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8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83)
“하아……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느닷없이 찾아와서 이러니 내가 적응할 틈이 없어서 이러잖아. 자자, 침착하게 얘기해보자고. 정말로!”
파쿠란의 손이 눈동자에서 떨어지자 겨우 여유를 찾은 듯, 겨우 주변 상황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처럼 벡커드가 말하고 있었다. 그 내용이라는 것은 겨우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나름대로 진지한 표정과 태도, 말투였지만 밧줄에 묶여 강제로 앉혀진 다음에 그러니 뭔가 어긋난 분위기만 한층 더 짙어질 뿐이었다.
투란은 그런 벡커드가 재미있다 여겼지만, 이자니는 단검을 뽑아 그 턱 아래를 긁적이는 시늉을 하면서, 깨끗하게 턱 아래를 면도(面刀)시키다가 실수로 핏방울을 두엇 뚝뚝 떨구는 상처를 남기면서 사납게 윽박지를 뿐이었다.
“장난쳐? 거짓말하려니 우리가 얼마만큼 아는가 가늠해보고 싶으시다는 거야, 지금? 벡커드, 그런 놀이는 길바닥에 구르면서 정신 못 차리는 애송이랑 하라고! 얼른 불어! 마지막 기회야!”
“장난하자는 거 아냐! 알았어, 알았다고! 일단 내가 아는 거 말할 테니까, 들으라고 좀!”
까칠한 수염을 밀고 나서 살살 턱을 뚫을 것처럼 따끔거리며 쿡쿡, 점점 깊이 찔러오는 단검에 벡커드가 꽥꽥거렸다.
그 표정을 보고 파쿠란이 이자닌에게 말한다.
“이자닌, 잠깐 들어보자고.”
이자닌이 단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섰다.
문득 투란은 이자닌과 파쿠란이 벡커드의 손발이 닿지 않는 범위까지 확실히 물러나 자리 잡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법이 걸린 밧줄로 묶어놨지만 전혀 벡커드를 얕보거나 방심하고 있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이를 아는 순간 투란은 조금 의아했다.
‘어라, 내가 어떻게 이 간격을 정확하게 잰 거지?’
―벡터 칼크를 썼구만, 왜?
‘아, 나도 이제 막 쓰는 거야?’
―헛소리하지 마. 영역을 가늠하는 또 다른 사고를 활성화해 놓고는! 그새 또 잊었냐?
‘엉? 아, 그랬나.’
차분히 벽에 기대면서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는 모습으로 투란은 머리를 긁적거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자닌과 파쿠란이 드러내는 장난처럼 보이지만 장난이 아닌 그 태도에 투란도 마음 한편으로 동조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뒷골 한구석에 살짝 숨겨놨던 ‘투란’이 활동하며 범위와 간격을 가늠하고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벡터 칼크’의 연산(演算)을 하는 중이고!
이렇게 지켜보는 이들을 쭈욱 둘러본 벡커드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고, 오랜만에 만나 이런 분위기란 것이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거 너무한다는 거 알지? 좋아, 사과는 나중에 받기로 하지. 아, 얘기하잖아! 들어, 들으라고! 젠장, 대체 무슨 일인가 모르겠지만…… 그래, 정말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가 난 몰라! 그러니까 무엇보다 먼저 짚을 일은 왜 이자닌이 여기, 지금 이 시기에 온 거냐부터겠지만……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파쿠란, 이번이 여기서 세 번째 길드 회합인 거는 알지? 그래, 한곳에서 연이어 세 번째인 회합이지. 이다음에는 누가 뭐라 해도 다른 곳에서 회합을 열어야 하고 말이야. 덕분에 지금 길드 돌아가는 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쪽은 대부분 오지 않는 회합이기도 해. 어쨌든 다음 회합에는 한번 싹 갈아엎어지니까, 굳이 지금 오는 것보다 한 오륙 년 더 배 째고 기다리겠다는 거지, 뭐……. 암튼, 내가 너네 오는 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고 말이야. 너네 정말 이상한 때에 이상한 쪽에서 툭 튀어나온 거라고, 그래 내 입장에서는 말이야! 덕분에 이 꼴이잖아, 거짓말 아니라고! 어쨌든…… 이곳 상황에 대해서 말하자면, 별로 변한 거 없어. 두 번째 회합 때, 이자닌이 여길 떠날 무렵에 시작된 일이 더 크게 번창한 채이고 앞으로 계속 번창할 것 같은 상황이란 거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말할게, 말한다고! 젠장, 너무하잖아!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이자닌이 파쿠란의 호위를 받으며 떠난 다음에 회합의 결정은 그대로 진행됐어. 쾌락의 전당이랑 손잡고 뒷골목을 장악하고, 장물아비들을 모조리 길드 소속으로 삼고…… 거부하는 장물아비는 가차 없이 응징했지. 상아탑의 풋내기 마법사도 약점을 잡든가, 유혹해서 꽤 많이 포섭해놔서 이제는 슬슬 중진으로 올라간 마법사와 거래도 가능하게 해놨고 말이야. 그 결과로 지금 페브라 왕도…… 아니, 왕국 전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정도로 도적 길드가 세를 불렸지. 그야말로 이 나라 그림자를 지배하는 권세가 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말이야. 그 힘을 바탕으로, 그 힘을 믿고 아예 귀족 신분으로 나서는 녀석들도 꽤 생겨났어. 음, 이건 한 삼사 년 사이의 일이니까 너네한테는 낯선 이야기가 되려나? 들은 적 없어? 그럼 설명을 조금 더 해야겠네. 그니까 일단 귀족이라면 장물아비의 호화로운 고객이잖아, 어쨌든 말이야. 그쪽으로 거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귀족 집안에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으면 유리하지. 예전에는 그냥 적당한 귀족에게 접근해서 매개자로 쓰고 싹 끊는 방식을 선호했지만, 알다시피 그러면 거래가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매개자를 선별하는 게 또 골치 아프잖아. 한창 번창하고 있는데 그게 좀 귀찮겠냐고. 아무튼 번창하는 도적 길드, 장물아비들의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서 아예 귀족 신분의 길드 멤버가 필요하다고 이전 회합에서 누가 강력하게 주장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진 거야. 그래서 적당히 귀족 신분을 획득하거나…… 인장과 서류를 위조해서 들키면 뒈지는 가짜 귀족도 있고, 몰락한 채로 빈민가에서 굴러다니지만 핏줄만큼은 진짜 귀족인 경우를 섭외도 했어. 어? 맞아. 쾌락의 전당 쪽에서 꽤 힘을 썼지. 거기 들락거리는 귀족분들을 꽤 이용도 했고. 덕분에 이 페브라 왕국에서는 도적 길드의 힘이 헌터 길드 이상이라고 우쭐대는 녀석들도 잔뜩 생겨났어. 음, 그게 좀 심했으려나? 암튼 그 덕분에 헌터 길드랑 이리저리 다툼이 늘어났어. 그쪽이야 상대가 우리…… 도적 길드라고는 생각도 않고 있지만 말이야. 그게 억울하다고 뻗대면서 도적 길드라고 나댄 놈들도 있기는 해. 어쩌면 헌터 길드에서도 우리 쪽 세력이 심상치 않다고 여기면서 시침 떼는 걸 수도 있고. 그게 서너 달 전까지의 평범한 상황이었어. 왜 서너 달이냐고? 그야…… 그때부터 조금 희한한 일이 시작되었으니까 그렇지. 말하고 있잖아! 아, 목말라. 그래, 얘기 다 끝나고 마실 거다! 쳇, 심술쟁이…… 어흠! 서너 날 전에 갑자기 헌터 길드 쪽에서 난리가 났어. 정확한 시기는 좀 애매하기는 한데, 갑자기 헌터 길드가 막대한 자금난에 빠졌다고나 해야 할까? 어딘가에 써야 한다면서 금전을 모으더라고. 그냥 수백 닢 수준이 아니었고 몇 천 닢 수준이란 거야.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얼핏 들리는 말로는 헌터 길드가 갈가리 찢어질 정도로 급한 상황이었다는 거야.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왕궁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흘러나왔어. 어? 글쎄? 왕궁에서도 헌터 길드처럼 금전이 잔뜩 필요하게 되었다는 얘기일 뿐이지, 자세한 내막은…… 내 담당 아니잖아! 내 취향도 아니고! 그딴 거 굳이 파헤쳐서 귀찮은 귀족 나부랭이랑 엮이고 고귀한 분들이랑 친하다고 으스대는 짓은 소름 끼친다고! 그래, 그쪽은 잘 몰라! 그래도 이번 회합에서 왕궁과 헌터 길드의 일을 다루려 한다는 소문은 들었어. 회합에 가면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 자, 이 정도면 대강 감 잡았지? 물 좀…….”
벡커드가 혼자 떠들다가 지친 모습으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이자닌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고, 파쿠란이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묶인 벡커드에게 물주머니만 덜렁 내미는 그 모습에 투란이 갸웃하는데, 벡커드가 묶인 두 발을 내밀고 물주머니를 받더니 그대로 입에 물고 있었다. 꿀꺽거리는 목젖의 움직임을 선명하게 보이면서 벡커드는 두 발을 손 대신 써서 물을 마셨다!
“뭔 잔나비 아저씨야…….”
투란이 어이없어 중얼거렸다.
―밧줄의 마법을 어떻게 느슨하게 한 거지? 파쿠란이 뭘 한 것 같지는 않았다만?
드라고니아는 다른 관점에서 물 마시는 벡커드의 상태에 의문을 품었다.
물주머니를 파쿠란에게 던지면서 벡커드가 후욱 하고 목을 축인 시원함을 토해내더니, 묻는다.
“이제 이거 풀어도 돼?”
파쿠란이 이자닌을 바라봤다.
이자닌이 간단히 묻는다.
“그거 걸었어?”
파쿠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벡커드가 툴툴거리는 소리를 낸다.
“어째 십여 년 만에 봤는데 변하질 않냐. 밧줄에다가 진실의 감별 마법 걸고 심문하고…… 너무 낡은 스타일 아냐?”
파쿠란이 피식 웃었다.
“수백 년 동안,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새로운 스타일로 그런 게 생겼으면 알려달라고.”
이 오가는 얘기에 투란은 고개를 갸웃하며 ‘진실의 감별?’이라고 되뇌는 것이 고작이었다.
벡커드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파쿠란을 향해 대꾸한다.
“없지, 뭐…… 길드 수호 마법사님이 모르는데 내가 알 리가 있겠어? 알면 내가 수호 마법사 하고 있겠지. 그래서 더 물을 거 없어?”
이에 바로 이자닌이 묻는다.
“벡커드, 우리의 적이야?”
벡커드는 인상을 구겼다.
“이자닌, 너는 미녀야. 미녀의 적은 곧 내 적이다! 알잖아?”
“닥쳐!”
이자닌이 포기했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으르렁거렸다.
혀를 날름하며 벡커드는 킬킬거렸고, 곧 투란을 바라보고 묻는다.
“저 친구는? 소개시켜줄 차례 아닌가?”
이 물음과 함께 벡커드가 몸을 일으키는데, 이제까지 단단히 조이며 묶고 있던 밧줄이 저절로 풀린 것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팔다리를 뻗고 기지개를 켜는 시늉을 하는데, 그 몸에서 우득거리며 뼈마디 울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퍼져나올 정도였다.
파쿠란이 피식 웃으며 투란을 손짓하며 말한다.
“이쪽은 투란. 이자닌의 호위로 고용한 헌터…… 몬스터 헌터야. 내가 골랐어. 투란, 이 변태는 벡커드. 여기 퍼브 마스터이고, 지켜본 그대로 미녀에게 정신 못 차리는 변태다.”
“야, 뭔 소개가 앞뒤로 변태로 가득해? 진짜라고 착각하겠다! 어이, 투란. 마법사의 허튼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 난 자연스럽고 당당한 사나이, 벡커드! 사나이라면 당연히 미녀에게 관심을 보이며 보살펴 줘야잖겠어? 음, 그래! 내가 바로 그런 사나이 벡커드야. 이자닌, 뭘 모르는 저 어린 친구 투란보다 내게 더 의지해줘!”
벡커드가 가슴을 두드리며 외치는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투란은 흘러내린 밧줄을 보고 파쿠란을 봤다. 설명해달라는 그 눈길에 파쿠란이 말한다.
“이 변태의 말은 무시해도 된다. 밧줄은 이 녀석이 우릴 해코지 할 생각이 없고, 여태 나불거린 소리가 뭘 감추려고 꾸며낸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에…… 덤으로 이 녀석이 변태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길드의 간부층이라서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풀어낼 수 있는 거야. 그 지식은 길드의 비밀 중 하나니까 묻지 마.”
“진실의 감별? 그 마법이 비밀인 거예요?”
투란이 불쑥 물었다.
파쿠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냥 마법이야, 상아탑에서 흘러나온 심문 마법이지. 거짓말을 하면 밧줄이 조여들고 말하는 게 진실이면 조금 느슨해져. 풀리지는 않고 말이야. 그걸 저렇게 푸는 방법이 비밀이지. 자, 그러면…… 이자닌, 어쩔 거야?”
투란에게 대답하다가 파쿠란은 이자닌에게 묻고 있었다.
이자닌은 생각에 잠긴 듯,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벡커드가 그 틈을 채운다는 것처럼 파쿠란에게 묻는다.
“그런데 정말 왜 온 거야? 추억을 되새기려 온 거는 아닐 테고…… 무슨 일이야?”
“라비엔에서 우두머리 노릇 하던 터프넥이 털렸다, 일단은 그걸로 핑계가 되겠지?”
파쿠란의 대답은 조금 무성의하고 심드렁했다.
벡커드는 눈을 깜박이며 바로 고개를 젓는다.
“그 미친 요새의 얼간이가 뒈지든 말든 여기 신경 쓸 녀석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 정도로는…….”
“라비엔의 창고가 텅 빌 정도로 털렸다. 그 정도면 되잖아?”
파쿠란이 바로 덧붙이는 말이었다.
이번에는 벡커드도 ‘어?’ 하며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게 털릴 수가 있나? 거기가 많이 허술하다고는 해도 길드의 창고잖아? 아, 완전히 텅 빈 거야? 그러면…… 당분간 핑곗거리는 되겠네. 그럼, 핑계는 그렇다 치고…… 진짜 이유는 내게 말해주지 않을 거야?”
중얼거리는 채로 나름대로 납득하겠다면서도 벡커드는 다시 묻고 있었다.
파쿠란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자닌을 흘깃하는 눈짓을 했다.
다음 이야기는 아무래도 이자닌이 직접 하든가, 허락해야 하겠다는 파쿠란의 태도였다.
벡커드가 혀를 차고 머리를 긁적였지만 여전히 생각에 잠긴 이자닌은 뭐라 말해줄 낌새가 없었다. 그래서 벡커드의 눈길은 투란을 향했고…….
“우리 수호마법사가 고른 몬스터 헌터께서는…… 사람은 죽여봤나? 이자닌처럼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들러붙으려는 짐승들이 제법 사람 시늉을 하는데 말이야, 팍팍 죽여야 할 수도 있거든. 사람 죽여봤나, 투란?”
장난처럼 묻지만 장난기가 없는 물음을 꺼내고 있었다.
투란은 그 물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파쿠란이 대신 대답한다.
“사람 죽이라고 고용하지 않았다. 투란, 대답할 필요 없어.”
“중요한 일이잖아! 쳇.”
벡커드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투란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눈만 깜박일 뿐이다.
참 이상한 걸 묻고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