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81)
Chapter 137. 페브라 왕도에서 Ⅱ
―강철통에 달걀을 넣고 뚜껑을 꼭 닿은 다음에 마구 흔드는 격이로구만.
드라고니아가 친절하고 상냥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안 들어도 알겠거든!’
투란은 거칠고 사납게 대꾸했다.
문제는 상냥하게 알려주든 거칠게 성질내든 이 상황은 그냥 그대로라는 것.
―뭐, 딱히 너 다칠 일은 아닌 것 같다만…….
조금 심드렁하니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나만 살게 생겼잖아!’
투란은 눈알을 열심히 굴리면서 대꾸했다.
그리고 곧 투란은 의아해하며 물어야 했다.
‘이게 뭐냐?’
드라고니아도 새로운 흥미를 느낀 듯이 대답한다.
―마법이라 여겨진다만…… 이 블랙 메이지 참 신기한 짓을 잘하는군. 거울 마수를 상대했던 거랑 같은 계통의 마법 같다. 투란 너까지 포함해서 일행을 보호하고 있어. 달걀이 강철 상자에 닿지 않게 하는 보호막…… 안전한 틈을 유지해주는 장벽 같다만, 쉽게 파악이 안 되는군.
‘저번처럼 말이지?’
―그래, 저번처럼. 상당한 마법이고, 쓰는 솜씨도 대단하다.
투란은 다시 주변을,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둘러봤다.
이동을 시작한 방, 생각을 가속해서 상황을 살피다가 드라고니아와 대화하는 사이에 달라진 점은 한 가지뿐이었다.
암살한답시고 나타나서 까불던 둘은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데, 바닥에 닿지 않은 채로 두 뼘 정도 둥실거리며 떠 있는 채였다. 이자닌과 파쿠란, 투란도 역시 바닥과 벽에서 서너 뼘 간격을 둔 것처럼 떠 있었다.
몸을 지탱하는 벽면, 바닥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모습이었다.
때문에 방이 흔들리고 기우뚱거리며 안에 담긴 것이 뭐든 간에 이리저리 충돌시키고 깨뜨려서 뒤범벅으로 섞으려 하는 상황을 완전히 회피한 셈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아주 적절한 마법이 발휘된 것인데, 이자닌은 조금 불만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파쿠란, 쟤네는 왜 구해?”
투란이 그 말에 ‘어?’ 하며 슬쩍 갸웃하는 눈길로 파쿠란을 봤다.
은근히 이자닌의 말에 동의한다는 투란의 눈빛, 파쿠란은 둘이 따지는 모습에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쟤들 피와 살로 목욕이라도 하고 싶어? 그냥 두면 그대로 깨진 새알처럼 피범벅이 되고 몸이 으깨진 채로 이 안을 꽉 채울 것처럼 괄괄 터져 흐를 거라고. 벽을 봐, 돌기가 치솟아 있잖아. 바닥도. 멀쩡한 사람이라도 금방 살이 찢어지고 터져서 피범벅이…….”
“알았어! 그만해! 아읏, 생각만 해도 더럽잖아!”
이자닌이 소름 끼치는 시늉을 하며 유혈(流血)을 반복해서 강조하려는 파쿠란의 말을 잘랐다. 투란은 그냥 ‘헤에, 그렇구나.’ 하는 웅얼거림으로 슬쩍 넘어갔다.
―거짓말. 그런 꼴이 되면 장벽이 벽으로 피와 살을 밀어붙여서 전혀 닿지 않게 할 거다. 벽의 돌기에서 흘러나오는 독안개를 미는 것처럼.
‘야, 그냥 기분 나쁜…… 독안개? 그런 것도 있었어?’
투란은 괜히 깨끗한 옷에 피 묻는 것이 싫다 하려다가 움찔해서 눈을 가늘게 뜨며 벽과 바닥, 천장이었던 곳에서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기를 다시 봤다. 과연 드라고니아의 지적대로 돌기 끝에는 희미한 이슬이 맺힌 채로 옅은 서리처럼, 아침이슬처럼 묘한 안개의 끝자락을 흘리고 있었다.
―이 장벽은 영역 내에 살아 있는 것을 지키는 마법이야. 그러니까 저 녀석들까지 마법에 자연스럽게 휩쓸린 것뿐이다. 솜씨로 봐서는 괜한 죽음을 보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만…… 흑마법을 다루는 작자가 피투성이 꼴을 그리 꺼릴 리는 없는데 말이지.
‘흑마법은 피투성이 꼴을 자주 봐?’
―입문 초반에 피를 매개로 한 마법을 많이 배우니까.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흑마법은 피를 이용한 마법을 입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많이 다룬다.
‘헤에…… 그렇단 말이지.’
새삼스러운 곁눈질로 투란은 파쿠란을 다시 봤다.
블랙 메이지, 흑마법을 전문으로 하는 마법사이면서 나름대로 사람의 생명을 꽤 챙겨주는 모습. 오늘만 저러는 것인가? 늘 저러는 것인가? 이모저모로 로그메이지의 부류와는 다른 성향인 점만큼은 분명했다.
그런 파쿠란을 향해 이자닌이 다시 투덜거린다.
“대체 언제 도착해? 벡커드한테 가는 거 맞지?”
“정반대 편에 도착한 모양이야. 그러니 왕성을 가로질러서 가느라 약간 늦어지는 것뿐이다. 확실하게 벡커드의 주점에 도착할 거야. 이자닌, 각오하고 준비해야 할 거야. ”
파쿠란은 조금 진지하게 대답했다.
투란이 조금 희한한 느낌에 파쿠란을 똑바로 봤다.
말투만큼이나 파쿠란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에 이자닌도 그에 못지않은…… 사나운 말투로 대꾸하는데…….
“당연하지! 그냥 넘길 일이 아니잖아! 얼른 만나고 싶어졌다고, 그 변태!”
“변태?”
투란은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이자니은 입술만 삐죽하고 설명하지 않았다.
파쿠란이 헛기침을 하고 슬쩍 설명해준다.
“벡커드…… 주점 주인을 이자닌은 가끔 그렇게 불러. 음, 진짜 이상한 녀석은 아니고…… 그냥 좀…… 사연이 있을 뿐이야.”
“아, 네…….”
이자닌의 눈치 보는 파쿠란을 향해 투란도 적당히 눈치 보며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인가, 도착하면 왠지 훤히 알 수 있을 듯한 분위기가 파릇파릇하니 돋아나고 있으니 투란은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잠깐 둥실거리는 사이, 방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 모양인 듯 느릿느릿해졌고…… 멈췄다. 동시에 가득 돋아났던 돌기들이 가라앉았다. 여전히 안개의 희미한 흔적은 그 자리에 미묘하게 남겨지고 맴도는 듯했지만, 파쿠란이 마법을 거두는 손짓에 휩쓸린 것처럼 바로 사라졌다.
툭툭, 파쿠란이 두 손을 부딪치며 털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어둡고 탁한 공간이 문턱 너머의 풍경이었다.
투란이 날름 그 문턱 너머로 킁킁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라이트.”
파쿠란의 목소리가 투란을 스쳐 지나갔다.
빛이 어둠을 깨뜨리면서 퀴퀴한 지하실의 풍경이 훤히 드러났다.
“진짜 땅 밑…… 창고?”
투란이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자닌이 문가에 기대며 고개만 내민 투란 곁을 휙 지나가며 말한다.
“벡커드네 지하저장고야. 주점에서 내놓은 술을 보관하는 곳이지…… 만, 관리 전혀 안 하고 내버려뒀구만!”
파쿠란도 투란 곁을 스쳐가면서 말한다.
“여기를 창고로 쓰는 거는 꺼렸잖아. 방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 딴 녀석들이 방을 이용해서 자기 창고를 털어갈 수도 있다고 투덜대기도 했었고…….”
투란은 가만히 둘의 뒤를 쫓듯이 나가며 물어야 했다.
“저기, 저 둘은……?”
이자닌이 저편 계단 앞에서 잠깐 우뚝 서더니 고개를 돌려 말한다.
“파쿠란, 쟤네 죽일 생각 없지? 그러면 방해 안 되게 며칠 여기 좀 묶어둬. 괜히 나돌아다니면 귀찮아질 수 있잖아.”
“그러지.”
파쿠란의 대답은 손짓만큼 간결했다.
그 손짓에 따라 부스럭거리며 날아드는 묶인 둘, 두란과 파엘을 피하며 투란이 비켜섰다.
둘은 바로 지하실 한쪽의 기둥에 들러붙었다.
파쿠란이 곧 둘의 입가에 손을 댔고, 나직하게 뭔가를 중얼거렸다.
잠깐 발버둥 치듯 바르르 떨던 둘은 금세 축 늘어졌다.
투란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슬그머니 이자닌 쪽으로 붙으며 보니, 손을 털며 다가오는 채로 파쿠란이 말한다.
“이레 정도, 밤낮없이 잘 거야. 그 이상은 배고파서 깨어날 거다. 충분하지?”
이자닌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해. 그럼, 가자.”
계단을 척척 밟고 올라서는 이자닌의 뒤를 투란이 바로 쫓았다.
파쿠란이 마지막으로 계단을 밟으며 다시 지하실에 손짓했다.
빛이 꺼지고 지하저장고는 다시 탁한 어둠에 잠겨버렸다.
그 사이에 이자닌은 계단 맨 위에 섰고, 닫힌 문에 기대면서 조심스럽게 밖의 상황을 살폈다.
투란은 그 몇 걸음 뒤에 서면서 신기한 표정으로 이자닌을 지켜봤다.
‘발소리가 무척 낮아졌지?’
―도적의 기술인 모양이다. 들은 적은 있는데…… 인간이 단지 훈련만으로 저 정도로 기척을 감추고 걸을 줄은 몰랐군. 저 정도면 정말로 요정의 귀라도 속이겠는걸.
계단의 중간부터 투란이 느낀 바에 대해 드라고니아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 말끝의 몇 마디는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요정의 귀?’
―요정의 일족, 그들의 감각을 대표하는 게 청각(聽覺)이거든. 그 귀를 속일 정도로 은밀하다는 말이다.
달칵, 드라고니아의 말을 듣는 사이에 문이 열렸다.
이자닌이 문턱을 넘는 모습은 당당했고 전혀 뭔가를 꺼리는 태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여전히 기척을 감추며 은밀한 채였다.
그 뒤를 따르며 뒤꿈치를 든 채로 조심스럽게 걷다가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이러다 누가 저편에서 본다면, 이자닌은 여기 뭔 볼일이 있는 사람이 당당하게 걷는 모습일 테고 투란은 아무 볼일 없는 수상한 녀석이 이상하게 걷고 있는 몰골로 보일 것이다!
‘아, 바보로 보이겠구만!’
자각과 함께 투란은 허리를 펴고 발뒤꿈치가 가능한 한 조용히 닿게 발을 디디며 조심스럽게 이자닌의 뒤를 따르려 했다.
파쿠란의 목소리는 그렇게 투란이 세 걸음째를 디디려 할 때 들려왔다.
“고요의 주문을 걸어놨어. 그냥 걸어도 괜찮아. 이자닌 흉내 내지 않아도 돼.”
“에? 고요의……?”
투란이 멈칫하며 돌아보니, 파쿠란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너랑 나, 둘 사이에는 적용되지 않아. 하지만 우리 둘이 떠들고 걷는 소리는 전혀 새나가지 않지. 이자닌도 못 듣고 있어. 이 기회에 욕을 해도 되겠지만…… 아, 농담이야! 농담!”
갑자기 급한 소리를 내는 파쿠란의 눈길이 향한 곳으로 투란이 재빨리 눈길을 보내니, 이자닌이 돌아선 채로 도끼눈을 뜨고 있잖은가. 아무래도 파쿠란이 욕이 어쩌고 했던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표정인데…….
“입술 보이거든? 마법 너무 믿지 말고 조용히 따라와.”
성큼 투란의 어깨 쪽으로 머리를 들이대면서 파쿠란을 향해 한소리 하는 이자닌이었다. 투란이 눈을 깜박거리는 사이에 이자닌은 다시 돌아서서 저쪽으로 소리 없이 당당하게 걸어나갔고, 파쿠란은 쓴웃음과 함께 중얼거린다.
“입술 읽는 녀석과 마주칠지도 모르니까, 입 다물고 쫓아가자.”
“네.”
투란은 얌전히 대답하면서 이자닌을 쫓았다.
지하실로 이어진 통로는 처음에는 양쪽 모두 벽이었지만, 끝에 도달하니 좌우로 길게 이어진 통로에 문이 여럿 달려 있는 광경이었다. 숙박을 위한 방이 즐비한 통로였고, 그 한편에 지하실로 새는 골목길이 놓인 셈이었다.
이자닌은 좌우의 갈림길을 휙휙 둘러보더니, 역시 당당하게 왼편을 골라 내닫기 시작했다. 조금 빨라진 걸음걸이였고, 아까처럼 은밀하거나 고요한 느낌이 없었다.
파쿠란이 살짝 투란의 어깨를 치며 말한다.
“여기서부터는 조용히 하지 않아도 돼. 숙박 손님도 있고, 주점도 시끄러우니 말이야. 마법이 아니더라도 감춰지니까, 가자.”
어깨에 파쿠란의 손이 닿으면서 투란도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음, 조금 둔탁하게 벽을 넘느라 많이 꺾이기는 했지만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이자닌이 향한 쪽에서 은근히 세게 울리고 있다.
바로 이자닌의 뒤를 따르는 채로 투란이 살짝 고개만 돌려 파쿠란에게 묻는다.
“우리도 소리를 제대로 못 듣게 하는 거였어요?”
파쿠란이 어깨에 손을 대며 마법을 해제할 때까지, 저 소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되새기며 꺼낸 이야기였다. 이쪽 기척을 감추려다 저쪽 기척을 못 읽는 일은 상당히 위험하잖은가.
이런 투란의 염려에 파쿠란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대답하고 있었다.
“조금 그런 면이 있기는 해. 적당히 조절할 수 있으니까, 다음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래요? 아, 이자닌! 빨리도 가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투란은 이자닌이 벌써 저쪽 끝에서 문을 대신해 늘어진 장막을 밀어젖히며 사라지는 광경을 보고 서둘러 쫓아 뛰었다. 파쿠란도 바로 투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해서 둘이 이자닌이 넘어간 장막을 지나치니, 훤히 열린 주점의 풍경이 바로 펼쳐지고 있었다.
왁자지껄하게 다들 뭐라 떠들어대는 소음(騷音), 연초의 짙은 향과 연기가 맴돌며 불빛을 흐릿하게 감싸는 틈새로 여기저기서 단단한 나무 잔을 부딪치는 광경.
투란에게는 가끔 문턱 너머로 봤던 알드바인의 주점과 닮아 보였다.
다만 이번에는 카운터 바 너머로 그 풍경이 보인다는 점인데…….
‘어라? 이쪽이 퍼브 마스터 자리?’
주점 주인이 바 너머로 보는 풍경이란 것을 투란은 금방 눈치챘다.
즉, 이자닌은 카운터 바의 주인 자리로 쳐들어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