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7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72)
“어디로 들어가야 해요?”
서서히 높이 올려다봐야 할 곳까지 온 다음에 투란이 물었다.
이제까지 겪었던 어떤 곳과도 다른 느낌이 짙게 스타폴에서 흘러나오는 듯했기 때문이다.
상아탑이 다스리는 알드바인처럼 마법으로 성벽을 꾸민 것 같지도 않았고, 엘데인처럼 해자(垓字)와 성문의 구조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라비엔처럼 터무니없는 높이라서 승강기가 달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몰래 판 구멍을 입구로 사용하는 모양은 더욱 아닌 듯했으니, 대체 스타폴의 출입은 어떻게 하는가?
십여 미터의 높이를 고려한다면 절대로 그냥 뛰어오를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설마 밧줄이라든가 사다리를 이용하는 것도 아닌 듯한데…….
“조금 돌아가야겠네. 사람 보이는 곳까지.”
한숨처럼, 운이 안 좋다는 투덜거림을 두어 마디 토해낸 멜키가 앞장서면서 말하고 있었다.
투란이 뭔가 어리둥절해하는데, 이자닌이 보태듯이 투덜거린다.
“여전히 그 멍청한 통나무를 쓰나. 도무지 발전이 없는 동네라니까!”
멜키도 공감한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차라리 발리스타를 설치해두면 좋을 텐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투란은 슬쩍 파쿠란을 봤다.
파쿠란은 빙긋 웃으면서 말없이 앞장서는 멜키의 뒤를 쫓는 시늉을 했다.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듯한 그 태도에 투란은 입을 다물고 따라갔다.
그래서 마침내 성벽 위에 사람이 보이는 곳까지 왔고, 멜키가 두 손을 높이 치켜올리며 외치는 말도 들었다.
“어이! 들어가게 해줘! 통나무 좀 내려달라고!”
곧바로 성벽 위에 있던 자가 응답하는데…….
“얼마 줄래!”
히죽거리면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는 손짓이 명백하게 ‘돈 내놔!’였다.
투란은 ‘엥?’ 하는 소리와 함께 파쿠란과 이자닌을 흘깃흘깃 둘러봤다.
이 도시 스타폴에서는 들락거리는 이에게 돈을 받고 통나무라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인가? 그런데 대체 통나무가 뭔가? 사다리나 밧줄처럼 이 성벽을 넘게 해주는 어떤 것을 일컫는가, 아니면 진짜 성벽에서 통나무를 던져주려나?
뭐 하나 잘 모르겠다 싶은데, 파쿠란과 이자닌은 혀를 차면서 위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즉, 저 성벽 위에 작자가 돈 내놓으라 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듯한데…….
“이야, 곡식이 잘 익었네! 불에 익히면 더 맛있지 않겠어? 어때, 내가 여기 불 질러서 맛있게 들판을 익힐 테니까, 같이 먹는 걸로 할까?”
멜키가 허리춤에서 토치 라이터를 꺼내더니 불꽃을 피워 흔들면서 위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잖은가.
이에 대한 성벽 위쪽의 반응은 꽤 격렬했다.
“하지 마!”
“야야, 농담이야!”
“농담하던 새끼 죽여버려!”
“어이, 거기 참아!”
“불 치워!”
그르르륵, 긁히는 소리와 함께 통나무가 성벽 위로 높이 솟구치고 있기도 했다. 아무 장식도, 조각도 없는 그저 껍질이 여기저기 긁혀 벗겨진 통나무는 성벽 아래를 향해 기우뚱하며 몽둥이처럼 한쪽 끝을 떨궜다.
터엉, 요란한 소리가 났을 때 멜키는 토치 라이터의 불꽃을 재워 다시 허리춤에 끼워 넣었다. 그 얼굴에는 ‘어디서 누구한테 장난치려고!’ 하는 듯한 소소한 자랑스러움이 살짝 맴돌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전혀 납득하지 못했기에 투란은 파쿠란을 향해 소곤소곤 물어야 했다.
“뭐예요? 왜 저런데요?”
성벽 밖의 들판, 코발트 게이트까지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중간지대에 불과한 곳에 불을 지른다는 말에 왜 저런 격한 반응인가? 무슨 사정이 있기에 멜키는 그걸로 협박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는가? 대체 어떻게 들판에 불을 지르는 것이 성벽 너머에 협박이 되는가?
투란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무래도 스타폴만의 어떤 사정이 있는 듯할 뿐이었다.
파쿠란이 이에 대해 나직하니 읊조리니…….
“얘기했잖아, 이 들판…… 코발트 게이트에 서식하는 마수와 몬스터, 거기서 나올 만한 녀석들 전부가 거쳐야 하는 길목이고 그 거리가 바로 방벽인 곳이라고. 저 들판이 잿더미가 되면, 곡식이라는 그럴듯한 미끼가 사라지면 코발트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녀석들이 바로 스타폴의 담장을 핥는 거야. 저 정도 높이와 방비로는 한참 모자라지.”
바로 이자닌이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보탠다.
“몇 번 난리 나고서도 겨우 나온 대비책이라는 게 곡식 사이마다 환각초(幻覺草) 따위나 푹푹 심어놓는 거니까. 얘네 대체 왜 저러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그 말 속에서 투란은 뭔가 이상한 한마디를 바로 느꼈다.
“환각초……? 그게 무슨……?”
이에 파쿠란과 이자닌이 ‘몰라?’ ‘엥?’ 하는 사이에 드라고니아가 한심해하는 말투로 알려주는데…….
―하얀 꽃 무더기. 인간은 물론이고 짐승이나 몬스터, 어쨌든 감각기관이란 것이 있는 경우에 그걸 어지럽혀서 환각에 빠뜨리는 약초야. 몰랐냐?
‘에? 그게 그런 거였어? 맛있어 보였는데!’
―먹으면 안 된다고!
소리 없는 구박 속에서 투란은 배시시 새는 웃음으로 파쿠란과 이자닌에게 살짝 묻는 말로 꺼낸 호기심을 마무리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꽃 더미 얘기에요? 그 하얗던?”
이자닌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파쿠란은 진지하게 말한다.
“먹으면 안 돼. 상당히 독한 마약(痲藥)이야. 단순히 환각상태에 빠뜨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은 것처럼 마비시키고 재우기도 한다.”
“엑! 곡식 사이에 그런 게 있다고요?”
투란은 놀랐고, 드라고니아도 흠칫했다.
―음? 환각초가 마취 효과가 있었나?
‘야, 너!’
―뭐, 환각초라고 불리는 것들이 꽤 많기는 하니까…… 몇 송이 채집해서 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내가 아는 품종에서 변이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럴 경우에는…… 상당히 위험한 마수 꽃일 수도 있어. 조사하자, 투란.
드라고니아의 대꾸는 길고 뻔뻔했다.
“뭐해, 올라가자고!”
멜키가 기울어진 통나무를 반쯤 올라서며 손짓과 함께 외치고 있었다.
이자닌이 그 뒤태를 보며 소리친다.
“엉덩이 보며 오를 생각 없거든! 빨랑 올라가! 다음은 파쿠란, 투란도 내 앞으로 빨리 올라가!”
“그러지.”
파쿠란은 간단히 끄덕이며 통나무를 밟고 오르기 시작했다.
투란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이자닌을 보며 중얼거리니…….
“결국 우리 엉덩이 끝까지 다 보고 올라오는 거잖아?”
“닥치고 올라가!”
이자닌은 피식 웃으면서 투란도 앞장서라 손짓할 뿐이었다.
투란은 멜키가 성벽 위에 서는 것을 보고 파쿠란이 절반쯤 올라가는 것을 보며 바로 통나무를 밟았다. 긁힌 흔적이 많기는 했지만 조금 미끄러운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투란의 부츠는 그 미끄러운 감각을 정확히 전하면서도 전혀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며 하클의 솜씨에 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부츠의 접지력에 감탄하며 성벽 정상에 선 투란은 스타폴의 풍경에 흠칫 놀랐다.
“우와, 깊다!”
밖에서 보지 않고 느낄 때의 상황과 성벽에 올라서서 눈에 들어온 풍경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성벽의 높이조차 밖에서는 십여 미터 언저리였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바로 아래로 깊이 내려간 성벽의 높이가 거뜬히 그 두 배는 될 듯싶었다. 스타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깊어지는 지형이었고, 성벽은 가장 바깥쪽의 가장 높은 자리에 선 방벽이었다.
그리고 성벽에서 길게 수십여 미터 아래로 비스듬히 드리워진 다리가 거대한 바큇살처럼 가지런히 성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그 수는 수십이 아니라 수백은 헤아려야 할 정도로 많았는데, 스타폴의 외각 성벽이 장난 아니게 길게 이어지면서 도시 전체를 감싼 덕분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찌그러진 바퀴가 땅에 박힌 모양이다. 이제 보니 여기가 바로 바퀴 도시였어. 재미있군.
‘바퀴 도시?’
―드라코눔에서 정기적으로 춤추는 산맥의 지형을 탐색하는 측량을 한다. 내려오지는 않고 위에서 지나치면서 이 도시를 찌그러진 바퀴 모양의 도시라고, 바퀴 도시로 기록해둔 거지. 대충 이 근처인가 했는데, 바로 이 도시였어.
‘그래…… 그거 말고 다른 기록은 없고?’
느릿하게 둘러보면서 투란은 이자닌이 살랑거리는 깃털처럼 성벽에 올라서는 모습을 확인하며 물었다.
―인간의 수가 측량 때마다 변동이 심한 곳이라고 했다. 어떨 때는 수십만이지만, 어떨 때는 수만…… 적을 때는 수천이 포착된다고 말이지. 코발트 게이트, 저 진청의숲은 그 수랑 반대로 확장되었다 줄었다 한다고도 했지. 이 도시는 저 숲과 완전히 한 쌍으로 서로 잡아먹는 대립관계란 거야.
‘경계도시란 거네.’
―그렇겠지.
투란이 대강 상황을 살피며 드라고니와 얘기를 할 때, 멜키는 파쿠란과 이자닌을 둘러보며 떠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아냐? 아니, 여기 길드라면 아무한테나 물어보면…… 에잇, 알았어! 끝까지 안내해준다고! 가자고, 가!”
이쯤에서 헤어지려던 의도를 드러냈다가 포기하며 멜키가 다시 길잡이 노릇을 시작했고, 성벽 위에서 통나무를 내려줬다가 다시 걷어올리는 이들은 멜키의 뒤통수를 향해 투덜투덜 떠들어댄다.
“피똥 싸고 그 똥 밟아라!”
“불장난했으니 머리카락이 홀랑 타버릴 거다!”
“동전 몇 닢이면 될 장난을 사람 목숨 걸린 일로 바꾸다니, 악당!”
“또 보지 말자, 칼부림할 것 같으니까!”
뒤통수에 날아드는 그 소리에 대해 멜키는 가운뎃손가락만을 세운 두 손을 들어 올리고 흔들면서 당당하게 길게 내려진 다리를 밟으며 걸을 뿐이었다. 그런 멜키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다는 듯이 뒤따르며 이자닌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고, 파쿠란은 그저 웃으며 걸을 뿐이었다.
투란도 냉큼 일행을 따라가면서 피식 웃는 채로 뒤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친다.
“통나무 고마웠어요! 수고해요!”
이에 대한 대답이 즉각 튀어나온다.
“저런 놈이랑 다니지 마!”
“험한 꼴 볼 거야, 빨랑 갈라서!”
“진지하게 말하는데, 저런 거랑 놀지 마!”
물론 선두의 멜키는 더욱 두 팔을 높이 치켜올리며 더욱 뻣뻣해진 가운뎃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새삼 저 손모양이 칠왕국의 손짓 중에 확실한 욕이란 것을 되새기며 투란은 키득거리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건강하고 착하네, 다들.’
―뭔 얘기냐?
‘저렇게 성질내면서도 서로 진짜 칼부림은 하지 않는다고. 정신줄 놓은 작자들이면 이미 칼부림했을 테니까.’
―그래? 농담을 격하게 주고받는 정도가 아닌가?
‘서로 농담으로 만든 거지. 성벽 밖의 위기에 처한 사람한테 돈 놓으란 놈도 있고, 같이 죽자고 발악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곱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샤오콴 마을에서 들은 이야기냐?
‘응. 군단병이 지키는 성채를 들락거리던 헌터들이 가끔 한 얘기야. 그러니까 군단병이랑 너무 날카롭게 다투지 말라고 말이야.’
―흠? 군단병이 돈을 내놓으라 한다고?
‘어? 아니, 군단병의 빈자리를 메우는 수비역의 용병들…… 돈 뜯다가 걸리면 군단병은 사정없이 징벌 대상이니까. 용병은 그런 징벌에서 예외이고…… 설명하기 좀 복잡해. 나중에…… 스타폴 구경부터 하자.’
비스듬히 길게 늘어진 다리, 굵직한 나무를 튼튼한 줄로 묶고 그 위에 나무껍질 거적을 덮어 감아놓아 비탈길처럼 만들어놓은 다리를 밟고 내려가면서 투란은 스타폴의 풍경을 두 눈에 가득 담았다.
성벽 안쪽에 다시 5, 6미터의 담장이 놓여 있고 그 담장은 거대한 띠처럼 다시 스타폴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스타폴은 안쪽으로 파문을 그려 넣은 것처럼 성벽과 담장이 세워지고, 그 틈새에 건물을 세우고 거리를 둔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아래로 그려지는 파문이었기에 가장 깊은 곳이 멀리 보이기도 하는데, 덕분에 투란은 새록새록 의아함이 솟구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몇 걸음 앞의 파쿠란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며 묻는다.
“대체 어떻게 이런 구덩이…… 도시를 세울 정도의 구멍이 파인 거예요?”
“스타폴, 별이 떨어졌다는 뜻이지. 이 모양이 생긴 까닭을 그대로 말한 거야.”
파쿠란의 대답은 투란을 한층 더 어리둥절하게 했다.
“별……? 진짜 별이 떨어졌었다고요!”
“글쎄, 진짜 별이었으려나.”
파쿠란은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오래되어서 알 수 없다는 듯, 오래된 이야기라 진짜인지 가짜인 판별할 수 없다는 듯…….
이자닌이 몇 걸음 앞에서 들은 듯이 고개를 돌리며 약간 거칠게 말한다.
“별은 무슨! 오다가 들었잖아! 레드 드레이크가 만든 흔적이라고! 그놈이 다시 활동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투란, 뭘 들으면 하루도 가기 전에 금방 까먹는 거냐! 뭔 병아리 대가리야!”
“그쪽이 더 믿기 힘들잖아요.”
투란은 투덜거렸다.
파쿠란도 조금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