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8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80)
“뭐, 뭐 하려는 거야!”
이리 놀라 묻는 소리는 이자닌을 어이없게 했다.
“야, 대뜸 사람 쏴 죽이려 들고, 안 되니까 찔러 죽이겠다고 덤비다가 묶인 꼴로 그런 소리가 나오냐? 이게 상식이 전혀 없구만!”
단검이 밧줄 사이로 들어가 쿡쿡 찔렀다.
“크윽,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걸!”
겨우 지금 자신들이 어떤 처지인가 알았다는 듯, 이자닌이 뭘 하려는지 안다는 듯이 또 한 명이 비장하게 소리쳤다.
이자닌이 상쾌한 목소리로 이에 대꾸하는데…….
“어머나, 대단하네! 목숨이 아깝지 않구나, 비밀이 더 중요하니까 말이야. 우와, 멋져! 사내라면 그런 근성이 있어야지……라고 칭찬하면서 봐줄 리가 있냐! 이것들, 진짜 바보 아냐?”
쿡쿡쿡, 단검이 둘을 오가면서 밧줄 사이로 허벅지, 팔죽지를 거침없이 찔러서 옷감을 붉게 물들이는 출혈(出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파쿠란에게 속삭인다.
“안티 쉘이 뭐예요?”
쏘아낸 볼트 수십 발을 막아낸 마법을 보자마자 그리 외치면서 덤벼들었다. 몸에는 정상으로는 보일 리가 없는 보라색 광채까지 두른 채로 그랬으니, 분명히 무슨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잖냐고 따지는 물음이었다.
파쿠란은 이자닌에게 농락당하는 둘을 보며 한숨짓는 채로 대답한다.
“마법에 저항하는 마법. 항마의 도구라고 제작된 것에 깃들여지는 마법이야. 녀석들을 감싼 저 빛이 마법을 방해하고 저항하게 해주지. 저기 닿으면 방어 마법도 흐트러지고, 공격 마법도 저걸로 막아 흩어뜨릴 수 있어.”
“그럼, 저 꼴인데 마법사?”
투란은 이자닌이 따귀를 올려붙이는 광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짜악!
“걱정 마! 기대하는 모양인데, 기대 이상으로 고문해줄 테니까!”
이자닌의 목소리가 꽤 날카롭고 험악한데, 왠지 상쾌하게 울렸다.
파쿠란이 혀를 차며 투란에게 말한다.
“마법사가 저럴 리가 있냐. 그냥 지급받은 마도구를 갖고 있는 것뿐이야. 그게 좀 희귀한 편인 항마의 도구인 거지.”
“희귀! 오호오오…… 지금 입고 있는 것 중에…… 벨트? 목걸이? 외투? 어떤 건데요?”
투란이 눈을 반짝이며 다시 물었다.
파쿠란이 대답하기 전에 이자닌이 밧줄에 묶인 채로 대롱대롱 떠 있는 꼴이 된 둘을 연이어 걷어차고 패면서 외친다.
“팔찌 하나 얻어 꼈다고 까불었냐?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수여받으니까 대단한 암살자라도 된 기분이었어? 누구 앞에서 감히 같잖은 짓을 해! 그러고서 뭐? 말을 못 해? 들고 있는 물건에 이름까지 새긴 놈들이 참 잘도 떠든다! 앙! 두란, 파엘! 이제 겨우 뭐가 잘못되었다 싶지? 이제 좀 정신이 들지?”
가만히 보고 듣던 투란이 참을 수 없어서 파쿠란에게 또 묻는다.
“두란…… 파엘……?”
“도적 길드에서 애들 주워다 키울 때, 조금 무성의하게 이름을 짓지. 투란이랑 카엘이 넘쳐나면…… 살짝 두껍게, 살짝 한마디를 바꾼 이름을 막 붙여놔.”
파쿠란은 앞선 물음을 치우듯, 한숨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투란은 눈을 깜박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결국 저 둘이 하는 짓이 변변치 않은 까닭은 어린 시절에 주워서 키워준 작자가 변변치 못한 탓이란 듯하잖나. 그런 경우라면 투란 스스로도 딱히 더 낫다고 하기 애매하니, 흉보기 힘들었다.
퍽, 퍽!
“이런 나약한 녀석들! 왜 정신을 잃어! 이제 겨우 시작인데!”
힘차게 둘의 머리통을 후려갈긴 다음, 축 늘어지는 둘을 보면서 이자닌이 성난 외침을 터뜨렸다. 그 내용으로 봐서는 다시 둘을 깨우고 또 찌르고 팰 낌새가 넘쳐 흐르는 상황이었다.
파쿠란이 바로 끼어들며,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
“이자닌,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그 녀석들이랑 실랑이하면 할수록 늦어져. 챙길 것 빼서 어서 나가야 한다고.”
“알아! 근데 짜증 나잖아, 이런 애송이들을 보내서 이런 꼴사나운 마중이라니! 보내려면 제대로 된 암살자를 구색 맞춰서 보내든가!”
이자닌이 으르렁거렸다.
투란이 ‘엥?’ 하다가 흠칫하는 몸짓과 함께 얼른 말한다.
“아니, 그건 좀…… 사양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자닌!”
이자닌이 매섭게 녹색 눈동자를 번뜩하며 투란을 쏘아보다가 금발 끄트머리를 휘날리는 고갯짓과 함께 말한다.
“얘네, 벗겨. 팔찌랑 크로스보우는 확실히 뺏고, 나머지는…… 알아서 홀랑 벗겨!”
“아, 네.”
투란은 얌전히 대답했다.
파쿠란이 말없이 손짓했고, 정신을 잃은 둘은 밧줄에서 풀려났다.
그다음에 투란이 재빨리 둘의 손목에서 팔찌를 하나씩 풀었고, 건틀릿을 벗겨냈다. 크로스보우는 둘이 묶이면서 바닥에 떨궜으니 그냥 주우면 되었다. 그다음에 투란은 침착하게 둘의 외투를 벗기고, 장화를 벗기고…… 마지막 아랫도리 속옷 한 장만 남겨둔 채로 벌거숭이에 근접한 몰골을 만들어줬다.
그러는 와중에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꽤 조잡한데 효과는 확실하군, 안티 쉘의 팔찌라…… 묘하게 오래된 양식이야. 투란, 너무 꽉 움켜쥐지 마.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에 부서질 수 있다.
‘마법에 저항한다며? 몬스터 로드의 힘에는 저항 못 해?’
―못 해. 그렇게 잘 만들어진 물품이 아니라고. 그렇게 만들려면 보석도 꽂아야 하고 처리과정도 몇 배로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건 나무와 흙, 적당한 가죽으로 단조롭게 만들어냈다. 조잡한 재료와 수단은 모조리 동원했다고 할 지경이지. 그럼에도 안티 쉘의 효과만큼은 제대로 나오니, 꽤 대단한 솜씨야. 얼핏 봐도 거의 이삼백 년은 묵은 마도구이기도 하고…… 만든 작자가 여러모로 대단해.
‘그래?’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설명을 들으며 안티 쉘의 팔찌는 바로 파쿠란에게 던져줬다. 그리고 크로스보우를 어찌 뜯어 가져갈 수 있나 보니, 그냥 등이나 허리춤에 매달기 위한 끈고리가 손잡이에 달려 있었다. 그 손잡이 귀퉁이에는 조각칼로 조악하게 ‘두란’, ‘파엘’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채였다.
옷감과 장화, 기타 등등을 크로스보우와 함께 둘둘 말고 벨트로 대강 휘감아 한 보따리를 만든 다음, 투란은 이를 이자닌에게 내밀며 물었다.
“여기, 들고 갈래요?”
“싫어, 네가 들고 가.”
이자닌은 귀찮은 것을 바로 거절했다.
픽, 웃는 채로 투란이 크로스보우에 대해 묻는다.
“이 쇠뇌…… 한손잡이로 대체 몇 발을 쏘게 만들어진 거예요? 누가 이런 걸…….”
“도적 길드의 특산품이야. 다용도 화살이랑 함께 쓰라고 만든 거지. 사람 쏴 죽이라고 만들어진 게 아냐! 젠장, 어디서 이런 덜떨어진 녀석들을 찾아 보냈냐고! 짜증 나게!”
이자닌의 대꾸는 거칠었다.
듣고 있자니, 투란에게는 이자닌이 자신의 목숨을 노렸다기보다는 이 둘이 너무 형편없어서 울컥하고 있는 걸로만 여겨지는 말이었다.
파쿠란이 담담하게, 가능한 이자닌을 냉정하게 다독이겠다는 것처럼 말한다.
“이자닌, 제대로 된 놈들을 보내면 손해라서 이런 녀석들을 보낸 거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잖아? 너를 경계하지만, 전력을 빼돌려서 미리 소모시키지 않겠다는 속셈. 그러면서도 널 열 받게 해서 감정적으로 소모시키고, 덤으로 네 판단을 흐리게 하면 좋고…… 아님 말고 말이야. 아직 녀석들이 인형 악마 이자닌을 잊지 않았다는 증거잖나.”
“인형 악마?”
투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자닌을, 파쿠란을 둘러보며 되뇌었다.
이자닌이 볼을 실룩거리면서 투란에게 으르렁거린다.
“내 별명이다! 어딜 진짜 악마 보듯이 봐! 나랑 사이 나쁜 놈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내가 어딜 봐서 악마야, 악마는!”
“어, 네…… 그 인형이란 말은 왜……?”
엉거주춤하니 한편으로 피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투란은 별명의 남은 반 토막에 대해서 궁금증을 감추지 않았다. 이자닌은 이에 대해 볼만 실룩이고 고개를 홱 돌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슬쩍 다가서며 파쿠란이 나직하게 투란의 귓가에 속삭여준다.
“어릴 때 이자닌이…… 예쁜 인형처럼 보였거든.”
“그런 인형도 있어요?”
투란의 대꾸는 파쿠란이 미처 상상한 적이 없는 쪽으로 튀고 있었다.
오가는 말에 발끈해서 돌아서던 이자닌도 어깨를 툭 떨구면서 투란의 말에 어이없어 중얼중얼 묻는다.
“투란, 너 인형 본 적이 아예 없지?”
“에, 뭐…… 이 둘은 이제 어째요?”
투란은 슬쩍 벗겨놓은 둘을 흘깃거리며 물었다.
파쿠란도 재빨리 이 말에 보탠다.
“약으로 재워놓으면 닷새 정도는 죽은 듯이 살아서 잘 거야. 이런 정도면 차라리 그게 이놈들에게도 안전할 거다. 이런 어설픈 솜씨로 끼어들어서 다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야.”
“자비로운 흑마법사님의 말씀에 따르죠. 투란, 일단 저 안으로 끌고 가자. 나가는 길목에 놔둬야 어떤 놈이 와도 쉽게 챙겨갈 테니까.”
파쿠란의 말을 살짝 비꼬는 척하다가 이자닌은 앞장서면서 투란에게 손짓했다.
투란은 묶은 보따리를 보고, 기절한 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파쿠란이 투란의 손에서 보따리를 채며 말한다.
“이건 내게 맡기고, 둘을 데려가.”
냉큼 짐을 넘기고 둘의 목뒤를 잡아 질질 끌고 이자닌의 뒤를 따르는 투란이었다.
인기척이 사라지는 공동에는 강철의 상자가 칙칙한 광택을 흘리는 채로 남겨졌고, 횃불은 인기척을 따르듯이 그 빛을 줄이며 꺼져갔다. 곧 강철의 상자는 어둠 속에 파묻히며 다시 오랜 기다림과 잠에 빠져들었다.
―흐흠, 정말 규격대로 만들었나? 여기도 스타폴의 타투스 방과 같은 구조로군. 그렇다면…… 올라가는 궤도가 다르려나? 아니, 올라갈 수 있는 장소가 여럿인 모양이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바쁘게 분석해서 알려줬다.
투란으로서는 뭐 하나 입으로 꺼내 물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투란은 이자닌이 횃불을 벽에 매단 채로 텅 빈 방을 둘러보며 뭔가 말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기절한 둘을 방 한구석에 몰아두고 밧줄로 돌돌 감아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쿠란도 한편에 가서 가만히 뭔가 둘러보고 살폈다.
잠시 뒤에 이자닌이 묻는다.
“파쿠란, 준비됐어?”
“아, 그래. 준비됐다. 어디로 나가고 싶지?”
파쿠란의 말에 이자닌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다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 틈에 투란이 재빨리 묻는다.
“어디로……? 나갈 곳이 여럿 있어요?”
파쿠란이 끄덕이며 나직하게 대답한다.
“그래, 여기는 페브라 왕국의 수도, 왕성의 도시니까. 지저탄환차를 타기 위해 내려올 곳이 여럿 준비되어 있으니 나갈 수 있는 곳도 여럿이지. 이곳저곳에 준비된 은신처가 있어. 다만…… 지금 어디로 나가야 안전하고, 어디가 위험한가는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 이쪽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서 전해줄 자가 없어서 말이야. 뭐, 그래서 널 고용한 것이기도 하고…….”
“흐흠…… 왕성의 도시라…… 그러면, 몬스터 로드가 날뛰기 좋지 않군요? 왕의 군단이라든가, 강한 왕궁 수호병이라든가…… 궁정 마도사도 있을 테고…… 이래저래 얌전 떠는 것이 좋겠네요?”
투란이 웅얼웅얼,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것처럼 말했다.
파쿠란이 재미있어하며 투란에게 대꾸한다.
“도시를 지키는 수호병은 잔뜩 있지. 군단은…… 칠왕국의 군단은 고대왕국의 군단이랑 많이 달라. 몬스터보다는 사람을 상대하는 데 익숙한 녀석들이다. 궁정 마도사는…… 뭐, 상아탑에서 파견 나온 정도일 거야. 어느 수준에서 파견을 내보냈는가는 애매하군. 정보가 없네. 어쨌든 가능하면 몬스터 로드의 힘은 아낄 수 있을 때까지 아끼고, 당분간은 중급 수준의 몬스터 헌터 기량만 써도 될 거야. 저쪽에서 험악하게 나오지만 않으면…… 아무 일 없이 끝날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페브라 왕도를 구경만 하고 돌아가는 일이 되겠지. 그편이 우리에게는 훨씬 좋…….”
“벡커드의 주점으로 가자!”
이자닌이 버럭 소리쳤다.
하던 얘기를 잘린 파쿠란은 한숨을 쉬었다.
투란도 동감이란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자닌이 노려봤기에 둘은 동시에 딴 데 보는 시늉도 했다.
“가자고, 얼른!”
이어진 재촉하는 말에 파쿠란이 벽 한편의 횃불을 향해 손짓했다.
그림자가 일렁이며 꿈틀거렸고, 통로가 닫히며 방이 봉쇄되었다.
쿠릉거리는 잔잔한 울림이 방을 흔들었고, 방은 빙빙 돌면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한쪽에 밀어둔 녀석들이 방바닥으로 쓰러지며 데굴데굴 굴렀고, 투란은 다급하게 소리쳐야 했다.
“잠깐! 이거 왜 이래! 왜 방이 빙빙 돌아? 이, 이자닌! 파쿠란, 이거 뭐예요! 타투스네는 이렇지 않았잖아!”
여기에 이자닌의 외침이 겹쳐진다.
“파쿠란, 이거 누구 장난이야?”
파쿠란이 허탈한 웃음과 함께 앙앙거리는 둘에게 대답한다.
“얼간이 둘만 보낸 이유가 이거였군. 이게 진짜 암살 수단이었어. 허허헛.”
순간, 이자닌이 빠득 이를 갈았고 투란은 어처구니없어했다.
“파쿠란!”
“아저씨, 지금 좋아라 웃을 때가 아니잖아!”
쿠르르릉, 방은 기분 좋은 듯이 점차 요란하게 울면서 회전과 상승을 가속했다.
방 안에 있는 이들의 운명은 알 바 아니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