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77)
조금 넓어 보이는, 사실은 꽤 크고 넓은 지하(地下)의 공동(空洞)에 덜렁 던져진 궤짝처럼 놓인 강철의 육면체(六面體)…… 은근히 부드러운 모서리의 모양으로 인해 타원형태를 어떻게든 두들겨서 육면을 지닌 상자형으로 만들었다고 착각할 만한 강철 모형에는 분명히 사람이 들락거릴 수 있는 문이 달려 있었다. 문짝이 너무 두꺼워서 폭이 넓어도 어딘가 답답하게 좁은 구멍을 연상케 하는 문이었다.
한데, 이 강철 상자에…… 대강 높이 3미터, 길이 8미터, 폭은 4, 5미터는 되어 보이니 안쪽은 그럭저럭 큰 방이 될 듯싶은 이 상자에 왜 문이 달려 있는가? 설마 정말로 강철로 집을 짓다가 덜렁 방 하나만 갖춘 꼴이 되었는가? 아니면 통으로 된 강철을 후벼내서 안을 비우고 방 모양을 만든 것인가?
그런데 대체 저것이 왜 탄환 어쩌고 하는 이름을 갖고 있는가?
―지저성(地底城)의 파편(破片)이란 거야. 고대 악마종과의 전쟁시대에 잠깐 사용되었던 거다. 응? 아, 맞아. 정말로 대마법사의 유물이지…… 그래, 저것도 카엘의 이적이라 불리는 유물 중의 한 가지라 할 수 있겠지. 저 경우에는 상식의 한계를 파괴하는 개념의 물품이지만 말이야. 맞아, 대마도사의 몽상이 빚어낸 결과물이지. 왜 저런 걸 만들었는가, 왜 구상했는가…… 꿈에서 봤고, 능력이 되니까…… 그래서 만들었다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연이어 떠오르는 투란의 의문에 대해서 드라고니아가 되는대로 바로 답하듯이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결론은 꽤 간단하게 맺어진 셈이었다.
저 괴상한 상자는 대마도사 카엘, 그의 기괴한 망상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 그러니 얼마든지 괴이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투란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치고…… 대체 저게 땅 아래 여행이랑 뭔 상관이 있는 거야?’
―생긴 것 보고 모르겠냐?
‘설마?’
―문짝까지 달렸잖아. 당연히 타는 것이고…… 이름 그대로 슬링샷에서 투사(投射)되는 쇠나 돌의 탄환(彈丸)처럼 쏴지는 거야. 냉정하게 말하면 땅속이란 점만 빼면 상아탑에서 사용하는 바람의 여로(旅路)랑 똑같다고 해야겠지.
‘어디가 똑같아! 어디가!’
투란은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슬쩍 얼굴 한구석에 땀이 맺히고 가슴속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타투스, 갈리안은 여행의 목적이 불안해서 말린 것인가? 아니면 이 기괴한 지저탄환차란 것이 불안한 것이라 말린 것인가!
‘자, 잠깐! 이 작자들 여기 마법에 쓰이는 비품을 빼다 딴 데 돌려쓰고 있었다고 했잖아! 그러다가 망가진 걸 도로 갖다 꽂은 거면!’
새삼스러운 불안이 투란의 눈가를 가늘게 떨게 했다.
상아탑의 마스터 홀시딘을 통해 겪은 이동 마법은 허공(虛空)을 배경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사실은 화살처럼 목적지를 향해 쏘아지는 마법이었다. 안전하게 내려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날아가는 동안에 계속 두근거리게 하는 불안한 생각이기는 한데, 최소한 날아가는 동안에 어디 들이박아 잘못된다는 상상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땅속에서 똑같은 짓을 하려 한다면 과연……?
―그래서 강철로 된 탄환 안에 타라는 거잖아. 어지간한 충돌에도 버틸 수 있도록 처리된 강철의 보호구라고.
‘야, 이 미친!’
이렇게 번개처럼 드라고니아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투란의 눈길은 가만히 타투스에게 꽂힌 채였다. 조금 전에 소리 내서 물었던 ‘뭔 탄환’이란 말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반짝거리는 것처럼.
타투스는 그 눈길을 받으면서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느릿하게, 머뭇거리는 태도로 대답을 꺼내고 있었다.
“그…… 탄환이랑 비슷하다는 말이지, 실제로 탄환이란 말이 아냐. 설마 사람을 시위에 걸어서 쏘겠어? 하하핫, 그냥 저기 타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면 나머지는 마법이 끝내 줄 거야.”
“몇 명 죽었어요? 몇 명 끝장나서 죽었어요?”
투란이 살짝 덜덜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마버이고 뭐고 쇳덩이에 사람을 채워넣고 쏴대면 그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라 해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끝날 리는 없잖은가! 상식이 있다면 짐승이라도 알아차릴 일이잖은가!
타투스는 움찔했고, 갈리안이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끼어들어 대답한다.
“죽긴 누가 죽어! 안 죽어! 그런 이상하고 불안한 거 아냐! 가는 동안에는 안전하다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마법도구인데 죽네 어쩌네 하냐! 내 말 못 믿어? 쳇, 파쿠란! 얘한테 뭐라 말 좀 해줘! 괜히 오해하잖아!”
“이십 년 동안 저걸 타고 죽은 이는 없다.”
저쪽 벽에서 마석을 꺼내 뭔가 하고 있던 파쿠란은 잠깐 투란을 흘깃하면서, 나름대로 진지한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물론 투란은 파쿠란의 눈가에 살짝 웃음이 뜨는 꼴을 봤고, 데굴거리며 굴러가는 파쿠란의 눈길이 어디를 훑는가도 바로 간파했다!
지저탄환차, 듣기만 해도 어딘가 우렁찬 그 쇳덩이의 한 귀퉁이에 낀 먼지, 땅속이란 점을 우습게 아는 듯한 거미줄…… 여기 몰래 방치되었다고는 하지만 땅속의 벌레와 먼지, 얼룩이 세월을 통해 쌓아온 흔적이 명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가를!
“이거, 이렇게 여기 몇 년이나 놔뒀는데요? 아니, 이십 년 동안 몇 명이나 탔…….”
투란은 물음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파쿠란은 히죽 웃는데, 갈리안과 타투스는 헛기침과 함께 눈길을 저 멀리로 싹 돌리고 있었으니!
“저기요? 딴 데 보지 말고 대답을 해야잖아요옷!”
“이십 년 동안 아무도 안 탔어. 이거 여기서 발굴된 지 칠팔십 년 된 거지만 이걸 이용한 사람은…… 이용한 적은 몇 번 없어. 영광으로 알고 타라고!”
날카로운 이자닌의 목소리가 투란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이 어처구니없어하면서 바로 이자닌에게 묻는다.
“영광이라니, 그 영광을 누린 몇 명은 멀쩡했는가를 얘기해봐요! 대체 몇십 년 동안 왜 놔뒀는지도!”
“왕이 되었지. 이걸 찾아내고 이용했던 사람은 말이야. 그런 걸 이용하는 거니 얼마나 영광인지 알겠지?”
이자닌은 도도하고 당당하게 선언하듯 투란을 향해 내려다보는 눈길로 대답했다.
너무 당당해서…… 한계를 넘어선 듯한 그 뻔뻔한 태도에 투란은 잠시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파쿠란을, 타투스와 갈리안을 둘러봤다.
한데 이자닌의 말에 대해 타투스와 갈리안이 짓는 표정이 파쿠란과는 다르다?
파쿠란이 끄덕거리며 당연하다고 하는 모습인 데 반해 둘은 조금…… 많이 구겨진 표정으로 혀를 차며 한숨을 쉬는 것이 이자닌의 말에 완벽하게 동의할 수 없다고, 항의하고 싶다는 듯한 표정 아닌가!
“이자닌, 공갈치는 거 아니죠?”
때문에 투란은 한번 더 진지하게 물었다.
“야, 뭔 공갈이야 공갈은! 타라고, 얼른! 내가 길 가다 죽고 싶어 하는 미친년으로 보여? 닥치고 타! 얼른 타!”
“거짓말 아니라네, 투란. 일단 타고……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하자고. 가는 길에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파쿠란도 이렇게 보태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어쩔 수 없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는 타투스와 갈리안을 쏘아보는 채로 강철의 상자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끼익, 달칵.
커다란 강철 상자의 구멍이 메워졌다.
그 문이 닫힌 것을 보며 갈리안은 파쿠란이 마석을 꽂아 넣고 손보던 벽에 다가섰고, 손을 내밀어 마석을 눌렀다.
벽 위에 희미한 빛의 무늬가 생겨났다.
그 무늬를 향해 갈리안이 속삭인다.
“허가한다, 지저특급(地底特急).”
희미한 무늬가 선명한 빛을 형성했다.
강철 상자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부드러운 모서리가 더욱 휘면서 상자의 모양이 눕혀진 알의 형체에 가까워졌다.
소리 없이 강철의 알이 떠오르며 먼지와 티끌, 거미줄이 털려 나갔다.
지저 공동의 한편이 통으로 무너질 듯한 균열을 일으켰고, 시원하게 뚫렸다.
벽을 열어버린 균열의 조각은 흘러내리는 대신에 어두운 지하 저편으로 사라진 듯했다.
가는 떨림, 지그시 피어나는 진동의 음향이 강철의 알을 휘감았다.
알의 아래편에 한 줄의 두꺼운 금이 파이면서 열린 벽 너머로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그 금을 지표(指標)로 여긴 듯, 강철의 알이 열린 벽을 넘어 어두운 지하로 흐르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의 순간을 느꼈다 싶은 찰나, 타투스와 갈리안은 강철의 알이 사라지고 비어버린 공동을 깨달아야 했다.
벽 너머로 강철의 알이 쏘아진 다음이었고, 이제 공동에는 둘만 남은 상황이었다.
타투스가 중얼거린다.
“진짜 빠르네…….”
갈리안도 고개를 끄덕인다.
“듣던 것보다 더하군. 몇 시간 안에 페브라 왕도에 도착하겠어. 도적왕의 전설이 진짜였네.”
사라락, 쿠르릉.
뚫렸던 벽이 다시 메워졌다.
흩어져 나갔던 균열의 조각이 돌아오며 다시 벽을 이루는 광경이었다.
흠칫하며 갈리안과 타투스는 이 광경을 봤고, 잠시 침묵했다.
깨끗하게 복구되는 벽, 강철의 상자가 있던 흔적조차도 울퉁불퉁한 파동과 함께 지워진 상황…….
생각에 잠겼던 타투스가 묻는다.
“정말 왕이 되었나? 이거 탔었다는 사람…….”
갈리안이 쓴웃음과 함께 뚱한 말투로 대답한다.
“반역왕 이야기잖아.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도적 길드만이 아는 전설. 왕좌조차도 도적질했다는…… 고대 왕가의 마법을 도적왕의 전설로 깨뜨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자기 혈통을 찾기 위해 도적 길드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고, 이걸 찾아주기도 했지. 뭐야, 몰랐냐?”
이야기하다가 의아해하는 갈라인을 향해 타투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길드를 찾아와 온갖 행패를 부렸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길드가 잃어버린 유물도 많이 찾아내기도 했다고도 들었고…… 근데 이 지저탄환차를 타봤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어. 그냥 그뿐이야.”
“그렇지, 반역왕의 행적을 전부 다 아는 거는 오직 함께했던 몬스터 로드와 대마법사뿐이라잖아. 나머지는 다들 여기 한 조각, 저기 한 조각 알 뿐이고. 야, 가자. 여기 슬슬 어두워지겠다.”
갈리안이 서서히 사라지는 벽의 광채를 보고, 건너왔던 통로에 걸렸던 횃불이 잦아드는 광경을 확인하며 말하고 있었다. 타투스 역시 딱히 반대할 일은 없었기에 얼른 되돌아가는 걸음을 서둘렀다.
이자닌의 여행이 어찌 끝나든지, 이제는 둘이 간섭할 영역 밖이라고 홀랑 잊은 듯이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어? 우아?”
투란이 입으로 소리 냈다.
그리고 바로 갸웃하며 파쿠란을 바라봤다.
이자닌이 쯧쯧 하며 투란에게 핀잔을 준다.
“나오지도 않는 비명을 흉내 내냐? 하지 마, 재미없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투란은 제대로 묻는 말을 꺼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이거…….”
“움직인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고? 꽤 안정적이라서 그냥 방에 있는 거랑 별 차이가 없다고?”
파쿠란은 싱긋 웃으면서 묻는 것처럼, 투란이 할 말을 미리 하듯 말했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였지만, 고개는 끄덕거렸다.
투란으로서는 강철 상자의 외곽이 어찌 변했는가에 대해서는 따질 수가 없었다. 안에 탄 채로 밖의 광경을 간파하고 있다는 일을 들킬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파쿠란이 말한 부분은 충분히 물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묻기 전에 파쿠란이 먼저 전부 들통 내듯이 말해서 조금 맥이 빠지기는 했어도.
파쿠란이 말을 잇는다, 거의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말투로.
“강체(剛體)의 일체화 가속현상이라고 하던가? 쇠에 깃털을 붙여놓고 가속하면 깃털이 나부끼다가 떨어지지만, 쇠로 된 통 속에 넣고 가속하면 깃털에 전혀 손상이 가지 않는 현상을 말할 거야, 아마도…… 간단히 말하자면 아주 빠른 마차에 타고 있다면, 마차 안에 있는 동안에는 머리카락이 나부끼지 않는 그런 거, 이 정도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어?”
“뭔 말인가 어렴풋이 알겠어요. 그건 그렇다 치고…… 이거 타고 왕 된 사람이 정말 있는 거예요?”
복잡한 이치에 대해서 몰라라 넘기고 쉬운 얘기를 원한다는 듯이 투란이 물었다.
파쿠란은 쓴웃음을 짓기는 했지만 대답은 머뭇거림 없이 바로 해준다.
“반역왕, 에테온의 패왕…… 그가 아직 왕가의 혈통을 깨우지 못했을 때, 이 지저특급, 지저탄환차를 이용했었다더군. 아니, 그가 찾아내지 않았다면 도적 길드는 아직도 이게 어디다 쓰이는 건지 모르고 있었을 테니 이용하는 방법을 다시 찾아낸 것이 바로 반역왕이라 해야겠군. 아, 물론 마법을 복원하고 실제로 작업한 사람은 함께 여행했던 대마법사, 당시에는 아직 에테온의 대마법사라 불리지는 못한 마법사 슐테그였지만.”
“에테온의 패왕이 깨운 마도구라고요? 이게? 괴물왕자님 키린의 아버지가 찾아낸 거라고요?”
잠시 멍하던 투란이 겨우 입을 열어 묻고 있었다.
이자닌이 피식 웃으며 답한다.
“일단은 그렇다는 거지.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게 뭐야.”
“어, 아…… 음…… 우하핫.”
투란은 멍한 소리를 내다가 웃고 말았다.
실로 이상한 기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