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7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70)
어두운 숲의 한복판에서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멜키는 모닥불 한편에 모포를 몸에 감은 몰골로 잠든 채였고, 이자닌은 모닥불을 보며 앉은 채로 꾸벅거리면서 잠들고 있었다. 파쿠란은 가만히 나뭇가지를 불꽃 속에 던져넣으면서 흔들거리는 열기를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멍하니 앉아 불길을 바라보는 시늉을 했지만, 머릿속은 꽤 복잡했다.
‘아직 몰라? 그 마킹이란 거, 어떻게 한 건지?’
―분명히 네 몸이나 장비에 어떻게 한 부분은 없다. 몬스터 로드에게 몰래 마법을 거는 대단한 짓은 분명히 아니었어. 신기하군. 이렇게 흔적이 없다니…….
드라고니아는 여전히 같은 말을 하면서 흥미로워하는데, 투란에게는 굉장히 재미있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야, 뭘 그리 좋아라 하냐고!’
―좋다는 것이 아니라…… 놀랍잖아? 이 정도면 그냥 물어도 된다니까.
실실 웃는 말투로 드라고니아는 모닥불 피우기 전에 했던 권유(勸誘)를 다시 하고 있었다. 골치 아프게 의아해하지 말고 그냥 파쿠란에게 물으라고.
투란은 나오려는 한숨부터 참아야 했다.
‘묻는다고 대답해주겠냐. 어휴…….’
둘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파쿠란이 거울 마수 잔나비 떼를 모조리 공격했던 아케인 볼트, 소나기처럼 쏟아냈던 그 마법의 쇠뇌살이 어째서 일행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는가에 대한 의문, 호기심이었다.
일단 기본적인 그 마법의 구상방식은 드라고니아가 단번에 알아차렸다.
고대의 격렬한 전장에서 피아(彼我)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상되었다는 마법인 덕분이었다. 미리 준비한 마킹, 마법의 각인을 직접 몸에 새기거나 몸에 지닌 물품에 새겨놓고 전장에 펼칠 마법의 서두(序頭)에 각인된 대상을 회피할 것인가, 포함할 것인가를 분별하는 술식을 담아둠으로써 적을 공격하고 아군을 보호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마법.
아케인 볼트뿐 아니라 화염(火焰), 빙결(氷結) 등의 공격형 마법이나 치유와 재생, 보호 등의 방어형 마법까지 응용이 가능해 전장에 서는 마도사, 마법사에게는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특수한 마도의 기법(技法)으로 인정되었던 것.
그런 마법이기에 드라고니아가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다만 파쿠란의 방식에는 한 가지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아무리 특수한 마도의 기법이라 해도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까지 무시하지는 못한다는 것.
몬스터 로드에게 마법을 걸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 몬스터 로드 자신이 마법을 수용한다는 ‘허락’과 ‘계약’이라는 마법적인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은 채로는 고대 전장을 주도한 저 특별한 마법도 쓸모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파쿠란에게 어떤 ‘허락’도, ‘계약’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아케인 볼트는 투란을 거울 마수처럼 꿰뚫거나 두들겨 팼어야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마킹된 존재로 파악해서 스쳐갔을 뿐이었다.
즉, 파쿠란은 어떤 방식인지 모를 기묘하고 이상한 수단으로 투란을 마킹한 것이다. 적으로서의 마킹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갈 수 있겠거니 할 수도 있지만, 몬스터 로드의 강점이자 약점이 바로 어지간한 마법은 통하지 않고 망가진다는 상식을 완전히 부숴버린 것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심지어 드라고니아가 아직까지도, 마침 잔뜩 강화된 프로브까지 동원해서 투란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싹 훑었음에도 파쿠란이 남긴 어떤 흔적조차 찾아낼 수가 없었으니 한층 더 심각한 문제였다.
무슨 대마법도 아니고, 대마법사가 정성을 다한 것도 아닌 채로 아주 간단하게 몬스터 로드에게 마법을 건 셈이었으니!
―파쿠란은 네가 묻는 것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몰라. 너무 뻔뻔하게 드러냈잖아.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심각하게 여기는 기분을 다독이듯, 반쯤은 냉정하게 짚으면서도 반쯤은 놀리는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투란이 듣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했다.
파쿠란이 실로 노골적이기는 했으니까.
‘아, 무능하다…… 결국 물어봐야 하냐.’
투란은 결국 드라고니아에게 투정 부리면서 파쿠란을 바라봤다.
모닥불의 붉은 광채를 뒤집어쓴 듯한 파쿠란은 이자닌처럼 잠들지 않고 아주 밤을 새울 듯한 모습이었다. 멜키는 아예 불 피우자마자 잠들어서 자는 동안 뭔 일이 생기든 말든 상관없다고 코까지 골아 젖히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뭔가 묻기 딱 좋은 분위기이기는 했다.
그래서 투란은 일단 말문을 열었다.
“파쿠란, 내가 지금 뭘 궁금해할지 알죠?”
“음? 흐흠…… 글쎄?”
모닥불을 들추듯이 장작을 밀어넣으면서 파쿠란이 빙긋 웃었다.
그 낯빛과 태도에 투란이 눈을 가늘게 하며 묻는다.
“여기 자주 와봤어요?”
“어?”
파쿠란의 웃음에 살짝 금이 갔다.
―뭐 하냐?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물음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투란은 소리 없이 의아해하는 드라고니아에게, 뜻밖이란 표정을 짓는 파쿠란에게 동시에 들으란 듯이 당당하게 말을 잇는다.
“이 숲에 아주 익숙한 것 같으니까 말이죠. 저 잔나비 마수를 아주 침착하게 해치웠잖아요. 어떻게 덤빌지 미리 알고 준비도 깔끔하게 다 해놨고…… 말로만 대처법을 들은 게 아니고, 몇 번 다녀본 것 같았어요.”
“흠…… 그렇게 말할 만도 하군…… 확실히 겁 없이 구경하면서 기다렸었지.”
파쿠란은 조금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투란에게 하던 말을 이어 묻는다.
“그런데 그게 가장 궁금했어? 다른 것보다 내가 이 숲에 익숙한가, 아닌가를 따져보고 싶었어?”
“뭐 다른 걸 먼저 물었어야 했나요?”
투란은 아주 뻔뻔하게 되물었다.
―야…….
겨우 투란의 태도를 이해한 드라고니아는 어이없어서 뭐라 한마디 하려 했다.
그러나 투란은 방긋 웃으면서 파쿠란을 쳐다보는 채로 시침 떼고 있었다.
파쿠란도 슬슬 투란이 뻔뻔하게 시침 뗀다는 것을 느낀 듯, 히죽이 웃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거의 똑같은 태도로 대꾸하려는 찰나…….
“작작 좀 해라, 작작 좀!”
철썩, 시원하게 파쿠란의 등짝을 손도장을 찍으면서 이자닌이 으르렁거렸다.
꽤 세게 두드린 탓인가 파쿠란이 그 따가움이 몸을 꿈틀거리며 이자닌을 보니, 이자닌은 무릎걸음으로 투란 쪽으로 재빨리 옮겨가며 다시 손을 들고 있었다. 파쿠란은 그 모습에 입을 다물었고, 투란은 갑작스러운 그 모습에 ‘엥?’ 하는 소리부터 내며 이자닌이 설마 보이는 모습 그대로 저지르려나 의심했지만…….
찰싹!
“밤에는 자라고! 괜히 자존심 내세우면서 시침 떼는 거, 옆에서 보기 흉하거든! 그냥 물어! 궁금한 거 그대로 그냥 물어! 이 밤에 아무도 엿듣지 않으니까, 그냥 물으라고! 아, 저기 멜키가 걱정이야? 그럼 멱을 따놓든가! 얼른 얘기 끝내고 자란 말이야! 내가 민감해서 옆에서 변죽 치고 있는 꼴을 보면 소름 끼쳐서 잠이 안 와! 그러니, 빨랑빨랑 할 말 하고, 자라고!”
철썩!
으르렁거리면서 쏜살같이 이자닌은 투란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말했다.
너무 빨라서 투란이 끼어들 틈도 없는 말이었다.
그저 말이 끝난 다음에 ‘그, 그럼요! 네엣!’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는 것이 투란에게는 최선인 지경이었다.
파쿠란이 그런 투란의 모습에 어깨를 떨구면서 쓴웃음을 짓고 한숨을 내쉬고 나서 느릿느릿 말한다.
“멜키는 깊이 잠들었어. 옆에서 떠드는 소리는…… 잠결에도 듣지 못해. 지금 멜키 주변으로 보호를 핑계로 살짝 감금 마법이 걸려 있거든. 자는 동안에는 주변의 이야기를 의식 못 하고서라도 듣지 못하게 말이야. 뭐, 가끔 자면서 들은 얘기를 깨어나서 고스란히 기억해내는 이상한 녀석들이 있어서 하는 예방이지. 어쨌든……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자면…… 나도 이자닌도 스타폴에는 처음이 아니야. 그렇다고 여기서 살면서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칠왕국을 순례한 적이 있었고, 그때 잠깐 이 코발트 게이트까지 통과해본 적이 있어. 음? 둘이 함께는 아니었지. 나도 이자닌도 각자……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았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그 경험을 통해서 그럭저럭 코발트 게이트, 저 숲의 분위기를 알 만큼 아는 셈이지. 다른 거 또 궁금한 거 없나?”
이자닌이 이 느린 말투에 울컥한 표정이었지만 파쿠란은 모르는 척하면서 묻는 말로 맺고 있었다. 아무리 보채더라도 투란과의 대화를 매우 귀하게 여긴다는 것처럼!
투란은 그런 파쿠란을, 졸리면서도 끝까지 듣겠다는 듯이 눈을 부라리는 이자닌을 둘러보다가 묻는다.
“거울 마수…… 저 잔나비 돈 안 돼요? 신기한데…… 갖다주면 어딘가 가공해서 쓸 수 없는 거예요?”
“몬스터의 잔해랑은 많이 다른 모양이더라고. 확실히 마수의 모피로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겠지만 거울 마수의 능력을 그대로 갖춘 뭔가를 만들지는 못하나 봐. 마수의 능력이란 본능적인 마력의 사용, 그 몸이 마법의 소재가 되면서 이뤄지는 것이니까 말이야. 죽은 다음에는 그저 사용할 방법을 잃어버린 마법의 소재가 된다고나 할까? 그래도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작자가 있으니 은전이든 동전이든 몇 닢은 벌 수 있겠지만…… 고생해서 가져갈 만큼은 아닌 거지.”
“먹지도 못하고요?”
투란이 불쑥 더하는 물음은 이자닌에게 기겁한 소리가 나오게 했다.
“마수를 왜 먹어! 마수라고, 마수! 먹고 뭔 탈이 날지 모르잖아. 아, 진짜 루비한테 몇 번을 당했는데…… 너까지 그러지 마, 제발!”
파쿠란은 눈을 번뜩이면서 투란에게 묻는다.
“마수라도 먹을 수 있으면 먹을 텐가?”
“굶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먹을 게 아예 없으면 충분히 시도할 만한 일이라고요. 몬스터보다 안전하기도 하니까.”
투란의 당당한 대답은 이자닌의 표정을 구기게 했고, 파쿠란을 끄덕이게 했다.
“맞는 말이군. 실행할 수 있는가는 따져보지 않더라도, 맞는 말이야. 아, 거울 마수는 익힐 수가 없어. 어째서인지 몰라도 저것들, 제대로 삶거나 구워지지 않아. 그냥 질긴 생살과 모피가 엉긴 채라, 먹기 적당하지 않아. 또 다른 궁금한 일은?”
또다시 묻는 말로 하던 말을 맺는 파쿠란을 향해 이자닌은 눈을 부라렸다.
대체 이게 뭔 스무 가지 물음 놀이냐고 따지듯이 날카롭게, 제대로 성질내보겠다는 듯한 이자닌의 눈길이었지만 파쿠란은 여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투란만 볼 뿐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방긋 웃으면서 다시 묻는다.
“멜키가 이 숲을 넘으면 바로 스타폴인 것처럼 말하던데, 정말 숲이랑 딱 붙어 있는 거예요?”
이자닌이 한숨을 쉬었고, 파쿠란은 담담하게 대답을 한다.
“아냐. 숲의 경계를 벗어나서 거의 십 킬로미터가량 거리가 있지. 하지만…… 이 코발트 게이트는 스타폴의 관문으로 여겨지기도 해. 그린 우드로 나가는 문이면서 스타폴로 들어서는 문, 그게 이 코발트 게이트야. 어떤 녀석들은 그 의미를 확대해서 받아들이기도 하지. 이 숲을 자력으로 지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게 헌터의 수준을 드러내는 거라고 말이지. 아, 그리고 숲의 경계를 넘어서 스타폴에 이르는 사이에는 농사도 지어. 제대로 관리하는 농사는 아니고, 그냥 마구 작물의 씨앗을 뿌려놓고 무사히 자라서 결실이 나오면 수확하는 거야. 뭐, 그런 면에서 보자면 분명히 이 숲 코발트 게이트가 스타폴의 외부 담장 노릇을 한다고도 할 수 있고. 알았어? 그러면…… 또 궁금한 거는?”
“아, 정말! 그냥 할 말 있으면 하라고, 이 미친 마법사야! 뭘 자꾸 물어, 묻기는! 그냥 순순히 해주고 싶은 말을 해!”
이자닌이 성질냈다.
동시에 투란은 뇌리를 울리는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냥 물어봐! 어쩌면 묻기 전에는 답을 못 하는 계율이라도 지키는 중일지도 모르잖아. 묻지 않은 말에 답해주면 안 되는 저주에 걸렸을 수도 있고! 그냥 물어봐!
‘에, 그런 저주도 있어? 쳇…….’
투란은 숨을 고르면서 이자닌에게 구박받는 파쿠란을 향해 헛기침을 하며 요리조리 피해온 물음을 던진다.
“몬스터 로드에게…… 그 몸이나 갖고 있는 장비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마킹할 수 있는 마법이나 수단이 뭐예요?”
이자닌이 구박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파쿠란은 빙빙 돌다가 겨우 문을 두드리는 녀석을 보는 것처럼 투란을 보면서도 손가락 둘을 세우며 담담하게 대답한다.
“마법사에게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지. 하나는 자신의 감각, 인지(認知) 범위를 조작해서 한번 포착한 몬스터 로드를 계속해서 관찰하는 것. 이 조작 마법은 자신을 대상으로 하니까 몬스터 로드에게 전혀 닿지 않는 마법이면서도 그 상황을 계속 살필 수가 있지. 그 때문에 감각이나 인지 범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상위 수준의 마도사라면 대단히 먼 거리에서도 관찰 가능하다지만, 확실하게 제한적이야. 그리도 또 하나는…… 그림자를 대상으로 마법을 거는 거야. 그래, 그림자에 마킹을 하는 거지. 몬스터 로드의 희한하고 대단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는 무방비일 때가 많거든.”
“그림자?”
―그런 마법 없다, 환영(幻影)에 아케인 포스를 겹쳐서 그림자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각인을 남길 수는 없어.
되뇌던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단호한 부정을 들었고, 파쿠란을 매우 의심하는 눈길로 바라봐야 했다.
두 나라의 국경도시 스타폴의 관문에서 블랙 메이지에 대한 신뢰가 관문에 걸린 듯한 상황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