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8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84)
‘진짜 이상한 아저씨네?’
―아까부터 계속 이상했잖아. 뭐가 또 이상하다는 거냐?
‘뭘 못 죽이냐고 물어보냐고…….’
―음? 그건…… 경험해본 적이 있나 확인하는 거 아닌가?
‘어? 그래도 몬스터 헌터한테 그런 걸 묻다니, 바보 같잖아.’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상대봤냐는 말이었잖나?
‘사람 껍데기 뒤집어쓴 몬스터가 한둘이냐? 묻는 게 이상하잖아.’
―그냥 순수한 사람을 죽이는 거는 좀 다르게 여기는 것인가?
빠르게 주고받는 이야기 끝에 드라고니아도 결국 투란의 의문에 동참하는 듯했다. 달리 생각할 여지를 찾을 수가 없으므로!
이렇게 투란이 의아해하는 사이에 벡커드는 파쿠란에게 투덜거리는데…….
“뭘 묻지를 못하게 해! 중요한 거잖아! 갑자기 징징거리면서 몬스터도 아닌 사람을 어떻게 죽여요, 하면 어쩔 거야! 역시 이자닌을 지키는 일은 내가 전담을 해야 한다고! 나 못 믿어! 어허, 맹세하라면 맹세할 수 있어 이자닌이 이 왕도에…… 아니, 오늘부터 페브라 왕국에 머무는 동안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킬 수 있다고 맹세할 수도 있다니까! 날 믿으라고! 그 누구도 이자닌에게 손댈 수 없게 지켜준다고 맹세할 수 있다고! 이렇게 맹세를 하는데도 못 믿…….”
“라누엘 어디 갔어?”
찌푸린 표정으로 듣던 이자닌이 갑자기 말을 끊으며 물었다.
그 물음은 파쿠란이 고개를 살래살래 젓게 했고, 벡커드를 움찔하게 했다.
이자닌은 한숨을 쉬며 다시 묻는다.
“어디 갔는데 시답잖은 맹세를 그렇게 당당하게 하는 거야?”
투란은 새로운 이름 ‘라누엘’에 어리둥절해서 파쿠란을 바라봤다.
이자닌이 한 말은 그 ‘라누엘’이 있으면 지금 벡커드의 맹세는 나올 리가 없다고 확신하는 이야기였고, 벡커드는 이를 바로 부정하지 못하는 낌새잖은가. 그럼에도 잠깐 헛기침을 하더니, 벡커드는 변명하듯이 대답을 한다. 아무래도 쏘아보는 이자닌의 눈길에 버티지 못하겠다는 모습이었다.
“어, 그게…… 한 일 년? 아니, 이제 이 년 정도 되었으려나? 페브라에는 더 볼일 없다고…… 여기 말고 어디든 이라면서 딴 나라로 갔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굉장히 슬픈 날이었지.”
“누가 슬퍼? 너 아니면 라누엘?”
이자닌이 낯을 구긴 채로 물었다.
파쿠란도 갸웃하며 벡커드를 바라봤다.
투란은 슬쩍 ‘라누엘이 누구?’라며 웅얼거렸지만 대답은 못 들었다.
벡커드가 가슴을 두드리면서 당당하게 대답하는데…….
“그야 내가 슬펐지! 당연하잖아! 라누엘 같은 미녀는…… 어흠! 흠!”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한층 더 싸늘해지는 것을 느낀 듯, 말을 맺지 못하고 헛기침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투란이 그 표정에 키득거리며 ‘라누엘도 미녀구나.’라고 중얼거렸다.
파쿠란은 혀를 차는 소리부터 내고 말한다.
“아예 돌아오지 않는다니까 마음껏 맹세하는 거였나.”
이자닌은 이제 벡커드는 전혀 관심없다는 듯이 다시 묻는다.
“그래서 지금 어디 있는데? 돌아오지 않아도 어디 있는가 정도는 일부러라도 탐문해서 듣고 있었을 거잖아.”
고개를 저으려던 벡커드는 연이어 추궁하는 말에 움찔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어…… 듣고야 있지…… 음, 그러니까 라누엘은…… 꽤 멀리 갔어. 칠왕국에서 벗어났다더라고…… 들은 말로는 바로크가 아니면 기가둠 쪽이라는데…….”
“똑바로 말해. 나한테 라누엘 행방을 감춰서 어쩔 건데?”
이자닌이 어이없다는 듯, 조금 성난 목소리로 다그쳤다.
벡커드는 슬쩍 몸을 웅크리는 태도로 우물쭈물 대답한다.
“아니, 뭐…… 딱히 감추려는 거는 아니고…… 그냥 행방이 애매하니까…… 떠날 때 소문만 잔뜩 있고 말이지. 떠날 때도 배를 탔다는 얘기랑 검은 산맥을 넘어갔다는 얘기…… 북쪽 여로를 통해 바로크 왕국으로 길고 먼 여정을 시작했다는 얘기까지 있어서…….”
“소문은 놔두고, 넌 알잖아!”
이자닌이 매섭게 추궁했다.
당연히 벡커드는 미녀인 라누엘에 대해서 소문이 뭐라 하든 간에 알고 있어야 하며, 알 것이라는 말투였다.
파쿠란이 쓴웃음을 흘렸고, 투란은 갸우뚱하며 벡커드를 바라봤다.
입술을 잠시 혀로 핥으면서 뭔가 고민하는 흉내를 낸 벡커드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라누엘은 칠왕국뿐이 아니라, 이 춤추는 산맥은 어디라도 싫다고 했어. 여기, 페브라 왕국에서 검은 산맥만 넘으면 춤추는 산맥을 벗어나는데 왜 여기 들러붙어 살아야 하냐고 굉장히 짜증을 냈었지. 아, 그건 이자닌도 몇 번 들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 왕도를 떠날 때 라누엘이 말한 거는…… 똑같은 말이었지만 그전이랑 완전히 다른 각오를 담은 말이었어. 그래서 검은 산맥을 돌파해보겠다고, 용족과 요정이 사는 다른 대지(大地)에 서보겠다고 했었어. 하지만 실패했지. 검은 산맥은 춤추는 산맥의 북서 경계면이고, 거길 돌파하는 거는 이미 경로를 확보한 특별한 상단만이 가능하다는 게 공갈이 아닌 것만 확인하고 돌아왔어. 그다음에는 아예 평원의 제국 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바로크 왕국으로, 꽤 긴 여정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나마 오가는 여행자도 제법 많고, 그럴듯한 상단도 몇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보려 했어. 그것도 실패했는데, 그건 순전히 길드에서…… 맞아, 우리 쪽의 누군가 손을 쓴 거야. 어? 난 아냐! 내가 왜 미녀의 길을 막아! 왜 안 도왔냐고? 그야…… 라누엘이 거절했단 말이야! 거절한 미녀에게 들러붙다니, 내가 그런 추잡한 놈일 리가 없잖아! 암튼! 그게 누군지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누군가 라누엘을 여기서 떠나지 못하게 훼방 놓고 있다는 일이 분명해진 거는 그때부터야. 그래서 라누엘은 소문을 흘렸고…… 쳇, 맞아 내가 좀 부추기고 도운 소문이야. 그다음에 성공적으로 자취를 감췄지. 마지막으로 내게 보내온 소식은…… 바다 갈매기를 이용한 연락이었어. 그래, 뱃길을 이용해서 기가둠 왕국으로 갔을 거라고 추측해. 그다음부터는 소식 없어. 내 인생에 미녀 한 명이 사라진 슬픈…….”
“회합의 의제가 뭐야?”
이자닌이 슬슬 넋두리로 빠지려는 벡커드를 향해 매몰차게 물었다.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벡커드는 머뭇거리지 않고 하던 말을 바꿔 대답한다.
“독립. 칠왕국 영토 내의 독자적인 운영. 늘 하던 소리가 맞아. 하지만 이번에는 십오륙 년을 쌓아온 토론의 결판을 내자는 거지. 싫다는 녀석들은 모두 밀어내고, 칠왕국 내에서 완전히 새로운 도적 길드를 만들자는 건데…… 이번에는 토론만 하고 끝낼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어.”
이자닌이 입을 꾹 다물었고, 대신 파쿠란이 묻는다.
“어째서? 이전과 다른 뭐가 있나?”
벡커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곧이어 어딘가 묘하게 민망한 표정, 슬그머니 새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모습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내며 벡커드가 웅얼거리는 말투로 대답한다.
“그게…… 이쁜 얼굴도 별로 없고, 미녀라고 할 만한 멤버가 모여서 떠드는 게 아니라서…… 그냥 알아서 결정하라고…… 내가 하는 일에 어쩌고저쩌고하는 것만 아니면 그냥 적당히 받아들이겠다고 전하고서…… 음, 뭐…….”
“전혀 관심 없었구만.”
한숨처럼 이자닌이 말했다.
벡커드는 그저 히힛거리는 웃음만 흘렸다.
파쿠란이 낯을 조금 구긴 채로 다시 묻는다.
“이자닌에게는 정보가 필요해. 거의 십여 년 만에 돌아온 거니까. 상황을 제대로 알아낼 방법은 있나?”
“그야…… 텔리엄에게 물어보면 알지 않을까? 그 녀석, 엄청나게 열성적인 독립파니까. 반대하는 녀석을 어떻게든 설득하겠다고 엄청 돌아다니는 것 같았어. 낯짝 보기 싫어서 나야 시끄럽다고, 그냥 알아서 하라고 쫓아냈지만…… 우리 애들이 텔리엄이랑 얘기를 잘해야 나중에 좋은 몫을 받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는 걸 보니, 텔리엄에게 물으면 확실히 알 수 있…….”
“이 상황을 일으키는 원흉이란 얘기잖아, 그거!”
이자닌이 울컥해서 소리쳤다.
벡커드가 눈을 끔벅이다 파쿠란 쪽으로 눈짓하며 묻는다.
“반대파였어……? 이자닌은 섀터드 세븐 길드 독립을 반대하는 거야?”
“왜? 겁나? 그냥 적당히 붙어서 찬성하고 있는 일에 내가 반대한다니까, 날 막고 싶어?”
이자닌이 조금 삐뚤어진 말투로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순간, 벡커드가 늠름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자닌이 옳아! 이건 막아야 마땅한 일이야! 나는 이자닌 편…….”
퍼억!
이자닌의 주먹이 바로 벡커드의 볼을 후려갈겼다.
“하지마, 이 변태야! 그냥 닥쳐! 내 적이라고 해!”
“꽥, 컥! 난 이자닌 편이야! 죽어도 이자닌 편에서 죽을…… 컥!”
떠들던 벡커드의 목으로 이자닌의 손날이 꽂혔다.
투란이 보기에 제법 심한 상처가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센 타격이었다.
하지만 파쿠란이 심드렁하니 말하는 것처럼, 벡커드에게는 별일 아닌 모양이었다.
“적당히 해라, 자꾸 떠들어서 헷갈리게 하지 마. 이자닌, 그만 패라. 죽일 생각이면 깨끗하게 멱을 따고 머리를 잘라. 그래야 죽는 놈이란 거 알잖아. 벡커드, 입 다물어! 지금 바쁘거든!”
벡커드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투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짓고 외칠 뿐이었다.
“이자닌, 날 죽이는 방법을 알면서도…… 으하핫, 역시 나의 미녀! 난 이자닌 편이야! 뭐든 말해, 목숨을 걸고 도울 거야! 음하핫!”
“제발 닥쳐!”
퍼억!
못참겠다는 듯이 내지른 이자닌의 발길질이 다시 벡커드의 가랑이 사이를 팼다.
죽지는 않아도 고통은 어쩔 수 없는 듯, 벡커드는 푹 엎어지면서 바들거렸다.
그 사이에 잠시 찾아온 듯한 고요함 속으로 파쿠란이 말한다.
“텔리엄의 성격을 고려해볼 때, 뒤에 길리엄이 있다고 봐야겠지. 이 상황은 길리엄이 주도하고 있을 거야. 나서지 않고 뒤에서 말이야. 일이 끝난 다음에 텔리엄이 권한을 쥐면, 직접 그 권한을 양도받든가 아니면 텔리엄을 처분하겠지. 그게 녀석의 방식이니까.”
이자닌이 씩씩거리던 숨을 고르면서, 잠깐 여기 벡커드가 없다고 되뇌다가 파쿠란에게 말한다.
“대체 왜 그렇게 죽자고 독립, 독립하는 건데? 산맥의 도적 길드가 칠왕국 내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이쪽 지부에 뭐라 한 적도 없잖아? 여기 따로 놀든 말든 놔두는데 왜 기어코 독립적인 길드가 되고 싶다는 거냐고. 이해가 안 가!”
파쿠란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길리엄은 로그메이지니까. 길드에 소속된 로그메이지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여기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길드에 소속된 마법사로서 춤추는 산맥의 어딘가에서 긴급한 일이 생기면 긴 여행을 마다 않고 나서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게 싫은 거지. 자신의 기반을 여기 아주 잘 다져 놓을수록 여기서 끝까지 버티고 싶은 기분인 거야.”
“부르지도 않잖아! 춤추는 산맥 어딜 가도 여기보다 못한 길드 지부는 없다고! 알아서 해결하는데 왜 그래!”
이자닌은 더욱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파쿠란이 조금 더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말한다.
“마음에 가시가 박힌 느낌이니까. 마법사로서, 로그메이지이든 스펠 캐스터이든 길드에 소속된다는 거는 맹세와 함께 그런 감각을 품는 거다. 마법을 쓸 때마다 자신이 길드 소속이란 것을 되뇌게 되는 거지. 물론 그 감각은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걸 족쇄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 거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의 문제이기는 한데…….”
“길드 때려치우면 상관없는 거잖아. 그거, 길드 때려치우면 바로 사라지는 감각이잖아.”
“이자닌, 그 감각과 함께 향상된 마법의 기량도 사라진다. 길드에 소속되기 이전의 단계로 되돌아가.”
“쳇, 그래서 욕심이 가득한 로그메이지가 제멋대로 활개치고 싶어서 독립, 독립 노래를 발광을 한다는 거야? 일리가 있네, 조금!”
이자닌의 말은 거칠었다.
이번에는 파쿠란도 못 말리겠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낑낑거리며 바닥에 엎어진 벡커드를 보는 척하던 투란이 조심스럽게 둘을 둘러보며 묻는다.
“적이 있는 거죠? 로그메이지가 위험한 적인 거죠?”
파쿠란이 이자닌을 바라봤다. 어찌 대답할 것인가를 떠넘기는 눈길이었다.
이자닌은 투란을 마주 보면서 대답한다.
“아직 아냐. 지금 나온 얘기는 그냥 그렇고 그런 추측이야. 어쩌면 길리엄이 문제가 아니고, 텔리엄이 로그메이지인 친척 동생을 위해 나선 것일 수도 있으니까. 길리엄은 그냥 그런 텔리엄이 하자는 대로 돕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 그리고 다른 놈들의 사정도 확실하지 않아. 왜 텔리엄이 하자는 대로 하려는 건지, 각자의 입장이 뭔가 확인해봐야 해. 그래야 이 망할 상황이 확실해지고…… 어떤 놈이 적이 될지 분명해질 거야.”
투란이 가만히 듣고 있는데, 발딱 일어난 벡커드가 엄지를 척 치켜올리면서 이자닌을 향해 외친다.
“역시 미녀!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 껙!”
이자닌의 발이 가차없이 벡커드의 이마팍을 밟아 눌렀다.
“이건 무시해.”
사나운 말에 투란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