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8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79)
드라고니아가 씁쓸하게 대꾸했다.
―지저성 같은 괴팍한 것을 상상해내는 존재는 악마종이 아니면 대마도사뿐이야. 게다가…… 웜의 감각을 혼란시키는 저 환각마법은 분명히 대마도사 카엘의 마법이 분명해. 그게 이 탄환차에 새겨져 있다, 이게 카엘의 이적인 증거인 셈이지.
‘그래? 으흠…….’
투란은 맹한 표정인 채로, 정신을 환한 벽 너머의 어둠을 향해 집중했다.
외부에서 움직이던 프로브가 투란의 의지에 따라 정지했고, 저편에서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트는 웜을 관측했다.
―왜?
그냥 움직이는 채로 관측하지 않고 굳이 지저탄환차를 따르던 프로브를 멈춘 까닭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의아함을 드러냈다.
‘땅속에 저런 게 있어. 저게 위로 치솟기만 해도 큰일이잖아. 그냥 지나갈 일이냐, 아니잖아.’
투란은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드라고니아가 알았다는 듯, 하지만 곧 쓴웃음 짓는 낌새와 함께 말한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웜은 웬만해서는 땅속 깊이 파고들지, 위로 솟구쳐 올라오지 않아. 특히나 춤추는 산맥의 지하를 누비는 웜은 지상에 관심 갖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그야말로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지.
‘그거 설마 있었다는 얘기?’
―에테온과 바로크 사이, 두 왕국의 국경을 관통한 거대 웜이 있었지. 그 웜이 치솟으면서 지형을 크게 바꿨고, 그 바뀐 지형이 크랙이라 불린다던가? 들어본 적 없어?
‘마경(魔境) 크랙……? 엄청난 마수가 몬스터를 찢어먹는다는 곳이라는 말은 들었지. 보통은 먹잇감이 되기 쉬운 마수가 몬스터를 압도하는 곳이 몇 곳 있다면서 말이야. 근데 그게 웜이 날뛴 곳이라고?’
―그래, 그 사건 이후로 고대왕국과 대마법사 여럿이 힘을 합쳐서 두 번 겪지 않을 대비를 했다. 거기에 카엘의 이적이 몇 개 사용되었고, 카엘의 마법도 쓰였어. 그중 한 가지가 여기 새겨진 환각 마법이다. 땅속 깊은 곳에서 웜을 헤매게 하고 지상으로는 나오지 않게 막는…… 고대 왕가의 대마법과 결합해서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 그러니까 춤추는 산맥에서 국경을 쪼개고 지형을 갈아엎을 정도의 웜은 더 이상 솟아나기 힘들지. 크랙 같은 곳을 만들 정도의 초월적인 거대한 놈이 아니면 말이야.
‘티탄 클래스였냐?’
투란은 다독거리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듣다가 불쑥 물었다.
잠깐 멈칫하는 낌새가 있기는 했지만 드라고니아는 대답한다.
―그래. 티탄 클래스의 웜이었다. 두 번 생기기 정말 힘든 몬스터지.
‘그래…….’
웜이 꿈틀거리는 지저공동의 풍경을 느끼면서 투란은 적당히 대꾸했다.
잠시 지저탄환차를 느꼈던 웜은 구부정하니 굽힌 몸집만으로도 이미 백여 미터는 넘을 것처럼 보였고, 몸통 굵기가 거뜬히 이, 삼십 미터는 될 듯했다. 하지만 저 정도는 티탄 클래스랑 비교할 수가 없는 작은 것일 뿐이다.
단지 한 마리가 아닐 뿐…….
그래도 땅속에 있다면 관심 가질 필요가 없었다.
땅 위로 기어 나온다면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투란이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그러므로 투란은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다.
“마법은 참 신기하네요. 그런데 이 신기한 마법으로 우린 언제 도착하는 건가요?”
파쿠란이 투란의 말이 재밌는 것처럼 너털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도착할 때가 되면, 녹색 빛이 나타날 거야. 이 안에 말이지. 그러니까 그 때까지는 이자닌처럼 뒹굴고 있어도 괜찮아. 편안하게 쉬라고.”
투란은 이자닌을 봤다.
데굴데굴, 이리저리 더 열심히 구르면서 ‘난 편해!’라고 외치는 듯한 모습인데, 엄청 심심해서 지루한 표정도 함께였다.
“그냥 앉아 있을래요. 뭔 일 생길지 모른다고 했으니까.”
“좋은 자세야. 그러는 것도 좋지. 어쨌든…… 마음을 편히 하고 있어. 도착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가는 전혀 예상할 수가 없거든.”
파쿠란이 하는 말에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든…… 거울 잔나비 상대할 때처럼 하면 쉽잖아요?”
마법으로 셋만을 우리 편으로 해두고 그 소나기 같은 화살을 퍼부으면 그야말로 쉽게 방어하고 공격하는 것 아닌가. 설혹 앞에 미친개 떼가 매복하고 있다든가 어두운 지하에 서식하는 벌레 떼가 있다 해도, 화살 대신에 불꽃을 뿜어내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파쿠란의 분별 마법은 화살뿐 아니라 불꽃 같은 주문에도 적용된다고 했으니까.
파쿠란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자닌이 실실 웃는 소리로 말한다.
“좋은 생각이잖아, 파쿠란. 괜찮지 않아?”
조금 묘한 분위기에 투란이 의아해할 때, 파쿠란이 한숨 쉬듯 말한다.
“투란, 짐승이 미쳤을 때랑 인간이 미쳤을 때를 똑같이 대처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 들은 적 없나?”
투란은 눈을 깜박이다가 픽 하고 새는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아, 그런 쪽으로 신경 쓰는 거예요? 흐흠, 로그메이지라면 별 상관 안 했을 텐데…… 파쿠란은 정말 로그메이지랑 다르네요. 흐흠.”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용도에 맞게 활용하는 마법사, 대부분의 로그메이지는 그런 성향을 숨기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과시한다. 그 앞에서 미쳐 날뛴다면 인간이고 짐승이고 차별 없이 으깨버리든가 잔혹한 죽음을 선물하는 마법을 쓸 터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미친개는 죽여도 미친 인간은 죽이지 않기 마련이었다.
파쿠란이 그런 상식을 들이대자, 투란은 로그메이지를 들먹이면서 아쉬워하는 셈이었다. 덕분에 파쿠란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구르다가 엎드린 꼴이 된 채로 이자닌이 키득거렸다.
“다르지, 블랙 메이지랑 로그메이지는…… 푸후훗, 함부로 사람을 꿰뚫거나 태워죽이지 않는다니까 블랙 메이지는 참 착해서 말이야.”
놀리는 말투가 역력했지만 파쿠란은 한숨 섞인 쓴웃음을 짓는 척하면서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투란은 열린 입을 계속 움직인다는 듯, 생각을 좀 해봤다는 듯이 말한다.
“꼭 꿰뚫거나 태워죽이기 위해 우리 편 구별하는 거는 아니잖아요? 마법이 꿰뚫거나 태우는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응? 무슨 소리야, 투란?”
이자닌이 갸우뚱하며 물었다.
파쿠란은 흥미롭다는 듯이 살짝 눈을 빛냈다.
투란이 다시 말을 잇는다.
“밧줄 마법, 밧줄을 확 던져서 걸리는 걸 꽁꽁 묶는 그런 마법도 있잖아요. 일단 던져두고 우리 편 아닌 사람은 다 묶어둔 다음에 무슨 일인가 확인하고 풀어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어? 에헤…… 파쿠란?”
이자닌은 재미있어하며 파쿠란을 바라봤다.
파쿠란은 조금 진지하게 대답한다.
“밧줄이라…… 괜찮은 생각이야. 한데 왜 밧줄이지? 사람을 돌처럼 굳게 하는 마법도 있는데…… 왜 굳이 밧줄을 먼저 떠올렸지?”
투란은 ‘엥? 그게 중요한가?’라며 웅얼거렸지만 묻는 말에 대해 착실하게 대답을 한다.
“알아보기 쉽잖아요. 마법으로, 뭐가 묶는 건지 보이지 않게 묶어놓으면 풀려났어도 풀려났는지 몰라서 당하는 경우도 있다니까. 알아보기 쉽게 밧줄로 꽁꽁 묶어두는 거죠. 밧줄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대처할 수도 있고 말이에요.”
“아하, 제법인데 투란! 좋은 생각이잖아, 파쿠란.”
이자닌이 즐겁게 외쳤다.
파쿠란은 잠깐 ‘허어?’ 하는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한 방법이로군. 상황 대처 또한 눈으로 보고 바로 확인한다라…… 멋지군. 그러면…… 밧줄 갖고 있나, 투란?”
“예? 에? 네?”
투란이 맹하니 대꾸하는 사이, 이자닌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투란이 눈을 끔벅거리는 사이, 이자닌이 소매와 발목에서 작은 끈을 줄줄이 뽑아내서 파쿠란에게 넘겨줬다.
“준비해봐, 재밌겠어!”
순수하게 장난치고 싶다는 기분을 담뿍 담은 채로 이자닌은 재촉했다.
파쿠란은 투란에게 손을 내밀며 재촉했고, 투란도 어쩔 수 없이 새로 장만해온 밧줄 한 움큼을 건네주고 말았다.
콰아, 쿵.
어디론가 새나가는 우렁찬 굉음, 거대한 강철의 알이 무겁게 내려앉는 소리가 어둠이 가득한 곳에서 울려퍼졌다.
화륵, 강철의 알 주변으로 빛이 일렁이며 번져나갔다.
한쪽의 벽이 균열을 메우며 온전하고 단단한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끼익, 키드득.
타원형이던 강철의 알이 거대한 상자 형태로 변했다.
그 한편이 삐걱하며 뻑뻑한 틈새를 억지로 밀어내는 소리를 내며, 네모진 구멍처럼 문이 열렸다.
“웃차! 우와…… 에?”
힘차게 구멍 안에서 튀어나와 주변을 돌아보면서 감탄하려던 투란이 의아해하는 소리를 내며 하던 말을 삼켰다.
“왜? 뭐가 잘못됐어?”
뒤따라 나오던 이자닌이 물었다.
“제자리로 돌아온 거, 아니죠?”
투란이 멍한 소리로 되물었다.
이자닌도 주변을 주욱 둘러보더니, 마지막으로 나오는 파쿠란에게 묻는다.
“제자리로 돌아왔어?”
파쿠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냥 똑같은 규격, 모양으로 만들어진 장소일 뿐이야. 저쪽 제어문이 새겨진 곳을 봐. 장소를 가리키는 각인이 달라졌…….”
“아니란다, 투란. 마법 문자가 다른 모양이야.”
싹둑, 이자닌은 파쿠란의 친절한 설명이 길어지는 것을 막듯이 자르면서 투란에게 유쾌하게 외쳤다. 파쿠란의 표정은 살짝 구겨졌지만 투란은 활짝 웃으며 이자닌에게 대꾸한다.
“그렇군요! 그럼, 도착한 거네? 그래서, 여기가 어디래요? 어떻게 나가요?”
컴컴하고 어둡지는 않았지만, 땅 아래 깊은 곳이었다.
스타폴에서 타투스의 거처 방 하나를 통으로 움직여 내려왔던 장소랑 거의 똑같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어떻게 지상으로 올라갈 것이며, 올라가면 대체 어디인가?
설마 페브라의 왕도 한복판으로 불쑥 튀어나가는 것인가?
툭툭 말을 자른 채로, 그냥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이자닌과 투란의 태도에 파쿠란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대답은 꺼내는데…….
“페브라 왕성 지하. 그대로 올라가면 곧바로 왕궁이지. 물론 그렇게 똑바로 뚫고 올라갈 일은 없고, 떠나올 때 이쪽으로 마법의 신호가 보내졌다. 그걸로…… 응?”
파쿠란의 눈길이 저편을 향하며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엇인가 알아본 듯 이자닌이 혀를 찼고, 투란은 가만히 둘의 앞쪽으로 옮겨 섰다.
누가 오든 일단 투란이 맨 처음 만나는 방벽이 될 자리를 잡은 셈인데, 사람보다 먼저 쇠뇌살이 날아들었다.
“아, 얼굴부터 보여주고 쏘라고!”
투덜거렸지만 투란은 너클 블레이드를 뻗어내며 칼등을 들이대며 맞섰다.
티잉, 터엉.
동시에 날아든 두 발의 쇠뇌살이 간단히 튕겨나갔다.
낄낄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제법이군, 겨우 그걸로 볼트 둘을 막다니. 제법이야…… 방패만 있다면 좀 더 오래 살았을 텐데, 아쉽겠어. 그래도 죽어.”
몇 마디 말이 이어지는 사이, 사사삭거리고 키릭키릭하는 자잘한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볼트가 거의 이십여 발이었다.
“어라? 뭐가 이리 많아!”
투란이 저편을 흘깃하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외쳤다.
그 외치는 순간에 투란 앞에서 날아들던 볼트, 쇠뇌살이 모조리 퉁겨졌다.
한데 투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쪽에서 낄낄거리던 목소리가 짜증 난다는 듯이 외친다.
“프로텍트 마법이잖아! 젠장, 마법사가 낀 일행이었잖아! 안티 쉘! 달려!”
온몸에 보랏빛을 옅게 두른 채로 두 명이 뛰쳐나왔다.
한 손에는 작은 크로스보우를 들었는데, 다른 한 손에는 주먹에서 칼날이 튀어나온 모양의 건틀릿을 끼고 있었다.
대강 스무 걸음의 간격을 크로스보우로 겨냥한 채로 좁히고 있는 꼴을 보며 투란이 소리친다.
“죽여요?”
“안 돼, 구경해.”
이자닌이 차갑게 외쳤다.
찰칵, 입술을 삐죽하며 투란이 너클 블레이드를 갈무리하며 팔짱을 끼고 섰다. 그야말로 구경하는 자세!
달려들고 있던 둘의 얼굴에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스칠 때, 파쿠란이 외친다.
“바인드, 로프 액션.”
땅바닥을 쓸면서 물결치듯 밧줄 뭉치가 흘러갔다.
달려드는 둘은 이를 무시하며 껑충 뛰거나 발로 걷어차는 채로 돌파하려 했지만, 밧줄 뭉치는 매섭게 퉁겨지며 둘을 후려치고 휘감았다.
“우앗, 뭐야! 왜 마법이……!”
“안티 쉘! 왜 안 들어! 안티 쉘!”
희미한 보랏빛 광채가 연이어 맺혀들었다.
하지만 둘을 꽁꽁 묶는 밧줄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마치 둘이 믿고 있던 ‘안티 쉘’이 마법을 무시하는 저항수단이 못 된다는 듯!
파쿠란이 둘을 향해 무거운 소리로 묻는다.
“어디서 구했나, 그 항마(抗魔)의 도구…….”
“뭘 말로 하려고.”
이자닌은 단검을 빼 들며 둘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