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9)
속이 텅 빈 가죽 포대에 불과한 악마의 심장은 금방 갈기갈기 찢기고, 뜯겨 나갔다. 도무지 늑대의 손톱을 버텨 내지 못하는 꼴이었다. ‘이상한 심장’의 그냥 뾰족하기만 한 듯한 타원형 손톱으로도 마구 가르고 찢을 수 있었다. 이 부풀고 꺼지기를 거듭하는 악마의 심장은 확실히 뭔가를 삼키고 강화된 껍질을 지니지 못했다!
물살을 출렁이게 하며 치솟은 덩굴줄기들도 투란의 광폭한 두 손을 어찌하지 못한 채로 잡혀 찢기며 흩뿌려지고 말았다.
‘대체 뭘 휘감아 들러붙었냐고!’
투란은 그랑츄의 발보다 더 컸던 주먹을, 그 주먹이 매달린 검고 하얀 얼룩이 진 팔을 흘깃하면서 더 활발하게 악마의 심장을 찢었다.
커다란 알뿌리, 계속해서 기어오르려는 줄기까지 모조리!
포대같이 부푸는 악마의 심장에 감긴 괴물의 형태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거의 투란이 자기 몸의 두 배 정도 되는 부피를 찢어 낸 다음이었다. 물속에 축 늘어진 꼴로, 아래편에 굵은 덩굴줄기가 받쳐 주는 형태로 죽어 있었다.
‘오우거? 아니, 다른 건데? 아, 이런 놈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투란의 기억이 가슴속에서 더듬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형상에서 하얗게 얼룩으로 보이던 것은 몸에 돋은 털이었다.
머리통 위에는 늘어진 갈기처럼, 팔뚝과 손등에는 긴 털장갑처럼, 허리에서 그 아래로는 바지처럼.
춤추는 산맥에서 보통으로 여겨지는 것보다 훨씬 큰 그랑츄, 2미터 70센티짜리를 무슨 어린애처럼 만들어 버리는 체격과 너무 두꺼워서 전체적인 형상이 뭔가 몽땅하게 짧은 느낌을 주는 놈.
‘오러 몽거!’
투란의 뇌리에 가슴에서 찾아낸 기억이 치밀어 올랐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오우거일지도 몰라! 지옥에서 태어난 놈이니까 그렇게 특별한 건지도 모르잖아!”
열 살이 되기 전에 투란은 마법사가 끌고 다니는 오우거란 것을 봤다.
마법사가 직접 제작했다고 으스댔지만, 꽤나 품질이 나쁜 마법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겨우 2미터짜리였고 비리비리해서 짐꾼으로 부리는 것이 고작이라고 소곤거리는 이야기는 어린아이들 귀에도 잘 들렸다.
제대로 된 마법사가 마법으로 제작하는 오우거는 ‘가디언 오우거’, 그래서 마법사 계통의 사람들은 그냥 ‘가디언’이라고 부르며 기본적으로 3미터 이하는 없다고 했다. 그건 짐꾼이 아니라, 마법사를 지켜 주는 진짜 가드 구실을 하는 놈이었다.
그렇게 마법사의 가드, 가디언으로 만들어진 오우거가 주인을 잃었을 때는 대부분의 경우 제작한 마법사의 뜬금없는 죽음이라든가 혹은 ‘마력 소실에 따른 제어 불가’라는 뭔 소리인지 모를 상황에 처한 탓에 풀려나 산이나 숲으로 도망친다고 했다. 그런 놈이 바로 숲과 산을 헤집고 다니는 몬스터, 오우거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인간과 접촉하는 오우거는 대부분 그렇게 ‘풀려난 오우거’라고 했다.
투란이 좋아하는 오우거의 전설도 있었다.
애초에 자유롭게 숲에서 태어난 오우거, 요정의 절규를 들은 숲이 낳은 괴물이라는 전설이다. 처음부터 3미터 20센티를 넘는 거대한 체격을 지닌 채, 요정을 지키기 위해서 숲이 낳은 진정한 괴물! 마법사는 그런 숲의 능력을 질투하고 시기하며 동경해서, 요정의 입장이 되고 싶어서 ‘가디언 오우거’를 일으키는 특별한 주문을 만들었다고 하잖던가!
그렇게 요정과 엮인 전설의 오우거는, 거의 인간과 만날 일이 없다고 했다.
요정이 사는 숲에는 인간이 들어갈 수 없으므로.
그런 숲이 어딘지 아는 인간도 없지만 말이다.
‘이건 분명히 오러 몽거야!’
투란은 잠시 멍하니, 악마의 심장의 찢긴 조각이 꿈틀거리면서 열심히 메우려고 하는 커다란 구멍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확신했다.
춤추는 산맥을 다 뒤져도 겨우 서너 마리밖에 발견된 적이 없는 괴물이었고, 누군가의 손에 잡힌 적은 없다고 했다. 몬스터 중에서도 ‘오러 로드’라고 일컬어지는 희귀종이면서, 다른 ‘오러 로드’와 다르게 생명을 흉기로 사용하는 괴력을 자랑한다고!
검은 살갗에 흰 털이 머리와 허리, 손발을 무슨 가죽 갑옷의 일부인 양 덮고 있는 꼴을 한 오러 몽거는 바로크 왕국의 오래된 성벽을 몸통으로 들이받아 단숨에 구멍을 냈다고 했다.
오래된 성벽에 걸린 정말 오래된 마법조차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이놈이 그놈인가?’
생김새는 소문이 쫘악 퍼진 그대로였다.
춤추는 산맥 깊은 곳에 살며, 어쩌다 모습을 드러내지만 잡히지 않은 채로 소문만 무성하게 뿌려 대는 몬스터.
그런데 그런 놈이 왜 가슴팍에 구멍이 뻥 뚫린 채로 여기 자빠져 있을까?
그 구멍은 거의 사람 하나가 들어가 앉아도 넉넉할 정도로 컸고, 원래라면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심장의 흔적도 없고, 그냥 텅 빈 채로 관통된 구멍이었고 그 자리를 메우려고 악마의 심장이 발버둥 치는 꼴만 남았다.
‘딴 놈일까?’
투란은 바로크 왕국에서 화가 난 채로 열심히 쫓았다는 오러 몽거가 과연 이놈인가 아닌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생김새만으로는 소문의 그놈인 듯도 한데, 이렇게 죽은 꼴을 보니 왠지 아닌 것도 같았다. 기억나는 소문을 열심히 더듬어도 이런 놈이 세상에 딱 한 마리뿐이란 말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놈은 그 소문의 굉장한 놈이랑 다른, 경험이 부족하든가 다 자라지 못한 애송이 오러 몽거일 수도 있잖은가?
‘딴 놈이겠지.’
이렇게 복잡한 투란의 머릿속과 다르게, 투란의 가슴속에서는 왕성하게 악마의 심장이 맥동하며 투란의 온몸에 잔가시를 잔뜩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거기에 닿는 찢긴 악마의 심장을 그대로 삼키고 싶어 하는 본능을 계속 투란에게 호소하면서!
결국 어떻게 해도 알 수 없는 사연에 대한 호기심을 접고, 투란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하기로 했다.
두근, 쿠쿵!
악마의 심장과 ‘이상한 심장’이 강렬하게 연동되었고, 늑대의 팔에서 작은 심장이 떼로 요동을 쳤다. 마치 투란이 결정을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투란은 늑대의 손을 찢고 파헤치고 있는 악마의 심장에 붙였다.
붉은 털이 하늘거리며 무성한 잔가시가 길게 실 가닥처럼 늘어지며, 구멍 속을 채우고 있는 악마의 심장에 스며들었다. 이윽고 악마의 심장이 늘 하던 대로 서로의 힘을 재고 다투려는 찰나였다.
“엥?”
투란의 입에서 저절로 움찔하는 소리부터 새 나왔다.
깊은 피로감이 몰려든다!
마치 이제 모든 것을 놓고 가도 된다는 듯, 전부 포기해 버린 듯한 지치고 힘든 느낌이었다.
이것이 오러 몽거의 심장을 차지하려던 악마의 심장이 전하는 감각이라니!
‘심장을 먹지 못한 채로 힘줄과 핏줄만 헤집고 다닌 탓인가?’
투란이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은 이뿐이었다.
악마의 심장이 다른 심장을 먹지 못한 채, 힘줄과 핏줄에서 얻어 낸 것이 바로 저 굵어지는 방식과 강인한 특성의 일부.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이 오러 몽거의 심장이 되려고 발버둥 치다가 획득한 재간이 바람을 삼켜 가는 넝쿨 가닥을 밀어 넣는 방법이었다. 보다 가늘게, 보다 세밀하게 어떻게든 바늘 끝처럼 밀고 들어가기 위해 쥐어짜 낸, 본능의 선택이었다.
‘아, 그래서 그렇게 부풀다 줄었다 한 건가?’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오러 몽거였기에 그 숨 쉬는 방식도 엉뚱하게 이뤄진 모양이었다. 물속과 밖을 잇는 바람 주머니가 되어 허우적대는 식으로.
쿠웅!
악마의 심장이 강하게 뛰며 이런 투란의 생각을 거부했다.
‘응? 왜?’
곧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오러 몽거의 구멍을 메운 녀석을 흡수하며 전해지는 것을 느끼고 알았다. 이 녀석은 오러 몽거의 허파, 호흡기관 쪽을 장악하지 못했다. 내장의 제대로 된 기능을 활용할 수가 없었기에, 늪과 물가를 떠다니는 악마의 심장이 사용하는 본능적인 기능을 그대로 확대해서 사용한 것뿐이다.
알고 나니, 더욱 어이없다는 기분이 투란의 뇌리로 스며들었다.
‘도대체 팔은 어떻게 움직인 거냐!’
피로에 의해 그냥 자리를 양보한 놈을 흡수해가는 채로, 악마의 심장이 본격적으로 굵은 덩굴줄기를 향해 길고 가는 넝쿨의 실 가닥을 뿌리면서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
물속에 깊이 잠겨 있던 굵은 덩굴줄기들이 요동치며, 물살을 헤집고 뒤틀어 댔다. 물결이 성난 듯이 출렁거리며 덩굴줄기의 굵은 움직임을 따라 소용돌이치듯이 오러 몽거의 4미터를 넘는 몸뚱이 근방을 두드리며 몰려다녔다.
굵은 덩굴줄기는 그 굵기의 뱀 수백 마리가 몸을 감으며 뭉치듯이 오러 몽거의 몸을 받쳐 올렸고, 6미터의 지름을 자랑하는 둥글고 작은 섬의 주춧돌이 되어 갔다. 그러고도 남아서 넓게 흩어지는 덩굴줄기들은 곧 마르기 시작했고, 시들 듯이 오그라들었다. 그 모습과 함께 섬의 기반이 되어 간 굵은 덩굴줄기들은 생기를 뿜어내면서 더욱 단단히 뭉쳐 가는 듯 보였다.
투란은 구멍 곁에 몸을 바싹 붙이고, 늑대의 손을 그 구멍에 밀어 넣는 자세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모습이었다.
아직은 달이 뜬 하늘이었고, 아침 해가 뜨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무렵이었다.
‘이렇게 덕을 보는구나.’
이런 생각이 저절로 투란의 가슴속에서 피어났다.
이 텅 빈 큰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악마의 심장이 여기 자리 잡고 버틴 시간은 꽤나 길었다. 낮과 밤을 헤아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 악마의 심장이 지치고 힘겨워 하며 자신에 접촉한 악마의 심장을 향해 바로 피로감을 토할 정도로, 길고 오랜 세월이었다.
그 세월 동안 오직 몬스터의 본능에 따라, 미약하게 긁어낸 오러 몽거의 살점을 씹고 삼키면서 넝쿨을 키우고 확장하며 어쩌다 주변에 다가오는 짐승이나 약한 몬스터를 옭아매고 물에 빠뜨려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 버티는 시간만큼 덩굴줄기는 굵어졌고, 도대체 얼마나 그리 버티면 저렇게 굵어질 수 있는가는 짐작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바람에 ‘이상한 심장’과 연계되어 미친 듯이 맥동이 강렬해졌다고 할 수 있는 악마의 심장조차도 이 방대하게 뻗은 굵은 줄기 무리를 모두 장악하기 위해서는 꽤 오랫동안 힘겨운 꼴로 매달려야 할 판국이었다. 한데 은빛 불꽃으로 물든 늑대의 팔에서 새로 태어난 작은 심장 떼가 그 시간을 없애 버렸다.
광폭한 달빛의 마력을 한껏 섭취해서 폭발적인 충격파를 뿜어내며 장렬하게 산화하는 그 맥동이 시작되면서, 날이 밝을 낌새가 보이기도 전에 이 굵은 줄기를 모조리 장악해 버린 것이다!
너무 멀리 흘러가서 닿지 않는 줄기는 모두 끊어 내고, 이 근방에 그물처럼 퍼진 굵직한 줄기는 모두 끌어당기고, 저 밤하늘을 불태우는 광경이 그냥 시각적인 착오가 아니란 듯이 거침없이 마력을 발휘했다.
악마의 심장은 이를 이용해 줄기 속에 퍼진 양분을 몽땅 끌어당겼고, 투란의 몸에 활력을 강하게 밀어 넣었다. 달빛이 사라지더라도 몇 달은 그냥 둥실둥실 물 위를 떠다녀도 될 정도로 양분이 축적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굵은 줄기를 쉬게 하니, 남은 것은 굵은 줄기 가닥들이 똬리를 틀며 만들어 낸 섬 위에 올려진 오러 몽거와 투란뿐이었다.
촤아아아아!
얼마 동안의 굵은 줄기가 토한 격렬한 움직임의 여파로 흔들리는 물결이 주변을 맴돌았다. 그 광경을 느끼면서 투란은 조금 고민하는 낯빛을 띤 채로 오러 몽거의 구멍 난 몸을 바라봐야 했다.
‘심장이 없는 채로, 이 녀석을 삼켜도 되려나.’
악마의 심장이 내린 냉정한 판단은, 이 오러 몽거는 악마의 심장이 깃들 대상으로서는 최악의 몸뚱이였다. 심장이 없는 것이 우선 그랬고, 그 핏줄 속으로 스며드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어떻게든 그 핏줄을 바탕으로 삼아 의태를 이루고, 대강 심장 흉내를 내는 것조차 거부하는 기괴한 생명의 결집체, 그것이 악마의 심장이 오러 몽거를 판단한 결론이었다.
이런 오러 몽거를 상대한 악마의 심장은 다른 짐승의 심장을 삼킨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시체였고, 처음 닿은 대상이었기에 본능이 포기하지도 않고 그 극심한 피로 속에서도 버티게 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짐승을 경험한 놈이라면, 바로 버렸을 텐데!
하지만 몬스터 로드로서 투란은 조금 미묘한 처지였다.
힘겹게 팔을 움직인 꼴에서 보인 것처럼, 악마의 심장이 오러 몽거의 가슴 구멍에 스며들고 장악한 영역은 그리 넓지 않았다. 이 점은 악마의 심장이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는 오러 몽거의 몸 또한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악마의 심장에 의해 양분을 공급받지 않은 오러 몽거의 허리 아래가 꽤나 멀쩡했다.
상체 일부에 공급되는 양분을, 이 오러 몽거는 죽어서도 왕성하게 흡수해서 온몸으로 돌려 댄 것이다. 심장도 없는 녀석이 어처구니없는 생명력을 보인 셈이다!
촤아아아아!
돌연 물결이 미묘하게 꿈틀대는 느낌이 색다르게 투란에게 전해졌다.
뭔가 다가오는 감각에 투란의 눈길이 재빠르게 돌아갔다.
꽃봉오리 같은 것을 앞세우고, 작은 꽃줄기가 뿌리를 흐느적거리는 꼬락서니를 한 꽃송이 같은 것들이 발발거리는 꼴로 헤엄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주변을 확실하게 장악했던 굵은 넝쿨이 빈자리를 메우겠다고 오는 것 같다.
‘눈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