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8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82)
“오호? 주인, 미녀를 옆에 뒀구만?”
술에 취해서 바에 기대고 있던 누군가 말했다.
퍼브 마스터, 주점의 주인인 벡커드는 ‘응?’ 하는 소리와 함께 미녀가 누군가 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바로 눈에 뜨인 금발,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어두운 보석처럼 번뜩이는 녹색의 눈동자와 험악한 말투임에도 나긋하게 귀에 스며오는 목소리가 바로 벡커드를 사로잡았다.
“오랜만……!”
퍼억!
벡커드는 아차 하는 순간에 허리를 틀었고, 덕분에 가랑이 사이 한복판에 정타(正打)로 차이는 것을 피했다. 그래도 허벅지에 세게 꽂힌 발끝의 위력은 장난이 아니라서 몹시 아팠다. 하지만 벡커드의 입에서는 상대에 대한 인사가 나온다.
“이자닌, 이게 얼마 만이야! 이야, 기대 이상으로 예뻐졌…… 안 돼! 폭력은 어울리지 않아요, 숙녀가 그러면 안 돼!”
술병을 거꾸로 잡는 이자닌을 본 탓에 칭찬하던 말이 만류하던 말로 자연스럽게 바뀌고 있었다.
바 너머에서 이를 보던 술 취한 이들 몇몇이 낄낄거리며 외친다.
“잘한다! 패버려, 패!”
“바람둥이의 최후를 보고 싶어!”
“미녀는 언제나 정의롭지!”
“정의를 보여줘!”
벡커드가 다급하게 휘둘러지는 술병을 손바닥으로 막아내면서 바 너머의 취한 이들에게 으르렁거린다.
“닥쳐! 술값 두 배로 물린다! 아, 이자닌! 이러지 마! 말로 해, 말로! 오랜만이잖아! 아무리 반가워도 이렇게 과격한 인사는 우리 사이에 할 짓이 아니지! 제발, 안에 들어가서…… 아, 내 깨끗한 새 침대에 오붓하게 앉아서 대화로…….”
“아놔! 헛소리를 그치질 않네, 진짜 콱 죽여버리고 얘기하고 싶어지잖아!”
이자닌이 냅다 술병을 던지면서 으르렁거렸다.
벡커드는 그 술병을 아주 가볍게 받아쥐고 옆에 얌전히 내려놓으며 환하게 웃었다. 마치 술병을 건네줬으니 이제 제대로 침대에 올라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꼴 보니 무슨 일인가 전혀 모르는 모양이네. 이자닌, 자리를 옮겨 얘기하는 게 좋겠어.”
하지만 안쪽으로 통하는 장막을 살짝 들춘 채로 파쿠란이 말하는 모습이 보이니 바로 벡커드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니, 저 작자까지 온 거야? 나 보러 온 거 아니었어? 이제 성년이 되었으…….”
콱, 빠각, 퍽!
발등이 찍히고 정강이를 차인 다음에 벡커드는 가랑이로 파고드는 발길질을 완전히 피해내지 못했다. 비명도 못 지르고 몸이 접히는 벡커드의 뒷덜미를 이자닌이 냅다 움켜쥐고 질질 끌고 가며 소리친다.
“오늘, 무료! 다들 마음껏 먹고 마시고 때려부수고 가도 된답니다아! 퍼브 마스터가 쏘는 날이래요! 즐겨요!”
“뭐? 그, 그러면 안……!”
가랑이를 움켜잡은 벡커드가 눈물을 머금은 채로 반대하려 했다.
퍽, 벡커드의 복부(腹部)에 이자닌의 주먹이 꽂혔다.
“오랜만에 만난 즐거운 날이잖아! 자, 다 같이 즐겨요!”
퍽, 퍽…… 벡커드가 뭐라 하려 할 때마다 이자닌의 주먹이 꽂혔고, 그 뒷덜미를 잡은 손은 억세게 끌어당겼다. 어쩔 수 없이 신음하며 벡커드는 끌려갈 수밖에 없는데…….
“공짜란다!”
“즐기란다!”
“우워어어!”
술 취한 이들이 눈알을 두어 번 굴리는 시늉을 하다가 느닷없이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 주점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그 외침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이, 벡커드는 장막 너머로 끌려와서 파쿠란이 찾아놓은 빈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투란은 얌전히 그 뒤를 따라 들어갔고, 주변을 한번 둘러본 파쿠란이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갔다.
“불어!”
“에? 잠깐, 그게 무슨 뜬금없는…… 으아악! 밟지 마! 숙녀가 그런 데 밟는 거 아냐! 파쿠란! 말려! 말리라고! 으아앗! 내 비명을 듣고 누가 오면……!”
“안 와. 걱정 마, 이 안에서 무슨 소릴 질러도 아무도 못 들어!”
“야, 이 미친 마법사야! 이자닌을 대체 어떻게 키웠…….”
“닥치고 불란 말이야! 누가 시켰어! 누가 날…… 우릴 죽이라 했어! 불엇!”
“뭣?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왜 이자닌을! 다 클 때까지 꾹 참으며 기다렸…… 꺄아악!”
벡커드는 가랑이를 밟히느라 더 대꾸하지 못한 채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이자닌이 하는 짓은 실로 무자비해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투란이 슬그머니 파쿠란을 눈짓하듯 쳐다봤다.
파쿠란도 더 보기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입을 연다.
“이자닌…….”
“벡커드라고, 이거! 괜찮아!”
작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이자닌이 버럭 외친 말이었다.
파쿠란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 벡커드지. 그러니까 그렇게 밟아도 육체적인 손상은 남지 않을 거야. 하지만 지금 밟혀서 아픈 거는 진짜잖아. 그 정도로 아프면 제대로 된 대답을 하겠느냐는 거지. 봐, 벌써 입에 거품 물고 있잖아. 눈알도 돌아갔구만.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투란에게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한 이야기였다.
이자닌이 밟는 부위, 밟은 힘의 세기로 봐서 벡커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불구가 되었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육체적인 손상이 남지 않는다니, 파쿠란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드라고니아가 바로 이에 답하듯 말한다.
―힐링 팩터다, 투란.
‘응? 힐링…… 마법?’
―그래, 이 주점 주인…… 마법을 몸에 각인시킨 모양이야. 금색의 마도사로부터 비롯된 마법을 말이지.
‘헐? 마법사이면서 퍼브 마스터 노릇을 한다고?’
―글쎄, 제대로 된 마법사는 아니라고 해야겠군. 캐스터…… 스펠캐스터, 원 스택 스펠캐스터로 보이는군.
‘엥? 원 스택…… 한 가지 마법 주문만 쓰는 마법사라고?’
―그래, 그 한 가지 마법이 힐링 팩터이고 말이지.
‘아하, 그래서…….’
투란은 겨우 납득하면서 다시 벡커드를 갸웃거리는 시늉을 하며 지켜봤다.
입에 거품을 물고 정신줄 놓은 듯한 모습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 몸에서 은은하게 마력의 파동이 일어나는 중이었고, 고통을 잊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게 하는 과정이 엿보였다.
아주 잠깐 이자닌이 파쿠란의 말을 듣는 것처럼 밟기를 그친 사이에 보인 광경이었다. 한데 이자닌은 그 광경을 끝까지 볼 생각이 없다는 듯, 다시 발을 높이 들었고 벡커드의 복부를 세게 내리찍으며 으르렁거린다.
“정신 차리시지? 물어볼 말이 많아서 자빠져 자게 둘 수가 없거든! 빨랑 눈 안 떠? 그냥 콱 목을 잘라줄까? 아니, 아예 아랫도리부터 잘라서 다시는 바람둥이 벡커드란 말이 나오지 않게 해줘?”
“숙녀가 그딴 소리 하지 말라니까!”
푸훗, 하는 거센 숨을 토해내고 정신 차린 시늉을 하며 벡커드가 격렬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이에 다시 이자닌이 코웃음을 치며 뭐라 하려는 찰나, 파쿠란이 이자닌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말한다.
“이자닌, 내가 얘기하는 편이 더 빠르지 않겠어? 벡커드가 너랑 계속 놀고 싶어 하는 거, 알잖아. 내가 얘기하고 나서 천천히 오랜만의…… 울화를 풀라고.”
투란은 이 말이 어딘가 묘하게 꼬여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콕 짚어서 어디가 삐뚤어졌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파쿠란의 말이 일리가 있는가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태도만을 드러냈다.
이자닌은 파쿠란의 말 한마디마다 표정이 이리저리, 의혹에서 짜증, 성난 쪽으로 오락가락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꽤 심경이 복잡한 듯하지만, 벡커드에 대해 울화가 가득 쌓인 채인 것만은 분명한 모양이었다.
파쿠란이 그런 이자닌에게 겨우 안도했다는 표정과 미묘한 웃음을 흘린 다음, 드러누워 밟히는 자세 그대로인 벡커드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차하면 무릎으로 벡커드의 목을 찍어누를 수 있어 보이는 자세인 채로 파쿠란이 말한다.
“벡커드, 몇 가지 대답을 해줘야겠다.”
“에잇, 왜 내가……!”
곧바로 반항하는 듯한 말이 벡커드의 입에서 튀어나오려 했다.
파쿠란의 손이 바로 벡커드의 입을 쥐어 막았고, 한쪽 무릎이 그 목 줄기를 가만히 눌렀다. 그런 채로 파쿠란은 아주 진지하게 묻는다.
“우리를…… 나와 이자닌을 죽이는 일에 협력했나?”
벡커드가 바로 눈을 휘둥그렇게 떴고, 파쿠란은 무릎을 살짝 떼며 입을 막은 손을 떼줬다. 곧장 벡커드가 성난 목소리를 흘려낸다.
“뭔 개수작이야! 너야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닌 시커먼 사내놈이다만, 이자닌 같은 미녀를 어떤 미친놈이 죽이려 해? 그런 미친놈이 세상에 어딨어!”
이자닌이 바로 손으로 이마를 누르며 저절로 접히는 주름을 펴는 시늉을 했고, 투란은 ‘어, 이 아저씨 좀 이상하네?’란 소리를 웅얼거렸다.
파쿠란이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고…….
“벡커드, 조금 진지하고 신중한 대답을 들어야겠다. 생각하고 대답해라, 아니면…… 두 번 다시 이자닌이나 다른 미녀를 볼 수 없도록 눈알을 파낼 거야. 내가 네 눈알을 파내면 어떤 수단으로도 다시 시각을 확보하지 못할 수단까지 쓸 거라는 거 알지?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하고 다시 대답해봐.”
가만히 벡커드의 이마 위로, 바로 그 눈에 뭔가 할 것처럼 손까지 올려놓으며 하는 말이었다. 이는 제대로 통하는 협박이 된 듯했다.
벡커드가 부르르 떨며 볼에서 땀을 흘리는 채로 진지하게 되물으니…….
“도대체 왜 그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하는데? 무슨 일인가, 그런 질문을 하는 까닭부터 말을 해보라고! 무슨 근거로 누가 이자닌을 죽이려 했다는 망상을 품게 된 거냐?”
투란은 바로 이자닌이 아랫입술을 윗입술로 덮어 깨물면서 두 주먹을 쥐고 울컥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너무 이상한 벡커드의 태도에 울화가 폭발하고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잖은가. 과연 이래서 ‘변태’라고 했던 것인가, 새삼 사람의 탈을 썼지만 그 속은 결코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졌다는 의미로서 그리 부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파쿠란은 저런 벡커드에게서 제대로 된 대답을 얻어낼 수 있을까?
“벡커드, 우리는 특급탄환을 사용했다. 한데 왕도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녀석들이 우릴 죽이려 했어. 애송이 둘이었고, 너무 쉬워 보였지. 하지만 승강실을 이용하려 하니, 진짜 함정이 나오더군. 분명히 우릴 죽이려 한 수작이었다. 나와 이자닌을 노리고 말이지. 그러니까, 누가 승강실에 장난을 쳤는가 혹은 장난을 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내란 말이다.”
파쿠란의 말은 아주 침착했다.
하지만 끝까지 들은 벡커드는 당황해서 외치고 있었다.
“이, 이자닌! 정말이야? 진짜 누가 여기 도착하자마자 죽이려 한 거야? 그 망할 특급탄환이 잘못된 거는 아니었고? 정말로, 진짜로?”
“파쿠란, 그냥 눈깔 빼버려. 아랫도리는 아예 다리가 없는 몰골로 내가 다 썰어버릴 테니까. 이거 전혀 도움이 안 되네.”
이자닌은 살벌한 눈빛과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벡커드가 이에 애처롭게 대꾸한다.
“그런! 그런 숙녀답지 못한 말을! 사내놈 아랫도리 이야기할 때는 조금 부끄러운 척이라도…….”
파쿠란은 이 소리에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을 잘랐다.
“이거 진짜로 눈알 파내고 썰어버려야 하나…….”
덧붙여 나온 파쿠란의 목소리는 매우 진지했다.
벡커드가 눈알을 오락가락 굴리며 흠칫할 때, 보고 있던 투란도 더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듯이 말을 보탠다.
“아저씨, 말 돌리지 말고 솔직히 말해요. 이자닌도 그렇고 파쿠란도 그렇고, 진짜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고요. 나까지 죽을 뻔했다고요, 진짜로 정말로 우리 여기 오자마자 죽이려 했다니까요! 지하실 가면 잡아놓은 두란이랑 파엘에게 물어볼 수도 있어요.”
“두란? 파엘? 아, 그 애송이들? 허엇! 진짜야? 진짜였다고! 이런 미친! 그딴 생각도 못 할 것들이…… 응? 잠깐! 잠깐만! 생각, 생각하고 있다고! 잠깐만! 난 아냐, 아니라고!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도울게, 내가 그 미친놈의 정체를 밝혀낼게! 눈이 필요하다고, 난 눈이 정말 소중해! 안 돼, 내 미녀들!”
벡커드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떠들다가 파쿠란의 손가락이 눈알에 닿는 것을 보고 느끼며 당황해서 고개를 뒤틀며 외쳤다.
―이 녀석, 눈알이 파여도 미녀를 볼 수 있다면 괜찮다고 할 놈인가?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속삭였다.
‘야, 눈알 파냈는데 보긴 뭘 봐. 그냥 이상한 아저씨야. 아주 많이 이상할 뿐이지.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일에 휘말린 건지 모르겠군.’
투란은 이자닌이 무엇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페브라 왕도에 왔는가, 그 위험이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슬슬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장은 이 벡커드란 이상한 아저씨가 이모저모로 매우 해로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