다가 우득거리며 오그라드는 블랙 스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작은 배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던 블랙 스완이 오그라들면서 뭉쳤고, 어느 순간에 허공에 열린 틈새로 스며들며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알드바인의 부두를 떠날 때 타고 있던 작은 배, 부스러져 톱밥처럼 흩어지는 그 잔해였다.
파쿠라는 그런 광경을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면서 틈새에서 꺼낸 배낭과 장비를 멜키를 향해 던져줬다. 멜키가 흠칫 놀라서 받아 들고 보니, 한젤 형제들이랑 함께 배를 타며 벗어놨던 자신의 장비였다.
“이제 제대로 챙겨 입으라고.”
파쿠란의 간단한 말에 멜키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자기 장비를 갖췄다.
투란은 잔해만 남은 배를 잠시 보다가 파쿠란에게 묻는다.
“늘 이래요? 배를 잡아먹고 배가 되는 거였어요?”
“음? 흐음…… 과연 그렇게 보이겠군. 아니, 항상 그렇지는 않아. 바탕이 되는 배가 너무 작고 재질이 약해서 이렇게 된 거지. 적당히 크고 어느 정도 수준의 소재라면 그럭저럭 다시 원래 형태로 돌려놓을 수 있어.”
파쿠란의 담담하게 설명이었다.
투란은 그러려니 하면서 다시 진청의 숲을 바라봤다.
나뭇잎의 색채, 열린 길의 그늘진 풍경조차도 모두 진청색으로 보이는 기묘한 숲은 분명히 그 속을 가로지르는 길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가 그린우드로 들어가는 곳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도시로 가는 길은 자신이 품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그 풍경을 보며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묻고 있었다.
‘거울 마수, 알아?’
―여러 타입이 있지. 여기 사는 녀석은 잔나비 타입인 모양이다만 다른 곳에서는 네발짐승의 형태를 기본으로 갖춘 경우도 많다. 하지만 기본 타입은 변신 능력에 전혀 관계가 없어. 죽으면 기본 형태로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변신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니까.
‘칼이나 방패 얘기는 뭐야?’
―전에 얘기했던 물질의 구성 기본, 입자상에 대해서 기억하나? 물질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한 입자구조, 그걸 분자 수준이라고 한다는 거 말이야. 거울 마수는 그 분자 수준에서 대상을 광파(光波) 분석하고, 카피한다. 대부분 열화(劣化) 카피라서 그렇게 심각하게 여겨지지는 않아. 하지만 철이나 돌이라면 그냥 그대로 카피하는 거나 아니나 비슷해지니까 위험하다는 거지.
‘그럼, 갑옷을 입은 모습을 변하면 칼이 안 박히고 그래?’
―카피한 갑옷의 수준에 달려 있겠지. 하지만 열화 카피니까 원래 갑옷 수준보다 확실히 떨어져. 어쨌든 잔나비 형태라니까, 목을 자르거나 심장을 꿰뚫리면 즉사할 거다. 뭐, 실컷 두들겨 패고 후려쳐서 출혈(出血)로 죽일 수도 있을걸. 특별한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단지 그뿐이니까. 물론 잔나비의 힘은 보통 인간보다 세니까 그런 부분은 조심해야겠지. 보통 인간이라면 말이야.
‘흐흠…… 거울 마수가 몬스터가 되는 경우는?’
―마수라면 늘 몬스터로 변이할 가능성이야 있지. 하지만 잔나비 마수는 대부분 비비나비 형태로 변이하면, 마수로서의 능력은 상실하는 경우가 많아. 괜한 생각은 하지 마.
‘별생각 없었거든!’
―스킨리퍼만도 못한 능력이잖아. 뭐, 쇠붙이 장비를 그대로 흉내 내는 부분은 좀 낫다고 해야겠지만…… 그것도 제대로 된 무장생성이 가능한 너에게는 별 의미 없지. 그냥 가다가 걸리면 쫓아버리는 것이 좋아.
‘쳇.’
투란은 입술을 살짝 삐죽이고 싶었지만 소리 없이 뚱한 한마디를 토해내는 것으로 참았다.
눈으로 본 상대의 모습을 그대로 훔친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기는 했지만 몬스터 로드는 마수를 삼킬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그런 짓을 못 하는가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세란드가 남겨준 천 가지 주문 중에는 상대의 모습을 잠시 그대로 자기 모습 위에 덧씌우는 마법이 있으니까. 그 마법을 응용해서 갈고닦으면 거울 마수보다 더 정교하게 거울 마수 짓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투란이 잠깐 몬스터 로드답게 몬스터의 정수로 그리 해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을 냈는데, 드라고니아가 대뜸 그걸 짚으면서 핀잔까지 하니 시침 떼고 말았다.
어쨌든 어떻게 생겼는가 한번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투란의 가슴에서 금방 가시질 않는데…….
“저것들 보게? 하아, 진짜 황당한 것들이네?”
느닷없이 이자닌이 외치고 있었다.
투란은 물론 멜키와 파쿠란도 이자닌을 봤고, 고개를 쳐든 채로 이자닌이 보는 것이 뭔가를 확인하기 위해 위를 봤다.
진청의 나뭇잎 사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녀석들은 쉽게 눈에 띄었다.
몇 명…… 분명히 몇 마리라 세는 것이 맞을 녀석들인데, 몇 명으로 세야 하는 모습을 한 채로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멜키가 이자닌처럼 그 광경을 본 감상을 바로 토해낸다.
“에이, 씨! 아직 들어가려고 발 딛지도 않았는데 벌써 우릴 사냥감으로 찍다니! 아오, 저 추잡한 잔나비 새……! 아흑, 왜 때려!”
욕을 하려던 멜키의 뒤통수를 이자닌이 사납게 때렸기에 바로 멜키는 까닭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자닌은 냉정하게 위를 가리키며 그 까닭을 말한다.
“우리 모습을 하고 있는데 추, 잡, 해? 내가 추, 잡, 해 보여?”
멜키는 당황했다.
마수 욕을 하려던 것인데, 그 마수가 일행의 모습을 고스란히 하고 있기는 했다.
멜키가 둘, 이자닌이 셋, 투란도 둘, 파쿠란은 넷이 넘는 듯한 모습으로 높은 나무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뭔가 짜증도 나고 울화가 치밀어 욕을 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아닌가?
하지만 이자닌이 하는 말을 들으니, 멜키는 자기들 모습을 향해 추잡하다고 욕한 것이 맞기는 맞다!
투란이 다시 멜키를 윽박지르는 태도인 이자닌에게서 눈을 떼고, 파쿠란 쪽으로 넌지시 묻는 소리를 흘려본다.
“저 녀석들, 숲에 누가 들어오나 늘 경계를 서요?”
파쿠란이 나직하게 대답한다.
“그래, 그리고 그중에서 쉬운 사냥감을 노리지. 그러니까 이 숲을 지나는 여행자는 항상 거울 마수를 보고 들어서서 거울 마수를 뒤에 남기고 숲을 떠나는 거야. 동료가 있다면 동료의 시체를 남기고 나오는 경우도 있는 거고.”
“그러면…… 이 숲은 확실히 저 녀석들 영역인 거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아까부터 멜키가 투덜거렸잖아. 배 타고 그냥 훌쩍 날아서 넘어가자고. 어쨌든 잔나비는 하늘을 못 나니까.”
“흐흠…… 그렇군요. 날아서 넘어갈 수는 없겠죠?”
“스타폴에 보여줄 수는 없는 배라고 했잖아, 투란.”
“으흐음!”
투란은 살짝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마수의 환대를 받으면서 목숨 걸고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숲…… 그런데 거길 걸어서 지나쳐야 하다니, 괜히 속이 꺼림칙하잖은가.
이자닌이 예민한 태도로 멜키를 구박할 만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스타폴을 향해 숲을 넘어가야 했다.
걸어서…… 내려다보는 자신들의 모습이 나무 위로 따라오는가 마는가를 살피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