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9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88)
“왕도에는 도적단이 없어, 투란. 마스터 홀시딘, 도적 길드는 도시에 여러 거점을 두기는 하지만 단체로 몰려다니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마음이 맞는 녀석들끼리 뭉쳐서 무슨 단이니 뭐니 하며 패거리야 만들기는 합니다만, 그 경우에도 도적단이라고 자처하지도 않고 도적으로서의 활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득보다 뒤탈이 더 많으니까요. 그건 굳이 도적 길드의 멤버가 아니더라고 장물아비랑 거래하는 놈들이면 다 아는 일입니다. 필요할 때 간간이 파티를 맺기는 해도, 지속하지는 않는 것. 그게 도적의 기본상식입니다. 그러니, 이 왕도에서 도적단을 퇴치한다는 소리는…….”
“그 핑계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싶은 녀석들이 꾸며낸 짓이겠군.”
파쿠란의 이야기에 홀시딘이 결론을 맺었다.
파쿠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투란은 두 마법사의 고요함을 지켜보면서 얌전히 고기를 한 점씩 먹어치웠다.
금빛 풍경 속의 탁자에 놓인 고기가 반쯤 투란의 입속으로 사라졌을 때, 홀시딘이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파쿠란…… 내가 먼저 그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듯하군. 어떤가, 내게 도움을 주겠는가?”
파쿠란은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그편이 좋겠지요. 다만…… 제게 확신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오랜 탐색과 염원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니까요.”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는 거야?’
―약속의 마법을 요구하는 거다. 그저 말로만 끝나지 않도록, 홀시딘이 반드시 자신을 돕도록 말이야. 뭐, 마법으로 보증하는 약속이라고 해서 지키지 않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 대강 들어주겠지.
드라고니아의 설명은 투란에게 흉악한 마법사의 음흉한 속셈처럼 느껴졌다!
과연 홀시딘이 그런 약속을 맺고 홀랑 깨먹는 잔머리를 굴릴 것인가?
슬쩍 투란이 홀시딘을 지켜보는데, 홀시딘은 아무렇지도 않게 파쿠란에게 말하고 있었다.
“좋아, 상아탑의 홀시딘은 블랙 메이지 파쿠란의 길잡이가 되기로 약속하지. 그 염원을 돕는 길잡이. 됐지?”
“예, 그 정도면 충분하군요. 그러면, 무엇부터 도우면 되겠습니까?”
미묘하게 짙어진 쓴웃음과 함께 파쿠란이 되물었다.
이는 투란에게는 굉장히 심심한 광경이었다!
‘에? 뭐야? 저걸로 끝?’
―뭘 기대했는데? 언약(言約)을 주고받았잖아. 마력을 실은 언약이었잖아. 설마 무슨 빛이 난무하고 축제의 음악이라도 사방에서 울려나오는 거라도 기대했냐?
‘쳇.’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핀잔을 부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몸 한구석에 계약을 증명하는 문신이라고 콱 박힐 거라 기대했는데, 아무 일 없이 넘어간 것이 조금 섭섭할 뿐이므로.
―그건 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냐?
‘응? 어, 그야…… 누구였더라? 암튼, 기사인데 몬스터 사냥을 해야 한다고 마을에 찾아왔던 아저씨였을 거야. 벼락 치면서 몸에 맹약이 새겨져서 기사 때려치웠다고 했던가? 홀시딘은 마법사라서 그런 거 안 새겨지나?’
―언약의 각인을 새긴 기사라…… 흥미롭군. 하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아. 그런 각인은 대부분 생명에 제약을 걸기 위한 수단이고…… 상당히 흉악한 마법이다.
‘그래? 헤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죽어라, 하는 시점에서 충분히 악랄하잖아!
‘그야 그렇지.’
툴툴거리면서도 투란은 뇌리에 울리는 소리와 다른 홀시딘의 목소리에도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홀시딘은 파쿠란의 물음에 바로 이런저런 말을 마구 토해내고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투란에게는 뭔 소리인가 어리둥절하게 하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파쿠란은 알아들은 듯, 확인하듯이 다시 정리해 묻고 있었다.
“왕성경비대의 자금 흐름, 왕궁 구휼원(救恤院)의 활동영역과 실제 활동 내용…… 두 가지는 괜찮습니다만, 정말로 궁정 마법원과 상아탑의 교류활동과 도시 내의 평판, 매매활동까지 파헤칩니까? 그건…….”
“그게 가장 문제니까. 그 녀석들 말을 믿고 있다가 시간만 쓰고 있는 꼴이 된 거라고, 내가! 그 녀석들이 보증한 이야기를 자네가 으깨놓았으니, 어쩔 수 없어. 파헤쳐줘.”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은?”
파쿠란은 투란을 흘깃하며 물었다.
앞으로도 계속 로열클래스인 투란을 이용해 이런 식으로 대화할 것인가를 묻는 말이었다.
홀시딘은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은 얌전히 놔뒀으면 좋겠어. 놔둬도 알아서 이러고 싸돌아다니니 내가 골치 아프거든. 더 귀찮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투란! 알아들었냐!”
“내가 뭘! 쳇, 심술쟁이 마법사!”
투란이 혀를 날름하며 투덜거렸다.
홀시딘이 조금 더 발끈해서 으르렁거린다.
“얼굴 알려지면 너만 귀찮단 말이다! 그러니 가능하며 얌전히 있으라고! 너도 그저 평안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며! 그런 녀석이 이런 곳까지 와서 무슨 일에 휘말리고 있는 거냐고, 대체!”
“평범하게 의뢰를 받아 해결하며 산다고 했잖아요! 뭐, 무슨 엄청난 몬스터랑 싸우는 일도 아니고…… 쉽고 편한 의뢰로구만! 아, 얼굴은…… 가면이라도 좀 줘요! 마법의 가면으로 평소에도 딴사람 얼굴인 것처럼 하고 다니게 해주면 되잖아요! 상아탑의 마스터면서 그런 요술가면 하나 없어요?”
“이놈이 아티팩트가 무슨 장난감인 줄 알아!”
“누가 대단한 거 달랬어요! 그냥 얼굴 가리고 수상하지만 않으면 되는데!”
투란이 홀시딘에게지지 않고 반박할 때, 슬쩍 파쿠란의 손을 들어 이어지려는 홀시딘의 말을 가로막고 말한다.
“그 문제는, 아무래도 제가 해결할 수 있겠군요.”
“해결?”
홀시딘이 ‘뭔 문제?’ 하다가 갸웃하며 되뇌었다.
파쿠란은 싱긋 웃고, 소매 안에서 뭔가 끄집어냈다.
헐렁하게 펄럭거리는 작은 손수건 뭉치처럼 보이던 것이 파쿠란의 손바닥 위에 펼쳐졌다.
“이게 뭐예요?”
“이게 뭔가?”
투란과 홀시딘이 거의 동시에 물으며 갸웃했다.
어딘가 닮은꼴인 둘의 태도와 자세, 그 모습에 파쿠란은 갑작스럽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한다.
“도적 길드에서 꽤 유행했던 가면…… 투란의 말대로 요술가면이죠. 마스터 홀시딘이 보기에는 장난감이겠지만, 이 정도 물품만으로도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투란, 이걸 얼굴에 쓰면 가면이 돼. 다른 얼굴을 만들려면 떼어내고 하루 정도 뒤에 다시 쓰면 되는 마법의 가면, 하지만 너무 저급한 수준의 마법이라 요술가면으로 불리는 도적 길드의 특산품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홀시딘이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묻는다.
“이거 혹시 에모틱이 아닌가? 유명한 도적이 썼다고 들었는데?”
빙긋, 파쿠란이 웃으며 대답한다.
“유명했지요. 도적질할 때마다 꼭 들통나서 가면을 쓰지 않았으면 누군가 훤히 밝혀진 채로 바로 잡혔을 거라고, 아주 유명했죠.”
“헐? 그거 엄청나게 형편없는 도적이란 소리잖아요?”
투란이 어이없어 중얼거렸다.
파쿠란이 뭐라 하기 전에 홀시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몰래 도적질하려다가 들통났지만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어서 유명한 거야. 그때마다 옷차림을 바꾸고 얼굴도 괴상한 가면으로 가리고 그랬지만, 가지고 있는 장검만큼은 고집스럽게 같은 걸 썼거든. 잊혔던 보검(寶劍) 루미넬을 다시 끄집어낸 자가 도적이라고 상당히 화제가 되기도 했고…….”
“보검이요? 루미넬……? 무슨 마법검인가요?”
투란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대답하던 홀시딘이 멈칫하며 파쿠란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인가 알겠다는 듯, 파쿠란이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대신 대답한다.
“응, 마법검이야. 언제나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어두운 밤을 훤히 비추는 광채를 뿌려내는 칼날을 자랑하는 마법검이지.”
“우와, 언제나 날카롭고 횃불 대신 쓸 수 있는 마법검이라…… 흐흠, 꽤 괜찮은 검이…… 아니에요?”
끄덕끄덕 대꾸하던 투란은 파쿠란이 볼을 실룩이며 웃음을 짙게 띤 얼굴, 홀시딘이 한심해하며 구박하고 싶다는 듯이 바라보는 눈길에 말끝을 흐렸다. 뭘 잘못 말했기에 둘이 이러고 보는가?
―인간은 밤을 틈타서 도적질을 하지 않나? 밤을 밝게 보지 못해서 어둠을 이용하기를 즐긴다던데…… 그 도적은 어둠을 이용하지 않는 도적이었나? 상식 밖이라 유명했던 건가?
드라고니아가 오가는 이야기를 더듬으며 의문을 토해냈다.
그래서 투란도 바로 깨달았다.
“설마…… 캄캄한 곳에 숨어 들어가서 칼 빼 들고 다니다 맨날 걸린 거예요?”
홀시딘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말한 것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래, 잘 숨어들어와서 컴컴한 곳을 훤히 밝혀놓고 물건 챙기다 걸리는 걸로 유명했지.”
파쿠란이 보태 말한다.
“그럼에도 그 빛나는 검을 휘둘러 잡히지 않고, 사람을 다치게 하지도 않고 내뺀 탓에 더욱 유명해졌어. 그 얼굴을 가려준 것이 바로 요술가면, 에모틱이야. 에모틱에 걸린 것은 간단한 마법이지만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도저히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 이걸 쓰고, 적당히 손질해서 다니면…… 옷차림이랑 검에도 주의하면 얼굴이 알려질 일은 전혀 없지. 그러니 도적 중에 여유 있는 놈들은 이걸 필수품으로 챙겨 다닐 수밖에 없어.”
“우와…… 상아탑에서는 이런 거 못 만들어요?”
감탄하다가 투란이 불쑥 물었다.
파쿠란이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홀시딘을 바라봤다.
홀시딘은 투란의 물음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다가 불끈하며 대답한다.
“안 만들어! 이런 거는…… 케이라가 도적 나오는 동화책을 보고 대여섯 살 때 하나 만든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상아탑의 마법사라면 이런 장난감을 만들지 않아!”
“대여섯 살? 굉장하군요.”
파쿠란은 투란이 ‘쳇.’ 하며 입술을 삐죽이는 사이에 감탄했다.
그 감탄에 홀시딘이 멈칫하다가 한숨을 쉬며 중얼중얼, 민망해하며 말한다.
“어려서 호기심도 많았고, 장난기도 많아서 말이지…… 열 살 넘어 철들면서는 다시 그러지 않았…….”
“간단하다 해도 에모틱의 마법은 그렇게 쉽게 따라 하지 못합니다. 천재이고 미녀란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에모틱을 그 나이에 만들 줄은 몰랐군요. 그 가면, 한번 보고 싶군요.”
파쿠란이 홀시딘을 향해 순수하게 케이라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홀시딘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투란을 향해 말한다.
“어벙한 도적처럼 옷차림이나 장비를 똑같이 하고 낯짝만 바꾸지 말고, 제대로 신분 감추고 다녀! 알았지? 괜히 날뛰다가 눈에 띄지 말란 말이다.”
“날뛸 일 없어요! 그냥 호위일 뿐이고…… 몬스터도 없잖아요, 이 도시에는 사람뿐인데, 큰일 나겠어요. 흠흠.”
투란이 당당하게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잠시 투란을 바라보다가 홀시딘이 파쿠란에게 말한다.
“이 녀석, 잘 좀 봐주게나. 보다시피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 조금이라도 조짐이 나쁘다 싶으면 바로 내게 알려줘.”
파쿠란이 대답한다.
“그러도록 하죠. 그러면…….”
“연락방법은…… 이걸 주도록 하지.”
홀시딘이 반 토막 난 금전 하나를 꺼냈고, 반지 낀 손에 쥐고 집중했다.
반 토막 금전은 찰랑이며 꿈틀꿈틀 모양을 바꿨다.
얇고 둥글게 변해가는 금전 위로 새로운 무늬가 번졌고, 금전은 압축되며 고리가 되었다. 금전의 색이 서서히 하얗게 변하며 무늬는 그 속으로 가라앉듯이 사라졌다. 그 변화 끝에 마지막에 남은 것은 거울처럼 주변을 비추는 은색의 반지였다.
파쿠란은 그 은반지를 받아들었고, 살짝 감격한 듯한 목소리를 흘려낸다.
“이건…… 카티야의 바람 반지, 맞습니까?”
투란이 ‘그게 뭐야?’ 하는데 홀시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는 역시 알고 있었군. 어? 투란은 처음 들어보냐? 이 반지는 모험의 동반자들에게 나눠줬다는 그랜드 마스터의 마법 반지, 카티야의 바람 반지라고 정식으로 기록된 마법물품이다.”
“으음…… 그랜드 마스터의 모험담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투란이 한숨을 쉬듯이 중얼거렸다.
홀시딘이 코웃음을 치고 혀를 날름하며 말한다.
“대마법사에게 관심이 없었겠지! 칼 들고 활 쏘고 사냥하는 일에만 귀를 기울인 탓 아니냐?”
“에잇, 그랜드 마스터인 마법사 얘기가 유명하지 않은 거겠죠!”
투란은 삐죽거리면서 반박했다.
한데 홀시딘이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잖는가!
“상아탑에서 일부러 소문을 축소해서 얘기가 퍼지지 않게 손도 좀 쓰긴 했어. 흠, 그래서…… 파쿠란, 쓰는 법을 알겠나?”
파쿠란은 조용히 은반지를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우더니 귓가에 댔다.
그 모습을 홀시딘이 그대로 따라 하며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아, 우, 에, 이, 오, 들리나?”
파쿠란이 손목을 향하듯이 낮게 대답한다.
“들리는군요.”
투란은 ‘이게 뭔?’이라고 웅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두 마법사의 반지 언저리에서 작은 속삭임이 확실히 울렸다.
즉, 저 반지는 일종의 메신저 마법을 간직한 것이었다.