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76)
Chapter 136. 페브라 왕도에서 Ⅰ
한밤중, 스타폴에 찾아온 야경(夜景)을 느끼면서 투란은 눈을 떴다.
작은 방이었지만 놓인 침대는 서넛, 둥글게 둘러쳐진 벽에서 접혀 있다가 펼쳐진 것들이었다. 그중 하나에서 몸을 일으키며 투란은 주변을 둘러봤다.
파쿠란이 장비를 점검하며 깨어 있었고, 이자닌은 아직 담요를 둘러만 채로 조용히 잠든 모양이었다.
조금 맹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투란이 불쑥 묻는다.
“출발할 때가 아직 멀었어요?”
타투스와 갈리안이 이러쿵저러쿵 말리는 소리를 했지만 이자닌은 완강했고 파쿠란은 별로 관심 없다는 태도로 무시했다. 어쩔 수 없이 타투스와 갈리안은 이자닌이 요구한바, 마석을 이용해서 파쿠란이 마법을 펼치기 좋은 시기와 장소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밤을 기다렸고, 타투스의 집 지하 깊은 곳에 마련된 장소가 준비될 때까지 잠들어 있었다. 이제 깨어났으니 적당히 마법의 여행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자닌은 자는 중이고 파쿠란은 장비 점검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나온 투란의 물음이었고, 이에 파쿠란이 이자닌을 흘깃하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거의 다 되었어. 이자닌도 조금 전에 깨었어. 일어나기 싫어서 저러는 거고.”
“아, 네…….”
투란은 갸웃하며 이자닌을 바라봤다.
침대 위에서 담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감은 꼴이 전혀 깨어나 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보면 그야말로 시체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다!
투란의 의문을 알아차린 듯, 파쿠란이 피식 웃으며 말을 보탠다.
“도적의 기술이지. 죽은 척하기, 들어본 적 없어?”
“그게 도적의 기술이었어요?”
맹하면서도 어이없어하면서 투란이 웃음과 함께 되물었다.
한데 파쿠란은 갑자기 정색하며 진지하게 대답한다.
“그럼! 당연히 도적의 전통적인 기술이지! 그걸로 온갖 감옥을 뚫고 몬스터를 속이고…….”
펄럭, 퍽.
“헛소리하지 마! 진짜라고 믿겠다!”
이자닌이 담요에서 팔을 내밀며 바로 베개를 던지는 채로 으르렁거렸다.
머리를 때리고 떨궈지는 베개를 손으로 받아내면서 파쿠란이 다시 살짝 웃음을 띤 표정으로 말한다.
“장난으로 떠드는 녀석들도 많지만, 있잖아. 실제로 그런 기술이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그거 너도 쓸 줄 아는 기술이면서…….”
“음? 진짜로 있어요?”
투란이 다시 흥미를 품으면서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아, 그만 좀 해라!”
버럭 외침과 함께 이자닌이 담요를 걷어차며 일어나 앉았다.
그와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선 타투스가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이자닌에게 묻는다.
“그만두는 거야? 잘 생각…….”
펄럭, 베개가 날아갔다.
베개의 목표가 된 타투스가 입을 다물었고, 파쿠란이 얼른 묻는다.
“준비 끝났어?”
타투스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들이대듯 나타난 갈리안이 대답한다.
“우리야 끝났지! 처음부터 모든 비품이 잘 준비되어 있었다고 했잖아.”
이 소리에 투란이 웃고 말았다.
그 모든 비품은 마석부터 시작해서, 평소 감춰둬야 했을 것들을 전부 꺼내다 어디다 쓰고 있었다. 그걸 한밤중까지 전부 되찾아와서 원래 자리에 갖다 놓아야 했던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나마 여행을 위한 마법을 쓰기 좋은 시간이 한밤중이라 시간을 번 셈이었고, 일행이 한밤중에 도착했으면 이자닌에게 정말 심하게 얻어맞을 뻔했다.
그러면서도 저리 큰소리치는 모습은 어쩐지 대단해 보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웃음이 저절로 새나오게 하는 태도잖은가.
“준비가 문제가 아니라고, 준비가! 이자닌, 파쿠란. 정말로 가야 되겠어? 다시 생각하면 안 되겠어?”
갈리안은 머뭇거리는 타투스의 등을 떠밀며 문턱을 넘는 채로 또 묻고 있었다.
이자닌이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한다.
“몇 번이나 똑같은 거 묻지 말라고! 당연히 참가해야 할 일이니까 가는 거라니까! 대체 몇 번을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해?”
갈리안은 혀를 찼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를 가는 소리로 말한다.
“이자닌, 다른 곳에서 하는 회합도 아니고 페브라 왕도에서 하겠다고 하는 거니까 말리는 거 아냐!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도 없이 벌써 세 번째다. 그놈들 속셈을 몰라서 그래? 우리가 괜히 말리냐? 아닌 거 알잖아! 대체 왜 고집을 부리는 거야? 그 이유나 좀 알자!”
조금 길어진 물음에 타투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파쿠란은 그저 이자닌을 보며 어찌 대답하는가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갸웃하면서 이자닌을 바라봤다.
낮에 듣자마자 말리던 이야기가 이제야 겨우 다음으로 넘어간 듯했다.
그나마 낮에는 마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비품을 딴 데 쓰고 있었던 것을 추궁당하다가 넘어가지 못한 탓이었다. 그러다가 비품을 다시 정비하고 준비를 마치고 나니, 갈리안이나 타투스는 보다 힘있게 이자닌에게 가지 말라 권하는 소리를 하는 셈이었다.
“아, 진짜…… 세 번째고 뭐고, 나 이번에 처음 참여한다고! 십오 년 동안 한 번도 참여하질 않았잖아. 그러니 이번에 참가해보겠다는데 왜 그래, 정말! 누가 죽으러 가? 다치러 가는 거 아니니까 이렇게 파쿠란도 함께 가고, 투란까지 고용했잖아!”
갈리안과 타투스가 파쿠란을 먼저 봤다.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뭐든 괜찮다는 파쿠란에게서 둘의 눈길은 투란에게로 스윽 옮겨갔다. 바로 투란이 파쿠란 흉내 내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데, 바로 갈리안의 불평 섞인 말이 터져나온다.
“고용할 거면 오러 윌더라든가, 믿을 수 있는 로그메이지를 골랐어야지! 얘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몬스터 헌터잖아! 몬스터 잡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웬 몬스터 헌터냔 말이야!”
타투스가 바로 이에 몇 마디를 보탠다.
“애송이처럼 보인다고 몬스터 헌터로서 능력이 없을 거라고 멋대로 짐작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 상대는 인간이라고, 인간. 몬스터를 척도로 삼다가 인간을 상대로 하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이자닌, 라비엔에 가기 전에 이미 겪을 만큼 겪지 않았어?”
투란은 둘이 하는 말에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아니라고 하는 듯한 저 이야기는 대체 뭔가? 투란으로서는 바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말이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자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파쿠란이 대답한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고…… 출발지로 안내해. 걱정 마, 내가 이자닌을 다치게 하려고 따라가는 게 아니잖아. 너네 생각처럼 투란도 허술하지 않으니까. 염려 말고, 출발지로 가자고.”
타투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침대 근처로 가서 삐딱하게 섰다. 갈리안은 문을 닫으면서 투덜거린다.
“가긴 어딜 가, 여기가 출발지인데.”
“여기가?”
파쿠란이 조금 의외란 듯 놀랐고, 이자닌은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타투스가 피식 그런 둘을 향해 조금 우쭐대며 말한다.
“모든 준비를 다 마쳐놓았다니까, 전혀 안 믿었구만. 뭐, 비품을 조금 활용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건 모든 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부릴 수 있는 여유였다고. 갈리안, 시작하자고.”
“잠깐, 빗장은 걸어둬야지.”
갈리안은 말과 함께 방문에 빗장을 걸었다.
그리고 동시에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방 전체를 감싸는 마법의 힘…… 갑작스럽게 발밑이 푹 꺼져서 까마득한 저 아래로 떨어지는 감각이었다.
―호오? 방이 통째로 이동하는데?
드라고니아가 바로 말했다.
‘아래로?’
투란이 두리번거리면서 무슨 일인가 구경한다는 태도와 함께 소리 없이 물었다.
―아, 일단은 아래다만…… 상당히 굴리고 있군. 방 안은 보호되고 있으니까 힘들지 않을 거다만…… 뭐든 이 방의 경계에 들러붙어 따라 움직이려 했다면 아주 심한 꼴을 겪었을 거다. 뭐, 소용돌이나 회오리에 휩쓸려 휘둘리면서 날려가는 경우일 테니까.
‘그래? 파쿠란도 모르는 모양이네?’
투란은 파쿠란이 낯을 찌푸리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모습을 보고 추측했다.
이런 추측을 확신시켜주듯 파쿠란이 바로 입을 연다.
“갈리안, 감각교란이냐?”
갈리안이 문에 등을 기댄 모습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당연하잖아. 안에 뭘 넣어둘 수 없으면 밖에다 붙이는 녀석들이 잔뜩이라고. 들러붙어서 뭘 캐내려는 녀석들에게 맛 좀 보여줘야지.”
“따라오지는 못하겠지?”
파쿠란이 잠시 손끝을 튕기는 시늉을 하다가 물었다.
갈리안의 고개가 저어졌다.
“무리지. 방을 이동수단으로 사용하지만, 수레가 아니라고. 땅을 파고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질량교환의 방법으로 자리를 옮기는 거니까. 지나온 궤적이라고 해봐야 그냥 꽉 막힌 땅속일 뿐이니까. 이런 거 추적할 수 있다면, 상상을 뛰어넘은 대마법사니까 포기하는 게 낫지.”
“그건…… 그렇긴 하지.”
파쿠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갈리안에게 동의했다.
투란은 이게 무슨 뜻인가 왕성하게 설명해달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만히 있던 이자닌이 투란의 반짝거리는 표정을 읽었다는 듯, 그다음에 복잡한 모든 이야기를 끊겠다는 듯이 목소리 높여 말한다.
“마법이야, 마법. 따지지 말라고. 그보다 언제까지 움직여? 이대로 왕도에 도착이라도 하는 거야? 우리랑 함께 가는 거야?”
바로 타투스부터 고개를 저었다.
“함께라니, 그럴 리가 없지! 이자닌, 우리는 일부러 따라갈 생각 따위 전혀 없다고! 호의는 말리는 것까지만이야. 말려서 듣지 않는데 애써 함께 가서 고난과 역경 속에 목숨이 오락가락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
갈리안이 혀를 차며 이 말을 잇는다.
“곧 도착해. 안전을 위해 꽤 깊은 곳을 이용하니까, 잠시만 참아. 왕도까지 이대로 가는 거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튼, 타투스의 말대로야. 굳이 그 녀석들이 수작에 어울려서 놀아줄 필요가 없어. 이번까지는 회합을 멋대로 정할 수 있겠지만, 같은 곳에서 네 번째 회합까지 주장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이자닌, 이번에도 저번처럼 무시하는 게 좋다고. 아니, 대체 왜 이번에는 꼭 가야 한다는 건데? 파쿠란, 시침 떼지 말고 좀 말려봐!”
“이자닌에게는 이자닌의 사정이 있는 거야. 너네는 너네 맡은 일이나 잘하고 있으라고.”
파쿠란은 입을 다무는 이자닌을 대신해서 타투스와 갈리안에게 대답했다.
투란에게는 도무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알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이자닌이 참가하겠다는 회합, 도적 길드의 회합이 대체 뭐길래 둘은 말리고 있는 중인가? 파쿠란은 왜 말리지 않는가? 이자닌은 왜 고집스럽게 참가하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거기 참가하면 왜 목숨이 걸린 고난과 역경을 겪는다는 것인가?
‘흠, 정말로 금전 백 닢짜리 의뢰인가.’
투란이 갸웃할 때, 드라고니아가 불쑥 한마디 한다.
―로열클래스라 백 닢을 매긴 거겠지.
‘음? 흐음…… 일리가 있네.’
―산돌프의 열 닢도 과한 거라며. 저 블랙 메이지가 널 높이 평가한 까닭은 산돌프랑은 또 전혀 다르고 평가의 근거는 로열클래스란 것 말고는 없잖아. 그게 대체 어떻게 널 써먹겠다는 뜻인가는 모르겠다만.
‘흐흠, 도착해보면 알겠지. 근데, 멈췄네?’
―흠? 바닥이 열린다.
투란이 느끼고 드라고니아가 지적한 대로 방 한복판이 꺼져 들어가면서 나선형의 계단이 드러났다.
“다 왔네, 내려가자.”
타투스가 바로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이자닌이 그 뒤를 따르고 파쿠란이 이어 내려갔다.
투란이 갈리안을 보니…….
“내려가. 뒷정리하면서 내려가야 하니까, 내가 마지막이야.”
갈리안이 손짓하며 권하고 있었다.
투란은 얼른 파쿠란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문득 사악거리는 소리에 뒤돌아봤고, 갈리안이 따라 내려오면서 계단을 지우듯이 메우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철저하군, 누군가 방의 움직임을 따라왔어도 계단을 찾아 따라 들어오지는 못하게 하는 거야.
‘그래? 대체 뭐가 있는데?’
궁금해하면서 투란이 계단 끝에 도달하니, 십여 미터의 통로가 아래로 비스듬히 비탈길처럼 뚫려 있었다. 이 또한 맨 뒤를 따라오는 갈리안에 의해 메워졌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곳에서 투란은 강철로 만든 듯한 거대한 상자를 봤다.
강철의 방이라고 해야겠지만, 덩그러니 놓인 꼴이 아무리 커도 그저 상자인 모양의 한편에는 문이 달려 있었다. 그 거대한 상자의 모퉁이, 모서리가 부드럽게 곡선을 이룬 것을 보니, 분명히 누군가 정성을 들여 만든 듯했다.
타투스의 말은 그 정체를 더듬어보려는 투란의 귓가에 바로 꽂힌다.
“자, 들어가라고. 대마도사의 유물, 지저탄환차(地底彈丸車)가 몇 시간 안에 페브라의 왕도로 데려다줄 테니까.”
“뭔 탄환이요?”
투란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탄환이란 보통 슬링샷에 걸어 쏘는 쇳덩이 구슬이었다.
거기에 마차 흉내 내듯이 ‘차’라는 한 마디가 붙어 있기는 했지만…… 이 상자의 정체를 전혀 짐작을 할 수가 없고 불안하고 불길한 기분만 잔뜩 피어나고 있으니!
―헐, 이거 쓰는 놈들이 아직 있었나?
게다가 드라고니아도 매우 놀라고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