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74)
꺾이고 굽고, 막힌 듯 보이면서도 틈새가 열린 좁은 길은 너저분하게 섞이고 구겨진 온갖 쓰레기와 쓰리기 취급도 어려워 보이는 더러운 오물(汚物)로 치장한 채 얼마 동안 이어졌다.
거의 안쪽 성벽 두엇을 지나지는 않았을까, 투란이 지루해서 슬슬 거리감조차 애매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더럽게 막힌 벽만 보고 걷기가 너무 지루했기에 결국 투란은 조금 더 두리번거리다가 물으려 하는데, 맨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던 파쿠란이 바로 그런 낌새를 눈치챈 것처럼 말한다.
“다 왔다. 저 벽 너머야.”
다독이는 말투에 투란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벽 너머에 도달한 것은 좁은 길을 다시 한 바퀴 돌듯이 걷고 난 다음이었다. 그 벽을 중심에 두고 빙빙 돈 것은 아니었고 계속 앞으로 나가면서 방향을 바꾸다 보니, 그냥 한 바퀴 돌아버린 듯한 상황이었다.
이는 그 길을 알면서 걸은 이자닌조차도 성나게 한 모양이었다.
겨우 깨끗하게 정리된 뒷마당 같은 풍경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풍경의 중심처럼 보이는 깨끗한 문…… 허름했지만 지나온 길을 되새기면 청결(淸潔)의 성전(聖殿) 대문이라고 여길 만도 한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며 이자닌이 외친다.
“적당히 청소해놓으라고 했더니 더 더럽게 만들어놔? 이리 와!”
“……구냐? 허억! 이자닌! 왜, 왜 여기…… 자, 잠깐 거긴 뒷문이잖아, 뒷문!”
누구냐고 묻던 이가 안에서 당황해 마구 내뱉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투란과 파쿠란이 한 걸음 늦게, 일부러 느릿하게 채여서 너덜거리는 문짝을 지나 들어서니…… 이자닌을 피해서 탁자를 빙빙 도는 이가 보였다. 꽤 헐렁한 로브 차림새인 것이 연금술사 혹은 마법사라고 어떻게든 과시해보려는 모습이었고 실내의 분위기도 그러기 위해 잔뜩 꾸며놓은 듯했다. 물론 온갖 약병, 채색된 듯한 그릇, 두꺼워서 망치 대용으로 쓸 수도 있어 보이는 책은 마법사인가 연금술사인가 매우 애매하게 보이게도 했다.
“뒷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리 와, 일단 열 대 맞고……!”
“왜 열 대야! 보통 한 대라고, 한 대!”
“얌전히 맞을 때야 한 대지! 그렇게 내빼는 주제에 어딜 한 대로 때우려고!”
“두 대, 아니 세 대로 타협하자고! 아니,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그게 무슨 억지야! 안 맞아! 못 맞아! 억울해! 파쿠란, 보고만 있지 말고 뭐라고 좀 해봐요!”
도움을 청하는 소리까지 나왔기에 투란은 파쿠란을 쳐다봤다.
이 소동에 끼어들어 말릴 것인가 묻는 듯한 눈길이었고, 파쿠란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느릿느릿…… 탁자를 끼고 빙빙 돌며 바쁜 저쪽 상황에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말한다.
“명색이 마법사면서…… 뭘 그리 힘들어 하나? 마법 밧줄로 묶어두고 차분히 대화를 하면 되잖아.”
“파쿠란, 당신…… 날 죽일 셈이야! 이자닌, 항복! 항복이라고 그만 좀 해! 여기 날 패러 온 거 아니잖아! 뭣 때문에 왔는지, 대화로! 대화로 하자고! 제발!”
도망치다가 결국 어깨를 잡힌 다음에야 대화하자는 소리였기에 이자닌은 깔끔하게, 상큼한 표정으로 무시하고 그 목뒤를 잡아 탁자에 이마를 처박으면서 으르렁거린다.
“깨끗하게, 살, 란, 말이다! 깨, 끗, 하, 게!”
쿵, 쾅.
더러운 골목길 끝의 집주인은 탁자에 이마가 두어 번 찍히고 나서 뒤로 벌러덩 넘어가려 했지만 이자닌이 발로 끌어당긴 의자에 풀썩 주저앉은 것으로 끝났다. 그래도 꽤 세게 부딪혔는지 어지러운 표정을 짓는데, 그런 몰골을 향해 손을 터는 시늉을 하면서 이자닌이 유쾌한 목소리를 낸다.
“오랜만이야, 타투스. 요새도 문신 새겨서 먹고 살아?”
“부업이야, 부업! 젠장, 오랜만이다.”
투덜거리려다가 찔끔하며 타투스가 이자닌을 흘깃거리면서 대답했다.
투란은 갸웃하며 파쿠란을 쳐다봤다.
문신 새겨 먹고 사는 작자의 이름이 타투스…… 설마 본명인가?
파쿠란이 가마니 한쪽에 나뒹구는 의자를 세워 앉으면서 투란의 눈길에 대답한다.
“문신 새기는 걸 좋아해서 타투스라고 별명이 생겼지. 인상적인 별명이라서, 우리끼리 있는 동안에는 본명을 아예 부르지 않게 되었지.”
타투스가 이 소리에 바로 짜증 난다는 듯이 말한다.
“코드네임이잖아, 코드네임! 대체 왜 자꾸 암호명을 별명이라고 쳐 우기냐고! 젠장, 이제는 나도 내 이름을 까먹을 지경이잖아! 파쿠란, 당신 내 이름 기억해?”
“타투스.”
파쿠란의 대답은 깔끔했다.
타투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봤지만 파쿠란은 시침 떼는 표정으로 마주 볼 뿐이었다. 그야말로 네 이름은 타투스 말고 없다는 것처럼!
이 묘한 분위기에 투란은 웃고 말았다.
타투스가 그런 투란을 턱짓하며 묻는다.
“저 친구는?”
“투란.”
파쿠란의 대답은 역시 간결했다.
타투스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고…….
“반갑군, 투란. 난 카엘이다.”고 콧김을 세게 내뿜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 모습은 딱 ‘네가 투란이라 하면, 나도 카엘이라 버티겠다!’라며 심술부리는 몰골이었다. 그래서…….
“아, 네…… 반가워요, 타투스.”
투란은 웃음을 누르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로 타투스가 투란을 향해 불만 어린 표정으로 불평하려 할 때, 이자닌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바람길 탈 수 있어?”
타투스의 낯빛이 살짝 변하며 대답이 바로 나온다.
“무리야. 두어 달 뒤면 몰라도…… 내가 안 한다는 게 아니야! 레드 드레이크가 활동한다는 소문 때문에 공중 감시망이 잔뜩 늘었다고! 이럴 때 바람 타고 날아가는 마법을 쓰면 바로 걸려! 그러니까 당장은 안 돼!”
“쳇. 그럼, 땅 아래는?”
이자닌은 잠깐 주먹을 쥐며 성난 표정을 지었지만 타투스가 격렬하게 반발하며 꺼내는 이야기에 손을 풀며 다시 묻고 있었다. 이는 타투스를 잠시 흠칫하게 했고, 다음에 타투스의 입에서는 살짝 더듬는 말이 나온다.
“어? 따, 땅? 땅 아래는…… 어, 그러니까…….”
“마석, 점검만 하지 않고 어디 갖다 썼나?”
파쿠란이 계속 더듬을 듯한 타투스의 낌새를 보며 느릿하게 묻는 소리로 끼어들고 있었다. 타투스는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이를 본 이자닌이 냉큼 탁자 위에 단검을 꽂아넣으며 묻는다.
“마석, 가져와 봐. 항상 보관 중이어야 하니까, 바로 꺼내올 수 있겠지?”
“그, 그게 그러니까…… 보, 보통 쓸 일이 없잖아. 하지만…… 가끔 마력을 방출시켜 조절도 해야 하고, 그러니까…… 미안해!”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면서 변명하던 타투스는 이자닌과 파쿠란이 스윽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노려보는 눈길에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사과했다.
투란은 그 광경을 보며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마석? 바람길이라면 홀시딘처럼 바람 타고 여행한다는 말이겠지? 그럼, 땅 아래는 대체 뭐지?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언더그라운드 서브웨이, 그 마법을 보통 땅 아래 여행길이라고 하지. 하지만 여러 가지로 귀찮고 골치 아프고 까다로운 마법이라 어지간한 준비 없이는 쓰지도 못하고 쓸 생각도 안 한다. 그 과정을 단축시키려고, 미리 마법술식을 각인해서 마력축적까지 완료해둔 마석(魔石)을 이용하지. 하지만 그렇게 준비해둔 마석을 오래 쓰지 않고 방치해두면 마력이 새나가면서 좋지 않은 현상을 일으키기도 쉬워.
‘호오? 그래서 방출해서 조절을……? 잠깐, 그래도 꺼내올 수는 있잖아?’
―흐흠, 망가뜨렸나 보지. 이 주변으로는 그런 형태의 마법을 간직한 것은 전혀 없는 듯하니까.
투란이 갸웃했고, 드라고니아는 추측했다.
그 사이에 이자닌과 파쿠란은 한숨을 길게 내쉬다가 타투스에게 묻는다.
“누가 갖고 있어?”
“돈 받고 빌려줬나?”
타투스가 움찔거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푹푹 찔린 사람처럼.
이자닌이 스윽 단검 자루에 손을 댈 때, 파쿠란이 혀를 차며 재촉한다.
“타투스, 지금 발뺌해서 뭐하게? 급하니까, 어서 어디 누구에게 맡겼는지 찾아올 수 있는지 말해.”
“차, 찾아올 수 있어! 아니, 부르면 바로 가져오기로 했다고!”
“불러.”
이자닌이 짧게 말했다.
하나 파쿠란은 갸웃하며 중얼거린다.
“부르면 가져와? 설마…… 우리 길드 마법사?”
투란은 바로 느꼈다.
여기서 ‘길드’가 헌터들의 길드가 아니라 도적들의 길드란 것을.
바로 일어던 타투스가 다시 찔끔한 표정으로 눈치를 봤다.
이자닌의 목소리가 조금 더 매섭게 울린다.
“얼른 가져오라고 해. 바로 연락할 수 있지? 직접 가지 않아도 말이야. 그러니까 막 빌려주고 그런 거지? 그렇지?”
“그, 그럼! 바로 연락할게!”
대답하면서 타투스는 더듬는 말투, 엉거주춤한 태도와 다르게 빨리 움직였다.
그렇게 타투스가 벽 한쪽을 채운 책장에서 조금 작은 책을 꺼냈고, 그 안에 접혀 꽂힌 종이를 꺼내 두 손으로 박박 문지르니…… 종이는 파란 불꽃과 함께 바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다음에 노려보는 이자닌을 향해, 한숨짓는 파쿠란을 향해 타투스가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 금방 와! 긴급 연락을 넣었으니까 금방 가져온다고! 장난치거나 위험한 실험을 한다고 가져간 게 아니야. 그저…… 어차피 방출할 마력이니까, 조금 써먹으려고 한 것뿐이라고. 잠깐만 기다리면 된다니까.”
“청소는 왜 안 했어?”
이자닌이 슬슬 단검 자루를 손끝으로 긁적거리면서 물었다.
더듬거리던 타투스의 말이 이번에는 아주 또렷해져서 대답이 나온다.
“거긴 뒷문이라고! 사람 안 다니는 뒷골목으로 터놓기만 한 거라고! 앞문, 멀쩡한 길 놔두고 왜 그리로 와서 사람을…… 아니, 딱히 큰소리치는 게 아니고…….”
점차 우렁차게 올라가던 타투스의 목소리가 노려보는 이자닌의 눈길에 살살 낮아지고 말았다. 결국 우물쭈물하면서 타투스가 침묵하며 시무룩해지는데…….
“무슨 실험을 하겠다고 하던가?”
파쿠란이 침묵이 싫다는 듯, 지루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타투스는 이자닌의 눈치를 보면서, 투란을 흘깃하면서 대답한다.
“방어구 제작이라고…… 마력으로 단련해서 더 튼튼하게 만든다던데. 요새 코발트 게이트에서 나오는 개머리 녀석들이 제법 사납게 물고 할퀸다고 말이야. 판금(板金) 방패도 찢어발기는 경우도 있다더라고. 덕분에 가벼운 가죽 갑옷으로는 버티지를 못한다고 말이지. 아무래도 숲에서 코볼트랑 게놀 사이에 결판이 난 것 같은 분위기라더군. 약한 쪽이 밀려나온 건지, 강한 놈들이 세력 넓히려고 나온 건지는 아직 애매한데…… 덕분에 숲 쪽으로 경계서는 녀석들이 엄청나게 예민해져 있다기도 하고…… 그런 소문이 잔뜩이지. 게다가 레드 드레이크를 봤다는 얘기가 맴돌기도 하는데…… 페브라 쪽에서 오던 캐러반이 레드 드레이크에게 털렸다는 소문도 있어. 이래저래 요새 스타폴 사방으로 많이 불안한 상태야. 그러니까 방어구 튼튼한 거 찾는 녀석들도 잔뜩 늘어났고, 가격도 조금 올라갔으니까. 이 기회에 활동비를 좀 보태자고 한 거지, 딴 뜻은 없어. 진짜야.”
중얼중얼, 어느새 길어진 이야기였다.
투란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오물과 쓰레기가 마구 엉킨 골목 쪽과 달리 정문 너머로는 정말 깨끗한 길이 있는 모양인데, 그만큼 오가는 이들이 많고 분주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분주한 느낌이 어쩌면 지금 나온 이야기처럼 스타폴을 향해 어떤 위기가 찾아와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지만…… 지나온 코발트 게이트에서 먼발치로 봤던 개머리 몬스터를 떠올리면 그냥 엄살 부리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질 뿐이었다.
어쨌든 할 말은 다 한 듯이 타투스가 다시 입을 다무는데, 그냥 두고 보기 싫다는 듯 이자닌이 심술궂게 말한다.
“손님한테 물 한 잔도 안 내줄 거냐? 손님이 기다리기 지루하게 놔둘 거야?”
“줄게, 준다고!”
살살 단검을 손끝으로 핥듯이 긁적대는 이자닌을 보며 타투스는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약병이 즐비한 한편을 뒤척이며 주전자를 꺼냈고, 책장 옆의 책상을 뒤져 잔을 몇 개 꺼내 탁자로 옮겼다.
약을 끓이기 위한 등잔이 주전자를 데우고, 주전자 안에 뭔가 수상한 약초와 물이 부어지는 광경을 보며 투란은 과연 따라준다고 마셔도 되는가 의심하는 표정부터 지을 수밖에 없었다.
파쿠란이 그런 투란의 구겨진 낯빛을 알아차린 듯 애매한 소리를 했다.
“독 안 탔을 거야…… 아마도.”
음료를 준비하던 타투스는 이 소리에 바로 격하게 반응한다.
“기껏 좋은 차를 준비하는데 뭔 독이야, 장난치지 마! 진짜라고 믿는 표정도 짓지 마, 이자닌! 거기 투란, 그런 괴상한 표정으로 흘겨보지 마! 진짜 왜들 그래! 내가 무슨 죽을죄라도 지었냐! 마석도 융통성 있게 활용하려고 한 것뿐이잖아! 아, 정말! 지원도 제대로 못 받고, 여기 진짜 먹고 살기도 힘든 곳이라고!”
어딘가 징징거리는 소리로 이어질 때, 파쿠란이 앞문을 보며 말한다.
“왔나 보군. 제법 빠른데?”
말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씩씩거리는 한 명이 튀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