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8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78)
반역의 패왕, 키린의 아버지.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이용했다는 마도구라니, 설마 여기서 키린과 이어진 듯한 마도구를 자신이 만날 줄이야!
투란은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헛소리처럼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게 진짜인가, 아니면 그냥 그런 전설의 허풍에 속는 중인가? 이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한다면 믿기는 할 것인가?
―키린을 만났다고 하는 시점에서 넌 대책 없는 허풍쟁이로 찍힐걸.
드라고니아가 차갑게 짚어줬다.
‘알아.’
투란도 바로 인정했다.
직접 만났고 이런저런 것을 잔뜩 배웠지만, 사실 다시 돌아봐도 그게 진짜 키린이었다고 투란은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키린의 이름만 빌린 착하디착한 누군가라고 하는 편이 훨씬 상식적이니까.
제아무리 기묘한 마법이 날뛰고 몬스터가 설쳐댄다 한들, 오십여 년 전에 사라진 전설적인 괴물왕자님과 직접 만났어요 하는 소리는 그냥 미친놈의 헛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투란은 조금 더 상식적인 호기심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하를 미친 듯이 쏘아져 나가는 이 마도구에 대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광경, 거대한 알의 형태로 바뀐 강철의 상자 안은 밝았다. 딱히 횃불처럼 반짝이는 뭔가를 걸어둔 때문이 아니었다. 바닥이나 벽에 살짝 긁힌 흔적이 난 곳에는 빛이 없지만, 흠 없이 깨끗한 부분은 빛이 있었다. 마치 먼 곳에서 어두운 곳을 밝히려고 불빛을 비추는 것처럼, 상하좌우(上下左右) 전후(前後)의 6면이 모두 빛을 내고 있었다. 너무 밝지도 않았고, 너무 여리지도 않게 상자 안을 밝히는 광량(光量)은 아주 적절하게 조절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바깥쪽, 강철의 외각(外殼)을 겨냥해 추적하는 프로브에 의해 펼쳐진 지하의 풍경은 시커먼 어둠이 가득했다. 강철의 알이 질주하는 궤적조차도 밝은 부분이 전혀 없었고 시커먼 쇳덩이의 외형은 그 어둠의 일부였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가야 할 방향을 확정한 채로 거대한 마도구는 질주하는 중이다.
짙은 어둠, 밝은 알의 안쪽과 완벽하게 대조되는 그 풍경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완전히 감추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투란은 파쿠란을, 이자닌을 보며 살짝 물어야 했다.
“얼마나 걸리는 거예요? 그렇게 누워 있어도 되는 거예요?”
바닥에 편히 누워 데굴거리는 이자닌이 ‘어?’ 하며 파쿠란을 봤고, 파쿠란은 느긋하고 편안하게 앉은 채로 대답한다.
“몇 시간 걸려. 빠르긴 하지만, 번쩍하는 순간에 싹 이동하는 게 아니잖아.”
“그런 마법이 있기는 해요?”
매우 의심스럽다는 말투로 작은 한숨과 함께 투란은 중얼거렸다.
투란이 겪어본 바로는 상아탑의 마스터 홀시딘도 꽤 오래 공중을 날았으니까.
드라고니아도 그딴 마법에 대해서는 꿈 깨라는 대꾸로 비웃음을 실컷 토해낼 뿐이었으니까.
한데 파쿠란이 빙긋 웃더니,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있지. 아무나 못 쓰고 언제 어디서나 못 쓰니까 없는 취급을 할 뿐이야. 난이도가 꽤 높은 마법이란 점도 있고 말이지.”
“헐?”
투란은 눈을 깜박이며 놀라워했다.
어째 이 얘기가 드라고니아가 했던 거랑 너무 다르잖은가!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는 말투로 소리 없이 말한다.
―손가락 튕겨서 기적을 발휘하는 대마도사 정도 돼야 쓸 수 있는 마법이란 얘기야. 누구나 쉽게 챙겨 쓸 수 있는 마법이라고 생각했냐?
‘블랙 메이지…… 흑마법이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는 아닐까?’
―없어. 아주 특별한 아티팩트라도 있으면 모를까. 홀시딘이 어쩌는가 봤잖아, 게다가 이 지저탄환차를 보고도 모르겠냐? 거리를 단축하는 이동마법은 아주 희귀해.
‘흠…… 이 탄환차가 그런 마법만큼이나 희귀한 거 아냐?’
―그렇기도 하군. 어쨌든 그저 편리할 거란 생각으로 그런 마법에 관심 두지는 말아라. 쓸데없는 호기심은 위험만 부를 뿐이니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있기는 한데, 쉽지 않으니까 아예 없는 것으로 시침 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일이 있었으니, 투란의 앞에는 블랙 메이지 파쿠란이 매우 심심할 시간을 마법 얘기로 때워보자고 눈을 반짝이고 있다는 점!
“파쿠란는 그런 마법 쓸 수 있어요?”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가 냉큼 투란이 던지는 물음에 파쿠란은 웃었다. 그 웃는 틈을 타서 이자닌이 말한다.
“쓸 수 있으면 이렇게 가겠어? 그런 마법 쓸 수 있는데 이렇게 가는 거면, 나중에 내가 뒤통수에 칼을 박아줄 거야!”
“쓸 수 없다, 분명히 말했어. 그러니 나중에 멋대로 의심스럽다고 칼 꽂는 짓은 하지 마라, 제발!”
파쿠란이 웃음을 한숨으로 바꿔 길게 내쉬고 말했다.
투란은 어이없어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자닌이 진심으로 한 말이라면, 파쿠란으로서는 알아도 모른다 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러면 몰라서, 할 수 없어서 저러는 건지 이자닌의 칼을 피하겠다 저러는 건지 알 수가 없잖은가!
이자닌은 곧바로 파쿠란의 입을 막는 소리를 한 셈이었다.
투란으로서는 어처구니없어 한소리 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찔러요?”
파쿠란은 바로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한다.
“어.”
이자닌이 누운 채로 뒹구는 모습으로 코웃음을 치며 말을 보탠다.
“친하다고 허풍 떠는 마법사를 그냥 두면 안 돼! 사람 우습게 여기고 뭔 짓을 할지 모를 종자들이거든, 마법사란 종자가 원래 다 그래! 그러니까 찌른다고 했으면 틈내서 진짜로 찔러줘야지. 아, 그렇다고 내가 파쿠란을 죽이겠다는 말은 아냐. 파쿠란은…… 칼에 찔려도 안 죽어. 그러니까 누가 찔러 죽인다고 하면…… 파쿠란 걱정은 하지 말고, 나를 지켜. 알았지?”
“진심으로 하는 말인 거죠?”
투란이 눈을 깜박이다가 파쿠란에게 물었다.
이자닌의 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했으니 아예 파쿠란에게 물을 수밖에 없으므로.
쓴웃음과 함께 파쿠란이 다시 한번 더 포기했다는 표정을 짙게 얼굴에 떠올리며 느릿느릿 대답을 한다.
“그래…… 누군가 우리를 해치려 한다면, 그게 칼이나 몽둥이를 기반으로 한 위해(危害)라면 나는 놔두고 이자닌을 지켜. 응,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말로는 안심할 수가 없으려나…… 어쩔 수 없군, 그럼 간단히 보여줄게.”
투란이 연이어 ‘뭔 소리이신가, 의심만 늘어요!’라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니 파쿠란은 아예 칼을 빼 들고 있었다. 앉은 채로 발목만 더듬어 빼낸 칼인데 날 길이가 1미터가량 된다는 점에서 투란은 흠칫하는데…….
“잘 봐.”
파쿠란은 담담한 한마디와 함께 자기 배를 들춰 맨살을 드러내더니 칼날로 주욱 그어버리고 있었다.
한데 괄괄 피가 터지고 창자가 새나와야 할 광경은 없었다.
―흠? 배틀메이지의 비술(祕術)이로군.
드라고니아가 살짝 심드렁하니 말했고, 투란은 그 의미를 몰랐다.
생각하는 대신에 투란은 파쿠란의 배가 산뜻하게 갈라졌다가 깔끔하게 다시 제자리를 찾는 광경만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치유가 아냐?’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파쿠란의 배가 갈라진 곳은 상처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칼날이 스쳐갈 자리를 비워버린 것처럼 잠시 벌렸을 뿐이었다.
칼날이 지난 다음에는 당연히 제자리를 찾았을 뿐이고!
“이게 무슨……?”
파쿠란을 보며 투란은 말끝을 흐리며 잔뜩 의아해하는 눈길을 보냈다.
파쿠란이 그런 투란을 향해 빙긋 웃는데, 그 눈빛이 꽤 강렬한 것이 수상했다. 그 수상스러운 눈빛에 투란이 부담을 느끼는 순간, 파쿠란이 말한다.
“간파했군. 이건 치유 마법이 아니란 걸 말이야. 그래, 이건 전투 마법사가 다루는 비전마법 중의 한 가지야. 이뮤니티(Imunity), 무효(無效)의 마법이라고 하지. 특정한 상황, 상태를 일으키는 어떤 작용이나 물체의 효과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 칼날에 의해 생겨날 자상(刺傷)을 몸이 아예 거부하는 셈이지.”
“찢어졌다가 아무는 거랑 별 차이가 없잖아요?”
투란이 삐죽거리는 입술로 물었다.
순수하게, 마법이란 그냥 들어도 너무 복잡해서 뭔 말인가 전혀 모르겠다는 것처럼!
바로 파쿠란이 껄껄 웃었다.
“그렇지? 맞아. 보기에는 딱 그래. 하지만 치유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어. 칼날에 독이 발린 경우라든가, 마법에 의해 더 날카로워졌다든가, 베이고 난 다음에 이상한 효과를 남기는…… 그런 특별한 검에 베였을 때에 치유와 차이가 나지. 치유는 그렇게 생긴 상처, 중독을 이겨내고 회복해야 하지. 때문에 치유의 마법을 압도하는 중독이나 중상을 당하게 되면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이 마법은 칼날에 의해 아예 상처를 입지 않아. 즉, 칼날이 어떤 효과를 남기려 해도 남지 않는 거야. 알겠어?”
“헐!”
눈을 깜박이다가 투란이 놀란 소리를 냈다.
이자닌이 심심한 듯이 뒹굴고 있다가 혀를 차며 말을 보탠다.
“그러니까 날붙이로 누가 파쿠란에게 덤비면 그냥 구경이나 하라고. 마법의 검이든 독 바른 검이든, 파쿠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으니까. 덤으로 그거 한 가지가 아냐. 파쿠란은…… 블랙 메이지이기 이전에 배틀메이지라고. 웬만한 싸움에서는 지는 일 없어. 알았지?”
“헐.”
이번에는 이자닌을 향해 눈을 조금 가늘게 하며, 너무 뻔뻔한 말이 아니냐고 투덜거리듯이 투란이 소리 냈다.
이에 이자닌이 뒹굴기를 멈추고 엎드린 자세로 살짝 고개를 쳐들었다.
“딱 한마디로 별말을 다 하네? 재주 좋네, 투란. 세게 맞을 때도 그러나 한번 때려봐도 돼?”
“안 돼요!”
투란은 스윽 강철의 실내를 둘러보는 채로 딱 잘라서 대꾸했다.
피할 곳도 없고 따돌릴 곳도 없는 곳에서 절대로 귀찮은 짓을 하고 싶지 않다는 완강한 대답이었다.
이자닌은 쳇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을 바닥에 댄 채로 웅얼거린다.
“심심해…… 설마 이렇게 대책 없이 감금된 채로 뒹굴고 있어야 하는 줄은 몰랐어! 이럴 거면 그냥 스타폴을 구경하다가 와서 잠이나 잘걸! 왜 미리 자두라고 한 거냐고! 아으! 심심하잖아, 어쩔 거야 파쿠란!”
“푹 자고 일어날 정도로 긴 시간은 아니야. 이대로면 무사히 도착하겠지만, 만약의 경우도 대비해야지. 이자닌, 여기는 춤추는 산맥이다. 어떤 마법의 여행이라도 위험요소는 항상 넘쳐나. 특히나 이 땅속 여행은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고.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해.”
“허얼! 그런 위험한 거였어요?”
투란이 바로 외쳤다.
파쿠란은 방긋 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 대답한다.
“만약의 경우란 거야. 그런 일 없기를 바라고, 아마 없겠지만. 진짜 위험했다면 이렇게 하질 않지.”
“아, 네…….”
투란은 적당히 대꾸했다.
이러는 사이에 드라고니아가 키득거리는 속삭임을 투란에게 쏟아내는 중이었다.
―보이냐? 프로브가 어둠을 꿰뚫고 보는 광경, 느껴지나? 웜의 영토를 지나고 있다. 이 땅속에서 기어나오지 않는 녀석인 모양인데, 지저성의 파편…… 이 탄환차에는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야. 이대로 녀석에게 계속 포착되다가는 저게 목적지까지 따라올 수도 있어 보인다만…….
투란은 텅 빈 것처럼 넓게 펼쳐진 지하에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는 웜의 형상을 느낄 수 있었다. 강철의 지저탄환차가 저 웜의 입에 걸리면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로 보일 듯했다. 그런 거대한 웜이 뭔가 자신의 영역을 스쳐가는 것을 느끼고 꾸물거리고 있었다. 조금 더 그 관심을 끌면 정말로 따라올 듯하다!
과연 블랙 메이지는 이런 상황을 알고는 있을까?
복잡한 것을 마음 한편으로 다 밀어넣으면서 투란이 불쑥 생각났다는 듯이 파쿠란에게 묻는 소리를 던진다.
“만약…… 땅속의 몬스터가 우리가 지나가는 걸 보고 신기해서 따라오면 어떻게 해요? 땅속에는 단단하면서 이상하고 커다란 놈이 많다던데……. 우린 아예 밖이 보이질 않잖아요?”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돼.”
파쿠란의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확실했다.
투란에게는 다소 어이없는 말이었다.
조금 전에 만약이 어쩌고 하지 않았던가, 파쿠란 자기 입으로!
파쿠란은 투란이 짓는 미심쩍은 표정을 질문으로 여긴 듯, 바로 설명한다.
“이 지저탄환차는 몬스터나 마수에 대응할 수 있어. 대마법사가 남긴 유물이라 완전히 그 내막을 간파하지는 못했지만, 그 부분은 에테온의 궁정마도사 슐테그가 확실하게 파악했지.”
‘……라는데?’
눈만 깜박이는 채로 투란은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되물었다.
드라고니아가 잠깐 침묵하다가 놀란 말투로 대답한다.
―허, 정말이었어. 웜이 이쪽을 제대로 감지하는 순간에 환각(幻覺)을 걸었다. 웜이 움직이는 쪽이 완전히 반대 방향…… 이 탄환차의 궤도를 방해하지 못하는 쪽이다. 대단하군, 과연 카엘의 이적인가.
‘이거 만든 마법사가 정말 대마도사 카엘이기는 하냐?’
문득 의아함에 투란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